소설리스트

로그인하는 천마님-211화 (211/275)

제211화

시후는 천마기사에 천마지기를 섞어 보냈다.

아폴론이 느꼈던 것이 바로 이거였다.

일반적인 천마기사와는 다른 천마기사-공.

천마기사는 줄곧 시후에게서 뿜어져 나오지만 천마기사-공은 시후를 떠나는 천마기사였다.

마치 자아가 있는 듯 대상의 발밑까지 다가가 전신을 구속했다.

엘프들은 보이지 않는 나무가 자신들을 옭아매는 것처럼 느꼈다.

그리고 천마기사를 모르는 이가 봤을 때는 그저 엘프들이 허공에 묶인 것처럼 보였다.

“저럴 수가….”

아폴론이 딱 그러했다.

지금 주변에 있는 엘프들의 수는 대략 50명 정도.

아무리 자신이 펼친 공격에 큰 상처를 입었다 하지만 너무나도 쉽게 제압했다.

일반인이라면 모를까.

엘프의 마을에서 정령의 가호를 받은 엘프들을 저렇게 만들다니.

“천마님의 힘은 도대체….”

턱-

아폴론이 시후의 힘에 놀라자 진지춘이 다가와 그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그러고는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천마님의 무.서.움.은 절대적인 힘 때문이 아닙니다.”

“그럼?”

“지금부터 시작이니 너무 놀라시면 안 됩니다.”

진지춘의 의미심장한 말에 아폴론은 침을 꼴깍 삼켰다.

이만한 힘을 보여줬는데 그게 전부가 아니란다.

거기에 무서움을 강조하는 진지춘.

무섭다는 것에 기준이 상대적이기는 하지만 그의 표정은 진지했다.

둘이 대화를 나누는 사이 시후는 엘프들에게로 다가갔다.

그중에서도 마차 위에 있던 여성형 엘프 앞에 멈춰 섰다.

“너를 보니 생각나는 놈이 하나 있구나.”

“뭐?”

“꼬리가 아홉 개는 달린 것 같은 짓을 하는 녀석이지.”

프로게이머들을 길들이는 데 가장 비협조적이던 녀석.

하지만 지금은 그들의 리더를 맡길 정도로 시후를 따르는 박혜령이 떠올랐다.

그녀를 알 리 없는 여성형 엘프는 시후의 말에 인상을 구겼다.

“무슨 헛소리야! 이거나 풀어!”

“하는 행동에 비해 보는 눈은 꽝이구나?”

시후는 여성형 엘프가 악을 쓰자 고개를 까딱였다.

그러자 그를 묶고 있던 천마기사가 움직였다.

팔과 다리를 몸에 바짝 붙여 묶고는 가로로 눕혀 시후의 눈높이에 맞춰 놓았다.

“종종 있지. 똥인지 된장인지 구분 못 하고 꼭 찍어 먹어봐야 직성이 풀리는 놈들이.”

“…….”

“걱정하지 마. 내가 보기보다는 친절하단다. 직접 먹여줄게.”

시후는 검지를 들어 여성형 엘프의 이마를 쿡 찍었다.

그러고는 사늘한 눈길과 함께 입을 열었다.

“미리 말하는데, 재미없으니까 쉽게 불지 말아라.”

“뭐?”

“네가 쉽게 입을 열면 내가 이런 짓을 하기로 마음먹은 게 아쉬워지거든.”

“무슨… 꺅!”

여성형 엘프는 참을 수 없는 고통에 비명을 질렀다.

그 고통은 시후가 찍은 이마에서부터 시작됐다.

뇌가 울리고 속이 울렁이는가 싶더니 근육이 뒤틀리고 뼈가 잘근잘근 씹히는 고통을 느꼈다.

살아생전에 이만한 고통은 처음 느꼈다.

참을 수 없는 고통에 몸부림을 쳐보려 했지만 구속당해 그러지도 못했다.

그녀가 할 수 있는 거라고는 뚫린 입으로 비명을 지르는 것뿐이었다.

“크아악!”

그래서일까. 그 비명은 그 어느 비명보다 끔찍하게 들렸다.

이 때문에 마찬가지로 천마기사에 속박당한 다른 엘프들의 표정은 사색이 되었다.

아폴론 역시 잔인한 시후의 손속에 한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저럴 수가. 어떻게 저런 고통을 줄 수 있는 겁니까?”

“분골착근(分骨錯筋)이라 합니다.”

“분골…착근이요?”

“뼈와 근육을 잘근잘근 부수는 고문 기술이죠.”

“고문….”

분골착근이 정확히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고통은 짐작할 수 있었다.

아폴론 역시 의술의 신이기에 보였다.

시후가 엘프에게 불어 넣은 힘이 어디를 어떻게 부수고 찢고 뒤틀어 버리는지.

차라리 죽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의 고통이었다.

아폴론은 여성형 엘프의 그런 심정을 그대로 느꼈다.

그래서인지 궁금해졌다. 시후가 왜 저렇게까지 잔인하게 고문을 하는지 말이다.

“천마님께서는 왜 저렇게까지 하시는 겁니까?”

“아마도….”

아폴론의 질문에 진지춘은 순간 ‘마음에 안 들어서’라고 대답할 뻔했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평소보다 시후의 손속이 잔인했다.

거기에 입꼬리는 올라가 있지만, 눈은 전혀 웃지 않는 표정.

차분하다 못해 싸늘하기까지 했다.

그런 시후의 얼굴을 살짝 확인한 것만으로도 진지춘은 등골이 오싹했다.

그 순간 진지춘은 떠올렸다.

이전에 그가 달랍궁의 등장을 이야기할 때, 대력공방 방주들이 배신했다고 말할 때, 시후의 표정이 딱 저러했다.

누구에게나 ‘배신’이라는 단어가 유쾌하지 못한 것일 테지만, 시후는 다른 이보다 더욱 민감하게 반응했다.

불현듯 진지춘은 깨달았다.

시후를 배신한다면 그에 합당한 복수를 당하리라고, 그것이 개인이든 단체이든 국가이든 상관없이 말이다.

생각이 거기에 미치자 진지춘은 빠르게 주변을 훑었다.

“아폴론 님, 분명 얼마 전에 여기 오셨다고 하셨죠?”

“네.”

“그때만 해도 저 녀석들이 공격하지는 않았고요?”

“그렇죠. 그때만 해도 저들은 저를 쌍수 들어 반겼습니다.”

“그때 저 여성 엘프는 못 보셨고요?”

“네. 그건 왜….”

진지춘은 고통에 울부짖는 여성형 엘프를 포함한 몇몇 엘프를 눈여겨봤다.

다른 엘프들과는 다르게 그들의 표정에는 두려움보다 절망감이 보였다.

지금처럼 공포스러운 상황에서 목표를 잃은 듯한 표정을 보이다니.

진지춘은 아폴론에게 바짝 다가가 속삭였다.

“아폴론님. 혹시 광명의 권능으로 거짓을 씻어낼 수 있나요?”

“거짓…?!”

아폴론은 그제야 진지춘이 무엇을 말하는지 눈치챘다.

그렇게 생각하자 시후가 벌이는 행동이 이해되었다.

아니, 되레 그 행동에 동참이라도 하고 싶었다.

“미친것들이. 감히 신을 능욕해?! 빛이여 모든 것을 밝혀라!”

아폴론이 입술을 잘끈 씹으며 광명의 권능을 펼쳤다.

그러자 그를 중심으로 빛이 번쩍이더니 퍼져나갔다.

빛이 훑은 자리는 밝은 대낮임에도 선명해지듯 밝아졌다.

그 빛은 점점 퍼져나가 천마기사에 묶여 있는 엘프를 휩쓸었다.

“뭐, 뭐야?!”

그러자 여기저기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까지 동료라고 여기던 엘프들의 모습이 변하기 시작했다.

미남미녀가 아닌 저세상에서 올라온 악마의 형상으로 말이다.

그중에는 시후 앞에 있던 여성형 엘프도 있었다.

“크아! 카가가각!”

여성형 엘프는 입술을 까뒤집더니 날카로운 이빨이 돋아났다.

침을 뚝뚝 흘리며 고통에 몸부림치던 그녀는 어느새 날카로워진 이빨을 달싹거렸다.

시후는 그녀의 이마에서 손가락을 땠다.

“그래. 진작에 이 모습으로 나타나지 그랬냐. 그랬으면 분골착근까지는 당하지 않았잖아.”

“크르륵….”

그녀는 시후의 말에 반박이라도 하려는 듯이 으르렁거렸다.

하지만 조금 전 당한 고문에 말을 할 수가 없었다.

목소리를 낼 힘조차 잃은 거였다.

악마의 모습을 한 엘프들의 모습에 다른 엘프들이 떠들기 시작했다.

“도대체 뭐야? 테브론! 그 모습은 뭐야?!”

“이봐! 알페온! 정신 차려!”

그들은 악마의 모습을 한 엘프들의 본래 이름을 부르며 다그쳤다.

그렇게 주변이 소란스러워지자 아폴론이 시후에게 다가왔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모르겠습니다.”

“넌 저들이 누군지 알지?”

“네. 저들은 지옥의 주인, 하데스의 주민들입니다.”

시후 역시 하데스가 누구인지 한나미에게 들어서 알고 있었다.

명계를 다스리는 신으로 제우스의 형제라고 했다.

“그런 녀석이 왜 엘프의 숲에 손을 끼치는 거지? 그것도 뒷공작까지 하면서?”

아폴론은 시후의 질문에 대답할 수 없었다.

아무리 성격이 삐뚤어진 하데스라고 해도 이렇게까지 일을 벌인 적은 없었는데 말이다.

도대체 지하 세계의 주민을 이곳에 보낸 연유가 궁금했다.

그러면서 자신도 알아채지 못한 저들의 정체를 알아낸 시후의 능력이 궁금했다.

“그런데 어떻게 아셨습니까? 저들이 엘프가 아니라는 것을?”

“저들이 엘프가 아니지는 않아.”

“네? 엘프가 맞는다고요?”

“어, 다만… 죽음의 냄새가 짙다고 해야 할까?”

“죽음의 냄새. 그렇다면 저들은?!”

“그래. 모두 사자(死者)라는 거지.”

시후가 저 녀석들의 정체를 눈치챈 것은 지상에 내려와서였다.

아니. 정확히 말해서는 마차 위에 은신해 있던 여성형 엘프의 존재를 발견했을 때였다.

이곳이 정령의 숲이고, 정령의 가호까지 받은 엘프라고 하기에는 사방에서 시체 썩은 내가 진동했다.

그랬기에 시후는 그녀를 시작으로 다른 엘프들의 냄새를 맡았다.

천마지체가 삼 단계에 오르자 마기를 느끼는 데 더욱 민감해졌다.

따라서 냄새로 저들이 엘프가 아닌 시체임을 알아챘다.

“와… 도련님 이제 후각으로 그런 것도 판별하십니까?”

진지춘은 날이 갈수록 대단해지는 시후의 능력에 진심으로 탄복했다.

그도 그럴 것이 진지춘은 알고 있었다.

Safety World에서 시후가 보여주는 무위나 능력 모두가 현실에서 가능하다는 것을 말이다.

앞으로는 현실에서 방귀 뀌는 것도 조심해야겠다 싶었다.

“그 정도면 웬만한 수색견 저리 가라 해도 되겠습니다.”

“개? 너 지금 나를 개에 비교하는 거야?”

“아니 왜 그런 것으로 발끈하십니까? 칭찬입니다. 칭찬!”

진지춘은 시후가 발끈하자 깜짝 놀라 손사래를 쳤다.

아직 시후의 기분이 풀리지 않았는데 말을 함부로 한 것에 아차 싶었다.

여기서 입을 잘못 놀렸다가는 무슨 화를 당할지 알 수 없어 서둘러 움직였다.

“이봐, 너희 무슨 꿍꿍이로 여기에 나타난 거야?”

진지춘은 침을 질질 흘리고 있는 여성형 엘프에게 다가갔다.

그나마 그녀가 다른 지하 세계 주민들보다 모습이 심하게 변하지 않아 말을 걸었다.

다른 녀석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괴물 영화에 나오는 형상으로 모습이 변했다.

머리는 앞뒤로 길어지며 눈이 찢어지고, 입술이 사라지고 그 대신 날카롭게 길쭉해진 이빨이 자리했다.

다행히 여성형 엘프는 아직 이빨만 뾰족해지며 길쭉해진 상태라 대화가 통할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진지춘의 질문에도 여성형 엘프는 침을 질질 흘릴 뿐 말을 하지 못했다.

“제가 언제나 느끼는 것인데 말입니다. 도련님께서는 너무 힘이 과하십니다.”

“뭐?”

“적어도 대답할 힘은 남겨두고 조지셔야죠. 힐.”

진지춘은 시후를 나무라며 여성형 엘프에게 힐 스킬을 사용했다.

지하 세계 주민이기는 하지만 체력을 회복하는 데는 ‘힐’만 한 스킬이 없었다.

덕분에 여성형 엘프는 힘겹게나마 눈을 떴다.

“크으… 살려…줘.”

“어구. 얼마나 고통스러웠으면 대뜸 살려달래. 힐”

진지춘은 시후에게 눈을 흘기며 다시 한번 힐을 사용했다.

시후는 자신을 탓하는 진지춘의 태도에 뒤통수라도 후려갈기고 싶었지만 참아야 했다.

그의 힐 스킬에 여성형 엘프가 정신을 차리니 말이다.

‘아무래도 조각상을 찾는 데 지금 상황이 밀접한 관계가 있을 것 같아.’

조각상을 찾는 퀘스트에 아무 이유도 없이 이런 상황이 벌어지지는 않았으리라는 게 시후의 추측이었다.

그렇게 진지춘의 힐 덕분에 어느 정도 기력을 회복한 여성형 엘프는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상황을 파악했다.

그러고는 시후를 봤다.

그 눈에는 조금 전과 같은 공격성은 없었다.

“좋아, 이제 말할 준비가 되었군.”

스윽-

시후는 천마기사를 움직여 가로로 누워 있던 그녀를 일으켜 세웠다.

의자가 없음에도 의자에 앉은 것처럼 그녀를 앉혔다.

그러자 그녀가 알아서 입을 열었다.

“우, 우리도 아직 살아 있는 엘프입니다.”

“뭐?”

“그러니 부디 저희를 살려 주십시오.”

지하 세계 주민이 되었으면서 살려달라니.

시후는 무슨 연유가 있을 거라는 생각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여성형 엘프가 한도의 한숨을 크게 내쉬며 입을 열었다.

“저희 엘프의 숲은 죽은 자의 숲이 되었습니다.”

“죽은 자의 숲? 그러면 여기가 명계라도 된다는 거야?”

“반쯤 맞는 말씀입니다. 지금 엘프의 숲은 지상과 지하 세계의 딱 중간인 경계의 지역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들려주는 그녀의 이야기에 시후는 눈빛을 빛냈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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