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로그인하는 천마님-210화 (210/275)

제210화

“방법이 있다고 하지 않았나?”

“하, 하하. 생각처럼 되지 않았네?”

“생각…처럼?”

태연하게 말하는 아폴론에 시후의 눈썹이 꿈틀댔다.

“내가 지금 누구 때문에…!”

푹-

시후는 말을 하던 도중 마차를 뚫고 들어온 화살이 눈앞을 스쳐 지나가자 입을 다물었다.

한 뼘만 옆으로 날아왔으면 로그아웃이 됐을 것이다.

시후는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아폴론의 멱살을 움켜쥐었다.

“왜, 왜 이러나?!”

“…….”

아폴론의 질문에 시후는 대답 대신 그를 마차 밖으로 밀어냈다.

“으악! 무, 무슨 짓, 무슨 짓입니까?!”

아폴론은 어찌나 당황했는지 말투까지 존대로 바뀌었다.

어떻게든 다시 마차 안으로 들어가려 힘을 써보았지만 시후의 손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

믿기지 않는 시후의 힘에 당황하는 그때 마차를 두르고 있던 시후의 내공막이 딱 자신 앞쪽만 스르륵 걷히는 것이 보였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이 그 틈을 비집고 수십 개의 화살이 날아들었다.

“으악!!”

아폴론은 사색이 된 표정으로 손을 어지럽게 움직여 화살을 막았다.

아폴론이 제법 잘 막아내자 시후는 그를 더욱 밀어냈다.

“미친! 저건 정령의 가호가 깃든 화살이라 신성력으로도 막지 못한다고요!”

“돕는다며? 그럼, 그렇게라도 돕든가.”

“으악! 알았어요. 알았다고요! 일단 들여보내 줘요!”

“진짜 마지막이다.”

알았다며 자신을 마차 안으로 다시 넣어달라는 아폴론.

시후는 진짜 마지막 기회라 생각하며 그를 끌어당겼다.

그리고는 마차를 둘러싼 내공막에 다시 천마지기를 불어넣었다.

탱탱탱-

잠시 걷혔던 내공막이 다시 생성되자 그 자리에 수십 개의 화살이 날아왔다.

시후는 그 화살의 주인들을 노려봤다.

백옥 같은 피부에 노란색 머리카락과 잘빠진 몸매의 소유자들.

어디를 가나 미남미녀 소리를 들을 녀석들이었다.

지금까지 봐온 녀석들과 크게 다른 점이라면 특별하게 뾰족한 귀를 가진 정도였다.

“엘프의 마을 엘프들은 네 친구라 하지 않았나?”

“하, 하하…. 분명 그랬는데. 그새 환영 인사가 바뀌었을… 리는 없고….”

헛소리를 내뱉으려는 아폴론은 시후가 노려보자 말끝을 흐렸다.

시후의 눈에서 피어오르는 살기를 느껴서였다.

사실 아폴론 역시 지금의 상황에 미쳐버릴 것 같았다.

대충 웃음으로 때우고 있었지만 엘프들이 왜 공격하는지 연유를 알 수 없었다.

분명 얼마 전에 왔을 때 타고 왔던 그 마차였건만. 게다가 그때만 해도 저들은 쌍수를 들어 자신을 반겼었다.

아폴론이 엘프들의 변한 태도가 왜인지 고민하자 진지춘이 슬쩍 다가왔다.

“아폴론 님, 지금은 생각에 빠지기보다는 몸을 움직이시는 게 나을 것 같은데요.”

“어? 아! 지, 지금 하려고 했네!”

아폴론은 진지춘 덕분에 어느새 지척까지 다가온 시후의 손을 발견했다.

시후의 인내심에 한계가 다다랐음은 묻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아폴론은 서둘러 손을 비볐다.

그러자 그 자리에 빛이 모이더니 곧 하프로 변했다.

“내 연주를 들으면 나를 기억할 겁니다.”

아폴론은 엘프들이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는 것에 무슨 연유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하프 연주를 통해 그들의 기억을 떠올리게 하려는 거였다.

다라랑-

아폴론이 손을 움직이자 하프에서 아름다운 선율이 흘러나왔다.

마차 밖에 쳐진 시후의 내공막을 두드리는 화살 소리와도 어울리는 음률이었다.

‘이것 봐라? 소악사 녀석만큼이나 잘하잖아?’

음악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시후였지만, 음악이 가져다주는 효과는 익히 아는 시후였다.

천마 시절 기분이 울적할 때면 언제나 달려와 음악을 들려주던 녀석이 소악사였다.

짜증이 솟구칠 때도 녀석이 들려주는 연주는 언제나 놀라웠다.

지금 아폴론이 들려주는 연주는 소악사의 그것과 비견되어도 손색이 없었다.

그만큼 듣는 이의 심금을 울리는 음악의 효과는 놀라웠다.

“도련님! 화살 공격이 멈추었습니다!”

진지춘의 말대로 내공막을 두드리던 화살 소리가 사라졌다.

마차 밖으로 고개를 내밀어 아래를 내려다보니 엘프들이 멍한 표정으로 마차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폴론은 자신의 연주에 엘프들이 반응하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내가 다 방법이 있다고 했잖습니까.”

“이런 방법이 있었으면 마차에 바람구멍이 뚫리기 전에 했어야지.”

“하, 하하…. 다음에는 그러겠습니다.”

아폴론은 시후의 꾸짖음에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적응되지 않는 이 상황에 당황스러웠다.

자신은 분명 올림포스 신인데 시후를 마주하고 있으면 어째서인지 잔뜩 주눅이 들어버리니 말이다.

그 때문인지 아폴론의 표정은 시시각각 변했다.

만약 이곳에 시후와 진지춘이 없었다면 머리까지 쥐어뜯으며 고뇌했을 거였다.

그런 아폴론을 곁에서 지켜보던 진지춘은 짠하다는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그냥 그러려니 하고 받아들이십시오.”

“뭐?”

“도련님과 같은 분에게 자신의 상식을 들이밀면 결국….”

“결국?”

진지춘이 말끝을 흐리고 사뭇 진지한 표정을 짓자 아폴론이 참지 못하고 되물었다.

“역관광 당합니다.”

“역…관광?”

아폴론은 역관광이 무엇인지 물어보려다가 입을 다물었다.

어느덧 마차가 땅에 내려선 거였다.

시후는 마차가 땅에 내려서자 가장 먼저 입구로 나가려다가 진지춘을 돌아봤다.

“씹을 거면 당사자가 없을 때 씹어야 하는 거 아니냐?”

“에이~ 도련님 없는 곳에서 뒷이야기 해봐야 어차피 들키는데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헤헤.”

진지춘은 이곳이 Safety World 속이니 마음 놓고 시후 앞에서 이런 이야기를 한 거였다.

이곳에서 죽는다고 현실에서 죽는 게 아니고 시후 역시 그것을 알기에 죽이지 않으니 말이다.

시후는 뻔히 속내가 보이는 진지춘의 행동에 피식 웃었다.

“네가 아직 죽음보다 더 큰 고통이 있다는 것을 모르는구나?”

“네?”

“눈 뜨고 잘 봐라.”

훅-

시후는 의미심장한 말을 남기고는 마차에서 내렸다.

진지춘과 아폴론은 서로 눈치를 주고받더니 뒤따라 내렸다.

시후는 마차에서 내리자 자신을 겨누고 있는 엘프들을 봤다.

“너희들… 다짜고짜 그렇게 적대감을 보이면 말이야. 상대방은 얼마나 기분이 나쁜지 아냐?”

“…….”

시후는 말을 하며 주변을 둘러봤다.

다들 미남 미녀인 엘프들이었지만 시후 역시 이들에 대해 정보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너희들도 지휘 체계가 있다고 들었는데? 대가리가 누구냐?”

“흥 말투하고는, 저급하게 ‘대가리’라니.”

시후의 거친 말투에 한 엘프가 대답했다.

나무에 기대어 팔짱을 끼고 시후를 노려보고 있었다.

“오, 역시 너일 줄 알았지.”

“뭐?”

“다른 녀석들보다 네 기운이 강해 보여 네가 한가락 하는 놈일 줄 알았지.”

시후는 주변을 둘러볼 때 몇몇 녀석들의 기운을 읽었다.

엄청나게 강한 것은 아니지만 눈에 띌 정도는 되었다

“너랑 너 그리고… 너.”

“……!”

시후가 마지막에 마차를 지목하자 엘프들이 깜짝 놀랐다.

시후가 지목한 엘프는 나무에 기대어 있는 덩치 큰 녀석과 바위에 걸터앉아 있는 눈매가 날카로운 녀석.

그리고 마차 위에 은신하여 있던 녀석이었다.

시후의 지목에 마차 위에 있던 엘프가 은신을 풀고 내려왔다.

“어? 너는….”

“안녕하세요, 아폴론 님.”

“그래, 그래. 어느덧 이렇게 컸구나? 이제는 시집가도 되겠어?”

아폴론과 인사를 나눈 엘프는 여성형 엘프였다.

시집을 가도 되겠다는 말에 그녀의 미간이 순간적으로 찌푸려졌지만 이내 웃는 얼굴을 보였다.

“미리 오신다고 연락을 주셨다면 이런 결례를 저지르지는 않았을 텐데요.”

“하, 하하. 그게 좀 그렇게 되었다. 장로님은 잘 계시지?”

“네. 모시겠습니다.”

여성형 엘프가 안내하겠다며 앞으로 걸어갔다.

그러자 활을 겨누고 있던 엘프들이 활을 내려놓았다.

아폴론은 시후와 진지춘에게 손짓했다.

“가시지요. 이 아이의 안내를 받으면 금세… 천마님?”

그런데 어째서인지 시후는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대신 아폴론이 느낄 정도로 미세한 기를 넓게 퍼트리고 있었다.

“무슨.”

“쉿.”

아폴론이 무슨 짓을 하려고 물으려 하자 진지춘이 곁에 다가와 말렸다.

그저 지켜보라는 듯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리고 그 연유를 알기까지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생긴 거랑 다르게 하는 짓거리는 아주 앙큼하구나?”

움찔-

순간 주변에 있는 엘프 모두가 움찔했다.

고작 저런 한마디에 보이는 엘프들의 동요.

아폴론도 그제야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알았다.

“너희, 무슨 짓을 꾸미는 거냐?”

시종일관 미소를 보이던 아폴론이 처음으로 굳은 표정을 보였다.

그러고는 들고 있던 하프를 옆구리에 끼었다.

당장이라도 연주를 하려는 그때.

쉬잉-

공기를 가르는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아폴론에게 단검이 날아왔다.

바위에 걸터앉아 있던 엘프가 던진 거였다.

순식간에 던진 것치고는 상당한 기운이 담긴 단검이었지만.

디링-땅-

아폴론이 하프의 현을 한 번 튕기자 보이지 않는 벽에 부딪힌 것처럼 땅에 떨어졌다.

그 순간 지금까지 나무에 기대어 있던 덩치 큰 엘프가 아폴론 머리 위에 나타났다.

“크합!”

기합과 함께 주먹에 거대한 힘을 담아 아폴론의 머리 위로 내리쳤다.

단번에 머리를 쪼개버릴 듯한 기세였다.

하지만 이번에도 역시.

띠링-쿵-

아폴론이 하프의 현을 튕기자 보이지 않는 벽에 막혔다.

주변 공기까지 울리는 충격파에 얼마나 큰 힘이 주먹에 깃들어 있는지 알 수 있었다.

“너희들 정말 진심이구나.”

아폴론은 지금 상황을 이해할 수 없지만, 한 가지는 알았다.

이들이 올림포스 신인 자신을 죽이려고 한다는 것을 말이다.

“너희가 그렇게 덤빈다면… 나 역시.”

따라라랑-

아폴론은 결심을 굳히고는 하프의 현을 튕겨 연주를 시작했다.

조금 전 마차에서 연주한 것과는 전혀 다른 선율이었다.

그때는 잔잔한 호수를 연상시켰다면 지금은 피와 살점이 난무하는 전장을 떠오르게 했다.

그리고 그것에 맞게 엘프들의 반응도 달랐다.

“크아악!!”

엘프들은 귀를 움켜쥐며 비명을 질렀다.

몇몇 엘프들은 입에서 피를 토하며 바닥에 쓰러졌다.

“오, 제법인데?”

“그러게 말입니다. 음공(音功)이 상당한 수준입니다.”

시후는 솔직한 심정으로 아폴론을 칭찬했다.

그도 그럴 것이 아폴론이 지금 펼치는 음공은 상당한 수준이었다.

피아 식별 없이 음공을 쏘아내는 것이라면 웬만한 무림인이라면 누구나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 아폴론처럼 자신과 진지춘에게는 전혀 피해를 주지 않게 하며 다수의 상대에게만 피해를 주는 것은 상당한 경지에 들어서야 가능했다.

거기에 아폴론이 보이는 음공은 절정의 경지에 다다라 보였다.

오죽하면 주변에 풀 한 포기까지 전혀 음공에 영향을 받지 않아 무사했다.

“그런데 도련님, 슬슬 말리셔야 할 것 같은데요?”

“그러게.”

그런 대단한 음공이었지만 슬슬 말려야 할 것 같았다.

아폴론의 기세가 점점 거세지는 것이 저대로 두었다가는 엘프 모두를 죽일 것만 같았다.

지금 이곳에 온 목적은 어디까지나 조각상을 찾기 위한 것이지 엘프의 몰살이 아니니 말이다.

시후는 입술을 살짝 오므리고는 바람을 내뱉어 휘파람을 불었다.

삐익-

짧지도 길지도 않은 그 휘파람 소리에 아폴론은 손을 멈췄다.

시후의 휘파람이 멈추라는 신호를 보내서가 아니었다.

자신이 하프를 통해 뿜어낸 기운이 시후의 휘파람 한 번에 사라져 버려서였다.

엘프들이 저지른 행동보다 시후가 보인 힘에 놀라 손을 멈춘 거였다.

덕분에 엘프들은 죽을 위기를 모면할 수 있었다.

시후는 거친 숨을 몰아쉬며 비비적거리는 엘프들에게로 다가갔다.

“어때? 요단강을 건너기 전에 돌아온 기분이?”

“…….”

“그래, 고맙게 느껴질 거야.”

시후는 엘프들이 대답하거나 말거나 상관없이 말을 이어갔다.

“그래서 말인데. 묻는 말에 친절하게 대답 좀 해줄래?”

“우, 우리가 순순히 그럴 거라 생각하는 건가?”

덩치 큰 엘프가 입가에 흐르는 피를 훔치며 나섰다.

시후는 그 엘프를 보며 한쪽 입꼬리를 올려 웃었다.

“당연하지. 아니면 요단강을 건너 염라대왕을 만날 텐데?”

“…….”

덩치 큰 엘프는 시후의 말에 아폴론을 힐끗거렸다.

시후가 말한 염라대왕을 만나게 해줄 이가 아폴론이라 생각한 것 같았다.

그리고 그 생각은 다른 엘프들 역시 마찬가지인 듯했다.

다들 아폴론의 눈치를 슬금슬금 보고 있었다.

“쯧쯧쯧. 뭐가 독사고 뭐가 구렁이인지 구분도 못 하는 놈들.”

진지춘은 혀를 차며 아폴론에게로 다가갔다.

“지금부터 도련님께서 하시는 일에 태클 걸지 마세요.”

무언가 이상한 당부를 하는 진지춘이었다.

아폴론이 그게 무어냐고 물으려는 그때. 시후가 손을 들어 올렸다.

“천마기사(天魔氣絲)-공(空).”

그리고 펼쳐지는 모습에 아폴론은 두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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