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09화
공기를 짓누르는 살기가 시후 일행을 덮쳤다.
“크윽.”
자그마치 올림포스 열두 신의 살기라 다들 털썩 주저앉으며 고통에 신음을 흘렸다.
오직 시후만을 제외하고 말이다.
시후는 주변 동료들이 쓰러지자 내공막을 펼쳤다.
올림포스 신들이 뿜어내는 살기를 막고자 했다.
그럼에도 일그러진 동료들의 표정을 풀어주지는 못했다.
결국, 시후를 제외한 모두가 바닥에 쓰러지며 고통에 몸부림치기 시작했다.
시후는 올림포스 신들을 만난 이후 처음으로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이제야 네가 오만방자했다는 생각이 드느냐?”
끄덕-끄덕-
제우스의 질문에 시후가 힘겹게 고개를 끄덕여 답했다.
제우스는 만족한다는 듯이 미소 지었다.
“그래. 이게 바로 너희와 우리가 이야기하는 올바른 자세이다.”
“크윽.”
결국 시후까지 신음을 흘리자 다른 신들까지 미소 지었다.
“어디 돼지처럼 짖어 보겠느냐?”
“뭐?!”
“그럼 너희가 원하는 것을 알려주마.”
“우리가 원하는 것?”
“너희 지금 우리의 힘이 담긴 조각상을 찾고 있잖아.”
“그걸 어떻게….”
어떻게 알았는지 신들은 이미 시후가 받은 퀘스트의 정체를 알고 있었다.
하지만 어떻게 알았는지 묻기에는 동료들 상태가 심상치 않았다.
가장 레벨이 낮은 메테르는 벌써 입에 게거품을 물고 기절까지 한 상태였다.
더는 망설일 수가 없었다.
“꿀꿀.”
시후가 고개를 푹 숙이고 돼지 울음소리를 냈다.
그러자 신들은 자기 입을 가리며 참을 수 없다는 듯이 웃었다.
“크큭, 크크큭! 푸하, 하하!”
그중에서도 가장 크게 웃는 것은 아폴론이었다.
태양신답게 얼굴에서 빛이 나는 신이었다. 그 때문인지 더욱 얄미워 보였다.
거기에 한술 더 떠.
“더 크게! 아름다운 음률처럼 들리게! 더 짖어 보거라!”
시후에게 더 크게 짖으라며 두 팔을 휘저어 재촉했다.
시후는 주먹을 움켜쥐며 분노를 표했지만 결국.
“꿀, 꿀! 꿀꿀!”
아폴론의 요구대로 목 놓아 돼지 울음소리를 냈다.
그것에 만족한 것인지 신들은 더 크게 웃었다.
시후는 부들부들 떨며 힘겹게 입을 열었다.
“이제 그만하고 말해주지?”
“크큭, 그러지. 우리의 힘이 담긴 조각상은 말이야….”
그렇게 시작된 올림포스 열두 신의 설명.
제우스부터 차례로 어느 지역에 힘이 깃든 조각상이 있는지 설명했다.
정확한 위치는 알 수 없고 누가 가졌는지는 모른다고 했지만, 그것만으로도 큰 힌트였다.
“어떠냐? 이 정도 정보면 너희 낯을 판 것에 보답은 된 것 같은데.”
고생했다며 다독이는 제우스의 말에 다른 신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이제 볼일은 다 봤다는 듯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렇게 올림포스 신들이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자리를 뜨려는 그때.
“정리했지?”
“네, 오빠. 누구를 어디에 보낼지까지 정했어요.”
시후와 조민의 대화 소리가 신들의 발목을 잡았다.
시후는 그렇다고 쳐도 조민은 분명 바닥에 쓰러져 고통에 몸부림치고 있었는데 너무나도 태연한 목소리였다.
이상한 낌새에 신들이 고개를 돌려 봤지만 보이는 광경은 조금 전과 똑같았다.
하지만 신들은 느꼈다. 좀 전과 다른 이질적인 기운을 말이다.
제우스가 손을 들어 까닥이자 아폴론이 한발 나섰다.
“빛이여 모든 것을 밝혀라.”
태양신인 아폴론이 권능의 힘을 사용했다.
지금까지 어둑했던 하늘이 순간 밝아지며 뿌옇던 유리창이 닦이듯 무언가가 걷혀갔다.
그와 함께 올림포스 신들의 두 눈도 점점 커졌다.
“너… 너!”
제우스는 믿을 수 없다며 손가락질했다.
그도 그럴 것이 안개가 걷히자 그곳에는 너무나도 멀쩡한 시후와 일행들이 있었다.
어찌나 멀쩡한지 게거품을 물고 쓰러졌던 메테르는 여전히 바비큐를 굽고 있었다.
올림포스 열두 신은 이 모든 일이 누구 때문인지 알았기에 그를 찾았다.
“뭐.”
시후는 스물네 개의 눈이 자신을 향하자 태연한 모습으로 퉁명스럽게 반응했다.
“이게 어떻게….”
“재미있었지?”
“무슨 짓을 한 것이냐?!”
시후의 반응에 올림포스 신들이 버럭버럭했다.
그러자 시후가 손을 들어 휘적였다.
“환벽(幻壁).”
시후의 내공이 허공에 흩뿌려지자 올림포스 신들이 봤던 그들의 굴욕적인 모습이 다시 나타났다.
“이럴 수가….”
망연자실한 목소리가 들리자 시후는 환벽을 거두었다.
“잠시나마 즐거우셨나?”
“환술로 우리를 농락한 것인가?!”
자신들이 속았다는 것에 올림포스 신들은 다시 한번 살기를 쏘아냈다.
그러나 이번에는 시후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천마압정(天魔押釘)-중(重)”
“큭.”
시후는 천마압정에 천마지기를 불어 넣어 올림포스 신들을 짓눌렀다.
순식간에 열두 신은 몸을 짓누르는 거대한 힘을 느꼈다.
어찌나 엄청난 힘인지 몸을 가누지 못해 두 손으로 원탁을 짚어 겨우 몸을 지탱했다.
만약 원탁이 없었다면 모두 무릎을 꿇었을 거였다.
열두 신은 도저히 믿기 힘들다는 표정으로 시후를 노려봤다.
“그렇게 노려보면 뭐.”
“어떻게 한낱 인간이….”
여전히 시후를 아래로 내려다보는 제우스였다.
시후는 그런 제우스를 물끄러미 봤다.
“올림포스 신들인 너희들도 죽으면 리셋 되나?”
그 말에 제우스가 깜짝 놀랐다.
“나미에게 듣기로는 분명 신들의 힘이 약해지는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고 하던데.”
“…….”
“싸움으로 인해 치명상을 입었을 때. 또는 자신을 섬기는 이들이 줄었을 때. 또는 계획에도 없는 강림을 했을 때.”
꿀꺽-
시후의 마지막 말에 여기저기서 침 넘김 소리가 들렸다.
그랬다.
지금 올림포스 신들은 시후의 말대로 계획에도 없는 강림을 한 상태였다.
한가로이 올림포스 신전에서 뒹굴뒹굴하던 이들을 끌어낸 것은 강한 호기심이었다.
자신들을 위해 신력이 깃든 재단을 만들고 헤라 여신이 눈여겨보는 유저.
그 두 가지가 이들의 호기심을 강하게 자극해 예정에도 없는 강림을 했다.
사실 이들이 본래의 힘을 그대로 갖고 내려왔다면 지금 시후의 힘으로도 도저히 감당할 수 없을 것이다.
하늘을 다스리고 태양을 다스리고 땅을 다스리는 그런 힘을 가진 존재를 감당하기에는 말이다.
‘지금 녀석들의 힘이 본신에 30%라 했던가.’
신들의 힘을 가늠한 시후는 미소 지었다.
지금이야 그렇지만 시간이 지나면 도저히 감당하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아직도 시후는 천 년 전 천마의 힘을 모두 되찾지 못했으니 말이다.
시후가 웃자 올림포스 신들의 얼굴이 구겨졌다. 자신들을 모욕한다 느낀 거였다.
그 모습에 시후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궁금한데 한 놈 죽여볼까?”
죽인다는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자 올림포스 신들은 사색이 되었다.
Safety World에서는 아무리 올림포스 신이라 해도 죽을 수 있었다. 이들도 어디까지나 NPC. 죽으면 리셋이 된다.
다만 과거의 기억을 잃지는 않을 뿐. 타란이나 지젤 사제와 같은 거였다. NPC이지만 리셋이 되어도 그전의 기억을 고스란히 유지하는 존재였다.
그렇다고 죽음을 쉽게 받아들일 수는 없었다. 죽음에 이르는 그 공포와 고통은 절대 유쾌하지 않다.
“자, 잠깐만!”
그래서인지 신들은 저마다 다급하게 고개를 저었다.
그러면서 제우스를 쏘아봤다.
네가 리더이니 어떻게 좀 해보라는 뜻이었다.
하지만 제우스 역시 다른 방도가 없었다.
아니, 오히려 제우스는 시후의 무서움을 다른 신들보다 더 잘 알았다. 자신의 권능을 그대로 따라 하는 모습을 이미 보지 않았는가.
제우스는 시후를 절대 평범한 이라 생각지 않았다.
그렇다고 마냥 두고 볼 수는 없기에 다르게 접근했다.
“원하는 게 무엇인가.”
거두절미하고 협상을 하자고 제안을 하는 거였다.
“좋아. 바로 그런 자세가 내가 원하던 거야.”
시후는 이제야 이야기를 나눌 만한 상태가 된 것에 흡족해하며 손가락을 튕겼다.
푹푹푹-
천마압정으로 움직이지 못하는 올림포스 신들에게 지풍을 날렸다.
“오공단금술(五孔斷禁術)이라 한다.”
“오공…. 뭐?”
처음 듣는 스킬을 궁금해하는 신들에게 시후는 친절하게 설명했다.
“내 말을 듣지 않으면 몸에 있는 구멍이란 구멍에서 피를 철철 흘리며 죽는다는 거야.”
오공단금술이 무엇인지 알아듣기 쉬운 설명과 함께 손날로 목을 치는 동작을 보였다.
온몸에서 피를 흘리며 죽는다는 말에 신들은 말을 잃었다.
“괜찮아. 바로 죽지는 않으니까. 이번 일만 잘 도와주면 바로 풀어주지.”
“그걸 어떻게 믿지?”
“그래도 신이라는 녀석들이 의심은 더럽게 많네.”
“당연하잖나! 우리 목숨이 달렸는데!”
“다시 살아나잖아.”
“네가 죽는 순간의 고통과 두려움을 알기나 하느냐?”
신들은 발끈했다. 죽음이라는 것을 경험해보지 못한 주제에 자신들을 무시하냐며 말이다.
하지만 신들을 몰랐다.
시후야 말고 죽음의 고통과 두려움을 안고 일천 년의 세월을 넘어온 자라는 것을 말이다.
시후는 신들에게 펼쳤던 천마압정을 거두었다.
“그렇게 의심스러우면 언령(言靈)을 걸던가.”
“진심…인가?”
“속고만 살았나.”
시후가 말한 언령은 그야말로 제약을 거는 거였다.
시후가 신들과 한 약속을 지키지 않을 시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치른다.
그리고 그것은 분명 시후의 목숨일 거였다.
제우스는 망설임 없는 시후의 태도와 그를 말리지 않는 일행의 모습에 이 판이 이미 짜인 판이라는 것을 눈치챘다.
“칫. 속은 것에 분하지만 어쩔 수 없지.”
제우스는 하는 수 없다며 권능을 펼쳤다.
띠링-
[올림포스 신들과 언령으로 묶였습니다.]
[해당 퀘스트 종료 시에 서로에게 묶인 제약이 함께 해제됩니다.]
언령이 일어난 것을 알리는 알림창에 시후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바로 이동해볼까?”
“그러지. 우리도 시간은 아까우니.”
“눈치가 빨라서 좋군.”
올림포스 신들은 이미 시후가 자신들에게 무엇을 시키려는지 알았다.
조민이 나누어놓은 조에 합류하여 조각상을 찾으라는 거였다.
조민은 일행에게 차례로 자세한 설명을 해준 뒤 올림포스 신들을 붙여줬다.
그리고 시후의 차례가 되자 둘을 데리고 왔다.
“오빠께서는 이 두 분과 함께 하시면 돼요.”
진지춘과 아폴론이었다.
“뭐? 왜 나는 저 둘이야?”
다른 이들에게는 신 둘을 붙여주더니 자기에게는 왜 신 하나에 돌팔이를 붙여주냐고 묻는 거였다.
조민은 기다렸다는 듯이 빠르게 설명했다.
“아폴론 신은 그 이명이 너무나도 많아요. 태양신이자 광명과 의술, 음악, 시, 예언, 궁술, 진리의 신. 이 모든 게 그와 관련되어 있죠. 그렇다는 것은 조각상 입수 난이도가 극악이라는 거예요.”
“오케이. 그래서 내가 가는 것은 이해했어. 그런데 돌팔이는 왜?”
극악의 난이도라면 자신이 가는 게 당연하니 시후도 그 부분은 이해했다. 하지만 진지춘의 동행은 이해할 수 없었다.
“에이~ 도련님. 또 저를 짐 덩어리 취급하신다.”
“취급이 아니라 짐 덩어리 맞거든?”
“하, 하하. 농담도 잘하십니다.”
진지춘의 말대로 시후는 그를 짐 덩어리 취급했다.
어디 내놔도 부끄러운 녀석이었고 잠시 한눈이라도 파는 날에는 귀찮은 일을 주렁주렁 달고 오니 말이다.
“바로 그거예요.”
“깜짝이야. 뭐가 그건데?”
“오빠가 생각하신 그 이유로 의원님이 오빠와 함께 가셔야 한다는 거죠.”
“칫.”
시후는 순간 조민이 독안공을 익힌 것이 아닌지 의심했다.
생각이라도 읽은 듯이 진지춘과 동행해야 하는 이유를 말하니 말이다.
거기에 더 짜증이 나는 것은 그 이유가 지극히 타당했다.
다른 이들과 동행하거나 홀로 보냈을 때 진지춘이 어떻게 움직일지 뻔했다.
헤라 여신을 만나러 갔을 때도 처음 보는 집정관과 술판을 벌인 녀석이었다.
그런 걱정을 하느니 차라리 옆에 두고 감시하는 게 낫다 싶었다.
이 생각을 뒷받침이라도 하듯 진지춘은 벌써 일을 벌였다.
“하, 하하. 이렇게 제 우상이신 아폴론 님을 뵙습니다.”
“내가 우상인가?”
“그럼요~ 의술의 신 아니십니까. 제가 평소 그쪽에 관심과 재능이 많습니다.”
“오호, 그러한가? 그러고 보니 자네 직업은 힐러군? 그것도 상당한 레벨이야.”
“하, 하하! 그게 보이시나요? 이런 이런, 제 미모에 감춘다고 감췄는데 그게 잘 안되나 봅니다? 이게 다 아폴론 님 광명의 권능 때문 아니겠습니까?”
“하, 하하! 자네는 누구와는 다르게 말이 통하는 자군.”
진지춘은 어느새 아폴론과 악수를 하며 환상의 티키타카를 보여주고 있었다.
분명 아폴론이 시후를 비아냥거리는 말을 했건만 진지춘은 이에 가볍게 호응까지 하는 모습을 보라.
“꼭 내가 돌팔이를 데려가야 한다는 거지?”
“그럼요. 오빠 아니면 다른 누가 의원님을 말리겠어요.”
“쯧. 알겠어. 그럼! 다들 조심하고 빠르게 조각상을 모아 한스텔 마을로 오길 바란다.”
시후는 진지춘과의 동행을 받아들였다.
그 후 일행들의 안부를 당부하는 말을 전하자 일행들은 올림포스 신들과 케난 협곡을 떠났다.
“우리도 갈까?”
“내가 좀 돕지.”
시후가 출발하려 하자 아폴론이 손을 들어 올렸다.
그러자 하늘에서 네 마리의 멋들어진 말이 이끄는 마차가 내려왔다.
셋이 오르자 마차는 하늘을 날며 출발했다.
시후는 아폴론이 알려준 조각상이 있는 지역의 정보를 되새겼다.
“그런데 거기에는 바로 들어갈 수 있는 거야?”
조민이 귀띔해준 것이 사실이라면 그곳은 외부의 침입을 상당히 꺼리는 곳이었다.
“괜찮아. 다 방법이 있으니까.”
아폴론은 시후의 질문에 자신감 넘치는 모습을 보였다.
그리고 빠르게 달린 마차가 조각상이 있는 지역에 다다랐을 때 시후는 아폴론의 멱살을 움켜쥐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