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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그인하는 천마님-204화 (204/275)

제204화

고요한 수련실에 바람이 가득 차올랐다. 풀잎이 한들거릴 정도의 바람이 점차 거세졌다.

쿠아앙-

거대한 괴수가 울부짖는 듯한 소리가 수련실을 가득 채웠다.

그리고 이곳에 모인 모두가 보았다. 수련실을 딱 반으로 나눈 오른쪽이 일그러지는 것을 말이다.

그 부분에서 기의 소용돌이가 날뛰었다. 그런데 괴수의 울부짖음은 왼쪽에서 들렸다.

사악-

시후가 손을 내리자 무섭도록 요동치던 대기가 안정됐다. 다들 믿기지 않는 무공을 목격하자 할 말을 잃었다.

“기를 암기로 만들어 만천화우를 펼친다 생각하면 쉬울 거다.”

“아, 네…. 하지만 조금 전에 보여 주신 건.”

덕칠이 역시 시후가 기로 만천화우를 펼친 것은 알았다. 하지만 어째서 기의 소용돌이가 휘몰아치는 오른쪽이 아닌 왼쪽에서 소리가 들렸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시후는 그런 덕칠이의 눈앞에 손을 들어 올렸다.

후앙-

그러자 작은 바람이 시후의 손에서 일더니 울기 시작했다.

주먹만 한 회오리였다.

“이것을 기로 만든 암기라 하자.”

“네.”

“그리고 이것이 무음투척술.”

“……!”

조금 전까지 작게 울던 회오리의 소리가 사라졌다. 여전히 시후의 손에서 회전하고 있는데 말이다.

“이렇게 소리를 사라지게 했다면 반대로.”

시후가 손을 슬쩍 움직이자 작은 회오리가 점차 사라져갔다.

대신.

후우아앙-

좀 전에 들었던 회오리의 소리가 들렸다.

“아…!”

덕칠은 시후의 손에서 펼쳐진 무공을 보며 눈이 번뜩였다.

그 순간 덕칠은 그 자리에 가부좌를 틀며 털썩 주저앉았다.

무인이라면 평생의 소원이라 여길 수 있는 순간이 있다.

깨달음의 순간.

자신의 무공을 관철해 나가고 그 의미를 고민하고 무에 집착할 때.

어떤 계기만 있다면 깨달음이 찾아온다.

지금 덕칠에게 바로 그 순간이 찾아왔다.

“헐…. 저런 녀석에게 어찌 그런.”

진지춘 역시 덕칠이에게 깨달음의 순간이 찾아온 것을 알았다.

자신은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것을 저 어린놈이 이루니 부러웠다.

하지만 방해는 하지 않았다.

깨달음의 순간은 양날의 검과 같다.

몇 단계 위로 올라설지 모르는 순간이지만 그만큼 외부 위험에 적나라하게 노출된 거나 다름없는 상태였다.

덕칠이는 지금 외부의 작은 충격만으로도 주화입마에 빠질 수 있었다.

“운도 좋은 놈.”

진지춘의 투덜대는 말처럼 덕칠은 행운아였다.

세상 그 어떤 위험에도 그를 지켜줄 수 있는 시후 같은 자가 곁에 있는 지금 깨달음의 순간을 가지니 말이다.

시후는 덕칠이 심상의 세계로 빠지는 것을 보고는 그의 주변에 내공막을 펼쳐주었다.

시후만 한 강자가 아니라면 웬만해서는 부술 수도 없고, 외부 충격을 그대로 흡수하는 내공막이었다.

“우린 잠깐 나가 있지.”

시후는 그렇게 덕칠을 수련실에 홀로 남겨두고 일행들과 함께 나왔다.

덕칠이 언제 일어날지는 시후 역시 알지 못했다.

짧다면 5분, 길게는 며칠이 걸릴 수도 있었다.

모두 덕칠이 하기 나름이다.

도와줄 수 있는 거라고는 내공막이 전부이기에 시후는 덕칠이 대신 한나미를 맞이하기로 했다.

덕칠이가 깨달음의 순간에 들어간 지 한 시간이 좀 지나자 한나미가 도착했다는 연락이 왔다.

시후는 덕칠이 사숙의 목소리로 한나미에게 곧장 옥상으로 올라가라고 했다. 그곳에 가면 일전에 함께 Safety World를 했던 이가 있을 거라며 말이다.

그렇게 한나미가 옥상으로 올라오자 시후는 직접 마중을 나갔다.

일전에야 천투변용술로 덕칠이 사숙의 모습으로 만났으니 지금은 처음 만나는 모습을 보여야 했다.

“반갑습니다. 강시후입니다.”

“반가워요, 한나미라고 해요.”

“저번에도 감사했는데 이번에도 잘 부탁드려요.”

“아니에요, 저야말로 이런 기회가 생겨서 얼마나 잘 되었는지 몰라요.”

둘은 가볍게 악수하며 인사를 마쳤다.

“이쪽은 이번에 같이 플레이하실 다주힐 님과 유라 님이요. 아, 저번에 같이 했었죠?”

“어머?! 이분들이 다주힐 님과 유라 님? 어머, 어머.”

한나미는 진지춘과 조민을 보며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도 그럴 것이 Safety World에서 진지춘의 모습이 어떠한가. 다주힐이라는 닉네임을 사용하는 금발의 미남 힐러 아닌가.

거기에 조민은 어떠한가. 냉혈 미녀 유라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인기 있는 미녀였다.

물론, 17세 조민 또한 미녀이기는 하지만 Safety World에서 유라는 좀 더 성숙한 미녀의 모습이었다.

Safety World에서와는 다른 둘의 모습에 한나미는 신기해하면서도 당황해했다.

진지춘과 조민은 그런 한나미의 반응에 개의치 않고 웃으며 인사를 건넸다.

“반가워요, 앞으로 잘 부탁해요.”

그렇게 모두가 인사를 마치자 시후가 직접 안내했다.

“조금 있으면 차를 내올 것이니 이쪽으로 가서 이야기를 나누실까요?”

시후는 한나미가 도착했다는 소식에 당성치에게 차 좀 내오라고 말해뒀었다.

덕칠이가 있는 수련실 앞에 멋들어진 정자가 있기에 그리로 향했다.

한나미는 정자로 가는 동안에 주변을 둘러보며 연신 놀라는 모습을 보였다.

“와~, 어떻게 빌딩 옥상에 이런 집을 지을 수 있죠?”

“마음에 드시나 봅니다?”

“너무 이뻐요, 조경도 연못도 한옥으로 지은 집들도 너무 이뻐요.”

한나미는 정자에 올라앉으면서도 주변 경치에 대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여기가 시후 님의 집이신가요?”

“아니요, 저는 다른 곳에서 살고 있습니다.”

“네? 그럼, 여기는….”

“여기는 통화를 하신 그분의 거처세요.”

“아~ 그러시구나… 그럼….”

한나미는 고개를 끄덕이며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마치 무언가를 찾는 듯했다.

시후는 그게 무엇인지 단번에 알아챘다.

‘아마도 덕칠이를 찾는 것이겠지.’

이곳이 덕칠이 사숙네 집이라고 하니 덕칠이가 있을 수도 있겠거니 하는 거였다.

시후는 이왕 도와주기로 한 것 좀 더 오지랖을 부리기로 했다.

“덕칠이는 저 안에 있어요.”

“네?!”

시후가 손을 들어 수련실을 가리키자 한나미가 깜짝 놀랐다.

자신의 속내를 들킨 것과 덕칠이가 진짜로 이곳에 있다는 것에 놀란 거였다.

“지금 한창 수련 중이라 만나실 수 없지만요.”

“수…련요?”

수련이라는 말에 한나미가 눈을 껌뻑였다.

“오빠?!”

곁에 있던 조민이 다급히 시후를 불렀다. 지금 한나미에게 그 사실을 밝히려는 거냐고 묻는 거였다.

“어차피 알리기로 한 거. 녀석보다는 내가 알려주는 게 빨라.”

“그래서 걱정이라는 거예요.”

조민은 시후가 어떻게 한나미를 설득할 것인지 불 보듯 뻔하기에 걱정이 앞섰다.

한나미는 둘의 대화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면서도 도대체 자신에게 무엇을 말해주려는 것인지 궁금했다.

“제게 알려주실 게 있으신 거세요?”

“네, 덕칠이가 몸담은 곳이 어떤 곳인지 아셔야 할 것 같아서요.”

“한국 대학교에서 일한다고….”

“그건 표면적인 거고요. 정확히는 이런….”

스윽-

시후는 정자 근처에 있는 연못을 향해 손을 휘저었다.

그러자 연못 물이 솟구쳐 올랐다.

“어… 어?!”

한나미는 믿을 수 없는 광경에 말을 잃었다.

시후는 거기에서 그치지 않고 손을 좀 더 움직였다.

그러자 솟구쳐 올랐던 연못 물 한 줌이 날아와 시후 앞에 멈춰 섰다.

“초, 초능력?!”

한나미는 시후가 보인 것이 초능력이라고 생각했다. 그런 한나미에게 시후는 검지를 치켜세우며 좌우로 까딱였다.

“이것은 무공입니다.”

“무…공이요?”

“처음 들어보시나요?”

“아, 아니요. 그렇지는 않은데요….”

한나미는 침을 꼴깍 삼키며 말끝을 흐렸다.

시후는 한나미의 눈에 호기심이 가득 찬 것을 보고는 설명을 이어갔다.

“그럼, 두 손을 잠시 올려볼래요?”

시후의 말에 한나미가 두 손을 포개더니 손바닥을 위로 향하며 내밀었다.

시후는 그 손 위로 한 줌의 물을 옮겼다.

“무공은 사람에게 있는 기를 활성화하는 거라 생각하시면 됩니다.”

시후는 한나미의 두 손을 살포시 잡았다.

그러자 한나미 손에 올려져 있던 한 줌의 물이 소용돌이쳤다.

“느, 느낌이….”

“느껴지나요? 한나미씨 몸속에 있는 기를 이용해 지금 물을 회전시키고 있는데.”

“네, 느껴져요. 제 몸에서 무언가가 빠져나가는 게.”

한나미의 말대로 시후는 지금 한나미의 기를 이용했다.

일반인이 기를 다룰 수 없기에 시후가 한나미의 몸속에 자신의 기를 흘려 넣고 그녀의 기를 인도한 거였다.

“이처럼 기를 활성화하는 것을 무공이라 하고 그것을 다스릴 줄 아는 사람들을 가리켜 무림인이라고 한답니다. 그리고 덕칠이는 무림인이고요.”

“아, 네….”

시후는 어째서인지 한나미의 뜨뜻미지근한 반응에 흘리던 기를 풀었다.

그러자.

촤악-

한나미가 손에 있던 물이 형태를 유지하지 못하고 흘러내렸다.

한 줌의 양이었지만 한나미에게 가까이 붙어 있던 시후의 바지를 적시기에는 충분했다.

“어머?! 죄송해요.”

한나미는 급히 사과하며 닦을 것을 찾아 두리번거렸다.

그때 누군가 정자로 다가오며 말했다.

“이걸로 닦으세요.”

목소리의 주인공은 당소영이었다.

당소영의 손에는 쟁반이 들려 있었다. 시후가 주문한 차를 당소영이 직접 가져온 거였다.

당소영은 손수건을 꺼내 시후에게 내밀었다. 시후는 무언가에 홀린 듯 그 손수건을 받아 갔다.

그러고는 둘은 손수건을 마주 잡고 잠시 멈췄다. 시후와 당소영은 서로의 눈을 바라봤다.

‘그러고 보니 그때 이후로 처음 보는 거군.’

당소영이 별채에 누워 있던 날 시후는 자신의 마음을 전했다.

시후는 그때를 떠올리자 그녀와 입을 맞춘 것까지 떠올랐다.

그러자 자연스럽게 시선이 당소영의 입술로 향했다.

“크, 크흠.”

당소영은 시후의 시선을 느끼고는 화들짝 놀라며 손수건을 놓았다.

순식간에 얼굴이 붉어진 당소영에 시후는 피식 웃었다.

그리고는 젖은 바지를 닦았다.

대충 물기를 훔친 시후는 한나미에게도 손수건을 내밀었다.

“나미 씨, 이걸로… 응?”

그런데 한나미의 시선이 자신이 아닌 당소영에게 향해 있었다.

왜 그러나 싶을 때 한나미가 자리에서 일어나 당소영에게로 향했다.

“소영 언니?”

“응?”

한나미가 당소영의 이름을 불렀다. 그에 당소영이 한나미를 바라봤다. 둘은 서로를 한참 동안 살폈다.

“맞네요! 한국대 여신 당소영 언니!”

“어머?!”

상당히 반가운 기색을 보이는 한나미에 당소영 역시 무언가 번뜩 떠올랐다.

“한나미? 어머, 정말 나미야?”

“네~ 언니!”

둘은 손을 꼭 잡으며 반가움을 표현했다.

“둘이 어떻게?”

둘의 사이가 궁금한 시후가 끼어들었다.

“제가 예전에 과외 공부를 지도했던 아이예요.”

당소영의 말로는 한나미가 고등학생일 때 과외를 해주었다는 거였다.

그때의 인연으로 둘은 상당히 가까워졌었는데 당소영이 한국대를 졸업하고 임용고시를 준비하면서 연락이 뜸해졌다고 했다.

시후는 이렇게 한나미와의 인연이 이어질 줄 몰랐기에 신기했다.

‘아, 설마?’

그러다 한나미가 조금 전에 보였던 뜨뜻미지근한 반응이 왜 그랬는지 눈치챘다.

“나미 씨는 이미 무공의 존재를 알고 있었군요?”

“아, 네.”

그랬다.

한나미는 고등학생일 때 과외 선생님이었던 당소영을 통해 무공을 접해봤다.

그랬기에 시후가 보여 준 허공섭물에 호기심을 보일 뿐 놀라지 않은 거였다.

그 당시 당소영의 무공 성취가 그리 크지는 않았기에 대단한 것은 보여주지 않았겠지만, 일반인이 보기에는 놀랄 만했을 터였다.

한참 과거에 벌어진 일이었고 이미 한나미에게는 무림의 존재를 알리기로 한 이상 당소영을 탓할 수는 없었다.

그렇게 앞뒤가 맞아떨어지는 한나미의 행동에 문득 궁금한 게 떠올랐다.

“그럼, 덕칠이에게는 왜?”

“왜 오빠가 무림인인 것을 말하지 않았느냐고요?”

무공에 대해서 몰랐으면 모를까. 알고 있었다면 덕칠이의 기운이 남다른 것을 알았을 거였다.

아직 덕칠이는 자신의 무공을 갈무리할 정도의 실력은 갖추지 못했으니 말이다.

그 질문에 한나미는 한껏 침울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오빠가 저를 믿고 사실을 말해주기를 기다렸어요.”

한나미는 이미 덕칠이가 무인인 것을 눈치채고 있었다고 했다.

하지만 당소영이 무공의 존재는 비밀이라고 했던 것을 기억했기에 그가 먼저 말해주기를 바란 거였다.

그 기다림에서 저도 모르게 그와 감정싸움이 일어난 거고 말이다.

아둔하고 눈치도 더럽게 없는 덕칠이 그것을 알아채지 못했기에 헤어지자는 말까지 나왔다고 했다.

시후는 속으로 욕을 한 바가지 했다.

‘이렇게 되면 도와주는 내 행동은 정말 오지랖이 되어 버렸군.’

덕분에 시후는 굳이 하지도 않아도 됐을 오지랖을 떤 게 되었다.

밀려오는 민망함에 당장이라도 수련실로 쳐들어가 덕칠이 녀석을 두들겨 패주고 싶었다.

그런데 시후의 그런 마음이 하늘에 닿은 것일까.

갑자기 수련실 문이 벌컥 열렸다.

“우리 나미?!”

덕칠이가 한나미의 기를 읽었는지 뛰쳐나왔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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