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00화
덥석-
“어서 와요~”
“아, 네.”
메테르의 집으로 들어가 소개를 하는 사이 대뜸 그의 어머니가 시후의 손을 잡았다. 얼떨결에 손이 잡힌 시후는 자기 손을 물끄러미 봤다.
‘내가 못 피했어?’
아무리 불시에 일어난 일이었다 하지만 손이 잡히다니.
시후는 메테르의 어머니를 봤다.
나이는 50대 정도로 보이는 선한 인상을 가진 얼굴이었다.
‘뭐지? 이 기시감은?’
그저 인상 좋은 NPC를 만났을 뿐인데 왜 이런 느낌이 드는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여기서 그녀의 정체를 캐묻거나 할 수는 없었다.
지금 중요한 것은 경험치를 올려주는 음식을 만들 수 있는 메테르의 존재였으니 말이다.
시후는 눈을 반월로 만든 후 눈웃음으로 인사를 했다.
“다시 보니 반가워 메테르.”
“아, 네.”
메테르는 우물쭈물하며 대답했다.
그 반응에 시후는 진지춘을 힐긋거렸다. 제대로 이야기를 끝냈냐고 묻는 거였다. 진지춘은 시후의 시선에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빠르게 시후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 얘가 의심이 많습니다.
그 말을 들으니 메테르가 보인 반응이 이해됐다. 처음 보는 유저가 대뜸 이주하라고 하니, 의심부터 하고 보는 거였다.
본래 의심이 가면 내치는 게 당연하지만 시후는 빌리언 영주가 극진히 모시는 귀빈이었다. 시후의 심기라도 건드렸다가는 자신이 어떤 화를 입을지 모르기에 일단 집에 들인 거였다.
그래서 시후는 거두절미하고 바로 본론을 꺼냈다.
“메테르. 너와 네 가족이 한스텔 마을로 이주를 했으면 해.”
“저희 모두요?”
당연했다. 앞으로 신나게 부려 먹을 것인데 집이 한스텔 마을과 한참이나 떨어져 있는 폴린드 영지면 곤란했다.
“어. 그곳에 가면 거주할 곳과 네 능력을 마음껏 펼칠 수 있는 새로운 직장도 줄게.”
“집과 직장까지요?!”
의심이 많은 것치고는 눈에 욕심이 가득했다.
‘그러고 보니 돈벌레라는 별명이 있다고 했던가?’
시후는 턱을 매만지며 슬쩍 조민을 봤다.
역시나 눈치 빠른 조민. 벌써 다가와 바톤을 이어받았다.
“한스텔 마을로 가시면 환락탑 주방에서 요리사로 근무하시게 될 거예요.”
“제가요?!”
“네. 그것도 바비큐 담당 수석 요리사.”
“수석….”
수석 요리사라는 말에 메테르는 얼떨떨한 표정을 지었다. 이게 꿈인가 생시인가 싶어 자기 볼을 슬쩍 꼬집어 보기도 했다. 하지만 아직 놀라기에는 일렀다.
“한스텔 마을 남쪽에 네 분이 거주하실 수 있는 집도 마련해 놓았습니다.”
“집…이요?!”
“2층으로 된 단독 주택으로 방 4개, 화장실 2개, 언제든 바비큐 파티를 할 수 있는 앞마당….”
“자, 잠깐만요.”
메테르는 다급히 조민의 말을 끊었다.
“도대체 제게 왜 이렇게까지 하시는 겁니까?”
자신은 고작 폴린드 영지에 있는 14세 소년 가장일 뿐인데 말이다.
메테르를 지금 이것이 신종 인신매매법인가 하는 의혹까지 들었다. 딱이지 않은가. 여자 셋에 남자 하나. 어디에 내다 팔아도 후하게 쳐줄 만한 조합이었다. 메테르는 혼자만의 상상의 나래를 펼치더니 결국 경계심까지 품었다.
시후는 점점 길어지는 이야기에 슬슬 짜증이 일었다. 간단한 일을 이 지경까지 만든 원인을 찾아 눈을 부라렸다.
“도련님? 왜 그런 눈빛으로 저를 보실까요?”
“몰라서 묻는 거야?”
“그, 글쎄요? 저는 잘….”
“잘 모르겠으면 생각나게 해줄까?”
“잘~ 알고 있다고 말씀드리려고 했습니다!”
진지춘은 발뺌을 하려다가 메테르에게 후다닥 달려갔다. 메테르를 스카우트하기 위해서 왔지만 무슨 꼬마 놈이 의심이 더럽게도 많았다. 집 준다, 일자리도 준다, 돈도 준다, 하다못해 요리할 때 쓰는 아이템도 준다고 했다.
“그런데 왜… 아!”
진지춘은 자신이 메테르에게 내건 조건을 되짚다가 아차 싶었다. 생각해보니 오늘 처음 본 놈들이 대뜸 이런 조건을 내민다면 자신조차 의심부터 했으리라. 해서 진지춘은 방법을 바꾸기로 했다.
- 이번에는 실망시켜드리지 않겠습니다!
진지춘은 시후에게 메시지를 보내고는 두 주먹을 불끈 쥐어 보였다.
시후는 그 모습에 손을 휘휘 저였다. 이번에도 제대로 못 하면 알아서 하라는 미소와 함께 말이다.
“하, 하하. 메테르님~. 저와 잠시 이야기 좀 나누실까요?”
진지춘은 서둘러 메테르를 데리고 한쪽 구석으로 갔다. 여기서 어떻게든 메테르의 오해를 풀지 않으면 시후에게 어떤 보복을 당할지 상상조차 하기 싫었다.
그 사이 메테르의 어머니와 동생들이 차를 내왔다. 동생들은 찻잔을 들어다가 조민, 타란, 마르스에게 주었다. 시후에게는 어머니가 직접 찻잔을 건넸다.
“집에 변변찮은 차가 없어서 그저 따뜻한 물만 내왔습니다.”
“괜찮습니다.”
시후는 찻잔을 받아 들며 다시금 메테르의 어머니를 봤다. 여전히 미소 짓고 있는 그녀.
참을 수 없는 호기심에 독안공을 펼쳤다. 그 순간 메테르의 어머니가 움찔하며 처음으로 얼굴에 미소가 사라졌다가 이내 돌아왔다.
찰나의 순간이었지만 시후는 보았다. 그리고 둘의 시선이 허공에서 얽혔다.
메테르의 어머니가 먼저 입을 열었다.
“천마님이라고 하셨나요? 앞으로 저희 메테르의 보호자가 되실 텐데 잠깐 이야기 좀 나누실까요?”
“그렇죠. 앞으로는 제가 보.호.자이니, 어머니께 들을 게 많겠습니다.”
시후는 ‘보호자’라는 단어에 힘을 주어 말했다. 자신이 메테르를 얼마나 원하는지 알리는 거였다.
시후는 메테르 어머니의 요구에 순순히 응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조민이 뒤따르려고 했지만 시후는 고개를 저어 만류했다. 그 순간 조민의 눈치가 빛을 발했다.
“어머? 따뜻한 물을 마셨더니 속이 풀어지는 것 같네. 우리 한 잔씩만 더 줄래요?”
조민은 메테르 동생들에게 찻잔을 내밀었다. 둘은 자신들이 내어온 따뜻한 물을 조민이 마음에 들어 하자 즐거워했다. 그러고는 서로 내어주겠다 아웅다웅하며 아직 비우지도 못한 시후의 찻잔까지 들고 주방으로 갔다.
시후는 조민이 알아서 동생들을 떨어트려 주어 가벼운 마음으로 메테르 어머니의 뒤를 따랐다.
어머니는 집 밖으로 나가더니 이내 골목으로 들어섰다. 시후는 아무 말 없이 그녀의 뒤를 따랐다. 그렇게 몇 번의 모퉁이를 더 돌자. 그녀가 멈춰 섰다.
그리고 돌아본 그녀.
지금까지 보여준 인상 좋은 미소 따위는 전혀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싸늘한 눈빛을 보였다. 당장이라도 시후를 갈기갈기 찢어 죽일 만한 살기까지 보였다.
시후는 머리가 삐쭉할 정도의 살기를 받았음에도 전혀 개의치 않았다. 대신 손을 들어 올려 내공을 허공에 흩뿌렸다.
“환벽(幻壁)”
그녀는 시후의 손에서 뿜어져 나온 기가 주변을 감싸자 움찔했다.
“그렇게 경계할 필요 없어. 그저 우리 모습이 다른 이들에게는 평범하게 보이게 한 것뿐이니까.”
시후가 펼친 환벽은 내공으로 막을 치는 것보다 한 단계 위의 무공이었다.
진법을 이용해 상대방에게 보이는 환영을, 내공에 적합하고 적에게 원하는 모습으로 비추게 하는 거였다.
‘지괴가 보낸 비천대의 꼬리를 따돌릴 때 유용하게 써먹은 것을 이리 사용할 줄이야.’
저잣거리에서 마음 놓고 놀아보겠다는 일념으로 만든 무공이었다.
“지금 우리는 그저 담소나 나누는 사이로 보일 거야.”
“그런가?”
그녀는 환벽을 쓰다듬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시후의 말이 사실임을 아는 거였다. 그 모습에 시후는 더욱 확신에 찬 미소를 지었다.
“위리놈의 친구인가?”
“뭐?!”
시후의 질문에 그녀가 표독스럽게 반박했다.
“아니야?!”
“나를 그런 쓰레기에 갖다 붙이다니.”
상당히 기분 나빠하는 그녀의 태도에 시후를 고개를 갸웃했다. 분명 독안공으로 본 그녀의 정보에 위리놈과 관계가 있다는 내용이 있었다.
<??? ???>
종족 : 인간 / ??
직위 : 없음
직업 : 없음
<스텟 정보>
힘 : ???
민첩 : ???
체력 : ???
지능 : ???
<하르마게돈의 전투 이후 소실된 힘을 되찾는 중.>
<메테르에게 위협이 될 만한 존재를 극도로 경계한다.>
분명 하르마게돈에서 전투를 했다고 되어 있었다. 그렇다는 것은 위리놈과 관련이 있다는 것인데 불쾌한 모습을 보이니 의아했다.
“설마…. 너 천사야?”
“…….”
그녀는 대답하지 않았지만 다른 것이 답했다.
띠링-
[대천사 메타트론의 정체를 최초로 발견하였습니다.]
[업적 보상으로 전 스텟 +5]
업적 보상이 그녀의 존재를 알려줬다. 만약 이곳에 조민이 있었다면 메타트론의 존재를 듣는 순간 깜짝 놀라 소리를 질렀으리라. 하지만 메타트론의 앞에 있는 것은 시후였다.
“뭐야, 힘을 잃었어? 어쩐지…. 격이 높아 보이는 것치고는 힘이 미약하더니.”
“나에 대한 감상은 그게 다인가?”
“그럼 뭐, 어구~ 대천사 메타트론 님~ 반갑습니다~ 이러기라도 할까?”
“허?”
메타트론은 어이가 없고 기가 막혔다. 자신의 존재를 알게 된 유저.
무슨 스킬을 가졌는지는 모르겠지만 애써 감추고 있던 자신의 정체를 알아챘다. 그런데 보이는 반응이 고작 저거라니. 아니, 되레 이 정도면 무시에 가까웠다.
“대천사가 무엇인지 모르는 건가?”
“Safety World 하는 데 그것까지 알아야 하나?”
“…….”
너무나도 당당하게 자신의 무지함을 밝히는 시후에 메타트론은 입을 닫았다.
시후는 그녀가 왜 기분이 상했는지 관심이 없다는 듯이 손을 휘저었다.
“됐고, 내 본론만 말하지.”
“뭐지?”
“메테르와 함께 한스텔 마을로 와.”
“그곳이 네가 다스리는 땅인가?”
“아니. 그냥 내가 장사하는 곳.”
“장…사?”
“깊이 알려 들지 말고 그냥 따라와. 오면 잘 먹고 잘 살게 해줄 테니까.”
그의 말에 다소 억지가 섞였지만 시후는 메테르에게 최고의 대우를 해줄 생각이었다.
그가 가져다줄 수익이 어마어마하리라 예상했기 때문이다.
메타트론은 시후를 빤히 보더니 입을 열었다.
“내가 거부한다면?”
“그 거부를 내가 거부하지. 대신!”
시후는 메타트론이 헛소리를 하는 것이 아님을 알았다.
그녀의 눈이 한없이 진지했다.
아마도 그녀가 가지 않는다고 한다면 메타트론을 어머니라고 따르는 메테르는 절대 한스텔 마을로 가지 않을 터였다.
메테르가 눈에 띄지 않았으면 모를까 이미 그를 어디어디에 써먹을지 구상을 끝낸 지금 상을 엎을 수는 없었다.
“네 소실된 힘을 되찾아주지.”
“뭐?!”
“너 힘을 잃었다며, 그런데 지금까지 힘을 되찾지 못했다는 것은 무슨 문제가 있다는 거잖아.”
“…….”
“그걸 해결해 주겠다고.”
“네가 능력이 될까?”
“능력이 되냐고? 참나.”
시후는 자기 능력을 의심하는 메타트론에 어이가 없었다.
아무래도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 보여줄 필요가 있어 보였다. 시후는 내공을 단전까지 끌어올렸다. 그 힘을 잠시 단전에 멈추고는 빠르게 용천혈로 보냈다.
“만근추(萬斤錘).”
쾅-
순간적으로 만근에 달하는 무게로 땅을 짓눌렀다. 그러자 엄청난 굉음과 함께 주변이 요동쳤다.
메타트론의 몸이 휘청였다. 그 힘에 메타트론은 시후를 다시 봤다.
순간적으로 자신이 휘청일 정도의 지진을 일으키는 힘을 가진 유저. 자신에게 호의를 보이는 유저.
조금 건방지지만, 자격은 충분했다.
“좋아.”
메타트론은 손을 내밀었다. 시후의 조건을 받아들인 거였다.
그렇게 시후와 메타트론은 모종의 거래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이 진지춘이 달려왔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