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99화
헤라 왕국 폴린드의 영지인 14세 남자 메테르.
1남 2녀의 첫째로 아버지를 일찍 여의어 어머니와 동생들을 부양하는 소년 가장.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며 돈 되는 일이라면 무슨 일이든 한다고 해서 ‘돈벌레 메테르’라는 별명을 가진 녀석.
열심히 산 덕분에 주변 평판이 좋아 이번 영주성에서 열리는 만찬에 일손이 부족하다는 소식에 주방 보조로 잠시 취업했다. 전문적인 요리는 할 수 없지만 불을 다루는 데 능숙해 바비큐 담당이 되었다.
여기까지가 빌리언에게 들은 메테르의 정보였다.
바비큐 담당인 그 소년을 왜 데려오라는지 빌리언은 이해할 수 없었지만 일단 따랐다. 시후의 냉소에 전신이 얼어붙는 공포를 느껴서였다.
한편, 시후는 다 먹은 꼬치를 내려놓고 다른 바비큐 꼬치를 집어 입에 가져갔다.
딱 타기 직전까지 익은 바비큐. 덕분에 고기의 생명인 육즙을 그대로 담고 있다.
으적-
꼬치에 꼬인 고기 하나를 한입 크게 베어 물었다.
역시나 안에 담긴 육즙이 줄줄 새어 나왔다. 그야말로 겉바속촉. 맛과 풍미가 가득한 바비큐에 시후는 만족스러운 입놀림을 보였다.
우걱우걱-쩝쩝-
천마 시절 개방의 거지들도 이렇게 먹지는 않았을 정도로 게걸스럽게 먹었다.
그리고 그런 시후의 옆에는.
“우웁! 웁웁! (대박! 쩔어!)”
“우웁! 우우웁 웁웁! (먹어! 무조건 먹어!)”
진지춘과 조민이 시후와 같은 모습으로 바비큐를 뜯고 있었다. 어찌나 게걸스럽게 먹는지 배고픈 생각이 없던 빌리언의 입안에 침이 고일 정도였다. 빌리언은 도대체 저들이 왜 저렇게 식탐을 부리는지 영문을 알 수 없었다.
이는 모두 시후 때문이었다.
바비큐 담당자를 부르라는 명령을 내린 후에 시후는 일행들을 불렀다. 그러고는 자신이 먹었던 바비큐 꼬치와 똑같은 것을 일행들에게 내밀었다. 시후가 먹어보라고 내민 그 바비큐 꼬치를 먹은 일행들은 깜짝 놀랐고 잠시 후 지금의 상황이 벌어졌다.
그들이 너무나도 전투적으로 먹는 바람에 빌리언은 감히 말을 걸 엄두도 못 냈다.
그렇게 시후와 일행들이 미친 듯이 찍은 먹방이 막을 내릴 때쯤에.
“영주님, 주방 보조 메테르를 데리고 왔습니다.”
메테르를 데리러 갔던 시종이 돌아왔다. 메테르가 왔다는 소식에 시후는 마지막 남은 꼬치를 입에 욱여넣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풉!”
양쪽 볼이 터질 듯이 바비큐가 들어가 있어서 시후의 얼굴은 우스꽝스러웠다. 그 때문에 메테르는 영주의 앞임에도 웃음을 참지 못했다.
“크흠.”
“죄, 죄송합니다.”
그런 메테르의 행동을 탓하기라도 하듯 시종이 눈치를 줬다. 하지만 시후는 별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손을 휘저었다.
“우웁 웁웁 우웁우웁? (이거 네가 구운거야?)”
시후가 바비큐 꼬치를 흔들며 메테르에게 물었다.
말은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의미는 알아들었기에 메테르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제가 구웠습니다. 무슨 문제라도….”
걱정스러운 메테르의 표정에 시후는 손을 절레절레 흔들었다. 원활한 대화를 위해 서둘러 입에 있던 바비큐를 모두 씹어 삼켰다.
“푸후, 정말 이거 혼자서 준비한 거 맞아?”
“네. 메인 요리사님은 바쁘셔서 제가 구웠습니다.”
“그랬단 말이지? 으흠…. 그럼, 여기서 직접 구워볼래?”
“여기서요?”
메테르는 어쩔 줄 몰라 하며 당황해했다.
그도 그럴 것이 여기는 영주가 귀빈을 맞이해 연회를 베푸는 곳이 아닌가. 자신 같은 평민은 절대 들어올 수 없는 곳이다. 그런데 그런 곳에서 바비큐를 구우라니.
자기를 놀리는 건가 싶어 빌리언 영주를 봤다.
“히익!”
빌리언의 인상은 그 어느 때보다 험상궂게 일그러져 있었다.
“지금 나를 기만하는 것인가?”
아마도 시후가 자신을 놀린다고 생각한 것 같았다. 하지만 시후는 별 대수롭지 않게 인벤토리에서 대악마 아이템 하나를 꺼냈다.
“정말 중요한 일이라 그래. 일단 시도하는 데 이거 줄게. 만약, 내 생각이 맞는다면 더 좋은 거래를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어쩔래?”
시후는 대악마 아이템을 제 손에서 툭툭 던졌다가 받았다.
그때마다 빌리언의 고개도 올라갔다가 내려왔다가를 반복했다. 그러면서 일그러졌던 표정도 점차 풀렸다.
“크, 크흠. 천마님께서 그리 말씀하시면….”
슬쩍-
그러면서 시후가 내민 대악마 아이템을 슬쩍 받았다. 아직 해금이 되어 있지 않아 정확한 아이템 정보를 확인할 수는 없었지만 충분했다.
바꿔 말하면 시후가 해금만 해준다면, 어쩌면 이번에야말로 레전드리 아이템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였다.
그야말로 대악마 아이템으로 로또를 꿈꾸는 빌리언이었다.
‘이래서 사람들이 복권을 좋아하는 거지.’
복권을 긁기 전에 기대에 부풀어 일확천금의 꿈을 꾸는 빌리언을 두고 시후는 메테르에 집중했다.
어느새 메테르는 시종들이 전해준 도구를 이용해 바비큐 준비에 한창이었다.
시후는 그 모습을 유심히 관찰했다.
메테르는 준비된 고기를 일단 정갈하게 잘랐다. 한입 크기보다는 좀 더 크게 자른 그 고기에 칼집을 내주었다. 앞뒤로 골고루 칼집을 내준 후 소금으로 간을 했다. 그러고는 준비된 꼬치에 고기와 채소를 번갈아 가며 꽂았다.
‘별다른 게 없는데.’
여기까지는 딱히 다른 점을 찾지 못했다. 그런데 메테르가 화로에 불을 붙이는 순간 시후의 두 눈이 커졌다.
쿠화아-
“뭐야? 저 화력은?”
고작 꼬치 5개가 올라갈 정도의 작은 화로에 불을 붙이자 불길이 메테르 머리 위까지 치솟았다. 지켜보던 이들이 깜짝 놀랄 정도인데 메테르는 평온하게 손을 휘휘 저으며 불길을 달랬다.
점차 불길이 사그라들자 메테르는 바람구멍을 조절했다. 그리고 드디어 화로에 고기를 올렸다.
치이익-치익-
화력이 남다른 만큼 고기 겉면이 익는 정도가 빨랐다. 그 순간 메테르의 손이 바삐 움직였다.
꼬치를 이리저리 뒤집기 시작했다. 다섯 개의 꼬치를 시시각각 확인하며 빠르게 손을 놀렸다. 그것에 대한 집중력이 상당해 14살 소년으로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잠시 후 고기가 완전히 익었는지 메테르가 준비된 접시에 꼬치를 옮겼다.
“다 되었습니다.”
메테르가 완성된 바비큐를 들고 시후 앞에 내려놓았다.
시후는 서둘러 꼬치 하나를 들어 입에 넣었다.
으적-
“으흠!”
바로 화로에서 꺼낸 것을 먹어서 그런가 그 맛과 풍미가 전보다 더했다.
그리고 나타나는 알림창에 시후는 확신했다.
띠링-
[경험치가 상승했습니다.]
고기를 씹고 목구멍으로 넘길 때마다 경험치가 상승했다는 알림창이 나타났다.
바로 이것이 시후가 대악마 아이템을 빌리언에게 넘겨주면서까지 메테르를 찾은 이유였다. 하지만 빌리언에게 그 사실을 정확하게 말해줄 수는 없었다.
‘그걸 빌미로 거래를 하자고 할 테니까.’
시후는 씹던 고기를 마저 삼키고는 빌리언을 봤다.
“이 맛. 아주 훌륭해.”
“설마, 고작 고기 맛이 훌륭해서 부른 거란 말인가?”
여전히 심기가 불편해 보이는 빌리언이었다.
시후는 그런 빌리언에게 검지를 치켜들어 좌우로 흔들었다.
“고작이라니. 너는 식도락이라는 말도 몰라?”
“식도락?”
“사람이 느끼는 행복감에는 다양한 종류가 있지. 그중에도 음식을 먹으며 얻는 즐거움만큼 기쁜 것도 없지.”
“…….”
“이해가 힘들겠지만, 우리 유저들에게는 식도락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거야. 그래서 하는 말인데….”
“뭔가?”
빌리언은 한창 헛소리를 내뱉던 시후가 드디어 거래 조건을 꺼내려는 것을 눈치 챘다.
잠시 뜸을 들인 시후는 본론을 꺼냈다.
“저 꼬치 10개만 더 만들어주면 대악마 아이템 10개를 더 주지.”
“허?!”
빌리언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이해하려 애쓰지 않았다.
고작 꼬치 10개에 대악마 10개라니. 100개라도 구워주고 싶었다. 하지만 시후는 그저 10개면 된다며 손을 저었고 메테르에게 꼬치 10개를 더 구우라며 진지춘과 함께 내보냈다.
- 잘 꾀어봐.
그리고 진지춘에게 보낸 전음. 이것이 시후의 진짜 의도였다. 시후는 지금 메테르를 스카우트 하려는 거였다.
그가 고작 아르바이트로 이곳에서 일하고 있지만 어디까지나 그는 NPC. 특정한 조건이 없다면 거주지를 옮기지 않을 거였다.
그래서 진지춘에게 일을 맡겼다. 녀석의 능청과 말재주라면 메테르가 원하는 것을 파악하고 그를 수월히 데려올 테니까 말이다.
그 사이 시후는 적당히 빌리언을 상대하면 끝이었다.
“자, 그럼 두 번째 복권 긁기 시간인가.”
“어, 어서 해금을 해주게!”
빌리언은 기대감에 부풀다 못해 잔뜩 긴장한 모습이었다.
해금하지 않은 아이템은 전부 11개. 과연 이 안에 레전드리 아이템이 나올지는 미지수였지만 희망의 끈을 놓지 못했다.
“천마흡기공.”
사아아-
시후는 아이템을 하나씩 들어 마기를 흡수했다.
해금이 되었다는 알림창이 나타나자 하나씩 빌리언에게 건넸다.
“음…. 끙…. 어허…. 하….”
빌리언은 시후가 건네주는 아이템의 정보를 확인하며 점차 한숨 소리가 커졌다.
성능이 나쁜 것은 아니었지만 유니크 등급조차 나오지 않았다.
그러다 10번째 아이템을 해금한 시후는 순간 움찔했다.
“쳇.”
한차례 혀를 차며 빌리언에게 건넸다. 조금 전까지와 다른 시후의 반응에 빌리언은 서둘러 아이템 정보를 확인했다.
“커, 커헉. 레, 레전드리…. 헉!”
드디어 레전드리 등급의 아이템이 나온 거였다.
[위리놈의 투척창]
[대악마 위리놈이 즐겨 던지던 창.]
[투척 후 60초 뒤에 자동으로 사용자에게 소환됨.]
[옵션 1 : 적에게 적중 시 크리티컬 대미지 +50%]
[옵션 2 : 적에게 적중 시 광역 폭발 확률 +30%]
[옵션 3 : 적 타겟팅 성공률 +50%]
[옵션 4 : 관통률 +20%]
레전드리 등급에 맞는 옵션을 가진 투척창이었다. 들고 사용할 때보다 던졌을 때 그 효과가 극대화되는 거였다.
수성전을 계획하던 빌리언에게 딱 맞는 아이템이었다. 덕분에 빌리언은 기쁨이 넘치다 못해 뒷목을 잡고 쓰러지기 일보 직전이었다.
시후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마지막 남은 아이템의 마기를 흡수했다. 이후 나타난 정보에 시후의 두 눈이 부릅떠졌다.
“빌리언 영주. 레전드리 얻어서 기분이 좋은가 봐?”
“하, 하하! 기분이 좋을 뿐이겠습니까. 아주 날아갈 것 같습니다!”
어찌나 기분이 좋은 시후에게 존대까지 했다.
“그래? 그럼 마지막에 나온 이 히든 등급 아이템은 내가 가져도 될까?”
마지막에 해금한 것이 히든 등급이라는 소리에 빌리언이 시후의 손에 들린 것을 보았다.
“그건 뭡니까?”
“보면 모르나? 프라이팬이잖아.”
“아니, 누가 프라이팬을 모릅니까? 왜 그런 게 대악마 위리놈의 물건이냐고 묻는 거죠.”
“내가 알아? 그래서 이거 가질 거야 말 거야?”
“쳇. 그런 쓰레기는 되었습니다.”
“그래? 알았어.”
시후는 들고 있던 위리놈의 프라이팬을 인벤토리에 넣었다. 그리고 저도 모르게 씰룩이는 입꼬리를 단속하느라 애를 썼다.
띠링-
[메테르 꼬셨습니다.]
때마침 진지춘에게서 메테르에 대한 일이 해결되었다는 메시지가 왔다. 시후는 자리를 툭툭 털고 일어났다.
“그럼, 우리는 간다.”
“하, 하하! 조심히 가십시오!”
빌리언은 시후가 간다고 하자 싱글벙글한 얼굴로 마중했다.
시후와의 만남이 그다지 유쾌한 시간은 아니었지만, 결과가 만족스러워서였다.
시후는 일행들과 함께 빌리언 영주성을 빠져나와 진지춘을 찾았다. 진지춘은 메테르가 구운 바비큐 꼬치 10개를 들고 그의 집에 있었다.
기감으로 진지춘이 어디 있는지 파악했기에 시후는 빠르게 메테르의 집으로 향했다. 그의 집에 도착해 안으로 들어서자 시후를 가장 먼저 반긴 것은 메테르의 어머니였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