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98화
빌리언 사이오몬 공작.
그는 헤라 왕국 남쪽에 있는 폴린드 영지를 관리하는 귀족이다. 폴린드 영지는 10개의 마을로 이루어진 곳으로 신이 내린 비옥한 땅이라는 이명이 붙을 정도로 농사가 활성화된 곳이다.
그렇기에 빌리언은 다른 귀족들보다 인재를 영입하는 걸 중요시했다. 비옥한 땅을 관리하는 데는 우수한 농사꾼도 필요하지만 다른 곳의 침략을 막기 위한 기사도 필요한 법이다.
그렇기에 빌리언은 그런 인재들을 꾈 수단으로 많은 아이템을 갖춰놓았다. Lv. 300 이상의 유저들이 한눈에 혹할 정도의 아이템들이었다.
빌리언은 그 아이템들을 모으기 위해 다른 영지와 식량으로 거래를 했다. 그렇게 피와 땀으로 모은 아이템들인데, 그것을 지금 눈 뜨고 코 베이는 격으로 도둑 맞는 심정이었다.
“오! 이거 좋은데?”
“오빠, 이것도 괜찮아 보여요.”
“주인님, 이것도요.”
“형님! 이런 게 숨겨져 있습니다!”
다주힐, 유라, 타란 거기에 헤라 왕국 왕자인 마르스까지. 이들은 지금 빌리언의 창고를 탈탈 털고 있다.
그들이 쓸 만하다며 아이템을 고를 때마다 빌리언은 흠칫흠칫했다. 제발 그것만은 안 된다며 소리치고 싶은 것을 꾸욱 참으면서 말이다.
그런 그의 옆에 거무튀튀한 아이템들이 점점 쌓여갔다. 일행들이 아이템을 선별할 때마다 시후가 인벤토리에서 대악마의 아이템을 툭툭 꺼내 놓았기 때문이다.
시후는 빌리언이 만찬이라며 준비한 음식 중에서 바비큐 꼬치 하나를 들고 뜯으며 말했다.
“분명 아이템 하나에 하나씩 거래하기로 했다. 그치이?”
“…네.”
시후의 질문에 빌리언은 다 죽어가는 목소리로 답했다. 그도 그럴 것이 자신의 창고에서 나가는 아이템은 그 정보가 확실했지만, 옆에 쌓이는 아이템들은 그렇지 않았다.
예를 들어 지금 마르스 손에 들린 저 촛대. 일전에 헤라 왕국 수석 사제를 초빙까지 하며 얻은 무려 유니크 아이템이었다.
[레드 드래곤의 촛대]
[등급 : 유니크]
[레드 드래곤이 잠들기 전 심신의 안정을 위해 사용한 촛대.]
[사용 조건 : 촛대에 초를 얹어 불을 붙여 촛불이 피어오르면 활성화.]
[옵션 1 : 촛불이 피어오르는 동안 사용자의 화염 속성 +30%]
[옵션 2 : 촛불이 피어오르는 동안 화염 저항 +30%]
[옵션 3 : 촛불이 피어오르는 동안 주변 은신 스킬 무효화]
후에 있을 퀘스트를 대비해 창고 구석 벽돌 틈에 넣어둔 것을 마르스가 찾은 거였다.
갱생한 이후로 능력치가 월등히 오른 마르스는 저렇게 숨겨 있는 무언가를 잘 찾게 되었다. 그게 물건이건 사람이건 아이템이건 뭐든지 말이다.
하지만 그 사실을 굳이 다른 이들에게 말해주지 않았다. 시후 역시 독안공이 아니었으면 몰랐을 능력이었다. 덕분에 귀족들 곳간을 탈탈 털 수 있었다.
“그, 그건!”
“에이~, 방해하지 마. 이거 줄 테니까.”
툭-
또다시 천장에 숨겨 있던 유니크 아이템을 꺼내는 마르스에 빌리언이 소리쳤다. 그런 빌리언의 앞에 시후는 또다시 거무튀튀한 아이템을 던졌다. 결국, 더는 참지 못한 빌리언이 괴성을 토했다.
“크악! 그만해!”
그 소리에 시후 일행은 동작을 멈추고 시후를 봤다. 정말 멈추어야 하는지 묻는 거였다.
“네가 그렇게까지 싫어하니 어쩔 수 없지.”
시후가 손을 까딱이자 넷은 자리를 툭툭 털고 일어났다. 그러고는 자신들이 찾은 아이템을 시후 옆에 가져왔다.
“모두 합쳐 마흔아홉 점입니다.”
조민이 모아온 아이템의 수를 파악했다. 그 소리를 옆에서 들은 빌리언은 뒷목을 잡으며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졌다.
“뭐?! 마흔…아홉 점?!”
덥석-
그러고는 대뜸 시후의 멱살을 잡았다. 그런데 어째서인지 시후가 얌전히 멱살을 잡혀주었다. 일행들 역시 막으려는 기색이 전혀 없어 보였다. 덕분에 빌리언의 행동은 거침이 없었다.
“해도 해도 너무 하잖나!”
“뭐가 너무해? 정확히 1 대 1 거래를 하는데?”
“정확? 내 유니크 아이템들과 아직 어떤 아이템인지도 모르는 저런 것들과 비교가 된다고 생각하는 건가?!”
“허, 그래서 뭐, 이제 그만하자고?”
“그래! 그만 때려치워!”
“이제 더는 필요 없다 이거지?”
“그래!”
시후는 일부러 확답을 듣겠다는 듯이 재차 물었다.
단호하게 거래를 끝내자는 빌리언의 말에 시후는 아쉽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지. 그럼 이제 복권을 긁을 차례인가?”
“복권?”
시후는 자신의 멱살을 잡은 빌리언의 손목을 가볍게 뿌리치고는 바닥에 놓인 아이템 하나를 집었다.
어둠의 숲에서 위리놈이 풀어 놓은 다크 울프를 잡아 나온 아이템. 그것들은 하나같이 검은색을 띠고 있으며 형태를 특정하기 어려웠다.
그저 어떤 것은 길쭉하고 어떤 것은 정육면체이고 또 어떤 것은 둥근 공 모양이었다.
그랬기에 이것들이 무기인지 방어구인지 아니면 액세서리인지 전혀 알 수가 없었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있었다.
‘독안공’
시후가 독안공을 사용하자 그 아이템의 정보가 나타났다.
[위리놈의 메이스]
[어둠의 기운에 잠식당한 메이스.]
[옵션 1: ???]
[옵션 2: ???]
[옵션 3: ???]
“메이스네.”
시후는 그 아이템이 무엇인지 알 수 있다.
누가 봐도 그냥 길쭉한 몽둥이같이 생긴 것이 메이스라니. 빌리언은 의심 가득한 눈초리로 노려봤다.
‘눈깔 봐라, 좀 골려볼까?’
시후는 빌리언의 눈빛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래서 옵션이 3개라는 말을 굳이 하지 않았다.
Safety World에서 아이템 옵션이 3개라는 뜻은 유니크 아이템이라는 뜻이다.
“들고 있어.”
시후는 빌리언에게 아이템을 넘겨주었다. 대충 한 손으로 받아든 빌리언. 뭘 하든 어서 해보라는 뜻이다.
시후는 잠시 후 지을 빌리언의 표정을 예상하고 피식 웃으며 아이템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천마흡기공.”
스으읍-
천마흡기공을 펼치자 아이템의 거무튀튀한 기운이 시후의 손에 빨려 들어갔다.
1초 정도의 순식간이었지만 시후는 천마흡기공으로 마기를 빨아들인 였다.
그러자.
띠링-
[아이템이 해금되었습니다.]
아이템의 해금을 알리는 알림창이 나타났다.
그리고 지금까지 모습을 감추고 있던 메이스의 진정한 모습이 드러났다.
“오오!”
가장 먼저 반응한 것은 진지춘이었다.
진지춘은 금발을 휘날리며 빌리언에게 바짝 붙었다.
“뭐하십니까? 어서 정보를 확인해 보십시오.”
“아, 네.”
순식간에 모습을 드러낸 위리놈의 메이스.
헤드의 날은 촘촘해 무엇이든 닿는 순간 찢어버릴 것 같았고 균형 잡힌 몸체를 지나 손잡이에는 버트캡까지 있어 미끄러지는 것을 방지했다.
그리고 대악마 위리놈의 아이템이라는 표식으로 버트캡에는 악마의 얼굴이 조각되어 있었다.
그 위용에 잠시 넋을 잃고 있던 빌리언은 진지춘의 성화에 못 이겨 아이템 정보를 확인했다.
[위리놈의 메이스]
[어둠의 기운을 담은 메이스]
[적중당한 적은 어둠에 빠져 움직임에 제약이 생긴다.]
[옵션 1: 어둠 속성 공격력 +30%]
[옵션 2: 어둠 계열 스킬 성공률 +50%]
[옵션 3: 크리티컬 대미지 성공률 +20%]
“유, 유니크….”
메이스의 정보를 확인한 빌리언은 말을 잊지 못했다.
같은 유니크 등급의 아이템이라고 해도 위리놈의 메이스와 레드 드래곤의 촛대는 그 활용도가 천지 차이였다.
촛대에 올린 초의 촛불이 꺼지면 그 성능을 발휘하지 못하는 레드 드래곤의 촛대와는 다르게 위리놈의 메이스는 휘두르는 것만으로도 적에게 치명적이었다. 거기에 기본으로 움직임 제약을 걸다니.
어떻게 보면 옵션이 4개가 있는 셈이었고 레전드리 아이템과 맞먹는 성능이었다. 이런 유니크 아이템이 자기 손에 들어오다니. 빌리언은 감격을 넘어 전율까지 느꼈다.
하지만 그런 빌리언의 감격스러운 순간은 진지춘의 한마디에 깨졌다.
“도련님, 유니크입니다. 헤인스 님 때처럼 레전드리가 나오진 않았습니다.”
“헤인스?!”
진지춘의 아쉽다는 말투에 헤인스의 이름을 듣자 빌리언은 상념에서 빠져나와 화들짝 놀랐다.
헤인스는 빌리언의 영지와 가장 밀접한 곳에 자리 잡은 영지의 귀족이다. 그리고 그는 호시탐탐 기회만 있다면 비옥한 토지를 가진 빌리언의 영토를 탐냈다.
그런데 그런 그에게 레전드리 아이템이 생겼다니. 빌리언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진지춘을 노려봤다.
“그렇게 노려보셔도 어쩔 수 없습니다. 말 그대로 아이템의 성능은 랜덤. 헤인스 님께서도 100점 중에서 2점이 나온 것이 전부이니까요.”
“두, 두 점?!!”
레전드리 아이템이 하나도 아니고 두 개라는 말에 빌리언은 또다시 뒷목을 잡았다.
빌리언의 그런 모습을 지긋이 지켜보던 시후가 움직였다. 바닥에 쌓여있던 아이템을 하나하나 집어 들며 천마흡기공을 펼쳤다.
하나의 아이템을 들어다가 해금을 하고 놓아주는 시간은 고작 1초.
덕분에 48점의 아이템을 모두 해금 하는 데 걸린 시간은 1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툭툭-
“휴, 이것도 하다 보니 힘드네.”
시후는 손을 툭툭 털며 힘들다며 땀 한 방울 흐르지 않는 이마를 훔쳤다. 거기에 한쪽 입꼬리만 삐쭉 올라간 표정은 보는 이로 하여금 울화통이 터지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빌리언은 그런 시후의 표정에 일일이 반응할 여유가 없었다. 시후가 해주를 마친 나머지 48점의 아이템의 정보를 확인하기 바빴다.
“허억, 이런, 신이시여! 젠장!”
빌리언은 아이템의 정보를 확인할 때마다 여러 가지 감탄사를 내뱉었다. 그것만으로도 그 아이템이 어떤 성능을 가졌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하지만 순식간에 아이템 정보를 모두 확인한 빌리언은 허망한 표정으로 시후를 돌아봤다.
“이럴 수는 없네.”
“응?”
“왜 나는 하나도 없는가? 레전드리가….”
“그걸 왜 나한테 물어? 분명 사전에 설명했을 텐데. 모두 랜덤이라고.”
“그럼 좀 더….”
“놉!”
시후는 빌리언의 말을 칼같이 자르며 거절의 의사를 밝혔다.
그리고 검지를 치켜들어 빌리언을 가리켰다.
“때려치우라고 한 건 너야.”
“끄응….”
그 말에 빌리언은 할 말이 없었다. 그렇다고 이런 두 번 다시 없을 이런 기회를 놓칠 수는 없었다.
“자네가 원하는 게 무엇인가? 내 적극적으로 수용해보도록 하겠네.”
“적극적으로? 진짜?”
“그럼! 무엇이든!”
빌리언은 시후가 관심을 보이자 이때다 싶어 달려들었다. 지금 빌리언의 간절한 표정으로는 영토 한쪽을 뚝 떼어달라고 해도 들어줄 것 같았다. 하지만 시후는 이미 빌리언에게 요구할 것을 정해놓았다.
툭툭-
어느새 다 먹었는지 들고 있던 바비큐 꼬치를 다른 손바닥에 쳤다.
“이거, 구운 놈. 누구야?”
“…?”
빌리언은 뜬금없는 시후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한창 아이템 거래를 하던 와중에 뜬금없이 바비큐 구운 놈이 누구냐니. 영주인 자신이 그것을 어찌 안단 말인가. 그냥 음식 만들라고 고용한 요리사 중 하나겠지.
그게 지금 아이템과 무슨 상관이냐고 버럭 소리를 지르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다 때려치라며 멱살을 잡았던 기억이 순간 스쳐 간 거였다. 실수는 한 번이면 족하다는 생각으로 빌리언은 차분하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천마님. 배가 고프신 거면 잠시 식사하신 후에 다시 이야기를 나누실까요?”
시후가 아이템을 교환하는 데 관심을 가졌으니 시간을 들여 이야기를 나누며 정확한 의도를 파악하려는 거였다.
하지만 돌아오는 거라고는 시후의 냉소였다.
“영주라는 녀석들은 왜 하나같이 말귀가 어두운 거야? 더도 덜도 말고 이거 구운 놈 내놓으라고.”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