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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그인하는 천마님-197화 (197/275)

제197화

시후가 가장 먼저 부른 것은 닭 볏이었다.

“닭 볏.”

까딱-

시후가 손가락을 까딱여 김희준을 불렀다.

김희준은 기다렸다는 듯이 한쪽에 마련되어 있던 무기 진열장으로 갔다.

이곳은 S.W SOFT에서 이번 월드 오브 리그전을 위해 특별히 마련한 가상의 수련장이었기에 이들이 주로 사용하는 무기들이 진열되어 있었다.

유저들이 평소 사용하는 무기의 스킬과 효과를 전혀 사용할 수 없다는 규칙이 있기에 이렇게 마련한 거였다.

김희준은 평소 사용하던 7척 정도 길이의 창을 들었다.

그리고는 결의에 찬 표정으로 걸어와 시후 앞에서 자세를 잡았다.

눈에 독기를 잔뜩 품은 그의 표정에 시후는 피식 웃었다.

스윽-

그러고는 허공섭물을 일으켜 시후 역시 무기 진열장에서 창을 꺼내왔다.

“그거….”

그 모습에 김희준이 참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

“그거 염력 스킬입니까?”

“아니.”

“그럼 다른 이들도 배울 수 있는 스킬입니까?”

“당연하지.”

“저희도 가르쳐주실 겁니까?”

“봐서?”

봐서라는 말에 김희준의 눈이 번뜩였다.

“…! 오백 원 드리면 가르쳐주실 겁니까?”

“웬 오백 원?”

“저번에 궁금하면 오백 원이라고….”

“아. 그거….”

일전에 너튜브에서 본 탑골 개그를 진심으로 받아들인 김희준이었다.

덕분에 시후의 귀가 붉어졌다.

‘이 자식은 생긴 것답지 않게 위트가 없어.’

하고 다니는 모습은 록 밴드를 하게 생긴 녀석이 말이다.

“넌 말이다.”

“…….”

“앞으로 잠들기 전에 개그 프로그램 한 시간씩 보고 자라.”

“개그 프로그램을요? 그걸 왜….”

“다음에 나랑 말할 때도 그렇게 재미없게 말하면 정말 재미없게 훈련하게 될 거야.”

장난스럽게 말했지만 시후의 말이 결코 장난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그것을 증명하듯 시후의 얼굴에 미소가 사라졌다.

마치 사자가 먹이를 관찰하는 듯한 표정에 김희준은 침을 꼴깍 삼켰다.

“긴장하기는, 덤벼라. 일주일 동안 배운 것을 모두 꺼낸다는 생각으로.”

시후가 창 손잡이를 잡아 치켜들며 옆으로 돌아 마보를 취하는 봉폐 자세를 잡았다.

고작 준비 자세를 취했을 뿐인데 순식간에 긴장감이 감돌았다.

김희진은 어깨를 짓누르는 긴장감에 심호흡을 한차례 길게 하고는 움직였다.

붕-붕-

창의 가운데를 잡고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다시 왼쪽으로 빙빙 돌리기를 반복하며 옆으로 걸었다.

그저 걷는 것이 아니라 시후를 중심으로 원을 그리듯 걸었다.

시후는 그런 김희준에게 창끝을 고정하며 천천히 몸을 틀었다.

그러다 시후의 몸이 비비 꼬인 그 순간.

“핫!”

일말의 기합과 함께 김희준이 움직였다.

빙빙 돌리던 창을 등 뒤로 감추더니 시후를 향해 내달렸다.

시후는 여전히 창 손잡이를 잡고 창끝을 김희준 쪽으로 내민 상태였다.

김희준은 창끝이 눈앞에 다다르는 순간 몸을 틀었다.

시후의 창끝을 코앞에서 지나칠 때 등 뒤에 감추고 있던 창으로 시후를 찔렀다.

순간적으로 몸을 비튼 자신을 긴 창이 따라오지 못할 거라는 계산에서 비롯된 공격이었다.

7척이라는 길이를 가진 창의 단점을 정확히 간파한 거였다.

그 공격을 지켜본 모두 같은 결과를 떠올렸다.

시후가 창을 거두어 들이는 것보다 김희준의 공격이 먼저 닿을 것이라고 말이다.

하지만.

“란(攔).”

퉁-

시후가 창을 바깥으로 돌리듯 움직이자 김희준이 튕겨 나갔다.

“컥!”

몸 전체가 울리는 고통에 김희준이 비명을 질렀다.

하지만 그 역시 프로게이머, 들고 있던 창을 땅에 내려찍었다.

창이 활처럼 휘어지며 날아가던 김희준이 멈췄다.

김희준은 거기에서 그치지 않고 휜 창이 제자리로 돌아가는 반동을 이용해 자신의 몸을 시후에게 쏘았다.

“빅뱅 스피어.”

반동을 이용한 속도로 날아가며 대폭발을 일으키는 스킬을 사용했다.

김희준의 창끝에 엄청난 기운이 모였다.

무엇이든 닿으면 바로 폭발해 버릴 것 같았다.

빅뱅 스피어는 막아도 그 폭발력으로 큰 피해를 줄 수 있는 공격이었다.

하지만 시후는 덤덤하게 김희준이 내지른 창에 자신의 창을 찔렀다.

설마 창끝으로 막으려는 건가 싶을 때 시후의 창이 김희준의 창을 슬쩍 비껴갔다.

그리고.

“나(拿).”

시후가 창을 안쪽으로 돌리듯 움직이자 찔러 오던 김희준의 창이 시후의 창에 휘감기며 땅으로 곤두박질쳤다.

쾅-

빅뱅 스피어는 시후가 아닌 땅에 적중했다.

엄청난 폭발과 함께 먼지가 자욱하게 피어오른 그때.

“찰(扎).”

시후의 창이 피어오르는 먼지를 뚫고 날아갔다.

어찌나 빠른 찌르기인지 창이 지나간 후에야 먼지가 창을 따라갔다.

그리고 그 끝에는 당연하게 김희준이 있었다.

“크악!”

시후가 찌른 창에 정확히 가슴을 가격당한 김희준은 그 자리에서 쓰러졌다.

그나마 시후가 마지막에 창을 거두어들여 그 정도에 그친 거였다.

그렇지 않았다면 바로 로그아웃을 당했을 것이다.

김희준은 극심한 통증에 가슴을 움켜쥐며 시후를 노려봤다.

자신의 공격을 제자리에서 움직이지도 않고 받아치는 시후.

저번에도 혹시나 싶었지만, 이제는 확신했다.

“그 창식은 혹시.”

“역시 알아보는구나.”

시후 역시 일전에 김희준이 자신이 펼친 봉폐를 보고 아는 눈치였기에 이번에도 보여줬다.

그리고 지금 보여준 이 창식이 김희준이 배울 거였다.

“란, 나, 찰. 이 세 가지의 기본 창식은 ‘육가창식’이다.”

“역시.”

육가창식이라는 말에 김희준은 몸을 부르르 떨었다.

사실 김희준은 평소에도 창을 좋아하는 창 덕후였다.

그래서 Safety World에서 직업을 선택할 때도 창을 가장 쉽게 다룰 수 있는 직업으로 기사를 택했다.

보통의 기사들이 검을 사용하는 반면, 김희준은 창을 사용했고 좋아하는 만큼 빠르게 성장했다.

덕분에 창에 관련된 지식은 해박했다.

그래서 시후가 펼친 육가창식이 무엇인지 익히 알았다.

“중국 황실의 대장군들이 배웠다는 창식이죠?”

“맞다.”

착-

시후는 다시 한번 봉폐 자세를 잡았다.

“안에서 바깥으로 창을 돌려 적의 창을 밀어내는 란, 바깥에서 안으로 창을 돌려 적의 창을 누르는 나, 그리고 적을 찌르며 쓰러트리는 찰.”

다시 한번 육가창식의 기본인 란, 나, 찰을 펼친 시후는 김희준을 힐끗했다.

역시나 창에 대한 마음가짐이 깊어 보였다.

그가 어느 때보다 눈을 반짝이는 게 마음에 들었다.

“그리고 이게 필살기.”

훙훙-

별거 아니라는 말투로 ‘필살기’를 거론한 시후는 창에 기운을 흘렸다.

창에 기운이 충만해지자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 란과 찰을 펼쳤다.

그러자 창이 휘둘러진 그 공간이 일그러졌다.

“무룡(無龍).”

콰과과각-

일그러진 공간에 찰을 펼쳐 찔러 넣었다.

그러자 일그러진 공기가 창에 휘어 감기더니 주변의 것들을 빨아들였다.

빅뱅 스피어의 여파에 들고 일어난 바닥하며 피어오른 먼지하며 하다못해 공기까지.

일순간 창 주변을 진공의 상태로 만들더니 거침없이 찔렀다.

그리고 흡수한 모든 것을 단번에 토해내듯 창끝에서 엄청난 기운이 뿜어져 나갔다.

거대한 회오리가 일직선으로 뿜어져 나가는 그 모습에 다들 입을 쩌억 벌리며 놀랐다.

‘무룡’이라는 저 스킬에 직격당한다면 Lv. 400의 몬스터도 걸레 조각이 될 것 같았다.

시후는 다른 이들이 놀라거나 말거나 자세를 바로 하고는 김희준을 바라봤다.

“육가창식의 기본인 란, 나, 찰이지만 극에 이르면 무룡을 펼칠 수 있다. 그리고 그렇게 되면 일만 대군과도 자웅을 겨룰 수 있다.”

“일…만.”

생각지도 못한 숫자였지만 김희준은 떠올려봤다.

저만한 스킬 앞을 가로막을 몬스터가 과연 얼마나 될 것인지.

그리고 월드 오브 리그전은 PVP가 전제인 대회.

육가창식만큼 1 대 1에 최적화된 창술은 없었다.

“제, 제가 어떻게 하면 그 스킬을 배울 수 있습니까?!”

이제 볼 것은 다 봤으니 당장에라도 육가창식을 가르쳐 달라는 김희준이었다.

그런 그에게 시후는 씨익 웃으며 창을 들어 수련장 구석을 가리켰다.

“봉폐부터 란, 나, 찰. 모두 일만 번씩 실시.”

“…몇 번이요?!”

일만 번이라는 말에 김희준은 자신이 잘못 들었나 싶어 되물었다.

하지만 시후는 제대로 들은 거 다 아니까 헛소리하지 말고 저기 가서 훈련이나 하라는 표정으로 턱을 까딱였다.

거기에.

“앞으로 현실 훈련 시간에 란, 나, 찰. 일천 번씩 추가.”

“아니, 그게….”

도대체 그게 가능하냐며 따지려는 그때 시후의 입이 먼저 열렸다.

“참고로 기본기가 다져진 상태에서 내게 무공을 배우면 스킬로 등록된다.”

“네?!”

“그리고 이거.”

툭-

시후의 말에 프로게이머들이 놀랄 새도 없이 시후는 인벤토리에서 스킬북을 꺼내 바닥에 던졌다.

가장 가까이에 있던 김희준이 무엇에 홀린 듯 다가가 스킬북을 집어 들었다.

“헐! 비천화벽진?!”

“진짜?!”

김희진의 외침에 다들 후다닥 달려가 스킬북을 들었다.

비천화벽진 스킬북의 내용을 확인한 모두는 경악했다.

일전에 박혜령이 했던 말이 모두 사실임을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그렇다면 시후가 조금 전에 말한 것도 사실일 가능성이 컸다.

꿀꺽-

여기저기서 침 넘기는 소리가 들리는 가운데 김희준이 움직였다.

“란! 나! 찰!”

어느새 수련실 구석으로 이동해 시후가 지시한 대로 훈련을 시작했다.

비천화벽진 스킬북을 소중하게 품속에 간직한 채로 말이다.

그의 기합 소리에 프로게이머들은 서로의 눈치를 봤다.

김희진과의 대련으로 시후가 무엇을 하려는지 눈치챈 거였다.

시후는 대련이라는 명목하에 자신들에게 스킬을 가르치려는 거였다.

그것도 지금까지 자신들이 보지도 듣지도 못했던 스킬을 말이다.

그것이 게임에서도 현실에서도 힘든 훈련이 되겠지만 그것은 중요치 않았다.

그 고난을 이겨내면 너무나도 꿀 같은 열매가 기다리고 있으니 말이다.

“다음, 숯 눈썹 나와.”

“네!”

시후의 부름에 잔뜩 기대에 부푼 김태영이 우렁찬 대답과 함께 쌍부를 집어 들고 나왔다.

이번에도 시후는 허공섭물로 쌍부를 끌어당겨 집었다.

이처럼 시후는 오늘 프로게이머들 개인이 사용하는 무기에 맞추어 무공을 하나씩 보여주었다.

그리고 그 무공을 가르쳐줄 생각이었다.

그것도 일주일에 하나씩 말이다.

고된 훈련 끝에 아주 탐스러운 열매를 걸어놨으니 저들은 죽어라 달려들 것이다.

그럼, 시후는 계획대로 저들을 데리고 월드 오브 리그전에 나가려는 게 시후의 계획이었다.

그렇게 오늘의 훈련을 마치던 그때 메시지 알림이 울렸다.

띠링-

[오빠, 귀족들이 준비되었다고 연락해 왔어요.]

조민이었다.

“불여우!”

메시지를 확인한 시후는 곧장 박혜령을 불렀다.

시후의 부름에 달려온 박혜령은 무슨 큰일이 났냐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쟤들 자정까지 훈련시키고 로그아웃해라.”

“어디 가세요?”

“어. 헤라 왕궁에 좀 다녀오게.”

“네? 저희는 여기서 훈련하고 본인은 게임을 하러 가신다고요?”

“어. 간다.”

그 말을 끝으로 시후는 뒤도 안 돌아보고 로그아웃했다.

박혜령은 시후가 서 있던 곳을 향해 조용히 주먹을 치켜들었다.

“두고 봅시다. 우리가 열심히 해서 당신 뼛속까지 쪽쪽 빨아먹을 테니까!”

박혜령은 결코 자신도 게임을 하고 싶어서 화가 난 것이 아니라며 시후에게 악담을 했다.

하지만 박혜령은 눈치채지 못했다.

악담이라고 한 것이 돌이켜보면 시후가 시킨 일을 열심히 하겠다는 다짐이었다는 것을 말이다.

한편 로그아웃한 시후는 고글을 벗지 않고 곧장 Safety World로 접속했다.

캡슐에서 나가 물 한 잔 마시고 들어올 수도 있었지만, 그 잠깐조차도 아까웠다.

아니, 신났다.

“어디, 너희들 곳간에는 뭐가 들었나 볼까?”

귀족들의 주머니를 탈탈 털 생각에 잔뜩 신난 시후였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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