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로그인하는 천마님-196화 (196/275)

제196화

시후는 바쁘게 일상을 보냈다.

가장 처음 시작한 것은 주변인들의 수련을 지도하는 일이었다. 그중에서도 평치혁을 먼저 불러들였다.

그가 일행 중에서 가장 강하기도 했고 다른 이들은 아직 병상에 누워 있어 며칠 앞서 시작했다.

덕분에 평치혁의 훈련 상황을 전해 들은 일행들은 병상에서 일어나기 싫다며 떼를 쓰기도 했지만 말이다.

시후는 평치혁을 당가의 수련실로 부른 후 본인이 펼칠 수 있는 무공 전부를 펼쳐보라고 했다.

일전에 본 이십사수매화검법 말고도 다른 무언가가 더 있는지 보기 위해서였다.

그의 무공을 살핀 결과 그때는 익히지 못했을 거라 생각했던 매화검결의 흔적을 발견했다.

본인은 그게 매화검결인지도 모르고 익힌 것 같았지만 일단 그에게 뿌리는 내려져 있었다. 덕분에 매화검결을 알려주는 데는 그리 많은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시후가 매화검결의 검로를 설명하면서 시연한 후, 그에게 매화검결을 펼쳐보라고 하는 데는 고작 일각이 걸렸다.

시후가 매화검결을 펼칠 때 평치혁의 벌어진 입에서 침이 질질 흘리던 모습을 생각하면 참으로 재미있는 시간이었다.

하지만, 오늘의 목적은 수련. 즐거움은 잠시 뒤로 미뤄두기로 했다.

사람에게는 그에 맞는 훈련 방법이 서로 다르다는 것이 시후의 지론이었다.

당연히 평치혁도 그에게 어울리는 나름의 훈련법이 있었다.

그래서 일단 무작정 시켰다, 화산에 들어와 배우는 기초 무공부터 차근차근 검로를 펼치게 말이다.

육합검으로 시작해 죽엽수를 지나 이십사수매화검법을 한 후에 매화검결까지 펼치도록 했다.

그 이유를 물을 만도 한데 평치혁은 묵언으로 따랐다.

자신이 그것을 ‘왜 하는지’는 몰랐지만, 그것을 ‘왜 해야 하는지’는 알았다.

시후가 보여주었으니까.

마지막 매화검결을 뒤로 수련실을 가득 채울 정도의 매화향과 함께 있지도 않은 매화잎이 흩날리는 것을 말이다.

그리고 갈무리한 검 끝에 남아 있는 자색의 기운.

매화향, 매화잎, 자색의 기운.

화산을 모르는 이가 보아도 단번에 알아챌 수 있는 자하신공이다.

시작의 이유는 모르나 그 끝에 무엇이 있는지 목표가 명확하니 평치혁은 무섭게 집중했다.

덕분에 시후는 편했다.

반항이라도 한다면 자하신공을 직접 몸에 새겨줄 생각을 했는데 알아서 열심히 하니 그럴 필요가 없었다.

다만 조금 심심하기는 했다. 그래서 좀 더 빠른 수련법을 위해 손을 썼다.

휙-

“조금 전이랑 다르잖아. 동작은 언제나 정확하게 매번 똑같이, 같은 검로를 펼쳐야 한다고 말했을 텐데.”

“네!”

시후는 평치혁이 검로를 펼칠 때 조금이라도 틀어지려고 하면 무형기를 펼쳐 자세를 교정했다.

평치혁이 검로를 땅에서 펼치든 허공에서 펼치든 어느 자세로든지 상관없었다.

‘확실히 소질이 있는 놈이야.’

저번에도 느낀 것이지만 평치혁은 무공에 탁월한 소질을 가졌다.

자하신공 비급만 턱 쥐여줘도 녀석은 알아서 공부해 십성의 경지에 오를 거다.

‘불혹의 나이 정도가 되면 말이지.’

하지만 시후는 그때까지 기다릴 수 없었다.

당장 포달랍궁에 대항할 녀석이 필요했다.

그래서 좀 더 확실한 도움을 주기로 결심했다. 며칠 안으로 자하신공의 기운을 맛보게 해줄 계획이었다.

그 정도만 해줘도 녀석은 당장 배운 것을 써먹을 정도의 실력을 보일 테니 말이다.

그 목표를 갖고 시후는 평치혁을 수련이라는 명하에 괴롭혔다. 그것도 하루 24시간을 모두 사용해서 말이다.

수면? 없었다. 졸리면 눈을 감고서라도 움직이라 했다. 배고픔? 쉬지 않고 움직이니 시도 때도 없이 평치혁의 배는 밥을 달라 아우성쳤다.

그럴 때마다 시후는 손가락을 튕겨 평치혁의 입에 벽곡단을 넣어주었다. 현대에 존재하지 않는 벽곡단이었지만 수련을 위해 시후의 명으로 당가에서 특별히 만들었다. 맛 따위는 기대할 수 없지만 배고픔을 잊고 몸을 정순하게 만들기에는 충분했다.

목마름? 24시간을 쉼 없이 움직이니 몸속의 수분이 땀으로 줄줄 흘러나왔다. 오죽하면 소변도 마렵지 않았다. 수분이 빠져나가니 입술이 바짝바짝 말라가며 탈수 증상이 오는 것은 당연했다.

하지만 그 역시 허공섭물을 평치혁의 입에 손수 넣어주었다. 물이 아닌 진지춘이 만든 특별 탕약을 말이다. 해가 뜰 때면 양의 기운을 보충해주고, 달이 뜰 때면 음의 기운을 충만하게 해줄 탕약을 적절하게 넣어주었다.

그렇게 쉴 틈 없이 삼 일을 가르쳤다. 보통 사람이라면 정신이 몽롱해져 쓰러져야 정상일 텐데 평치혁은 되레 그 어느 때보다 맑은 정신을 유지했다.

그리고 드디어.

“매화폭우(梅花暴雨)”

사아악-

평치혁이 휘두른 검에 수련실 가득 피어오른 매화가 매섭게 바닥을 내려쳤다.

그야말로 매화꽃으로 이루어진 폭우가 쏟아졌다.

평치혁은 자신의 검에서 쏟아져 나온 매화폭우에 놀라 72시간 만에 처음으로 움직임을 멈췄다.

“드디어 성공이구나.”

수련실 구석에 드러누워 있던 시후가 일어나며 축하를 했다.

“그, 그럼. 이게 자하신공.”

평치혁은 들고 있던 검을 높이 치켜들었다.

그의 검에서 은은하게 물결치는 자색 기운이 보였다.

“그게 자하신공 삼성의 경지다.”

“삼성이요?!”

일성도 아니고 단숨에 삼성의 경지에 도달했다는 말에 평치혁이 놀랐다.

시후는 자리에서 일어나 몸에 묻은 먼지를 툭툭 털었다.

그리고는 평치혁에게 걸어갔다.

지금 시후는 상당히 기뻤다.

고작 사흘 만에 이만한 성과를 보인 평치혁이 예뻤다.

자고로 미운 놈에게 떡 하나 더 준다고들 하지만 이쁜 짓을 했으니 그에 합당한 보상을 주고 싶은 건 어쩔 수 없었다.

“사흘간 잘 따라왔으니 상을 하나 주마.”

“아닙니다. 자하신공만으로도 충분합니다.”

“그렇지 않아. 잘했으면 칭찬받고 그에 맞는 상을 받는 게 당연한 거다.”

시후는 평치혁의 검을 뺏어 들었다.

지금 그에게는 이만한 기회가 없었다.

잠을 좀 자지 못했지만 사흘간 벽곡단만 먹으며 몸속에 탁한 기운을 넣어주지 않았고 음양의 기운을 담은 탕약으로 그 몸속을 보훈하며 남아 있던 탁한 기운을 빼낸 지금.

그 어느 때보다 무공을 익히기에 적절한 상태였다.

스윽-

시후는 검을 허공에 놓았다.

당연히 중력으로 떨어져야 하는 검이었지만 자연스럽게 둥둥 떠 있었다.

평치혁은 시후가 펼치는 허공섭물을 수도 없이 봤기에 그러려니 했다.

하지만 시후가 움직이자 저도 모르게 몸을 떨었다.

“매화분분(梅花紛紛), 매화조광(梅花照光)….”

시후는 허공에 검을 띄운 채로 이십사수매화검법을 펼쳤다.

매화 잎이 번쩍번쩍 터지며 허공에 뜬 검을 감쌌고, 한데 모인 잎과 검이 봄바람에 휘날렸다. 이어 수련실이 매화나무로 가득 차는 환각이 보일 때쯤.

평치혁은 알아챘다.

“이기… 어검.”

시후는 지금 이기어검(以氣馭劍)의 수법으로 이십사수매화검법을 펼치는 거였다.

그것도 자하신공의 기운을 담아서 말이다.

이는 사흘 밤낮 동안 평치혁이 수련한 방법과는 달랐다.

모든 검로를 따라 기를 승화해 마지막 매화검결에 자하신공을 일으킨 것과 상반되는 거였다.

하지만 이는 평치혁이 도달해야 하는 무의 마지막임이 분명했다.

시후는 평치혁이 자신이 펼친 무공을 이해한 것을 보고는 검을 거두어들였다.

“자하신공을 극성으로 익히면 화산의 사계절에 매화향이 가득하게 할 수 있다.”

“그 말씀은.”

“그래. 네가 화산의 사계절이 되면 매화향이 자연스럽게 네 몸속에 깃들게 될 거라는 뜻이지.”

“감사합니다!”

평치혁은 시후의 말에 눈을 번뜩였다.

무공을 펼치기 위해 기를 일으키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살아가기 위해 기를 일으키라는 거였다.

그것도 자하신공의 기운을 말이다.

당연히 어려운 일이고 멀고도 험한 길이었지만 그것에 다다르면 시후의 말대로 화산에 매화향이 가득할 정도로 엄청난 무를 보여줄 거였다.

평치혁이 허리까지 숙여 감사를 표하자 시후는 미소로 화답했다.

‘녀석을 보니 예전 연화봉 꼭대기에서 허리를 숙이던 화산 장문인이 떠오르는군. 봉문에 슬피 우는 녀석을 위해 그곳에 그것을 남겨… 아!’

시후는 평치혁에게 화산 장문인에게만 전해지는 자하신공을 가르쳤고 그에게 감사 인사를 받으니 화산의 장문인이었던 운암을 떠올렸다.

그러자 화산파를 봉문하던 그날, 화산의 장문인 운암의 물건을 연화봉에 심어놓은 것이 떠올랐다.

비록 운암은 천마에게 패해 봉문을 하였지만, 운암의 손에서 펼쳐진 검은 천마가 진심으로 상대할 만했다.

그리고 그의 손에 쥐여 있던 매화검(梅花劍), 화산의 가장 깊은 곳에 있던 천년 된 매화나무로 만들었다던 그 검.

자하신공의 기운을 가장 잘 받아들여 그 어떤 보검에도 뒤지지 않던 그 검의 존재가 기억났다.

‘그때 기억났으면 챙겨 왔을 것을.’

중국에 갔을 때 비고에 없던 것을 보면 아직도 연화봉 꼭대기에 박혀 있을 것이다.

시후는 여전히 허리를 숙이고 있는 평치혁을 보며 주는 김에 더 주기로 했다.

“좋아, 대방출 대출혈 서비스다.”

“무슨.”

“자하신공 오성을 달성하면 중국에 좀 다녀와라.”

“거긴 왜….”

“화산 연화봉 꼭대기에 가서 자하신공을 펼치면 내가 숨겨둔 선물이 너를 기다리고 있을 게다.”

선물이라는 시후의 말에 평치혁은 두 눈을 껌뻑였다.

선물을 굳이 왜 거기에 숨겨뒀는지 의문이 들 때쯤 갑자기 시후가 손을 뻗어왔다.

그 동작이 보이기는 했지만, 미처 반응하기도 전에 혈을 짚여버렸다.

“왜….”

털썩-

평치혁은 눈앞이 깜깜해지며 정신을 잃고 자리에 쓰러졌다.

“이제 좀 자야 하니까.”

시후가 평치혁을 재우려고 수혈을 짚었다.

굳이 시후가 이런 짓을 한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평치혁의 지금 상태는 그야말로 기(氣)만 승한 상태였다.

무공을 익히기에 더할 나위 없는 상태였지만 기력(氣力)은 쇠했기에 더는 한계였다.

본인은 자각하지 못하겠지만 사람에게 수면이란 그만큼 중요했다.

자라고 해봐야 잠이 오지 않을 상태였기에 시후가 직접 수혈을 짚은 거였다.

평치혁은 충분히 자신의 목표를 달성했으니 말이다.

그리고 이제 슬슬 다음 타자를 불러들일 때가 되었다.

그동안 기력을 잃고 병상에 누워 있던 일행들이 회복한 것을 기감을 통해 느꼈다.

“저놈 침대에 눕히고 태산, 인호, 조민 들어오라 해.”

시후의 내력이 담긴 목소리에 수련실 문이 열리며 사람들이 들어왔다.

밖에서 대기하던 당가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재빨리 평치혁을 업고 나갔다.

그리고 잠시 후 시후의 명대로 태산과 인호와 조민이 수련실로 들어왔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평치혁에게 한 것과 같은 지옥 수련이 이들에게도 행해졌다.

시후는 이처럼 일행들에게 무공을 가르쳤다.

조금 무리하기는 했지만 그럴 필요가 충분히 있었다.

그 와중에도 시후는 박혜령에게 연락해 프로게이머들의 훈련 방법을 지시했다.

그리고 약속대로 그들과 대련하기로 한 날.

시후는 당가에 마련된 캡슐로 Safety World에 접속했다.

하지만 평소의 접속과는 달랐다.

프로게이머들과의 대련에 집중할 수 있도록 S.W SOFT에서 만든 IP로 접속한 수련실이었다.

일전에 D.M과 대련을 했던 장소였다.

시후가 접속을 하자 연달아 다른 프로게이머들도 접속했다.

그들은 시후를 발견하자 한걸음에 달려왔다.

“안녕하세요.”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목소리를 모아 인사를 했다.

일전에 보았던 반항적인 모습이라고는 조금도 없는 모습이었다.

‘이런 게 물질만능주의 효과라는 건가.’

이들에게 진지춘을 통해 주었던 소명단이 이들에게 이런 행동을 하게 했다.

돈이 있어도 구하기 힘든 소명단을 먹은 프로게이머들은 단 일주일 만에 그 효과를 톡톡히 봤다.

“다들 예전과 많이 달라졌지?”

“네!”

“좋아, 그럼 귀한 것을 먹은 만큼 그 값을 해야겠지?”

“네!”

소명단을 먹었으니 그만큼 굴리겠다는 시후의 말에도 다들 우렁차게 대답했다.

잠시 후 그 우렁찬 대답이 더 우렁찬 곡소리로 변했지만 말이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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