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로그인하는 천마님-193화 (193/275)

제193화

시후와 일행들은 일단 당가로 왔다. 당가는 한국 대학교 코앞에 있는 10층 빌딩에 자리해 있었다.

1층부터 7층까지는 학원, 식당, 카페를 운영 중이고 8층부터 10층까지가 당가의 주요 거처였다.

당성치가 거주하는 곳은 이 빌딩의 옥상에 있었다.

시후는 옥상에 올라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혀를 내둘렀다.

빌딩 옥상에 집을 마련한 당가.

그 옥상은 시후가 알고 있던 옥상이 아니었다.

옥상에 삼 층짜리 전각에, 별채에 마당에 하물며 연못까지 있었다.

마치 제갈세가 본가를 옥상으로 옮겨 놓은 것 같았다.

"허, 이만한 지랄도 없겠구나."

"예, 뭐…."

시후의 뒤에 서 있던 당성치가 대답했다.

상당히 성의 없는 대답이었지만 시후는 개의치 않았다.

지금 자신은 객의 입장이었으니 말이다.

"크흠, 다들 괜찮던가?"

"예, 뭐…. 기력이 쇠하기는 하였지만, 며칠 치료하면 금세 회복될 것입니다."

"다행이군."

다행이라 말했지만 전혀 그렇지 않았다.

정작 듣고 싶은 대답은 그게 아니었다.

당성치 또한 시후의 속내를 읽은 듯 게슴츠레하게 눈을 뜨고 있었다.

"너 눈깔 똑바로 안 뜨지?"

"예, 예. 도련님에게 토사구팽이 되었던 이 당성치. 눈깔 똑바로 뜨겠습니다."

시후는 당성치의 눈을 똑바로 바라봤다.

'저 능구렁이 같은 영감.'

당성치가 일전에 자기 분수에 맞지 않는 야욕을 보였기에, 당가의 일은 당소영과 나눈다고 일렀었다.

그래서 그때 당소영을 당가에서 데리고 나온 후 제갈세가에 머물게 했었다.

그런데 이번 일로 일행들 모두가 크게 다쳐 어쩔 수 없이 당가를 찾아온 거였다.

현재 시후가 아는 한, 제갈 세가 다음으로 약에 능한 것은 당가였으니 말이다.

시후의 선택은 적절했고 당가에서는 시후의 방문을 거절할 이유가 없었으니 일행들을 빠르게 돌봐주었다.

문제는 당소영이었다.

그녀는 다른 일행들과는 다르게 크게 다쳤다.

시후는 당가로 돌아오는 동안 일행들에게 자신이 심마에 빠졌을 때 상황을 들었다.

* * *

시후가 심마에 빠지자 호위를 맡았던 이들이 되레 시후와 싸우게 되었다.

처음 시후가 두 개의 기운을 충돌시켰을 때만해도 괜찮았다.

그저 시후를 중심으로 엄청난 기폭풍이 몰아쳤을 뿐이었다.

제갈세가 수련실 전체가 흔들릴 정도였지만 말이다.

정작 큰 문제는 기폭풍이 한차례 몰아친 후였다.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던 시후가 돌연 자리에서 일어난 거였다.

호위를 부탁했던 시후가 갑자기 일어나자 태산과 인호가 걱정되었는지 그에게 다가갔다.

“시후야, 괜찮아?”

둘이 괜찮냐며 어깨를 흔들어 보았지만 시후는 반응이 없었다.

다들 걱정되는 마음에 시후를 바라보던 그때.

“떨어져!”

무언가 이상한 낌새를 눈치챈 진지춘이 소리를 질렀다.

진지춘은 그간의 경험으로 알았다.

시후가 평소답지 않으며 지금 위험한 상태라는 것을 말이다.

역시나 몸이 흔들리던 시후가 갑자기 우뚝 멈추며 태산과 인호에게 손을 뻗었다.

그리고 순식간에 뿜어져 나온 장강.

천마멸겁장은 아니었지만, 태산과 인호가 감당하기에는 벅찬 기운이었다.

“진권!”

둘이 어찌할지 몰라 당황하는 사이 진지춘이 재빠르게 진권을 불렀다.

진권은 진지춘이 처음 외쳤을 때 이미 태산과 인호 앞으로 와 있었다.

그러고는 시후의 장강을 소림의 대력금장강으로 상쇄했다.

하지만 그 후가 문제였다.

시후는 자신의 장강이 막히자 어디 이것도 막아 보라는 듯이 연달아 장강을 날렸다.

“이, 이런.”

진권은 이를 악물며 막아봤지만, 시후의 장강은 점점 더 거세졌고 결국.

“크악!”

막아내지 못한 장강에 적중당했다.

진권은 실 끊어진 연처럼 훨훨 날아 수련실 구석에 처박혔다.

시후는 쓰러진 진권을 마무리하겠다는 듯이 또다시 진권에게 장강을 날렸다.

“진권!”

“제가 가죠.”

바닥에 쓰러진 진권이 정신을 잃은 것인지 반응이 없자 제갈신길이 나섰다.

초절정을 바라보는 제갈신길의 무위는 놀라웠다.

“현원진신공, 흡(吸).”

시후의 장강에 손을 뻗더니 현원진신공의 흡결을 펼쳤다.

우주의 힘을 담은 흡결은 마치 주변의 모든 것을 빨아들이겠다는 듯이 시후의 장강을 삼켰다.

그 거대한 기운이 한순간에 제갈신길 도포 안으로 사라졌다.

그러자 시후는 좀 전에 진권에게 했던 것처럼 연달아 장강을 퍼부었다.

“크윽.”

결국, 제갈신길 역시 흡결로 빨아들이지 못한 장강에 적중당해 수련실 구석에 처박혔다.

시후는 바닥에 쓰러진 진권과 제갈신길에게 동시에 장강을 날렸다.

지금까지 날린 장강 중에서 가장 거대한 기운을 담아서 말이다.

“저, 저럴 수가….”

진지춘은 감히 그 기운을 감당할 수 없어 움직이지도 못했다.

이대로 저 둘이 죽는 것을 지켜봐야 하나 싶을 때 태산과 인호가 나섰다.

둘은 각자 제갈신길과 진권의 앞에 자리하더니 날아오는 장강을 향해 두 팔을 어지러이 휘둘렀다.

“이화접목.”

주변의 기운까지 끌어당길 정도의 이화접목이었다.

Safety World에서 시후가 가르쳐준 이화접목을 펼치자 그 엄청난 장강의 기운도 흡수하더니 이내 시후에게 되돌아갔다.

자신의 공격이 그리 막힐 거라 상상 못 한 것인지 시후는 그대로 장강에 얻어맞았다.

그렇다고 진권이나 제갈신길처럼 날아간 것은 아니지만 걸치고 있던 옷가지 전부를 잃어버렸다.

“도련님, 죄송합니다.”

그 순간 진지춘이 움직였다.

진지춘은 손가락에 기운을 가득 담아 시후를 점혈했다.

그동안 그가 흠씬 경험했던 마혈을 짚은 거였다.

시후를 죽일 수는 없으니 이 작은 틈에 심마에 빠진 시후를 멈추겠다는 계획이었다.

경험에서 우러난 손놀림은 정확히 시후의 마혈을 짚었다.

“됐… 커헉!”

쾅-

정확히 마혈을 짚었다는 생각에 진지춘이 미소를 짓는 순간 시후의 손이 긔의 복부를 강타했다.

그렇게 진지춘도 실 끊어진 연처럼 날아가 바닥에 처박혔다.

영문을 알 수 없는 상황에 다들 공황에 빠졌다.

그도 그럴 것이 이들은 시후가 이룬 천마지체가 어떤지 몰랐다.

그저 시후가 강해졌다고만 생각했을 뿐이었다.

천마지체를 이룬 시후의 혈도는 다른 이의 혈도와는 달랐다.

정확히는 혈도가 단전의 역할을 하면서 본래 혈도의 역할을 하지 않는 거였다.

그러니 마혈이라고 짚어봤자 그저 단전을 누른 것과 같았다.

혈도 공격도 통하지 않고 셋이나 쓰러지자 다들 암담해졌다.

그때였다.

누군가가 수련실 문을 벌컥 열었다.

제갈세가 수련실에서 벌어진 소란에 별채에 있던 당소영이 달려온 거였다.

당소영은 한눈에 수련실 상황을 파악하고는 조민에게로 달려갔다.

조민과 당소영은 다급히 이야기를 나누더니 태산과 인호에게 지시를 내렸다.

둘은 조민의 지시에 따라 본인이 가진 모든 무위를 펼쳐 시후의 관심을 끌었다.

태산은 개걸폭렬권을 펼쳐 시후의 발을 묶고 인호가 천기보를 펼쳐 시후를 현혹했다.

그 사이 조민은 시후 주변에 펼쳐놓았던 진법을 변형했다.

시후를 잠시나마 멈추게 하기 위해서였다.

다행히 시후는 태산과 인호의 공세에 관심을 기울였고 조민의 진법에 빠졌다.

그렇게 시후의 움직임이 멈추자 당소영이 움직였다.

“도련님! 정신 차리세요! 도련님!”

당소영은 시후에게 다가가 그의 얼굴을 부여잡고 그를 목 놓아 불렀다.

당소영의 목소리로 심마에 빠진 시후를 깨우려는 속셈이었다.

하지만 그 계획 역시 실패였다.

당소영의 외침에도 시후는 반항하듯 몸을 움직였다.

진법에 빠져 움직일 수 없자 기를 한껏 모았다.

잠시 후 몸을 활짝 펴며 모았던 기를 단번에 터트렸다.

쾅-

“크악!”

그러자 마치 시후를 중심으로 폭탄이라도 터진 것 같았다.

그 위력에 제갈세가 수련실을 포함한 제갈세가 본가가 쑥대밭이 되었다.

이번 공격으로 모두 움직일 수 없을 정도로 심한 상처를 입고 바닥에 쓰러졌다.

오직 당소영을 제외하고 말이다.

당소영은 죽을힘을 다해 시후의 오른팔에 매달렸다.

기혈이 뒤틀려 입에서 피를 왈칵 쏟고 기폭풍에 휩쓸려 날아온 건물 파편에 머리를 얻어맞아 한쪽 얼굴이 피로 뒤덮이기까지 했다.

그렇게 필사적으로 매달린 당소영은 마지막 기력까지 쏟아내 시후를 불렀다.

그리고 그 덕분인지 거짓말처럼 시후가 깨어났다.

* * *

여기까지가 시후가 일행들에게 전해 들은 사건의 진상이었다.

결과적으로는 천마지체 삼 단계에 들어설 수 있었지만 시후의 마음은 편치 않았다.

아무리 처음 겪어보는 심마였다고는 하지만 자칫 자신의 소중한 이들의 목숨을 제 손으로 빼앗을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내가 너무 안일했어.’

시후는 자신의 실수를 탓하면서도 최악의 상황을 면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았다.

“어서 녀석들이 일어나야 할 텐데.”

“그들이 일어나려면 적어도 삼 일은 치료를 받아야 합니다.”

삼 일이라는 말에 시후는 아쉬움을 보였다.

당성치는 시후가 왜 그토록 아쉬움을 보이는지 굳이 묻지 않았다.

묻지 않아도 알 것 같았다.

시후가 자신을 부른 이유가 거기에 있었으니 말이다.

“주군, 여기입니다.”

“오, 제법 훌륭한데.”

시후가 평소답지 않게 감탄까지 자아내는 이곳은 당가의 수련실이었다.

시후는 혹시나 싶은 최악의 상황에 대비한 해결책으로 ‘수련’이란 방법을 제시했다.

그것도 본인이 아닌, 지금 침상에 누워 열심히 치료 중인 일행들에게 말이다.

시후는 일행들이 깨어나는 대로 미친 듯이 수련을 시킬 생각이었다.

본래 태산과 인호에게만 도제의 무공을 가르칠 계획이었지만, 이번 일로 몇몇을 더 끼워 넣었다.

진권, 조민, 진지춘에 초절정을 눈앞에 둔 제갈신길까지 말이다.

‘앞으로 가르칠 녀석들이 한둘이 아니야. 쉴 틈이 없겠어.’

여기저기 뛰어다니며 여럿을 가르쳐야 하는 상황이 되어버렸지만 시후는 각오를 다졌다.

소중한 사람을 잃을 수는 없으니 말이다.

다만, 여기서 마음에 걸리는 게 하나 있었다.

"크흠, 그래. 당소저는 괜찮나?"

바로 당소영이었다.

이번에 심마에 빠지면서 시후는 깨달았다.

당소영을 생각하는 자신의 마음이 어떤지.

결코 과거의 여인을 겹쳐 보며 그리움의 산물로 여기는 게 아니었다.

얼굴이 닮았기는 하지만 당소영을 그녀 자체로 마음에 품기로 했다.

당소영의 안부를 묻자 지금까지 시큰둥해하던 당성치의 눈이 번뜩였다.

당소영을 찾는 시후의 모습에서 이상한 낌새를 눈치챈 거였다.

“그럴 리가요. 도련님과 가장 가까이에 있던 아이 아니었습니까.”

“그, 그랬지.”

당성치는 미간을 잔뜩 찌푸리며 걱정 가득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 모습에 시후의 한쪽 눈썹이 꿈틀댔다.

시후가 아는 당성치는 결코 저런 표정으로 자기 딸을 걱정할 위인이 아니었다.

득과 실을 가장 우선시하는 게 당가의 가주이자 당성치였으니 말이다.

‘사람은 쉽게 고쳐지지 않는 법.’

그 말이 당성치만큼 잘 어울리는 사람도 없다는 게 당성치에 대한 시후의 평가였다.

만약 지금 같은 상황이 아니었다면 시후는 그의 눈물이 쏙 빠지게 혼을 냈을 거였다.

하지만, 지금은 당소영의 정확한 안부를 확인하는 것이 먼저였다.

“그래, 그럼 당소저를 잠시 볼 수 있을까.”

“이쪽에서 치료 중이니 찾아가시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만….”

당성치는 일부러 말끝을 흐렸다.

마치 자신에게 다른 용건이 있으니 알아서 물어봐 주기 바란다는 듯이 말이다.

“그런데?”

시후는 미운 놈 떡 하나 더 준다는 심정으로 물었다.

당성치는 드디어 자신이 원하는 상황을 만들었다는 것에 눈을 번쩍였다.

“소영이에게 들었습니다.”

“뭘?”

“제갈세가 본체가 쑥대밭이 될 정도의 상황이었다고 말입니다.”

“그랬지.”

“거기에 주군의 옷가지를 날려버릴 정도의 전투였다고 들었….”

“혓바닥이 점점 길어지는구나.”

점점 길어지는 사설에 결국 시후가 참지 못하고 한소리를 했다.

순식간에 변한 시후의 분위기에 당성치는 퍼뜩 정신을 차렸다.

자기 여식에 대한 남다른 감정으로 잠시 얌전한 모습을 보였던 시후가 어떤 사람인지 깨달은 거였다.

“엄청난 상처를 입은 그들을 주군께서 치료하셨다 들었습니다.”

“맞아.”

“주군!”

쿵-

시후의 대답이 끝나기 무섭게 당성치가 무릎을 꿇으며 땅바닥에 이마를 찍었다.

그리고 한껏 격양된 목소리로 말했다.

“부디 제게 그 가르침을 내려 주십시오!”

당성치는 최대한 진심을 담아 말했다.

일전에 자신이 저지른 잘못에 대한 사과와 더불어 크게 뉘우치는 자세를 보였다.

그는 시후에게 제갈세가에서 있었던 일을 물을 때부터 결심했다.

시후가 자신의 요구에 응해주지 않는다면 몇 날 며칠이고 이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으리라고 말이다.

당성치가 굳은 결심에 주먹을 움켜쥐는 그때 시후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래. 가르쳐줄게.”

“…! 네?!”

굳은 결심과 각오에 비해 허무한 대답이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