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로그인하는 천마님-190화 (190/275)

제190화

먼지 살인범.

천마가 도제 백풍현에게 붙여준 별명이었다.

‘그 별명을 들을 때면 게거품을 물고 달려 들었지만.’

그만큼 녀석과 딱 맞는 별명도 없었다.

그는 첫 등장부터 남달랐다.

보통의 정파 무림인들이 협행이라는 이름 아래 수행을 나선다.

그 역시 그랬고 그때 도제라는 별호를 얻었다.

하지만 그 별호를 얻기까지 그는 많은 고초를 겪었다.

일단, 대부분이 그와의 비무를 꺼렸다.

그도 그럴 것이 그의 비무 요청은 까다로웠다.

“첫째, 비무장은 실내 또는 청강석이 깔린 연무장일 것.”

“왜?”

“흙바닥에서 움직이면 옷이 더러워지니까.”

“헐.”

태산과 인호가 혀를 찼다.

“둘째, 비무는 비가 온 다음 날일 것.”

“그건 또 왜?”

“그래야 먼지가 날리지 않으니까.”

“허얼.”

태산과 인호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셋째, 비무 후에 꼭 채비를 점검할 수 있는 장소가 마련되어 있을 것.”

“채비? 정비?”

“말이 채비나 정비지, 그냥 목욕하고 옷을 갈아입을 수 있는 장소가 필요하다는 거야.”

“와…. 그런 요구 조건에 맞춰서 비무를 하는 사람이 있어?”

아주 합당한 의심이었다.

실제로 백풍현이 이런 조건을 내세운 비무가 성사된 것은 그가 무림에 출두 후 일 년이라는 세월이 흐른 뒤였다.

그것도 그 일 년 사이에 그가 산적과 색마를 토벌하는 공적을 쌓지 못했으면 불가능했을 거였다.

“도대체 그 요구 조건을 들어준 게 누구야?”

“있어. 모든 생명에게 자비를 베푸는 자들.”

“설마….”

까딱-

시후는 턱짓으로 창밖을 가리켰다.

그에 태산과 인호의 시선이 택시 밖으로 향했다.

때마침 도착한 제갈세가 앞에는 시후를 마중 나온 이들이 있었다.

셋이 택시에서 내리자 그들이 다가왔다.

“도련님! 정말 뵙고 싶었습니다!”

진지춘이 쌍수를 들며 폴짝폴짝 뛰어왔다.

그러다가 시후가 검지를 슬쩍 치켜드는 것을 보고는 몸을 홱 돌려 도포를 입은 승려 뒤에 숨었다.

그에 승려가 합장하며 입을 열었다.

“아미타불, 그간 강녕하셨습니까.”

진권이었다.

태산과 인호는 인자한 미소를 띤 진권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수 있네. 소림사라면 충분히 가능하지.”

“무슨 말씀이신지요.”

뜬금없이 소림사를 거론하는 말에 진권이 되물었다.

태산과 인호가 그것에 대답하려는 그때 시후가 끼어들었다.

“있어. 그런 게. 그보다 너희, 내가 시킨 일은 잘 해결하고 온 거지?”

시후는 진권에게 도제에 대해 알려주고 싶지 않았다.

‘혹시 몰라. 저 녀석이 알고 있을지.’

소림사 사대수호신승인 그는 법정의 유지를 이어받은 자였다.

그랬기에 천 년 전 이야기들을 여러 가지 방법으로 알 수도 있었다.

무공에 관한 것을 빼면 눈치가 꽝인 진권이 도제의 이야기를 들으면 분명 궁금해할 거였다.

그리고 그 이야기의 출처가 시후라는 것을 알게 되면 자연스럽게 의심을 할 거였고 녀석의 성격으로는 깊게 파고들 게 뻔했다.

그리고 그렇게 알아낸 것을 눈치가 꽝인 녀석은 저도 모르게 다른 이들에게 전할 우려가 있었다.

저 봐라.

소림사라는 한 마디에 초롱초롱 눈을 빛내는 것을.

여기서 틈을 보이면 질문 세례가 쏟아질 거였다.

묻는다고 대답해줄 것도 아니었지만 굳이 그런 귀찮은 소동을 일으킬 필요는 없었다.

그래서 화두를 돌렸다.

“덕분에 잘 처리하였습니다.”

“잘했다.”

진권이 저리 말한다는 것은 뒤탈 없이 처리했다는 것이니 시후도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러자 진권 뒤에 숨어 있던 진지춘이 고개를 빼꼼 내밀었다.

“도련님~, 저도 일러주신 일들 깔~끔 하게 처리했는뎁쇼?”

“…이 자식이, 또 무슨 짓을 한 건데?”

진지춘의 표정을 잠시 살핀 시후가 인상을 구겼다.

이제 진지춘에게는 독안공을 사용하지 않아도 녀석의 속내를 읽을 수 있었다.

저 능글능글 맞은 표정.

구렁이 담 넘어가는 듯한 표정.

분명 대변을 보고 밑을 제대로 닦지 않았는데 화장지가 없어 대충 바지를 올리고 나온 표정이었다.

역시나 진지춘은 시후의 물음에 흠칫하더니 슬그머니 고개를 집어넣었다.

시후가 한숨을 내쉬자 기다렸다는 듯이 조민이 다가왔다.

“약선방이 중국 정계에 진출하기는 했답니다.”

“하기는? 그 찝찝한 말은 뭐야?”

“마찰이 좀 있었습니다.”

조민이 운을 띄우자 진지춘이 슬그머니 다가와 말을 이었다.

“공안들이 약선방을 수색했습니다.”

“거길 왜?”

“먼지라도 털어보겠다는 심산이었겠죠.”

“그래서 털렸어?”

“에이~, 저희가 누굽니까. 털리기 전에 먼저 털었죠.”

“뭐?”

진지춘의 이야기는 이러했다.

자신들이 정계에 진출한다는 소식을 듣고 약선방을 고깝게 보는 쪽에서 공안을 보내 수색을 한 거였다.

그런데 그 사실을 약선방 우호 세력 쪽에서 미리 알려줬다는 거였다.

그에 약선방은 그동안 모았던 자료를 풀었다고 했다.

중국 고위 관직에 있는 사람들은 언제나 약선방을 찾았기에 그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자연스럽게 이것저것을 알게 되었다고 했다.

거기서 약선방은 그것을 그냥 지나치지 않았다고 했다.

그 이야기들의 사실 여부를 파악했고 그것을 수집했다.

좋은 일들도 있었지만 정치라는 게 어찌 좋기만 하겠는가.

구린 냄새가 나지 않는 정치인이 몇이나 될까. 결국 약선방 내부에는 그들의 구린 정보가 가득 쌓였단다.

“그래서 그걸 이번에 풀었다고?”

“네. 슬쩍 흘렸죠. 기자들이나 최고 통치자에게 말이죠.”

덕분에 일이 수월하게 끝났다고 했다.

수색이라는 명분에 찾아온 공안들은 송하룡과 차 한 잔을 나누고 떠났다고 했다.

그 이야기를 들은 시후는 턱을 매만졌다.

잘 해결되었다는 소리지만 결국은 견제가 들어왔다는 거였다.

“아무래도 빨리 보내줘야겠네.”

“네. 그렇잖아도 도련님께 그 이야기도 부탁드리려고 했습니다.”

일전에 약선방의 정계 진출을 위해 구린 일을 도맡을 인력을 보내준다는 것이었다.

“이야기가 길어지는 것 같으니 안으로 드시지요.”

제갈신길의 말에 다들 안으로 들어갔다.

안내를 따라 본채로 가니 이미 자리가 마련되어 있었다.

이곳에 모인 인원들이 모두 앉을 수 있는 기다란 테이블에 방금 내온 용정차가 올려져 있었다.

제갈신길은 자연스럽게 시후를 상석으로 안내했다.

상석에 시후가 자리하자 다른 이들은 긴 테이블 양옆으로 자리했다.

‘이렇게 보니 여기 모인 인원들은 진짜 내 사람들이군.’

둘도 없는 친구 태산과 인호.

어린 나이지만 총명해 지괴로 임명한 제갈조민.

그런 조민이 속한 제갈세가의 가주 제갈신길.

나이에 맞지 않게 행동하는 약선방 장로 진지춘.

중국 소림사 사대수호신승이며 법정의 유지를 이어받은 진권.

시후는 이들만큼은 자신에게 등을 돌리는 일은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앞으로 내가 가는 길에 너희가 같이 갔으면 한다.”

뜬금없는 시후의 말에 다들 들던 찻잔을 내리고 눈을 깜빡였다.

“너희를 만나 내가 한 일들을 생각해봐라.”

그 말에 다들 과거를 되새겼다.

일반인이었던 태산과 인호는 이제 어엿한 무림인으로 거듭날 정도로 많은 일들을 겪었다.

조민 역시 시후를 따라다니며 죽음의 문턱까지 다녀온 적이 있었다.

제갈신길은 시후 덕분에 초절정 반열을 눈앞에 두고 있었고 진지춘은 천음절맥을 치료하는 등의 의원으로서 몇 단계는 발전할 수 있는 경험을 했다.

진권 역시 그동안 정체되어 있던 자신의 무공을 시후 덕분에 틀을 깰 수 있었다.

서로가 저마다의 경험을 되새기며 서로의 눈치를 살폈다.

이들 중 시후와의 만남이 없었다면 지금의 능력을 갖추게 된 이들은 없을 거였다.

“도련님을 만난 건 제 인생 최고의 행운입니다.”

척-

진지춘이 엄지를 치켜들며 한쪽 눈을 찡긋거렸다.

그 모습에 옆에 있던 조민이 진지춘의 옆구리를 쿡 찔렀다.

“아, 쫌.”

“아야! 아프다 이것아!”

“오빠 말씀하시는데 분위기 깨게 왜 그러세요.”

“무엇을! 어차피 도련님께서 무슨 말씀 하실지 여기 있는 사람 중에 모르는 이는 없잖느냐?”

“그건, 그렇지만….”

진지춘의 말에 시후가 그들을 둘러봤다.

자신을 바라보는 그들의 눈빛.

한 치의 거짓도 없으며 믿음이 가득한 눈빛이었다.

‘참나, 예전 신도들의 눈빛이 딱 저랬었지.’

천마 시절 천마신교 신도들이 천마를 바라보던 그 눈빛.

자신들의 보금자리이자 우상을 바라보는 그 눈빛이 이들에게도 보였다.

‘내가 괜한 소리를 할 뻔했구나.’

더는 저들의 믿음을 확인할 말을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제 이들에게는 앞으로 시후가 어떤 행보를 할지 알려주기만 하면 되리라.

“한 가지는 약속하마.”

“…….”

“내게 준 너희의 믿음. 나 또한 믿음으로 보답하겠다.”

그 말에 다들 벅찬 감정에 휩싸였는지 찡한 표정을 지었다.

오직 진지춘만이 두 손을 비비적거리며.

“헤헤, 저는 믿음보다는 물질적인 것을….”

“아! 의원님 쫌!”

“어허! 아프다고 했잖느냐!”

진지춘과 조민의 티격질에 장내는 한바탕 웃음이 흘렀다.

그사이 이미 마련해 놓은 용정차가 식었는지 김이 피어오르지 않았다.

시후가 그런 용정차를 들어 올려 입으로 가져가자 제갈신길이 재빠르게 입을 열었다.

“차가 식었습니다. 다시 내올 터이니….”

“됐다. 식었으면 데워서 마시면 그만이다.”

치익-

그리고 시후의 찻잔에서 김이 피어올랐다.

“와….”

다들 시후가 삼매진화를 일으켜 용정차를 데운 것을 눈치챘다.

하지만 그보다 더 놀란 것은 시후가 들고 있는 찻잔뿐만 아니라 본인들 앞에 놓인 찻잔까지 김이 피어오르고 있다는 거였다.

“마셔라, 본격적으로 이야기할 게 있다.”

시후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차를 권했다.

그렇게 다들 시후의 무위에 또 한 번 놀라며 목을 축였다.

시후는 용정차를 어느 정도 비우자 찻잔을 내려놓았다.

“당분간 주시해야 할 녀석들이 있다.”

시후가 입을 열자 다들 집중했다.

“포달랍궁.”

“네?! 걔네를 왜요?”

시후의 말에 진지춘이 의아하다는 듯이 물었다.

그에 기다렸다는 듯이 조민이 나섰다.

“이번에 그들과 싸움이 있었어요.”

“누구랑? 설마, 도련님께서?”

“네.”

“히이야, 걔네 모두 죽었겠네.”

“아니요. 살아서 돌아갔어요.”

“엥?!”

진지춘은 조민의 말이 믿기지 않는다며 시후를 바라봤다.

시후의 손에서 도망갈 수 있는 사람이 있다니.

믿을 수 없었다.

그런 표정이었다.

“사실이야. 내가 놓쳤다.”

놀란 진지춘과는 다르게 시후는 담담했다.

그 반응에 되레 진지춘이 입을 다물었다.

하지만 다들 진지춘과 같은 생각을 품었다.

믿을 수 없었지만 시후가 그렇다고 하니 그런 거라 각자 결론지었다.

덕분에 장내는 숙연한 분위기가 되었다.

그제야 시후는 모두가 자신의 눈치를 살핀다는 것을 깨닫고 상황을 되짚었다.

그때는 미처 포달랍궁의 궁주가 나타날지 몰라 대비를 하지 못했을 뿐더러 지금의 시후는 그때와 또 달라졌다.

‘이번에 Safety World 덕분에 내공이 비약적으로 늘었어.’

이번에 업적 보상 덕분에 적어도 일 갑자의 내공이 늘었다.

시후는 천마지체를 이룬 시점에서 이미 내공의 의미가 다른 이들과는 달랐다.

그들은 단전에 내공을 응집해 사용하지만 시후는 몸 전체 혈이 단전이 되었다.

즉, 다른 이들이 하나의 단전을 가졌다면 시후는 365개의 단전을 가진 셈이었다.

그런 시후는 이번에 얻은 내공을 다른 용도로 사용했다.

바로 이번에 얻은 내공을 천마지기로 변환한 것이다.

본래 마기를 흡수해야 하지만 어째서인지 이번에 Safety World에서 얻은 내공은 천마지기로 변환할 수 있었다.

그래서인지 시후는 살짝 들떠 있었다.

‘이것으로 천마지체 삼 단계에 들어간다.’

도전해볼 수 있었다.

본래 마기를 흡수해 안전하게 천마지체 삼 단계에 들어서려 했지만 포달랍궁의 등장에 시후는 조금 무리하기로 했다.

다행히 이곳에 있는 이들이라면 오로지 천마지체 삼 단계로 들어가기 위해 운공하는 동안 자신을 지켜줄 수 있을 거였다.

“나머지 자세한 이야기는 조민에게 마저 듣고, 너희들이 잠시 후에 해줘야 할 일이 있다.”

“어떤….”

“나는 잠시 후 한 단계 발전을 위해 운공에 들어간다.”

“…….”

“그때 너희가 내 호위를 해줬으면 한다.”

자신을 지켜달라는 시후의 말에 다들 눈을 휘둥그레 떴다.

그제야 시후가 믿음이 어쩌고 보답이 저쩌구 한 것을 이해했다.

그리고 이해를 하자 가슴이 두근거렸다.

초등학생이 받아쓰기 백 점을 받아 선생님에게 칭찬받았을 때처럼.

절대자에게 인정받았다는 생각에 가슴이 쿵쾅거렸다.

“믿고 맡겨주십시오!”

조금 전까지 장난기 가득한 표정을 짓고 있던 진지춘이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그리고 그 뒤를 이어 모두가 믿고 맡겨달라며 대답을 했다.

시후는 그들에게 웃음으로 대답한 후 제갈세가 수련실로 들어갔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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