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87화
다크 울프 무리 앞에 떨어져 내린 위리놈.
그는 미소 지었다.
그동안 얼마나 기다렸던가.
스윽-
위리놈은 얼굴을 매만졌다.
시후를 보니 그에게 맞은 통증이 되살아나는 것 같았다.
“그때 꽤 아팠어.”
아팠다고 말하는 것 치고는 위리놈의 얼굴에 미소가 가득했다.
그 모습에 시후도 웃었다.
“내 손길이 좀 특별했지?”
“크큭, 정확히는 손이 아니라.”
툭툭-
위리놈이 자기 이마를 검지로 툭툭 건드렸다.
“머리지.”
“맞는 말씀. 그런데 이제 존댓말은 관두기로 한 거야?”
분명 블칸 영주성에서 마지막에 봤을 때까지만 해도 위리놈은 시후에게 존댓말을 했었다.
바니힐 마을 루프 앞에서 집사의 모습으로 나타났을 때부터 그 모습을 유지하려는 듯이 꾸준히 말이다.
그 지적에 위리놈이 검지를 들어 시후를 가리켰다.
“그대처럼 강한 인간에게 격식 따위는 차릴 필요가 없지.”
“본래 그 반대가 아닌가?”
강한 자가 존중받는 무림의 특성상 위리놈의 행동은 기행이었다.
하지만 위리놈은 달랐다.
“내가 왜 악마들의 거주지인 아바돈을 나왔는지 아나?”
띠링-
[아바돈이 악마들의 거주지인 것을 최초로 발견하였습니다.]
[전 스탯 +3 상승.]
[대륙에 명성이 널리 퍼집니다.]
[명성치 +100 상승.]
“응?”
느닷없이 나타난 메시지에 시후는 고개를 갸웃했다.
악마의 서식지 따위가 뭐가 대단하길래 스탯을 상승시켜 주는지.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지만 일단 스탯이 올랐으니 가만히 지켜봤다.
그리고 이때부터였다.
“죽음의 왕? 허울뿐이지. 죽음을 관조하면 뭣하나. 심심해 뒤지겠는데.”
띠링-
[죽음의 왕 위리놈의 진실한 능력을 최초로 파악하였습니다.]
[업적 보상으로 전 스탯 +3 상승.]
“허.”
“비웃나?”
“아, 미안. 계속 말해.”
시후는 본능적으로 말을 아꼈다.
위리놈이 말을 하면 할수록 업적 포상으로 스탯이 상승하니 말이다.
그 때문인지 시후의 얼굴이 살짝 상기되었다.
위리놈은 그 모습이 자신의 이야기에 동조하는 것으로 생각했는지 살짝 들떠 말을 이었다.
“도저히 이길 수 없는 전투에서 이겨본 적이 있나?”
“뭐, 가끔?”
“그래? 역시 자네는 다르군. 나는 말일세. 하르마게돈 전투에서 패색이 짙은 악마군을 승리로 이끌었지.”
띠링-
[하르마게돈 전투에 대한 정보를 최초로 얻었습니다.]
[업적 보상으로 전 스탯 +3 상승.]
시후는 눈앞에 나타나는 메시지를 보며 솟구치는 입꼬리를 손으로 가렸다.
여기서 웃기라도 한다면 위리놈은 말을 멈출 거였다.
‘이런 꿀 빠는 기회를 놓칠 수는 없지.’
시후는 위리놈에게 눈빛을 보냈다.
나는 네 이야기를 사뭇 진지하게 듣고 있노라고 말이다.
그 눈빛에 위리놈은 또 입을 열었다.
“그 전투가 얼마나 대단했는지 아나? 메타트론 같은 상위 천사들이 수두룩했지만 나를 당할 수는 없었지!”
위리놈은 한쪽 주먹을 불끈 움켜쥐며 마치 웅변하듯이 강하게 말했다.
그리고 그와 함께.
띠링-
[상위 천사 메타트론의 존재를 최초로 알게 되었습니다.]
[업적 보상으로 전 스탯 +10]
“미쳤다.”
시후는 저도 모르게 입을 열었다.
다행인지 시후의 그 말이 위리놈은 자신의 업적에 대해 시후가 감탄한 것으로 생각했는지 한껏 고개를 치켜들었다.
“그래. 내가 먼치킨이긴 하지.”
“뭔…. 뭐?”
“허? 유저이면서 그런 것도 모르나? 다른 유저들이 나를 보며 그리 말하던데?”
“……,”
쓸데없는 말 그만하고 하던 이야기나 계속하라는 눈빛을 보냈다.
그 눈빛을 읽은 위리놈이 목을 가다듬으며 입을 열었다.
“크흠, 그런데 그 이후. 아바돈이 어땠는지 아나?”
“글쎄?”
“악마군 주제에 평화에 찌들어 가더군.”
“…….”
“적이 쳐들어오지 않는다고 하여 전쟁이 끝난 것이 아니거늘.”
시후는 저 말이 무슨 말인지 이해했다.
익히 경험한 것이었으니 말이다.
천마 시절. 천마신교에 쳐들어온 녀석들을 물리친 때면 언제나 연회를 열었다.
그래야 신도들이 불안해하지 않는다고 지괴가 그랬으니 말이다.
하지만 다음 침략까지 걸리는 시간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신도들은 평화에 길들었다.
무공을 갈고 닦기보다는 돈을 갈구하는 모습을 보였다.
사람이 사는 데 돈이 있으면 좋다는 것은 알지만, 그 모습은 달랐다.
잘 살기 위해서가 아니라 다른 이들보다 나은 삶을 다른 이들에게 과시하기 위해 돈을 갈구했다.
그래서 천마는 계율이라는 명목하에 신도들을 단속했다.
그때 느꼈던 그 더러운 느낌.
위리놈이 무엇을 말하는지 알 것 같았다.
“평화가 지속되면 지속될수록 나는 느꼈다네…. 공….”
“공허함.”
시후는 위리놈의 다음 말을 대신 말했다.
그 말에 위리놈의 두 눈이 커졌다.
그리고 얼굴에 미소가 가득해졌다.
“역시. 내가 사람 보는 눈은 탁월하다니깐.”
위리놈의 즐거워하는 표정에 시후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저 표정을 보니 한동안 잊고 있던 얼굴이 떠올랐다.
싸움에 미친놈 궁귀(弓鬼) 담수천.
형제의 결의을 맺었던 그 녀석과의 첫 만남은 녀석의 호승심 때문이었다.
자신의 무위를 알고 싶다나.
담수천은 다짜고짜 저잣거리에서 국수를 먹고 있던 천마에게 덤볐었다.
그것도 무형시(無形矢)를 날려서 말이다.
화살 대신 기를 날린 무형시 덕분에 천마는 깜짝 놀라 천마보까지 펼쳐 피했다.
하지만 들고 있던 국수는 무형시에 꿰뚫렸었고 이에 화가 머리끝까지 오른 천마가 담수천의 턱에 주먹을 날려 앞니 하나를 날려 버렸었다.
덕분에 녀석은 웃을 때면 바람이 숭숭 드나드는 꼴이 되었다.
그러면서도 뭐가 그리 좋은지.
천마 신교에 입단한 후 때 되면 그 웃는 낯짝으로 천마에게 달려들었다.
지금 위리놈과 똑같은 표정을 지으면서 말이다.
“공허함을 채워줄 장난감을 만났다는 표정으로 말이지.”
“하, 하하. 맞다! 정확히 맞았다.”
위리놈은 시후가 자신의 감정을 정확히 말하자 기분이 좋은지 더욱 크게 웃었다.
시후는 그런 위리놈에게서 고개를 돌려 일행들을 봤다.
태산과 인호와 아킬라이와 멀린은 입을 쩌억 벌리고 두 눈은 휘둥그레져 놀라고 있었다.
이들 역시 시후와 마찬가지로 위리놈의 이야기를 듣고 업적 보상을 받은 거였다.
시후만큼은 아니었지만 말이다.
“무슨, 한마디 내뱉을 때마다 레벨이 하나씩 올라?”
“미친. 순식간에 4레벨을 올렸어.”
“친구, 이게 말이 되는 건가?”
“대악마 위리놈이라니. 천마님은 도대체 어떤 퀘스트를 하시는 겁니까?”
다들 자신의 스테이터스 창을 보며 눈을 비볐다.
태산과 인호도 이미 Lv. 300을 눈앞에 두고 있었기에 1레벨을 올리는 게 얼마나 힘든지 알고 있었다.
둘이 그럴지인데 아킬라이와 멀린은 오죽하겠는가.
특히 멀린은 NPC였기에 유저와 합동으로 퀘스트를 하지 않으면 경험치를 얻을 수 없었다.
그런데 순식간에 4레벨이 올라버리자 꿈이 아닌지 볼을 꼬집어 봤다.
“아야! 아프네?”
멀린은 볼에서 느껴지는 통증과 스테이터스 창에 올라간 레벨을 봤다.
이런 행운이 자신에게 오다니.
믿을 수 없었지만 분명 일어난 일이니 그 원인인 시후를 찾았다.
“친구. 고맙네. 내 이 은혜는 꼭 보답하지.”
“그래? 그럼 그 보답 지금 좀 해줄래?”
“응?”
느닷없는 시후의 말에 멀린이 의아해하는 사이 시후가 전음을 보냈다.
- 멀린과 함께 헤라 왕국으로 이동해.
멀린을 포함한 태산과 인호와 아킬라이에게 말이다.
시후는 조금 전부터 느끼고 있었다.
위리놈이 천천히 기운을 끌어올리는 것과 그 뒤에 모여든 다크 울프들의 숫자가 엄청나게 불어나고 있는 것을 말이다.
다크 울프가 불어나는 이유는 간단했다.
“여우같은…. 저 녀석들 모두 네가 푼 거였어?”
“크큭, 눈치챘나? 이번에는 쉽게 도망가지 못할 거야.”
그랬다.
어둠의 숲에 다크 울프가 평소와 달랐던 이유.
그것은 바로 위리놈의 몸에서 튀어나온 녀석들 이어서였다.
촤악-
위리놈은 더 이상 가릴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는지 거대한 박쥐 날개를 활짝 폈다.
그러자 위리놈의 등 뒤에서 다크 울프가 툭툭하고 떨어져 나갔다.
시후 일행들은 그제야 끝없이 불어난 다크 울프의 수를 확인했다.
“미…친.”
어둠의 숲을 가릴 만큼 많아진 다크 울프의 수.
일행들은 저만한 숫자와 싸워 이길 자신이 없었다.
아니. 살아남을 자신이 없었다.
그 순간 시후가 보낸 전음이 떠올랐다.
“지금.”
왜 그런 전음을 보냈는지 이해하는 순간 시후가 말했다.
그리고 멀린의 무영창으로 펼친 워프로 태산과 인호와 아킬라이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그렇게 어둠의 숲에 대악마 위리놈과 수를 헤아릴 수 없는 다크 울프 앞에 시후 홀로 남았다.
* * *
“미친 거 아니야?!”
“저게 우리에게 보여주려던 거라고?”
“고작 자살이나 하려고?”
“…….”
S.W SOFT 캡슐 방에서 웰컴 모니터를 보고 있던 넷.
박혜령, 김희준, 김태영, D.M은 시후가 벌인 일에 너무 놀라 타고 있던 휠체어에서 떨어질 뻔했다.
대악마 위리놈을 만나고 업적 보상을 받을 수 있는 정보를 캐내는 장면을 볼 때는 사레까지 들렸다.
정신을 가다듬고 생수를 찾아 목을 축이는 사이 어마어마하게 불어난 다크 울프의 대군을 봤다.
그 수에 놀라는 한편 저들이 어떤 전투를 벌일까 기대하는 사이 돌연 시후가 홀로 남아버렸다.
자살하기 위해서 벌인 일치고는 너무 거창하다 싶어 욕을 내뱉으려는 그 순간.
“어?!”
“어어어?!!”
웰컴 모니터에서 믿기지 않는 장면이 보였다.
시후가 잔뜩 힘을 주어 움켜쥐고 있던 주먹을 위리놈에게 뻗었다.
그러자 주먹의 끝에서 황금색의 거대한 주먹이 나타나 뻗어져 나갔다.
그 주먹은 위리놈을 포함해 그 뒤에 있던 어둠의 숲과 다크 울프 대군을 덮쳤다.
“미친!”
박혜령은 저도 모르게 욕을 내뱉었다.
그도 그럴 것이 시후가 내뻗은 주먹 한 방에 모세가 바다를 가르듯 다크 울프 대군이 갈라졌다.
당연하겠지만 대악마인 위리놈은 멀쩡했다.
거대한 박쥐 날개로 시후의 그 엄청난 공격을 견딘 거였다.
하지만 그를 칭찬하기도 전에 시후가 이미 그에게로 이동했다.
시후는 위리놈의 거대한 박쥐 날개에 마강각을 내려찍었다.
멀린의 모든 마나를 쏟아부었던 퍼펙트 실드를 깨부수던 마강각.
그 위력은 다시 한번 빛을 발하며 위리놈의 날개를 무너트렸다.
날개가 찢기며 위리놈이 휘청하자 시후가 그의 얼굴에 손바닥을 들이밀었다.
그리고 여기 있는 넷 모두가 기억하는 그 스킬이 튀어나왔다.
“천마멸겁장?!”
블레이드 토네이도를 찢어발기고 오크 부족장을 날려버린 그 스킬.
넷은 그제야 시후가 그 사건의 주인공임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넷은 말없이 웰컴 모니터를 주시했다.
위리놈은 천마멸겁장을 얻어맞아 훨훨 날아 어둠의 숲에 처박혔다.
하지만 처박히기 무섭게 배는 빠르게 튀어나온 위리놈이 시후를 덮쳤다.
그리고 시작된 둘의 난투극.
둘은 자칫 코가 맞닿을 만큼의 간격에서 손과 발을 휘둘렀다.
말이 손과 발을 휘두른 것이지 그 위력은 어마어마했다.
위리놈이 내지른 주먹에 어둠의 숲 한쪽이 사라졌다.
시후가 위리놈의 턱을 노리고 걷어차 올린 발길질에 어둠의 숲이 갈라졌다.
어느덧 위리놈이 불러낸 다크 울프들도 둘의 싸움에 휘말려 모두 죽어버렸다.
이제 더는 어둠의 숲이라고 불릴 수 없을 정도로 황폐해진 그곳에서 여전히 둘은 싸웠다.
“설마….”
“저거, 저러다가 정말….”
“대악마 잡는 거 아니야?”
“…….”
넷은 설마가 사람 잡는 결과를 기대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