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86화
바니힐 마을 어둠의 숲.
해가 뜨고 달이 떠도 언제나 어둠이 가득한 숲.
그곳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어둠을 밝힐 수 있는 도구나 스킬이 꼭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어둠에 집어삼켜져 영원한 안식에 빠지리라.
이것이 바니힐 마을 어둠의 숲에 대한 정보였다.
Lv. 300대 유저들이나 출입할 수 있는 어둠의 숲은 그렇게 인기 있는 사냥터는 아니었다.
챙겨 가야 할 것은 많으나 그 안에서 얻을 수 있는 것들이 상대적으로 낮은 가치를 지녀서였다.
그런 그곳이 지금은 대성황을 이루고 있었다.
“들어갈 때는 마음대로 들어가도 나갈 때는 마음대로 못 나간다?”
시후는 어둠의 숲 입구에 박혀 있는 안내표지판을 읽었다.
이것을 보니 예전 케난 협곡을 들어갈 때가 떠올랐다.
그때도 ‘개 조심’ 같은 문구가 적혀 있었는데.
“이런 곳들은 대게 과장이 심한 법이지.”
시후의 기억 속에 케난 협곡은 비천대 사 형제를 수련시키고 타란을 수하로 거둔 행운의 땅이었다.
이곳은 과연 어떤 곳일지 궁금하던 차에 어둠의 숲 안쪽에서 괴성이 울렸다.
크아악!
괴성은 비명과 섞여 시후 일행이 있는 곳까지 들렸다.
그 때문일까. 호기롭고 당당하던 멀린이 잔뜩 움츠러들었다.
“치, 친구. 여기 진짜 들어갈 건가?”
“당연하지. 여기야말로 네 가치가 증명되는 곳이 될 테니까.”
“내 가치?”
시후는 멀린의 어깨에 팔을 두르며 말했다.
가치라는 말에 멀린의 두 눈동자가 반짝였다.
“그래. 가치. 여기서 네가 활약하는 거에 따라 대마법사 멀린이라는 이름이 제국에 쫙 퍼질 거야.”
“그게 가능할까?”
“당연하지. 내 말대로만 따르면 그렇게 될 거야.”
시후는 이곳으로 오는 동안 일행들에게 어둠의 숲에서 해야 할 일들을 설명했다.
우선 태산과 인호.
둘은 이번에 훈련을 겸하기 때문에 시후가 특별한 지시를 내렸다.
“둘은 스킬 금지. 무공으로만 날뛸 것.”
그 말에 태산과 인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둘도 이제 시후가 시키는 일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알았다.
시후는 지금 둘에게 무공의 숙련도를 올리며 내공의 흐름을 몸에 익히게 하려는 거였다.
그 후 현실에서 새로운 무공을 가르쳐 주려는 의도였다.
이런 경우가 몇 번 있었기에 둘은 각오를 다졌다.
그런 둘에게 시후는 한 가지를 더 지시했다.
“공삼방삼퇴. 이걸 반복해.”
공격 삼 초식, 방어 삼 초식. 그 후에 후퇴를 지시했다.
후퇴는 멀린을 위한 거였다.
“저 둘이 후퇴하는 틈에 멀린이 공격.”
그것도 그냥 공격이 아닌 최대한 화려하게 말이다.
어느 정도 화려하게냐고 묻는 멀린에 시후는 단호하게 말했다.
“저 숲을 모두 태워버릴 수 있을 정도?”
멀린은 농담이 지나치다며 웃었지만, 나머지 일행들은 그럴 수 없었다.
만약 멀린이 그러지 않으면 시후가 직접 어둠의 숲을 태워버릴 테니 말이다.
부디 그럴 일이 없길 바라며 마음속으로 기도를 하는데 멀린이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그럼, 천마 자네는 뭐하고?”
“나는 제일 중요한 일을 하지.”
척-
시후는 양손의 엄지와 검지를 치켜세워 맞대며 네모를 만들었다.
그리고는 그 안으로 한쪽 눈을 넣고는 멀린을 향해 내밀었다.
“그게 뭔데?”
“촬영.”
“촬영?”
“우리 유저들은 녹화 기능이라는 게 있거든. 그걸로 너희가 날아다니는 장면을 찍을 거야. 그리고….”
“그리고?”
“널리 널리 알리는 거지. 대마법사 멀린의 위용을!”
시후는 마지막 말에 힘을 싣고는 한쪽 주먹을 하늘로 치켜들기까지 했다.
과장된 그 모습에 태산과 인호는 웃음이 새어 나오는 것을 겨우 입을 틀어막아 참았다.
하지만 멀린은 시후의 그 행동에 푹 빠졌다.
“오오! 오오오! 그런 게 가능하다고? 그럼, 꼭 좀 부탁하네!”
멀린은 시후의 두 손을 꼭 잡으며 초롱초롱한 눈빛을 보냈다.
그에 시후는 온화한 미소를 보였다.
‘여기 배우 하나 추가요.’
생각은 전혀 온화하지 못했지만 말이다.
시후는 멀린을 배우로 쓸 생각이었다.
자신이 어둠의 숲을 공략하는 영상을 찍어 보여줘야 할 사람들이 있으니 말이다.
‘위리놈의 아이템 가격이 얼마나 뛸지 기대하라고.’
바로 헤라 왕국의 귀족들이었다.
그들은 위리놈의 아이템과 자신들 창고에 있는 아이템을 교환하자는 약속을 했었다.
하지만 시후는 거기에 하나의 함정을 더 파놨다.
가치의 기준.
시후는 아이템을 교환할 때 낮은 등급의 아이템과 녀석들의 높은 등급 아이템을 맞바꿀 생각이었다.
‘고생의 대가는 받아야 할 거 아니야.’
그러기 위한 사전 작업으로 이런 판을 만든 거였다.
멀린이 만들 화려한 영상을 증거로 내세울 생각이었다.
그렇게 계획을 짜는데 아킬라이가 손을 번쩍 들었다.
“저는 무엇을 하면 될까요?”
시후가 짠 작전에 자신이 빠져 있다는 것을 의미심장하게 말했다.
다들 시후가 아킬라이에게만 따로 지시를 내리지 않은 것을 이제야 눈치챘다.
그렇게 모두의 시선이 시후에게로 모였다.
“넌…. 들어가 보면 알아.”
“네?”
유독 아킬라이에게만 대충 지시하는 시후였다.
아킬라이는 혹시 시후가 자신에 대해서 무엇을 눈치챈 것은 아닌가 싶은 걱정을 하며 뒤따랐다.
하지만 잠시 후, 자신의 걱정이 기우였음을 깨달았고 시후가 왜 자신에게 대충 지시했는지 알게 되었다.
“천마님!! 이건 아니지 않습니까?!”
“아니기는. 찰떡이구먼.”
아킬라이는 자신의 애검인 헤라의 분노를 꺼내어 연신 휘둘렀다.
그것도 본인이 가진 스킬을 전부 펼치며 말이다.
시후는 어둠의 숲으로 들어오기 전 아킬라이에 슬쩍 천마지기를 흘려 넣어놨었다.
어둠의 숲에 대해서 들은 정보대로라면 이곳에서 나오는 몬스터는 시후도 익히 아는 녀석들이다.
컹, 컹컹!
날카로운 이빨과 발톱을 세워 달려드는 검은 갈퀴의 늑대무리들.
통칭 다크 울프.
녀석들은 어둠의 숲에서 서식하며 숲으로 들어온 유저들을 사냥하는 몬스터였다.
가뜩이나 빛 한 점 들지 않는 어둠의 숲에서 검은색 갈퀴를 가진 녀석들은 완전한 은신이 가능했다.
또한 다크 울프는 결코 혼자 다니지 않았다.
적게는 열 마리, 많게는 서른 마리씩 무리를 지어 다녔다.
거기에 하나 더.
녀석들은 리더가 있었다.
리더는 무리를 통솔했고 명령에 움직이는 다크 울프 무리는 일사불란한 움직임으로 유저들을 곤욕스럽게 했다.
그래서 시후는 한 가지 묘책을 떠올려 시행했다.
일전에 위리놈이 블칸 영주성으로 자신을 보냈을 때 태웠던 다크 울프에게서 느꼈던 기운.
녀석은 어둠의 기운을 가졌고 그것은 마기와 비슷했다.
그래서 시후는 천마지기를 이용했다.
그것도 어둠 속에서 빛을 발하는 번쩍번쩍한 은빛 갑옷을 입은 아킬라이에게 말이다.
착용하고 있는 갑옷만으로도 표적이 되기에 충분한 아킬라이는 천마지기 덕분에 다크 울프의 표적 1순위가 되었다.
“아킬라이 잘 버틴다~ 태산, 인호 뭐해! 너희가 손을 놓으면 아킬라이가 로그아웃된다.”
“으아~! 두고 보자!”
태산과 인호는 시후의 말에 숨도 못 쉬고 무공을 펼쳤다.
둘은 딱히 표적을 정하고 무공을 펼치지 않았다.
그저 손과 발을 뻗을 수 있으면 되는대로 그 안에 내공을 담아 쏘아냈다.
개걸심법과 천투심법을 극성까지 익힌 둘은 이미 개걸폭렬권과 투신검각권을 완벽히 체화했다.
덕분에 태산이 내지르는 손에는 어둠의 숲 지각을 진동시키는 무게가 실렸으며 인호가 내지르는 발길질에는 어둠의 숲 나무를 뿌리째 뽑아버릴 것 같은 흡입력이 담겼다.
거기에 둘은 적절하게 검마의 삼재검법까지 펼쳤다.
해머와 보우건으로 펼치는 검마의 무공이었지만 번개를 가르고 뚫어버릴 기운을 사방에 퍼트렸다.
“좋아! 이제 물러나!”
그렇게 사방으로 공격을 퍼붓던 셋이 시후의 외침에 다급하게 몸을 날려 돌아왔다.
“멀린!”
“준비 마친 지 오래였네!”
펑-
준비를 마쳤다는 멀린의 머리 위에는 다섯 개의 불덩어리가 떠올라 있었다.
멀린이 손을 휘젓자 불덩어리들을 연결하는 선이 나타났다.
선과 선은 연결되어 오망성(五芒星)이 되었다.
활활 타오르는 오망성 덕분에 주변은 대낮보다 밝아졌다.
“아우우울!!”
어둠이 걷히자 리더 다크 울프가 길게 울부짖었다.
그와 동시에 멀리 떨어져 있는 어둠 속에서 수많은 다크 울프들이 몰려나왔다.
녀석들은 튀어나오는 즉시 시후 일행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그 위세가 마치 쓰나미와도 같았다.
그 엄청난 위세에 다른 유저들이라면 겸허히 죽음을 받아들였을 테지만 시후 일행들은 달랐다.
이미 이 짓을 한 게 벌써 세 번째였다.
그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넷은 입을 모아 멀린이 준비한 마법 주문을 외쳤다.
“인페르노!!”
화염의 오망성에서 뿜어져 나간 인페르노.
거대한 화염은 가장 앞에 달려오는 다크 울프의 앞에 떨어졌다.
땅을 뚫고 들어간 거대화염은 순식간에 솟구쳐 올랐다.
그리고 시작된 연쇄 폭발.
쾅-쾅쾅-
땅거죽을 뒤집으며 토해져 나오는 화염 기둥에 다크 울프들은 속수무책으로 죽었다.
쓰나미처럼 밀려들던 다크 울프들은 화염의 해일에 집어삼켜졌다.
엄청난 굉음과 진동이 증명하듯 순식간에 주변은 초토화가 되었다.
하지만 그만한 화염 공격에도 어느 하나 불타는 곳은 없었다.
이것이 어둠의 숲 특징 중에 하나.
절대로 타지 않는 나무였다.
“벌써 세 번째 보는데 참으로 신기하군.”
시후는 불이 붙었다 싶으면 바로 꺼지는 나무를 보며 입을 삐쭉였다.
활활 불타 버렸다면 쉽게 숲을 공략했을 텐데.
저렇게 꺼지니 하는 수 없이 차선책을 펼쳐야 했다.
“천마님, 이번에도 저 녀석을 놓아주나요?”
“어. 그래야 다른 녀석들을 끌고 오지.”
크어엉!
시후의 말대로 리더 다크 울프는 독기가 잔뜩 오른 포효를 내뱉고는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녀석은 아마도 잠시 후면 다른 무리를 이끌고 또다시 덮쳐올 것이다.
이미 세 번이나 그랬으니 말이다.
“자자, 떠난 녀석은 떠난 녀석이고. 다시 만날 잠시 후를 기약하며 우리는 전리품을 확인해 볼까?”
시후의 말에 일행들은 성큼성큼 걸어갔다.
정말 가진 마나를 모두 사용하고 죽을 위기에 처한 게 한두 번이 아니었지만 그만큼 얻은 것은 많았다.
진짜 많았다.
“와…. 어떻게 이렇게 많은 아이템을 드랍하지?”
“그러게 말이야. 거기다가 종류도 엄청 다양해.”
“우와! 반지가 또 나왔어.”
다크 울프를 처치하고 나온 아이템의 숫자가 어마어마했다.
그도 그럴 것이 이만한 몹몰이 사냥을 한 적은 다들 처음이었으니 당연했다.
시후의 지시에 따라 정신없이 움직였으니 달려드는 다크 울프의 숫자를 세어보지 못했다.
시후도 굳이 그 수를 말해주지 않았다.
‘대략 500마리가 넘었다고 어떻게 말해.’
그 수를 말해주는 순간 다들 몸이 움츠러들 거였고 그렇게 되면 다음 공세에 지장을 줄 거였다.
시후가 그런 생각을 하는 사이 일행들은 바닥에 떨어져 있던 아이템을 모두 주워 왔다.
품 안에 가득 쌓아 올린 수가 어마어마했다.
다들 그 아이템들을 시후 앞에 쌓았다.
시후는 인벤토리를 열어 그 아이템들을 모두 담았다.
“진짜 천마님 인벤토리가 없었다면 이것들 모두 들고 다닐 뻔했습니다.”
“그렇게 말이야. 갑자기 드라큘라 백작이 고마워지네.”
드라큘라 백작을 잡고 나서 얻은 보상으로 1만 칸으로 확장된 시후의 인벤토리가 아니었다면 아킬라이의 말처럼 이 많은 아이템을 들고 다닐 뻔했다.
귀찮은 것을 딱 질색하는 시후에게는 그만한 곤욕이 없을 거였다.
“아이템 확인은 한 번만 더 사냥하고 하자.”
시후의 말에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아이템을 확인하기에는 벌써 리더 다크 울프가 무리를 이끌고 다가오는 게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좀 달랐다.
“뭐야? 저 녀석 왜 맨 앞에 있어?”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리더 다크 울프가 가장 앞에서 걸어오고 있었다.
뒤에서 무리를 조종하던 녀석이 가장 앞에서 걸어오다니.
당장 죽기라도 하면 나머지 녀석들은 오합지졸이 될 텐데 말이다.
모두가 의아해하는 사이 시후만이 그 이유를 알았다.
“드디어 나타나시는 건가?”
“누가?”
까딱-
시후는 턱을 까딱여 리더 다크 울프의 머리 위를 가리켰다.
그에 다들 시선을 하늘로 올렸다.
그리고 보았다.
이쪽을 내려다보고 있는, 거대한 박쥐 날개를 펄럭이며 강한 기운을 일으키는 대악마를 말이다.
“다시 보니 반갑군.”
쿵-
위리놈이 시후에게 반가움을 표하며 땅으로 떨어져 내렸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