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84화
“쟤… 아니, 저분은 뭐냐?”
“왜 저러면서 우리를 따라오는 거야?”
태산과 인호의 말에 시후는 관자놀이를 꾹꾹 눌렀다.
없던 두통이 밀려왔다.
둘이 말하는 주인공은 바로 멀란도랑 린달프일이었다.
녀석은 퀘스트 여관을 나온 후부터 셋을 뒤따랐다.
다만 그 방식이 미행하듯 해서 문제지만 말이다.
“그렇게 움직일 거면 잘 숨든가. 다 보이거든!”
“히익!”
시후의 호통에 가로수 뒤에 몸을 숨긴 멀란도랑이 기겁했다.
시후의 말대로 숨으려면 잘 좀 숨든가.
그 앙상한 몸이 반쯤은 튀어나와 있었다.
그리고 보통 숨으려면 몸을 숨기고 머리를 내놓지 않던가.
멀란도랑은 머리는 가로수 안쪽으로 밀어 넣고 몸을 밖으로 빼놓은 상태였다.
그 어처구니없는 자태에 지나가는 사람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았다.
그 모습에 시후는 더욱 열불이 났다.
“당장 튀어와!”
“히익!”
오라는 부름에도 멀란도랑은 기절할 것처럼 놀랄 뿐 다가오지는 않았다.
이미 그 이유는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직접 겪으니 화병이 생길 것 같았다.
퀘스트 여관 마스터가 자신의 조건이라며 멀란도랑을 데려가라고 했을 때였다.
녀석에 대한 주의 사항이라며 몇 가지를 이야기해 주었다.
‘그중 하나가 바로 저거.’
주변 사람들이 자신을 쳐다본다는 망상에 빠져 스스로 몸을 감춘다는 거였다.
일종의 대인 기피증.
시후는 정신병은 병원을 가든가 해야지 왜 자신에게 맡기냐며 마스터에게 따졌었다.
하지만 돌아온 대답은 마르스였다.
개망나니, 헤라 왕국의 망신살, 갑질남, 또라이 등등.
헤라 여왕의 자식치고는 독특한 수식어가 참으로 많이 붙은 녀석이었다.
그 외에도 많았지만 시후는 기억하지 않았다.
‘어차피 갱생시킬 거였으니까.’
이후 시후의 계획대로 마르스는 갱생이 되었다.
죽을 고비를 넘기기는 했지만 헤라 여왕이 만족할 만한 모습으로 변했다.
그 덕분에 시후는 헤라 왕국에서 유명 인사가 되었다.
특별한 능력으로 개망나니도 갱생시켜주는 대단한 유저로 말이다.
특히, 퀘스트 여관 마스터처럼 보면 볼수록 걱정을 한 사발 마시게 할 자식을 둔 부모들에게 빠르게 퍼졌다.
퀘스트 여관을 홀라당 태워버릴 뻔한 유저가 그인 것을 알게 된 마스터는 간절한 마음으로 아들을 부탁했다.
바니힐에 대한 정보와 맞바꾼 거였다.
정당한 거래라 생각한 시후는 태산과 인호가 합류하자마자 퀘스트 여관을 떠났다.
그리고 지금의 상황을 맞닥뜨린 거였다.
극도의 불안 장애와 함께 대인 기피증까지 앓고 있는 멀란도랑.
시후는 마스터와의 거래를 생각하며 인내심을 발휘했다.
“열 셀 동안 내 앞에 안 오면… 죽는다.”
“히익!”
“하나, 둘, 셋….”
시후가 극도의 인내심을 발휘하며 숫자를 세기 시작했다.
태산과 인호는 앞으로 벌어질 일에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지금의 시후는 자신들도 말릴 수 없었다.
물론, 예전처럼 앞뒤 가리지 않고 냅다 살수를 뻗치지는 않겠지만 적어도 멀란도랑에게 시후는 공포의 대상이 될 터였다.
둘의 그런 생각을 증명이라도 하듯 시후에게서 살기가 피어올랐다.
“넷… 아홉, 열.”
“히익!!”
스팟-
시후가 중간 숫자를 건너뛰고 세는 순간 태산과 인호는 믿기지 않는 장면을 봤다.
가로수 뒤에 잔뜩 웅크리고 있던 멀란도랑, 그가 순식간에 시후 앞에 나타난 거였다.
둘은 그가 무엇을 한 것인지 알았다.
그가 마법사인 것은 시후에게서 들어서 알았으니 말이다.
“블링크?”
“이렇게 갑자기?”
아무리 마법사라도. 아무리 레벨이 Lv.349라도.
기본적인 캐스팅도 없이 스킬을 사용하다니.
“입도 뻥긋 안 했는데?”
“그치? 분명 ‘히익’ 이러고만 있었어.”
“그렇다는 것은…!”
마법사가 입도 벌리지 않고 마법을 사용하다니.
들어본 적은 있지만 실제로 본 것은 처음이었다.
둘은 눈빛을 교환하더니 동시에 입을 열었다.
“무영창!”
딱-
둘의 외침과 함께 청아한 목탁 소리가 화음을 냈다.
소리의 근원지를 찾아 고개를 돌려보니 멀란도랑이 머리를 감싸 쥐며 잔뜩 웅크리고 있었다.
힘줄이 툭툭 튀어나온 주먹을 부들부들 떠는 시후 앞에서 말이다.
누가 봐도 시후가 멀란도랑에게 꿀밤을 먹인 상황이었다.
태산과 인호는 서로 눈빛을 교환하더니 후다닥 달려갔다.
태산은 다시 한번 주먹질하려는 시후에게 매달리다시피 태클을 걸었고 인호는 웅크리고 있던 멀란도랑을 감싸 안았다.
둘은 무영창이 가능한 고레벨 마법사 NPC를 이대로 죽게 내버려 둘 수 없었다.
“놔! 내가 저 자식 오늘 리셋시킨다!”
“참아!”
“이거 놔아아!!”
시후는 목소리 높여 울부짖었다.
정말 아주 오랜만에 뚜껑이 열렸다.
무영창으로 블링크를 써서 눈앞에 나타난 멀란도랑은 자신과 눈이 마주치자마자 오줌을 지렸다.
그런 주제에 헛소리를 내뱉었다.
“뭐?! 사기꾼? 내가?!”
그랬다.
멀란도랑은 시후에게 사기꾼이라고 했다.
도대체 무슨 수작을 부렸는지 모르겠지만 퀘스트 여관에서 보여준 모습하며 마르스를 개과천선시켰다는 것을 믿을 수 없다고 했다.
시후는 인내심을 폭발적으로 발휘해 그런 거 아니니 말이나 잘 들으라고 했다.
하지만 돌아온 말이라고는.
“앞으로 자신을 존중하라고?”
오줌이나 잔뜩 지린 녀석이 내뱉은 말치고는 포부가 있었다.
태산과 인호는 시후의 말에 멀란도랑을 쳐다봤다.
“진짜 그런 말을 했어요?”
“다, 당연하지!”
“뭐 가요?”
“고작 Lv.204 주제에…. 내, 내 레벨이 몇인데… 히익!”
멀란도랑은 말을 하다 말고 또 한 번 기겁했다.
말을 하면 할수록 짙어지는 시후의 살기를 느낀 거였다.
저승사자 앞에서 레벨 운운하는 멀란도랑에 태산과 인호는 어이가 없었다.
도대체 머릿속에 어떻게 되었는지 궁금하던 차에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가 지극히 능력주의자라서 그럽니다.”
난장판이 된 넷에게 누군가가 다가왔다.
태산과 인호는 그를 보자 얼굴을 활짝 펴며 반가워했다.
“형!”
“오랜만이다.”
번쩍번쩍 빛나는 은색 갑옷에 찰랑이는 금발을 휘날리는 미남형 유저.
아킬라이였다.
얼마 전 헤라 왕국 입구에서 시후와 잠깐 만났던 그가 당당하게 시후를 찾아온 거였다.
아킬라이는 손을 흔들며 환하게 웃었다.
반짝이는 건치까지 내보이며 말이다.
시후는 가볍게 손을 들어 반겼다.
“일은?”
그때 무슨 일로 급하게 로그아웃했는지 모르겠지만 잘 처리했냐고 묻는 거였다.
“덕분에 잘 처리하고 있습니다.”
“잘했네. 도움이 필요하면 이야기하고.”
“감사합니다.”
시후는 아킬라이에게 특별한 감정이 없었다.
그저 일전에 퀘스트를 같이한 사이 정도로만 생각했다.
그런데 어째서인지 자신에게 다가오는 아킬라이의 눈빛이 전과 달랐다.
크리스마스 날 아침에 눈을 뜬 아이의 눈빛이 저럴까.
시후는 그런 아킬라이의 진심을 알기 위해 독안공을 펼쳤다.
그런데.
팅-
[독안공 스킬이 실패하였습니다.]
처음 보는 메시지였다.
하지만 그 메시지가 누구 때문인지는 알았다.
“너 이 자식….”
“다, 당신이 어떻게 아킬라이 님을 아는지 모르겠지만! 이분께 무례한 행동을 하게 둘 수는 없습니다!”
멀란도랑이 마법으로 시후의 독안공을 막은 거였다.
그것도 아킬라이 몸 전체에 강력한 방어 마법을 걸어서 말이다.
멀란도랑이 힘겹게 몸을 일으켰다.
“그, 그리고 이 자식, 저 자식 하지 마십시오. 제게도 엄연히 이름이 있습니다!”
“이름? 그… 멀대…또랑? 그거? 야, 너무 길어. 그냥 두 자로 줄여, 멀린.”
“이… 이….”
멀란도랑은 보았다.
자신의 이름을 틀리는 시후의 표정을 말이다.
시후는 한쪽 입꼬리를 씰룩대며 대충 말했다.
누가 봐도, 누가 들어도. 명백하게 비꼬는 거였다.
멀란도랑은 자기 이름에 자부심이 있었다.
아버지에게서 직접 물려받은 이름이었으니 말이다.
아버지는 퀘스트 여관 마스터가 되면서 자신의 이름을 아들에게 물려주었다.
한 시대를 풍미한 위대한 마법사 멀란도랑 린달프일.
헤라 왕국의 수석 마법사가 되어달라는 요청을 거부한 마법사.
그것이 아버지였다.
그랬기에 그의 이름을 물려받은 아들은 분노했다.
시후에 대한 두려움과 더불어 자신에게 걸린 상태 이상을 이겨낼 정도로 말이다.
“더는 못 참습니다! 아이스 돔, 아이스 스톰!”
쿠아앙-
급발진한 멀란도랑 린달프일이 얼음 마법을 펼쳤다.
무영창으로 펼칠 수 있음에도 굳이 소리 내어 캐스팅을 했다.
그 이유는 하나만 펼치기에도 어려운 얼음 마법을 동시에 펼치는 더블 캐스팅을 해서였다.
멀란도랑은 다른 이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싶었다.
그래서 아이스 돔을 만들어 앞으로 펼쳐질 공세를 외부로 빠져나가지 않게 했다.
그에 그치지 않고 순식간에 얼음 돔을 완성한 멀란도랑은 그 안에서 얼음 폭풍을 일으켰다.
그 크기는 시후가 퀘스트 여관에서 일으킨 화염 회오리의 두 배는 컸다.
멀란도랑은 거기에 하나를 더했다.
아이스 돔으로 주변 기온이 급격히 하강하자 공기 중에 수분이 얼음으로 변했다.
그 얼음을 아이스 스톰에 흡수시켜 더욱 커다란 얼음덩어리를 만들었고, 그것을 시후에게 날렸다.
멀란도랑은 이 공격으로 시후를 꼼짝 못 하게 만든 후 퀘스트 여관으로 돌아갈 생각이었다.
아버지가 꾸짖으시면 실력도 없는 녀석들에게서 배울 게 무엇이 있냐며 반박하려는 변명까지 생각해뒀다.
반면, 시후는 주변 공기가 변하고 얼음덩어리가 덮쳐오자 옳다구나 싶었다.
“아주 잘됐어.”
“응?”
“너희를 훈련시킬 생각이었는데 아주 쓸 만한 녀석이 나타났어.”
“응?!”
태산과 인호는 시후의 말을 좀처럼 이해할 수 없었다.
아니. 이해할 시간이 없었다.
어느덧 얼음덩어리가 가까워져 오고 있었다.
“저거 안 막아?”
“막아야지. 자~ 나 따라 해봐.”
갑작스러운 시후의 친근한 말투에 둘은 흠칫했다.
둘은 시후의 저 말투를 뼛속까지 기억하고 있었다.
요단강 건너편에서 손짓하는 저승사자의 말투가 딱 저럴 거라는 생각이 들 만큼 훈련의 강도를 올릴 때 시후가 쓰는 말투였다.
그렇다고 따라 하지 않을 수는 없었다.
죽을 만큼 힘들었지만 언제나 자신들을 한 단계 성장시켜 주었으니 말이다.
둘은 속으로 욕을 한 사발 내뱉고는 시후를 따라 했다.
시후는 두 다리를 어깨너비만큼 펼치더니 내공을 끌어올려 순식간에 땅으로 내리꽂았다.
“천근추.”
쿠직-
셋이 동시에 천근추를 펼치자 주변 땅이 갈라졌다.
그리고 시후는 두 손을 앞으로 내밀었다.
한 손은 위로, 다른 한 손을 아래로 자리했다.
그러고는 얼음덩어리가 지척까지 다다르자 두 손을 움직였다.
처음에는 작은 원을 그렸다.
그 원을 점점 크게 그리더니 두 원을 합쳐갔다.
그리고 시후는 둘에게 전음을 보냈다.
- 이화접목(移花接木).
태산과 인호는 두 눈을 휘둥그레 뜨며 따라 했다.
그리고 머릿속에 울리는 이화접목에 대한 무공 요결을 빠르게 외웠다.
자신의 힘을 끌어내는 무공을 배운 둘에게 시후가 처음으로 이화접목을 가르치는 거였으니 말이다.
사실 시후는 때를 기다렸다.
이제 걷기 시작한 아이에게 달리기를 가르칠 수는 없는 법.
둘이 무(武)에 대한 이해력이 높아져 그들의 머릿속에 직접 때려 넣는 방법이 아니어도 배울 수 있는 단계까지 오르기를 말이다.
그리고 바로 지금이 그때였다.
- 꽃이 핀 나무를 다른 나무에 붙여 상대를 현혹할 수 있을 정도로 교묘한 수법이다.
후웅-
시후는 둘에게 전음을 보내며 더욱 빠르게 손을 어지럽혔다.
셋 앞에 어지럽게 펼쳐진 원안으로 얼음덩어리가 쏟아져 들어갔다.
- 받은 것이 내 것이 아니라면 주인에게 돌려줘야 하는 법. 그것도 주인이 모르게 말이다.
촤락-
쏟아져 들어갔던 얼음덩어리들이 방향을 바꾸어 쏟아져 나왔다.
그 광경을 지켜본 멀란도랑은 화들짝 놀랐다.
“미, 미러 이펙트?”
마법사인 그의 눈에는 이화접목이 마법으로 보였다.
그것도 5클래스는 되어야 펼칠 수 있는 미러 이펙트로 말이다.
하지만 놀랄 시간도 없었다.
어느덧 돌아온 얼음덩어리들이 사방에서 멀란도랑을 덮쳐왔다.
“퍼, 퍼펙트 실드!”
콰과광-
화들짝 놀라 급히 펼쳤지만, 그의 실력을 증명이라도 하듯 일반적인 실드가 아닌 퍼펙트 실드가 펼쳐졌다.
그 위에 얼음덩어리들이 비처럼 쏟아져 내렸다.
멀란도랑은 이를 악물며 마나를 끌어냈다.
지금 퍼펙트 실드가 깨지면 자신은 리셋될거라 직감했다.
찰나의 순간에 퍼펙트 실드를 펼쳐 몸을 보호한 멀란도랑을 보며 시후는 흐뭇하게 웃었다.
“아주 좋은 대련 상대야.”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