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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그인하는 천마님-173화 (173/275)

제173화

시후는 제갈세가로 가는 도중에 조민으로부터 그 아이에 대해 몇 가지 이야기를 들었다.

“그 아이의 한쪽 눈이 의안이었다고?”

“네. 아마도 박 방주의 안경과 같은 효과를 지닌 의안 같아요.”

“어찌 알았어?”

“세가에 펼쳐놓은 진을 단번에 파악하더라고요.”

관악산 비고에서 그 아이가 보여준 모습이 어느 정도 이해가 되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눈만 좋아서는 조민이 설치한 진법을 파훼까지 할 수는 없었다.

“따로 공부라도 했나?”

“아마도 그런 것 같아요. 제가 아는 진법에 대한 것보다 그 아이가 아는 것이 더 많았어요.”

“어린 나이에 대단하군.”

“참, 그렇게 어리지는 않아요.”

“뭐?”

“알아보니 저보다 한 살 어렸어요.”

“열여섯?!”

도저히 16세의 나이로는 보이지 않은 모습이었다.

150cm는 될까 말까 한 키에 밥은 먹고 다니냐고 묻고 싶은 상태였었다.

능력이 출중해 보여 ‘양파’라 부르기로 했더니, 나이로도 놀라게 하다니.

“재미있네.”

흥미가 일었다.

덕분에 가벼운 발걸음으로 제갈세가에 당도했다.

이미 조민이 연락을 해놓은 것인지 제갈신길이 마중 나와 있었다.

“어서 오십시오.”

“잘 있었…네?”

시후는 제갈신길의 달라진 모습을 보며 다소 놀랐다.

일전에 봤을 때는 백발노인의 모습이었는데 지금은 검은 머리가 드문드문 보일 정도로 한층 젊어진 모습이었다.

“하, 하하. 집에 젊은 아이들이 늘어나니 저도 젊어지는 것 같습니다.”

“그랬냐?”

그게 이유가 아닌 것은 뻔히 알지만 대충 어울려줬다.

아마도 얼마 전에 깨달음을 얻은 여파일 거였다.

몇 달 후면 제 아들인 제갈상민과 비슷한 연배로 보일 수도 있을 터였다.

‘저 녀석도 저 정도면 이제 초절정의 경지인가.’

제일 처음 거둔 곳이라 그런지 제갈신길의 성취가 가장 컸다.

그 때문일까.

“옥룡 좀 줘봐.”

시후는 조민에게 손을 내밀었다.

느닷없는 요구였지만 제갈신길과 조민은 그동안의 경험으로 알았다.

“여기요!”

조민이 품속에서 후다닥 옥룡을 꺼내어 두 손 공손히 내밀었다.

시후가 받아 들자 둘은 한쪽으로 물러나 두 눈을 부릅뜨고 집중했다.

지금처럼 시후가 분위기를 잡으며 말할 때는 분명 무언가를 가르쳐줄 때였다.

일전에 제갈신길은 이런 분위기에서 현원진신공을 배웠다.

시후는 사슴 같은 눈망울로 먹이를 갈구하는 둘의 모습에 피식 웃었다.

“이 무공은 판관필이 있어야만 펼칠 수 있는 무공이다.”

스윽-

옥으로 만든 판관필을 손에 쥔 시후는 두 다리를 가지런히 모았다.

옥룡의 필모를 새끼손가락으로 말아쥐며 필간 끝을 움켜쥐었다.

손에 든 것은 옥으로 만든 판관필이었지만 보는 이가 느끼기에는 예기가 날카로운 보검을 든 것 같았다.

시후는 현원진신공의 내력을 일으켜 몸에 둘렀다.

우주의 이치를 담은 제갈세가 특유의 기운이 몸에 돌자 마치 공허에 뛰어드는 느낌이 들었다.

시후는 그것을 거부하지 않고 그대로 옥룡에 담았다.

우웅-

기운을 담은 옥룡이 웅장한 소리를 내며 울었다.

그리고 시후가 움직였다.

한 걸음에 한 번. 또 한 걸음에 한 번.

걸음걸이에 맞추어 옥룡을 휘둘렀다.

좌에서 우로, 위에서 아래로, 때로는 사선으로.

옆에서 보면 단순한 휘두르기로 보였지만 제갈신길은 알 수 있었다.

“만류귀종(萬流歸宗).”

그 말대로 시후는 지금 허공에 글자를 쓰고 있었다.

수많은 물줄기는 흐르고 흘러 결국 바다로 합쳐진다는 뜻의 만류귀종.

그 글귀를 허공에 수놓았다.

마지막 획을 마친 시후는 처음 자리로 돌아왔다.

“당분간 여기는 다른 이들의 출입을 막는 것이 좋을 게야.”

그 말을 끝으로 시후는 허공답보를 펼쳐 자리를 벗어났다.

그제야 제갈신길과 조민은 시후의 발치를 볼 수 있었다.

총 48개의 발자국.

시후가 찍어 놓은 발자국이었다.

그리고 그것의 개수는 만류귀종의 획수와 같았다.

제갈신길과 조민은 눈을 부릅떴다.

그리고 그 발자국을 사진처럼 머릿속에 저장했다.

이미 둘은 시후가 옥룡을 휘두른 동작 모두를 기억했다.

그것과 발자국을 겹쳐 보았다.

마치 동영상을 재생하듯 머릿속에서 시후가 움직였다.

하지만 딱히 이렇다 할 특이점을 찾을 수는 없었다.

검으로 펼쳤다면 대단한 검로라 생각될 동작이었건만 시후는 분명 판관필로 펼쳐야 한다고 했었다.

그 뜻을 헤아리지 못해 고민에 빠지는 순간 멀어지는 시후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 발자국은 현천미리보(玄天迷離步)다.”

“네?!!”

현천미리보라는 말에 제갈신길이 깜짝 놀라 소리를 질렀다.

하지만 아직 놀라기에는 일렀다.

“현천미리보와 내가 펼친 필로를 같이한 그 무공의 이름은 마현필원공(魔玄筆元功)이라 한다. 제갈신길 네가 대성을 한다면 아마도 화경의 경지에 오를 수 있을 게다.”

시후의 말이 이어지면 이어질수록 제갈신길의 입이 벌어졌다.

자신이 초절정에 다다른 것은 어찌 알았는지 모르겠지만 그다음 단계인 화경으로 오를 수 있는 방향을 잡아주었다.

그것도 제갈세가에서 구전으로만 내려오던 현천미리보를 통해서 말이다.

“가주님, 도대체 현천미리보와 마현필원공이 무엇이길래 그러십니까?”

조민은 그렇게 놀라는 제갈신길의 모습에 참지 못하고 물었다.

제갈신길은 겨우 정신을 차려 침이 흐르기 직전에 입을 닫을 수 있었다.

“마현필원공은 나도 처음 듣는 무공이다. 하지만.”

“……”

“현천미리보는 제갈세가의 구전으로만 내려오던 비전 신법이다.”

“비전… 신법이요?”

비전이라는 말에 그만큼 대단한 것이구나 하겠지만 그것만으로는 제갈신길이 그토록 놀라며 격하게 반응하는 이유를 알 수는 없었다.

그 생각이 표정으로 드러났는지 제갈신길은 조민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녀석, 시후 님 말씀대로 표정에 생각이 그대로 드러나는구나.”

“……”

일전에 시후가 지적했던 것을 다시 제갈신길이 지적했다.

하지만 조민은 그 지적에 기분이 상하지 않았다.

둘 다 자신이 잘되라고 하는 말이었고, 아직은 괜찮다는 눈빛으로 이야기하니 말이다.

그리고 지금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었다.

“가주님….”

“그래. 알았다. 현천미리보가 비전 보법인 것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제갈 신길은 조민에게 현천미리보에 대해 자세히 설명했다.

자신 또한 가주가 되며 구전으로 전해 들은 것이었지만 대대로 내려온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제갈세가의 무공을 펼칠 때 현천미리보를 펼친다면 그 위력은 곱절의 위력을 보일 수 있단다.”

“그게… 가능해요?”

자고로 무공이란 몸 전체를 움직이는 것이 하나의 동작으로 이루어진다.

즉, 검을 내지르는 손동작과 허리를 숙이고 무릎을 굽히며 땅을 박차는 동작 전체가 하나라는 거였다.

그런데 지금 제갈신길의 말은 손과 다리를 따로 하라는 거였다.

그래서 가능하냐고 물었더니 제갈신길은 고개를 돌려 시후가 남긴 족적을 가리켰다.

“현천미리보라면 가능하단다.”

스윽-

제갈신길은 조민을 옆으로 밀어내고는 천천히 발을 움직였다.

시후가 찍어 놓은 발자국을 따라 움직이는 거였다.

하지만 그의 손에는 판관필이 들려 있지 않았다.

제갈신길이 상체로 펼치는 무공은.

“천성신장(天星神掌).”

제갈세가에 입문하면 배우는 가장 기초적인 장법이었다.

이 장법의 특징은 투로가 연결되면 연결될수록 허공에 빛을 남긴다는 거였다.

마치 밤하늘의 별자리가 땅에 내려앉은 것처럼 보인다고 했다.

그리고 지금 제갈신길의 손이 허공에 흩뿌리자.

펑-펑펑-

북소리가 울리며 허공에 빛이 생겼다.

“후….”

하지만 제갈신길은 천성진장을 끝까지 펼치지 못했다.

시후의 발자국을 따라 걸어 보았지만 20보가 한계였다.

그 이상을 디디려고 하니 모이던 진기가 흩어져 천성신장 본연의 위력을 낼 수 없었다.

하지만 이미 조민에게 보여줄 것은 모두 보여준 후였다.

굳이 본래 무공의 보법이 아니어도 현천미리보를 통하면 그 위력을 낼 수 있다는 것을 말이다.

눈을 껌뻑이며 놀라고 있는 조민의 곁으로 다가온 제갈신길은 다시금 조민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천천히 하거라. 시후 님께서 나를 거론하셨다는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으신 것일 테니 말이다.”

“네….”

시후는 은연중에 조민이 배우기에는 아직 어렵다는 것을 알려준 거였다.

역시 제갈세가의 가주라고 불릴 만큼 제갈신길의 눈치는 조민 이상이었다.

시후는 둘이 나누는 대화를 모두 들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머리 좋은 녀석들과의 대화는 참으로 간단해서 좋아.”

똑똑한 녀석일수록 시후는 대하기 편했다.

굳이 몇 마디 하지 않아도 스스로 생각하고는 결론에 도달하는 녀석들이었다.

천마 시절에도 푸른 하늘을 보며 날씨가 좋다고 한마디만 하면 지괴는 온종일 붙어 다녔었다.

몰래 천마신교의 담을 넘어 저잣거리로 놀러 나가려는 것을 막기 위해서였다.

그렇다고 나가지 못한 천마는 아니었지만, 그것 외에도 편한 일은 많았다.

오늘 제갈세가에 현천미리보를 알려준 연유는 솔직히 다른 데 있었다.

“그날 조민의 경공이 별로였어.”

관악산 비고로 향하는 날 조민의 경공이 생각보다 형편없다는 것을 기억한 시후였다.

제갈신길이 구전으로만 들었기에 아직 모르는 현천미리보의 또 한 가지 장점은 바로 경공술에 있었다.

현천미리보를 대성한다면 단 한 줌의 진기로도 천 리를 내달릴 수 있게 되니 말이다.

“그건 나중에 가르쳐주지 뭐.”

깜짝 선물로 숨겨둔 시후였다.

그리고 지금은 별채 마당에서 흙장난을 하는 16세의 양파에 관심이 있었다.

훅-

시후는 허공을 박차며 몸을 날렸다.

바람처럼 날아간 시후는 어느새 별채 마당에 내려섰다.

“으흠, 역시.”

시후는 자신이 나타났음에도 놀라지 않는 양파에 흐뭇한 미소를 보였다.

양파는 시후가 마당에 내려서자 손을 털고 일어나더니 공손히 인사를 했다.

“오셨군요.”

“마치 기다렸다는 말투구나?”

양파는 딱히 부정하지 않았다.

대신 자신이 흙장난하던 마당을 가리켰다.

“저를 이곳에 보내신 날부터 줄곧 이러고 있었으니까요.”

“그래. 무엇을 그렸는지 볼까?”

양파가 마당에 한 흙장난은 그림 그리기였다.

작은 막대기로 그린 그림은 시후도 익히 아는 것이었다.

“네가 저것을 어찌 아는 것이냐?”

“들었습니다.”

“어디서?”

“저 역시 천 년의 업을 기다려온 한 사람이니까요.”

반짝-

양파의 왼쪽 눈이 반짝였다.

시후는 그것이 의안임을 알았다.

문제는 의안이 반짝이는 순간 무언가가 튀어나와 시후의 미간을 향해 날아왔다는 것이다.

“이러는 연유가 무엇이냐.”

“……!”

이미 천마지체 2단계에 들어선 시후는 언제나 천마지기를 몸에 두르고 다녔다.

일종의 보호막처럼 말이다.

그렇기에 이런 불시의 기습에 대비할 수 있었다.

시후의 미간 바로 앞에 멈춘 것은 눈에 잘 보이지도 않을 정도로 얇은 바늘이었다.

시후는 천마지기를 더욱 일으켜 그 바늘을 밀어냈다.

점점 앞으로 밀려난 바늘은 결국 양파의 미간 앞에까지 다다랐다.

“말하거라. 그대로 한 줌의 피죽이 되고 싶지 않다면.”

시후는 이미 그 바늘에 극독이 발라져 있음을 알고 있었다.

살짝 스치기만 해도 상처 부위부터 녹아들며 한 시진이면 핏물로 화할 정도의 극독이 말이다.

본래라면 시후는 자신의 목숨을 노린 자라면 그 자리에서 목을 날려버릴 터였다.

하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았다.

양파에게는 누군가를 시해할 때 필연적으로 나타나야 할 그것이 없었다.

“어째서 나를 해할 마음도 없으면서 이런 짓을 하냐고 물었다.”

그 말에 양파는 조용히 무릎을 꿇었다.

다소곳한 자세로 아주 단호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저를 취하소서.”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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