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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그인하는 천마님-172화 (172/275)

제172화

조민은 멍한 표정으로 캡슐을 빠져나왔다.

“이게 무슨….”

조민은 로그아웃하기 전에 있었던 일을 되새겼다.

헤라 왕국에서의 일은 그 이후 빠르게 마무리되었다.

시후가 조만간 일행들을 데리고 어둠의 숲으로 찾아가기로 하면서 헤라 여왕의 히든 퀘스트를 받아들였다.

그리고 거기서 얻어지는 아이템들을 어찌 처분할지 귀족들과 이야기가 오갔지만, 조민의 귀에는 들어오지 않았다.

조민의 머릿속에는 그저 시후의 말이 맴돌 뿐이었다.

“헤라의 요람과 같은 효과를 볼 수 있는 곳을 만들 수 있는지 알아봐.”

“현실에서 그런 게 가능할 거라 생각하시는 거에요?”

“불가능할 건 또 뭔데?”

시후는 조민의 따지는 듯한 말에 퉁명스럽게 말했다.

“최근 네가 본 것들을 떠올려봐.”

“그건….”

조민은 그동안 자기가 본 것들을 떠올렸다.

중국 화산과 서울 관악산에서 발견한 비고.

영화나 소설에서 나올 법한 기관진식이 가득한 그곳들.

거기에 야명주와 독각룡의 뿔까지 본 마당에 현실에서 헤라의 요람을 만들지 못할 이유가 없었다.

하지만 굳이 그것을 만들어야겠냐는 의문이 들었다.

그것을 만들기 위해 얼마나 많은 재료와 노력이 들어갈지 감히 상상할 수도 없었다.

그리고 시후의 무위에 그만한 것들이 필요할까 싶었다.

“굳이 그게 오빠에게 필요해요?”

시후는 조민이 당연히 품을 의문이라 생각했는지 속삭이듯 말했다.

“내가 쓸 거 아니야.”

“그럼요?”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산모가 안전하게 출산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 위함이야.”

“산…모요?”

“산모 몰라? 배 속에 아기를 가진….”

“누가 그걸 몰라요?!”

발끈하는 조민의 모습에 시후는 목을 긁적였다.

그러고는 조금보다 더욱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조만간… 내가… 크흠, 오빠가….”

어머니의 임신 소식을 지인에게 알리는 것이 이렇게 어려울지 몰랐던 시후였다.

한편 조민은 시후의 목소리가 잘 들리지 않자 더욱 바짝 다가갔다.

“말 좀 똑바로 해보세요.”

살짝 짜증 섞인 조민의 목소리에 시후는 결심이라도 한 듯 입을 열었다.

“크흠! 어머님께서 임신하셔서 조만간 내가 오빠가 된다고.”

“……! 네?!”

시후에게 동생이 생긴다니.

조민은 눈을 껌뻑이며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시후 부모님의 연세에 늦둥이를 보지 못할 것은 없었다.

세상에는 더 늦은 나이에 아이를 출산한 사람들도 있으니 말이다.

중요한 문제는 그게 아니었다.

시후 같은 무림 고수에게 늦둥이 동생이라니.

세상에 이런 금수저, 아니. 티타늄 수저도 없을 터였다.

시후는 벌써 어머니의 안전한 출산을 위해 헤라의 요람을 현실에서 재현하자는 소리까지 했다.

그렇다면 그 아이에게 시후가 베풀 은혜는 얼마이겠는가.

지금까지 시후가 일행들에게 던져주던 것들은 광장 비둘기에 던져주던 빵 쪼가리처럼 보일 터였다.

자기 사람을 극진히도 아끼는 시후의 성향으로 보건대 백 퍼센트 동생 바보가 될 확률이 높았다.

조민은 시후가 던진 폭탄 발언에 제갈세가의 앞날을 걱정하며 머리를 핑핑 돌렸다.

정작 시후는 조민이 헤라의 요람을 현실에서 재현하는 것에 대해 고민한다고 생각했는지 내버려 두었다.

되레 호들갑은 다른 곳에서 터져 나왔다.

“도련님! 정말이십니까?!”

“뭐가.”

“저기서도 들렸습니다. 도련님께 동생분이 생기신다고요?!”

금발 미남의 모습으로 가쁜 숨을 몰아쉬는 진지춘을 보며 시후는 소름이 돋았다.

“네가 왜 좋아하냐?”

“좋아할 뿐이겠습니까? 이건 경사죠, 경사!”

“그러니까, 동생은 내가 생기는데 왜 네가 좋아하냐고.”

“도련님의 동생분은 앞으로 제가 챙겨야 할 아기씨, 나아가 도련님의 뒤를 이을 인재 아니시겠습니까?”

진지춘 역시 조민과 같은 답을 내놓은 거였다.

시후라는 무림 고수가 직접 아스팔트 깔고 조경 작업까지 해놓은 아우토반에 늦둥이 동생은 힘껏 내달리기만 하면 되는 거였다.

그 동생이 가는 길은 시후라는 든든한 태양이 지켜줄 테니 말이다.

시후는 그런 생각을 하는 진지춘을 보며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그래서 네가 내 동생을 챙겨 주겠다고?”

“당연하죠! 제가 아기씨 나이에 맞는 영약을 딱딱 가져다드리겠습니다.”

“오, 그건 좋네.”

“그리고 때가 되면 좋은 배필을… 헉!”

진지춘은 언제나 한 마디가 더 많았다.

배필이라는 단어가 튀어나오는 순간 시후가 살기를 끌어올렸다.

진지춘은 숨이 턱 막히는 것을 느끼고는 그대로 실신했다.

시후는 조민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순간 조민은 흠칫했다.

조민 역시 진지춘과 같은 결론을 내고 있었다.

제갈세가에 훌륭한 인재가 있다면 어떻게든 시후의 동생과 연을 맺게 해야겠다고 말이다.

“그런 건 나중에 생각해라.”

“…네.”

시후의 엄포에 조민은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저 녀석 깨어나면 다시는 헛소리하지 말라고 전해주고. 나 먼저 로그아웃한다.”

그 말을 끝으로 시후는 로그아웃했다.

조민은 등줄기에 흐르는 식은땀이 식을 후에야 진지춘과 함께 로그아웃했다.

캡슐을 빠져나와 조금 전 있었던 일을 되새기니 절대 시후의 동생에게는 헛짓거리하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잘해보자는 마음에 비벼보다 조금의 실수라도 생기는 날에는 세가가 멸문을 면치 못할 터였다.

“절대!”

조민은 고개를 세차게 저으며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그보다 오빠는….”

자신보다 먼저 나온 시후가 캡슐 방에 없었다.

조민은 기감을 펼쳐 시후를 찾으려는 순간 그의 목소리를 들었다.

“손가락에 집중하라고!”

살짝 격양된 목소리에 아직 화가 가라앉지 않았음을 알 수 있었다.

조민은 목소리의 출처를 따라 캡슐 방을 나섰다.

그러자 복도 가장 끝에서 시후의 기운이 느껴졌다.

그곳으로 가는 동안에도 시후의 목소리는 계속 들렸다.

“머리가 돌이야? 손만 쓰면 다야? 다리를 쓰라고, 다리를!”

시후가 그렇게 소리치는 곳은 클라이밍을 즐길 수 있는 실내 암벽장이었다.

그곳으로 들어간 조민이 가장 먼저 본 것은 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프로게이머들이었다.

“사, 살려줘….”

“여기요! 산소 호흡기!”

그들은 손과 발을 부들부들 떨며 숨을 헐떡였다.

몇몇은 의료진이 붙어 근육 마사지를 도와주었다.

아직까지 암벽에 붙어 있는 이는 셋.

“닭 볏! 왼손이 놀잖아! 숯 눈썹! 그렇게 올라갈 거면 당장 내려와! 불여우! 계속 멈춰 있을 거면 내려와!”

“불여우라고 부르지 마!”

반항하듯 소리치는 여성은 박혜령이었다.

어느새 시후는 그녀에게 ‘불여우’라는 별명을 지어주었다.

이렇게 보니 상당히 잘 어울리는 별명이었다.

조민은 한쪽에 물러나 있는 태산과 인호에게 다가갔다.

“어떻게 된 거예요?”

“몰라, 갑자기 시후가 나타나더니 애들을 말로 조졌어.”

“말로?”

“응, 말로. 아킬레스건을 건드렸다고 해야 하나?”

“…….”

“말 몇 마디로 힘들어 죽겠다는 녀석들의 눈에 살기를 보이게 하더니 저 몰골로 만들어 버렸어.”

태산과 인호의 말은 이러했다.

체력을 키우기 위해서 암벽장에서 기초를 다지고 있는데 느닷없이 시후가 나타났다는 거였다.

그의 등장에 다들 긴장한 모습으로 운동을 이어가는데 시후가 입을 열었다고 한다.

‘고작 그 정도에 손을 부들부들 떨 거면 평생 숟가락을 놓아라.’

‘불여우보다 밑에 있는 주제에 숨을 헐떡대기나 하고. 나 같으면 한강에 뛰어들었다.’

‘언제까지 여자라는 핑계로 남자들 뒤나 쫓을 거냐. 그럴 거면 내려와서 물이나 날라라.’

“와… 장난 아니었다니깐.”

태산과 인호는 번갈아 가며 시후가 했던 말을 그대로 조민에게 말했다.

조민은 왠지 저들이 저렇게 된 게 자신과 진지춘 때문인 것 같아 머쓱해졌다.

왠지 어서 저들을 구해줘야 할 것 같았다.

“오빠.”

“왜.”

조민의 부름에 시후는 퉁명스럽게 답했다.

그의 싸늘한 반응에 흠칫한 조민은 한 차례 심호흡을 하고는 입을 열었다.

“조만간 진지춘 의원님께서 한국 들어오신다고 전해달래요.”

“…묫자리를 찾아오는 건가?”

섬뜩한 시후의 중얼거림에 조민은 서둘러 다음 말을 꺼냈다.

“혼자 오시는 건 아니래요. 진권 스님도 같이 오신다고 하셨어요.”

“그래? 그 일이 마무리되었나 보군.”

진권의 이름이 나오자 그제야 시후의 기세가 한풀 꺾였다.

그도 그럴 것이 시후는 진권에게 따로 일 하나를 맡겼었다.

진권의 성격으로 보아 결과를 얻지 못했다면 시후를 찾을 리가 없었다.

덕분에 시후는 꿀꿀했던 기분이 조금이나마 나아졌다.

조민은 그런 시후의 반응을 살피고는 빠르게 말을 이었다.

“그리고 아라크네가 다음에는 꼭 자신을 찾아달라고 했어요.”

“걔는 왜?”

“저번에 만들어 드리기로 했던 옷을 다 만들었다며 이번 원정에 가져가시래요.”

“옷… 아! 그래?!”

이번에는 시후가 눈까지 번뜩이며 반겼다.

“드디어 기성복을 벗어던질 수 있겠군.”

시후는 인벤토리에 있던 아이템들을 기성복이라 칭했다.

천마 시절, 시후는 언제나 자신만의 옷을 입었다.

피를 연상시키는 붉은색, 금화를 닮은 금색, 그리고 어둠에 동화될 만한 검은색.

이 세 가지 색상을 이용해 천마를 상징하는 자신만의 옷을 만들어 입었다.

“은혜 갚은 까치, 아니 은혜 갚은 거미인가?”

사람으로 만들어 준 은혜를 잊지 않은 아라크네는 시후의 옷을 지어주겠다고 했었다.

베틀 짜기에서 우승할 만한 실력이라면 천마의 옷을 부탁해도 되겠다 싶어 시후는 허락을 했다.

그 결과가 드디어 나왔다고 하니 다음 로그인이 기대되었다.

이제 완전히 평소 표정으로 돌아온 시후를 본 조민은 그의 팔을 붙잡았다.

“요람과 관련된 일을 위해서는 들러야 할 곳이 있어요.”

“어디?”

“제갈세가요.”

“너희 집? 거긴 왜.”

“그때 그 아이. 기억하세요?”

조민은 관악산 비고에서 만난 아이를 거론했다.

그 아이를 제갈세가로 데려가 알아낸 사실 중 하나가 요람 제작에 필요하다는 거였다.

시후는 자기 팔을 끌어당기는 조민을 물끄러미 쳐다봤다.

“훗, 그래. 가자. 가.”

조민의 속내가 무엇인지 뻔히 알면서도 따라주기로 했다.

아직 저들에게는 첫날이니 말이다.

“오후에는 좀 쉬고, 저녁 훈련부터는 S.W SOFT 격투 시스템에 접속할 거니깐 준비해둬.”

“오케이.”

“맡겨둬.”

태산과 인호는 시후의 말에 엄지를 치켜올렸다.

사실 두 사람도 저들을 훈련하는 데 슬슬 재미를 붙이고 있었다.

매번 시후에게 훈련만 받는 처지였다가 그것을 그대로 활용할 상대를 만나니 스트레스가 풀리는 것 같았다.

거기에 저들은 적잖이 반항도 해왔다.

시후가 Safety World에 들어가 있는 사이 닭 볏과 숯 눈썹이 태산과 인호에게 덤볐었다.

평치혁은 관악산에서 둘이 무림인이라는 것을 봤기에 그저 구경만 했다.

당연한 결과로 태산과 인호는 가볍게 둘을 제압했다.

특히, 태산은 숯 눈썹이 있는 힘껏 날린 주먹을 두 손가락으로 막는 기행을 보였다.

그것을 본 박혜령은 이들 역시 시후와 마찬가지의 실력자라는 것을 눈치채고는 조용히 말을 따랐다.

박혜령도 가만히 따르는 판국에 자기들이 나설 명분이 없다고 생각했는지 다들 조용히 따랐다.

그 결과가 지금의 사태였다.

시후는 태산과 인호가 적당히 즐기는 것 같아 피식 웃었다.

그러면서 앞으로 둘이 더욱 강해질 수 있게 둘에게 맞춘 다음 단계 훈련을 생각했다.

열흘간의 합숙이 끝나는 날, 시후는 태산과 인호와 함께 개인 훈련을 할 계획이었다.

한편 태산과 인호는 시후의 웃음에 흠칫했다.

“젠장. 저 웃음.”

“우리… 큰일 난 거 같다.”

태산과 인호는 이미 익숙해져 버린 시후의 웃음에 앞으로 닥칠 시련의 나날을 예견했다.

시후가 저런 미소를 보일 때면 자신들은 언제나 한계에 도전하는 훈련을 했으니 말이다.

시후는 그렇게 오후 일정을 일러두고는 조민과 함께 제갈세가로 향했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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