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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그인하는 천마님-170화 (170/275)

제170화

이런 상황에서 갑자기 부탁이라니.

그것도 시후가 아닌 헤라 여왕이 말이다.

“오빠, 지금 무슨 말씀이세요?”

조민이 최대한 작게 속삭였다.

혹여나 시후가 잘못 알고 있어서 이러는 것은 아닌가 싶어서였다.

“쯧쯧. 우리 지괴는 아직 통찰력이 부족하구나.”

시후는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는 턱을 까딱여 귀족들을 가리켰다.

순간 조민은 고개를 홱 돌렸다.

장내를 훑는 시간은 고작 3초.

자신이 모르는 무언가가 있다는 것을 인지한 조민은 빠르게 상황 파악에 나섰다.

연회장으로 사용하던 곳이 지금은 회의장으로 변해 있었다.

그리고 그 안에 있는 NPC들.

다들 상당히 불안한 표정들이었다.

그런 그들에게서 다른 무언가도 보였다.

시후에게 호되게 혼난 하인스와 왕국의 주인인 헤라 여왕을 제외하고는 모두가 시후를 처음 보는 듯한 반응이었다.

시후는 일전에 헤라 왕국에서 마르스를 훈계한다며 왕국 성에 커다란 구멍을 뚫어버린 적이 있었다.

그 엄청난 위용에 다들 혀를 내두를 정도였고, 헤라 여왕조차 안중에도 두지 않는 시후의 오만한 모습을 똑똑히 기억했을 터였다.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고 했던가.

그것도 겨우 자라 정도를 봤으니 솥뚜껑에 놀란 것이지.

고래를 보고 놀란 사람이 피라미 보고 놀라겠는가.

사람이란 자고로 내성이라는 게 있었다.

그런데 지금 저들의 눈에는 전혀 그런 게 보이지 않았다.

마치 소문으로만 듣던 시후를 처음 겪는 듯한 모습들이었다.

“설마?”

일전에 만났던 적이 있는 NPC가 초면인 반응을 보인다?

이유는 하나뿐이었다.

“맞네. 이들 모두가 리셋된 자들이네.”

조민이 유추한 답은 헤라 여왕이 말했다.

시후의 말대로 헤라 여왕은 정말로 부탁을 하려는 거였다.

촤악-

헤라 여왕이 손을 흔들자 거대한 원탁이 움직였다.

평면이었던 원탁이 들쑥날쑥하더니 입체적인 형태를 보였다.

“이건… 지도?”

“맞네. 여긴 바니힐 마을 인근이네.”

“바니힐?”

낯선 이름은 아니었다.

하지만 어디에서 들었는지 좀처럼 떠오르지 않자.

- 거기가 어디냐?

시후는 조민에게 전음을 흘렸다.

굳이 옆에 있음에도 전음으로 물은 이유를 알겠다는 듯 조민은 말보다는 행동으로 보였다.

조민은 원탁 위 중앙을 가리켰다.

“여기는 어둠의 숲이 있는 곳이잖아요. 제가 알기로는 블칸 영주의 영토라고 들었는데요?”

“알고 있군.”

알고 있다뿐이겠는가.

오늘 접속하기 전에만 해도 그곳에서 히든 퀘스트를 했었는데 말이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시후가 모르는 척을 하려는 것 같아 조민은 따랐다.

“그대가 알고 있으니 이야기가 빠르겠군.”

헤라 여왕은 시후를 보며 조민을 가리켰다.

영토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는 조민에게 들으라는 뜻이었다.

“말해.”

시후는 어깨를 으쓱였다.

그 모습에 헤라 여왕은 미소를 보였다.

자기 앞에서 저리 당당한 모습을 보이는 이가 시후 말고 누가 있을까 싶었다.

첫 만남 때도 그랬지만 보면 볼수록 재미있는 유저였다.

“얼마 전 이곳에서 악마를 발견했네. 그것도 존재만으로 왕국에 위협이 되는 대악마를 말이네.”

“…응?!”

왜 여기서 대악마가 튀어나오는지.

시후는 혹시나 헤라 여왕이 말한 대악마가 자신이 아는 그 대악마가 맞는지 궁금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조민을 쳐다봤다.

이미 시후는 이곳에서 자신의 콘셉트를 확실히 잡았다.

Safety World에서 돌아가는 일 따위는 잘 모르는 절대자.

오로지 자신과 관련된 일만 관심을 보이는 강자의 모습으로 말이다.

그리고 그런 그를 보조하는 역할로 조민을 두각시켰다.

헤라 왕국에서 시후를 통제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으로 조민을 생각하게끔 말이다.

'이렇게 해야 후에 있을 이야기들을 녀석이 하니까.'

귀찮은 건 전부 조민에게 맡기려는 시후였다.

한편 조민은 시후의 이런 행동에 화가 나거나 귀찮을 법도 한데 오히려 흥미를 느꼈다.

어떻게 시후가 벌인 일들은 하나같이 이런 결과를 낳는지.

마치 호수 저편에서 시후가 던진 조약돌이 거대한 파도가 되어 돌아오는 느낌이었다.

현실에서도 그렇고 게임 속에서도 그렇고.

시후 한 사람이 세계관에 이만한 영향을 끼친다는 게 너무나도 흥미로웠다.

시후 덕분에 죽을 만큼 힘들지만,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이렇게 재미있는 나날들이 없었다.

조민은 의자를 끌어 원탁에 바짝 다가갔다.

“설마, 대악마라면 위리놈을 말씀하시는 건가요?!”

뻔히 알면서도 짐짓 놀라는 모습을 보였다.

“맞네.”

헤라 여왕은 침울한 표정으로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이어지는 그들의 이야기는 참담했다.

얼마 전 바니힐 마을에서 급한 전보라며 헤라 왕국에 연락이 왔었다.

마을 근처에 있는 어둠의 숲에서 죽음의 그림자가 마을을 덮쳤다는 거였다.

그 여파로 하늘이 노한 것처럼 굉음이 울려 퍼졌고 그 이후 어둠의 숲에 있던 늑대들이 마을을 습격했다고 했다.

문제는 이것과 같은 일들이 예전에도 있었다고 왕국 기록에 남아 있었다.

그리고 그 기록에는 이러한 일 이후에 악마의 출현이 발생했다고 적혀 있었다.

이에 헤라 여왕은 그곳을 조사할 귀족을 선발해 보냈다.

말이 조사지 사실상 토벌이 목적이었고, 그곳에 보낸 귀족만 3명이었다.

그들은 모두 자신들의 기사단을 이끌고 갔다.

하지만 어둠의 숲에 당도했다는 연락 후에 돌아온 소식은 전멸.

믿기지 않는 사태에 다들 악마의 출현을 당연시 생각했고 다른 귀족들이 속속 그곳으로 파견되었다.

그리고.

“모두 전멸했다 이거지?”

“으흠….”

귀족들이 낮은 침음성을 흘렸다.

고개를 푹 숙이는 모습이 상당히 부끄러워 보였다.

자신의 역량이 부족해 전투에 패했다면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런데 저런 모습들이라니.

시후는 뒤에 숨겨진 사정이 더 있다 싶었다.

“거기에 뭔가 빌어먹을 거라도 있었나 봐?”

“…….”

시후의 질문에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다.

시후의 추측이 맞은 거였다.

이쯤 되자 슬슬 궁금해졌다.

블칸 영주성을 다녀온 시후로서는 그곳에서 딱히 특별한 것을 본 기억이 없었다.

빛 한 줌 들어갈 것 같지 않은 어둠의 숲에는 그 무엇도 없었다.

아니면 근처에 케난 협곡과도 같은 광산이라도 있다는 건가 싶을 때.

“마르스 왕자님 드십니다.”

덜컥-

마르스가 연회장 안으로 들어왔다.

마르스는 올곧은 자세로 뚜벅뚜벅 걸어오더니 헤라 여왕을 향해 허리 숙여 인사를 했다.

“헤라 여왕을 뵙습니다.”

“마르스….”

헤라 여왕은 마르스의 인사에 좀처럼 반응하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마르스는 지금까지 한 번도 헤라 여왕에게 이처럼 인사를 한 적이 없었다.

언제나 징징거리는 말투로 쫓아다녔을 뿐이었다.

아직은 철없는 아들이라 생각하여 두고 봤지만 이제 곧 있으면 그의 성년식이 있었다.

그래서 시후에게 그를 맡겼던 것인데, 저런 모습을 보게 되다니 감정이 북받쳐 올랐다.

“그래, 몸은 괜찮은 것이냐?”

헤라 여왕도 마르스가 복귀했다는 소식은 이미 들었다.

그것도 헤라 왕국에 들어와서 보인 기이한 행동까지 포함해서 말이다.

그래서 하인스를 보냈고 마르스가 죽기 일보 직전까지 지쳐 있다는 것도 들었다.

헤라 여왕은 기사단을 시켜 마르스를 ‘헤라의 요람’에 눕히라 했었다.

“네. 여왕님의 배려와 헤라의 요람의 효과 덕분입니다.”

“다행이구나.”

짧은 대화였지만 마르스의 변화된 모습과 헤라 여왕의 여전한 사랑을 느끼기에는 충분했다.

그런 둘의 모습에 오직 시후만이 다른 생각을 품고 있었다.

‘이것 봐라? 저 자식이 벌써 회복했어?’

시후가 마르스에게 시킨 훈련은 고작 힐 몇 번 받아서 회복할 만한 것이 아니었다.

그저 천근추로 무게를 늘린 시후를 미는 것 같았지만 시후는 마르스의 몸에 몇 가지 수를 부렸었다.

시후 몸에 닿은 마르스의 손을 통해 본인의 기를 흘려 넣고는 진원진기(眞元眞氣)를 갉아냈다.

사람이 태어날 때부터 가진 순수한 진기.

그 진기의 틀을 갉아냈다.

본래는 죽을 위기에 처했을 때나 사용해볼 수 있는 것을 시후가 건드렸다.

그 결과는 당연히 파김치.

그것도 아주 살짝만 갉아냈기에 그나마 3일 정도만 요양을 하면 회복할 수 있는 거였다.

“그런데 저렇게 단시간에 회복했다고?”

어떻게 한 것인지 하도 궁금하여 속마음이 입으로 튀어나와 버렸다.

덕분에 곁에 있던 조민이 답했다.

“헤라의 요람을 이용한 것 같아요.”

“그게 뭔데?”

“하아…. 오빠는 도대체 헤라 왕국을 들쑤시면서 그것도 몰라요?”

“네가 있는데 굳이 내가 그런 것까지 알아야 해?”

너무나도 당당한 시후의 말에 조민은 더는 다그칠 수가 없었다.

그리고 자신을 인정하는 듯한 저 말투.

왠지 모르게 더 듣고 싶어지게 만드는 마성의 무언가가 있었다.

“크흠, 뭐. 오빠가 그리 말씀하시니. 제가 알려 드릴게요. 아휴, 오빠는 저 없으면 어쩌시려고 그래요.”

시후는 단순하게 말 몇 마디에 기분이 풀어진 조민의 모습에 절로 웃음이 지어졌다.

“그래서 헤라의 요람이 뭔데?”

“간단히 말하면 헤라의 요람은 일종의 치료실이에요.”

“치료실?”

“네. 하지만 그 장소를 만들기 위해 들어간 노력은 간단하지 않아요.”

헤라의 요람은 그 제작에 들어간 재료부터가 엄청나다는 거였다.

일단 기본적으로 상처를 치료할 수 있는 사제의 능력인 힐의 기능할 수 있도록 신전의 보물을 장착했다.

거기에 마나를 회복할 수 있게 최상급의 마나석도 가득 박아놨다고 했다.

무엇보다 헤라의 요람은 이름에서 엿볼 수 있듯이 헤라 여왕의 축복이 깃들어 있었다.

그것도 선대 때부터의 축복이 말이다.

“그래서 그곳에 들어가 쉬게 되면 마치 리커버리 모드가 되는 듯한 효과를 누릴 수 있어요.”

“그런 좋은 곳이 있었단 말이지.”

시후는 조민의 설명을 모두 듣고는 이번에 얻어낼 게 무엇인지 정했다.

그렇게 조민과 시후가 대화를 나누는 사이 마르스는 귀족들과 인사를 끝냈다.

그리고는 자연스럽게 의자 하나를 끌어다가 시후 옆에 자리했다.

“넌 왜 여기 앉냐?”

“형님을 위해서입니다.”

“날?”

“네, 좀 전에 들어보니 형님께 도움이 좀 될까 싶어서요.”

자기가 알아서 돕겠다는데 말릴 필요는 없었다.

그리고 그 도움이 무엇인지는 이미 알고 있었다.

“좋아, 읊어봐.”

“네. 저들이 저렇게 된 이유는 탐내지 말아야 할 것을 욕심냈기 때문입니다.”

“왕자님!!”

마르스의 말에 귀족들이 발끈했다.

자신들의 치부를 들추어내려는 것에 반항하는 거였다.

“그만.”

마르스가 말을 이어갈 수 있게 그들을 제지하려는 시후보다 헤라 여왕이 한발 빨랐다.

헤라 여왕의 말에 귀족들은 인상을 구기고 다시 자리했다.

“저들의 목적은 어둠의 숲 안쪽에 있는 블칸 영주성입니다.”

“거기에 뭐라도 있어?”

“네. 거기에는 5서클의 마법사가 잠들어 있습니다.”

“음….”

5서클의 마법사라.

단번에 떠오르는 얼굴이 있었다.

순정 웹툰을 열심히 읽은 듯한 사고방식을 가진 공주.

블칸 영주의 영애를 말함이었다.

그런데 고작 5서클의 마법사가 그렇게 탐낼 만한 인재인가 싶었다.

그런 의문이 표정에 드러났는지 마르스가 읽고는 답했다.

“5서클의 마법사는 왕국에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가 특별한 이유는 액세서리를 제작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서입니다.”

“크흠….”

마르스의 말이 끝나자 여기저기서 침음성이 들렸다.

대충 흘러가는 이야기를 들어본 시후는 콧방귀를 뀌었다.

다른 영주의 영토에 들어가는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필요했을 거였다.

그런데 이번에 악마의 존재가 드러나는 사건이 터졌고, 다른 귀족들은 악마보다는 블칸 영주의 영애에 관심이 갔다는 거였다.

비록 목숨을 잃는 짓이 되어 버렸지만 말이다.

“다들 자기들이 되살아나는 NPC라는 것을 알기에 벌인 일입니다.”

“다시 살아나도 자기가 아닐 텐데, 굳이?”

“귀족들은 자기의 생명보다는 가족의 부흥을 더 중요시하니까요.”

그놈의 명예가 무엇인지.

시후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헤라 여왕을 봤다.

“그런데 어찌 알았지? 거기 있는 악마가 대악마 위리놈이라는 것은?”

다들 죽었다는데 어찌 위리놈의 존재를 알았는지가 의문이었다.

그 질문에 다들 헤라 여왕을 바라봤다.

“위리놈 그자가 직접 찾아왔으니까.”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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