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66화
마르스는 몸을 꼼짝하지 못하자 눈만 껌뻑였다.
“혀, 형님?!”
“남자가 안기는 거 별로다.”
“아니, 그럼. 그냥 악수하셔도 되는데요.”
“그냥 지금 네가 별로다.”
“네?!”
마르스는 대놓고 자신을 거부하는 시후에 혼란스러웠다.
디카 영주 성에서 ‘형’이라고 부르라던 시후는 어느 순간 마르스의 우상이 되었다.
그 우상이 얼마나 반가웠으면 세상 모든 것을 주어도 아깝지 않은 여인의 앞에서 시후를 찾았다.
그런데 돌아오는 게 이런 대우라니.
서러움에 눈물이 흐를 것만 같았다.
당장이라도 울 것 같은 마르스의 표정에 시후는 서둘러 입을 열었다.
“너 왜 타란에게 치근덕거리는 거야?”
“치근덕거리다니요? 제 순정을 그리 폄하하시면 저 마르스, 정말 속상합니다.”
마르스가 속상하거나 말거나 시후는 상관없었다.
그때 분위기상 ‘형’이라고 부르라고 했어도 마르스는 아직 자기 사람이 아니었다.
“치근덕거리는 게 아니면 얘 표정이 왜 저런데?”
시후는 자신의 등 뒤에서 고개를 빼꼼 내민 타란을 가리켰다.
그런 타란의 모습을 본 마르스의 눈이 하트로 변했다.
“언제나처럼 사랑스러우신데요?!”
“넌 저게 사랑스러운 표정이냐?”
마르스의 말과 다르게 타란의 표정은 전혀 사랑스럽지 않았다.
무언가에서 멀어지려는 듯 몸은 잔뜩 움츠리고 턱은 당기고 미간이 잔뜩 좁혀질 정도로 찡그렸으며 윗니가 살짝 보일 정도로 한쪽 입술을 들어 올렸다.
마치 벌레를 보고 질색하는 듯한 표정이었다.
‘저 자식은 저번에도 그렇고 이번에도 그렇고, 정상이 아니야.’
Safety World에서 마르스의 성격을 어떻게 설정해 놨는지는 모르지만 절대로 일반적인 성격은 아니었다.
그나마 투산에게 보내놨었기에 좀 나아진 거지, 그렇지 않았으면 헤라 왕국에서 봤던 개차반 상태 그대로였을 거다.
아무래도 헤라 왕국으로 가기 전에 교육을 좀 해야 할 것 같았다.
스윽-
시후는 마르스를 향해 손을 들어 올렸다.
“혼마심음공(魂魔心音功).”
“헉!”
몸을 꼼짝 못 해 눈동자만 열심히 굴리던 마르스가 갑자기 눈을 까뒤집으며 혼절했다.
그 순간 시후가 입술을 오므려 바람을 불었다.
휘익-휘이익-
음과 선율이 있는 휘파람 소리가 울려 퍼졌다.
“아… 아름답다.”
“주인님은 이런 재능도 있으시구나.”
타란과 프랑시스는 시후의 휘파람 소리에 빠져들었다.
봄바람의 산들거림 같은 그 음률에 둘은 저도 모르게 두 눈을 감았다.그러자 실제로 푸른 초원 위에서 산들바람을 만끽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아….”
둘은 저도 모르게 탄성을 흘렸다.
“아름다운 곡조지?”
“네. 너무 아름다워요.”
“그렇지, 아름다운 곡조지. 너희들에게만 말이야.”
시후의 말대로 둘과는 다르게 마르스는 전혀 다른 경험을 하고 있었다.
마르스는 시후가 손을 뻗는 순간 정신을 잃었다.
그런데 분명 정신을 잃었음에도 어찌 된 것인지 휘파람 소리가 들렸다.
처음에는 그저 듣기 좋은 소리라 생각했다.
그런데 점점.
솔솔미파솔-
음들이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겹겹이 쌓이기 시작했다.
종국에는 도저히 음이라고 생각되지 않는 소음이 머릿속을 울렸다.
그 순간 눈을 뜨지 않았는데 무언가 보이기 시작했다.
스스슥-프스슥-
어둠 속에서 꿈틀대며 기어 나오는 벌레.
지금까지 마르스는 저토록 징그러운 벌레를 본 적이 없었다.
길이가 짐작 가지 않을 정도로 어둠 속에서 계속 기어 나오는 그것은 셀 엄두도 나지 않을 만큼 많은 다리를 가졌다.
거기에 움직일 때마다 꿈틀대며 출렁거리는 외피에서는 끈적이는 진액이 줄줄 흘러내렸다.
무엇보다 저 괴물 같은 벌레가 움직일 때마다 나는 저 소리.
파스슥-파스슥-
들으면 들을수록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그런데 점점 그 괴물 벌레가 다가오더니 자신의 다리를 휘감으며 점점 위로 올라왔다.
비명을 지르고 싶어도 입이 뻥끗하지 않았다.
마르스는 속으로 절규하며 그 벌레가 온몸을 휘감는 것을 지켜봤다.
다리 하나하나가 피부를 뚫고 들어오고 흘러내린 진액이 혈관에 스며드는 고통이 느껴졌다.
끔찍한 고통에 눈을 부릅뜰 때 어느새 괴물 벌레의 얼굴이 눈앞에 있었다.
눈동자 따위는 보이지 않는 매끈한 눈.
그 눈이 점점 찢어지기 시작했다.
쩌어억-타다다닥-
그 안에는 나선형으로 이루어진 수백 개의 이빨이 있었다.
벌레는 최대한 눈이었던 입을 벌려 나선형으로 된 이빨을 움찔움찔하며 다가왔다.
단번에 마르스의 머리를 물어뜯겠다는 듯이 말이다.
마르스는 자신의 머리가 벌레의 입속에 반쯤 들어갔을 때.
“크아악!!”
드디어 비명을 지르며 두 눈을 번쩍 뜰 수 있었다.
아직도 피부를 뚫고 찔러진 벌레의 다리 감각이 그대로 남아 있어 두 손으로 몸을 마구 비볐다.
입고 있던 옷이 찢기고 맨살이 드러날 때쯤 마르스는 손을 멈췄다.
“헉, 헉헉….”
벌레 따위는 없었다.
호흡이 정돈되자 그제야 주변이 보이며 시후가 눈에 들어왔다.
“혀, 형님?”
“왜, 몸에 뭐라도 붙었어?”
“벌레가 있었는데요.”
“그 벌레가 꽤 징그러웠나 봐?”
“네… 처음 보는… 설마!”
마르스는 그제야 자신이 경험한 것이 시후에 의해서임을 깨달았다.
어떻게 했는지는 중요치 않았다.
지금까지 그가 보여준 일들은 전부 상상을 불허하는 것들이었으니 말이다.
‘어떻게’가 아니라 ‘왜’가 중요했다.
“왜, 제게 이런 것을 보여주신 겁니까?”
“역지사지라는 말을 아느냐?”
“네. 들어는 봤습니다.”
“들어는 봤다? 그렇다는 것은 그 뜻을 모른다?”
“뜻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굳이 자신에게 그 말이 필요할까 싶어 머릿속에 두지 않았다는 말은 내뱉지 않았다.
“그렇지. 넌 그런 놈이니까. 그래서 내가 그런 거야.”
“네?!”
“본디 사람이란 자기가 경험을 해봐야 뼛속까지 기억하는 법이거든.”
시후는 고개를 까딱여 타란을 가리켰다.
때마침 타란도 마르스를 보고 있었기에 둘의 시선은 허공에서 얽혔다.
그리고 마르스는 읽었다.
지금까지 자신이 보고 싶은 대로만 봤던 게 아니라, 그녀의 눈빛에 담긴 진짜 속내를 말이다.
“혐….”
차마 그 뒷말을 입 밖으로 꺼낼 수 없었다.
타란의 시선에서 읽은 것은 ‘혐오’였다.
타란이 자신을 멀리하고 싶어 하는 것은 알았지만 조금 전 자신이 보았던 벌레를 보듯 자신을 볼 줄이야.
그런 타란의 시선에 마르스는 저도 모르게 고개를 떨구었다.
“…흥!”
마르스가 고개를 떨구자 타란이 콧방귀를 뀌었다.
그런데 어째서인지 시원섭섭해 보이는 표정이었다.
‘이것 봐라?’
시후는 그런 타란의 표정에서 그동안 마르스가 헛짓거리만 한 게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더니.”
시후는 재미있게 돌아가는 상황에 턱을 쓰다듬었다.
마르스에 대한 갱생 교육을 시작할 때였다.
원래는 투산에게 맡겨서 하려던 것을 자신이 직접 할 생각이었다.
좀 더 정확히는 히든 퀘스트를 위해 헤라 여왕이 부탁한 ‘마르스 갱생 프로젝트’를 직접 하려는 거였다.
자고로 채찍질했다면 당근도 던져줘야 말을 잘 듣는 법.
“타란. 너 헤라 왕국 구경하러 갈래?”
“네?!”
타란에게 물었건만 대답은 마르스가 했다.
어째 타란보다 더욱 놀란 표정으로 말이다.
한편 타란 역시 시후의 말이 의외라는 듯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저는 여기를 벗어날 수가….”
“있어.”
타란은 시후가 절대 헛소리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게다가 저렇듯 장담하듯 말하는 모습에 그토록 기다리고 갈망하던 시후와 함께 있을 수 있다는 희망을 품을 수 있었다.
타란은 일전에 아라크네 퀘스트를 위해 시후와 같이 다녔을 때를 떠올렸다.
자기 다리를 베개 삼아 편하게 누워 있던 시후.
그의 온기가 아직도 다리에 남아 있는 것 같았다.
거기에 아라크네의 거미 군대를 만났을 때 시후가 보여준 무위는 어떠했는가.
무엇보다 헤라 3세를 만났을 때의 그 당당한 뒷모습.
타란은 그때를 떠올리니 또다시 등골이 오싹오싹하며 짜릿했다.
거미 여왕의 종족 번식 본능을 자극했다.
‘위험한데.’
시후는 점점 위험한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타란에게서 슬쩍 멀어져 마르스에게 다가갔다.
타란과 동행하기 위해서는 마르스에게 사전 작업이 필요했기에 어깨에 팔을 두르며 바짝 끌어당겼다.
“어때. 같이 가게 될 생각 하니깐?”
“기뻐서 미칠 지경입니다!”
“쉿. 목소리가 크다.”
시후는 여전히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타란을 힐끗거렸다.
잠시 타란이 둘의 이야기에 끼어들면 안 되었다.
“그치?! 타란을 데리고 가서 네 어머니께 소개하고 싶지?”
“어, 어머님께?!”
사전 작업이라는 것은 헤라 왕국으로 가는 히든 퀘스트에 타란을 끼워 넣는 거였다.
[히든 퀘스트 : 어둠의 종사자를 멸하라.]
단 한 줄짜리 히든 퀘스트 설명이었지만 다행히 블칸 영주를 통해 힌트를 얻었다.
“저야, 당연히 소개하고 싶죠.”
마르스 역시 상상의 나래를 펼치기 시작했다.
시후는 그런 마르스에게 더욱 작게 속삭였다.
“가는 김에 네 어머니한테서 내가 필요한 것을 좀 받아야 하는데….”
“그녀를 데리고 갈 수 있다면 제가 어떻게든 받아내 드리겠습니다.”
“정말? 그런 수고를 해줄 거야?”
시후의 말에 마르스는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헤라 여왕과 타란은 이미 안면이 있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거미 여왕일 때 만난 게 전부였다.
지금처럼 인간형의 모습으로는 만난 적이 없었기에 마르스는 기대했다.
어머니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는다면 자신을 혐오하는 타란의 마음을 돌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말이다.
딱히 독안공을 사용하지 않아도 단번에 읽히는 마르스의 표정이었다.
“자, 그럼. 정리해보자.”
이제부터가 중요했다.
타란을 끼워 넣기 위해 ‘아’ 다르고 ‘어’ 다르게 말해야 했다.
“나는 헤라 여왕에게 너를 갱생시켜 달라는 부탁을 받았었지?”
“네.”
“전부는 아니지만, 너도 자각할 정도로 변했어. 그치?”
“네.”
“그럼, 이제 헤라 왕국으로 돌아가야겠지?”
“그렇죠.”
“그런데 가는 길에 내 동료를 좀 추가하고 싶어. 저기 타란이라고 말이야.”
“그건 제가 더 바라는 바입니다!”
“정말? 타란이 꼭 가야겠어?”
“당연합니다!”
어린아이에게 사탕을 줬다가 뺏으면 지을 만한 울먹거리는 표정을 마르스가 지었다.
시후는 이때다 싶어 재빠르게 채팅창을 열었다.
“잘 있었지?”
-후 님! 드디어 오셨습니까?!
“그래. 퀘스트 여관은 아직도 운영 중이지?”
채팅 상대방은 퀘스트 여관 마스터였다.
일전에 중국으로 떠나면서 당분간 접속하지 않을 것이라고 일러둔 이후로 처음 찾은 거였다.
그동안 한스텔 마을의 인기가 치솟을수록 마스터가 벌여 놓은 사업들도 번창했다.
그 모든 원인이 시후에게 있기에 마스터는 저번보다 더욱 호의적인 모습을 보였다.
-운영 중이다 뿐이겠습니까?! 벌써 3호점까지 냈다 아닙니까! 한번 들러 주십시오.
“잘했네. 거긴 조만간 가보지. 그보다 퀘스트 하나만 봐줘.”
이게 본론이었다.
지금까지 ‘아’ 다르고 ‘어’ 다르게 마르스와 이야기를 주고받은 이유.
타란과 같은 NPC가 장기간 본래 장소를 벗어날 방법.
퀘스트 여관 마스터가 마르스와 타란을 연결 지을 퀘스트를 만들 수 있도록 하는 거였다.
‘마르스와 저 정도로 이야기해 놨으니 분명히 생겼을 거야.’
시후는 그동안 Safety World를 경험하면서 알게 된 사실이 하나 있었다.
퀘스트는 해당 유저의 세계관과 관련되어 생성된다는 것.
초보를 벗어나기 위해 마을 입구에 토끼와 여우를 잡으라고 했고 루프 사용을 익히기 위해 케난 협곡 퀘스트를 줬듯이, Safety World를 운영한다는 A.I는 때에 맞추어 퀘스트를 줬다.
이번에도 마르스와 이만큼 떠들어 줬으니 분명 만들어졌을 거였다.
-네. 있습니다. 마르스 님과 타란 님이 연관된 퀘스트요.
“좋아. 그거 줘.”
-네. 그럼, 이번에도 무탈하게 다녀오십시오.
보통은 퀘스트 여관에 직접 가서 받아야 했지만 시후는 일전에 마스터를 수하로 삼았기에 이렇게 받는 것이 가능했다.
띠링-
[동행 퀘스트 발생 : 헤라 여왕에게 마르스와 타란을 데리고 가라.]
[타란을 좋아하는 마르스를 위해 헤라 여왕에게 타란을 소개해라.]
[보상 : 경험치, 골드.]
보상이라고는 경험치와 골드뿐이었지만 이것으로 타란을 한스텔 마을에서 데리고 나갈 수 있게 되었다.
“타란. 가자.”
“네!”
타란 역시 시후가 퀘스트를 수락하자 자신에게도 퀘스트가 생성되었기에 수락했다.
한편 이 모든 과정을 조용히 지켜보던 조민은 어이가 없었다.
“세상에 동상이몽도 이런 동상이몽이 없을 거예요.”
조민이 시후에게 다가가 조용히 속삭였다.
시후는 그런 조민의 어깨를 다독였다.
“이것도 네가 배워야 하는 거 알지?”
“당연하죠.”
시후는 언제나 이랬다.
조민을 지괴로 삼았을 때부터 그녀가 배워야 할 것들을 언제나 먼저 보여주었다.
조민도 시후가 딱히 말하지 않아도 눈치챘었다.
보자마자 바로 배울 수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엄청난 노력으로 해냈다.
“그런데 어째서 점점 잡기가 늘어나는 것 같죠?”
“잡기라니. 융통성 있는 기술이지.”
정말 말이라도 못하면 이런 허탈함도 없을 터였다.
시후의 능력이 어떤지 알기에 조민은 더 대단한 것을 배우고 싶었다.
“기술은 오빠가 보여준 휘파람 같은 거를 두고 하는 말 아닌가요?”
“왜, 그것도 가르쳐줘?”
“……! 가르쳐 주실 수 있는 거예요?”
시후의 말에 조민은 바짝 다가왔다.
사람을 기절시키고 환각을 보여주는 그런 무공을 배울 수 있다는 기대감에 말이다.
“가르쳐 주는 거야 뭐, 어렵지 않아. 다만….”
“다만이요?”
“너 음악 실기 점수 몇 점?”
“…….”
여기서 왜 음악 실기 점수 이야기가 나오는지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조민은 대답할 수가 없었다.
제갈세가에서 천재라고 추앙받는 조민에게도 한 가지 약점이 있었으니, 그건 바로 예술성이었다.
특히, 음악 쪽으로는 엄청난 둔재였다.
“너 저번에 보니까 음치던데?”
“으, 음치까지는 아니거든요?!”
조민은 시후의 말에 발끈하고는 등을 돌렸다.
더는 자신의 치부를 들추고 싶지 않다는 뜻이었다.
그러다 문득 떠오른 게 있었다.
“아, 그럼. 그건 당 언니가 배우면 되겠네요.”
“당소영?”
여기서 뜬금없이 그녀가 왜 거론되는지 시후는 알 수 없었다.
그런 시후의 표정에 조민은 첼로를 켜는 동작을 보였다.
“그 언니 음악 전공했잖아요.”
“아, 그랬지. 음… 그런데 걔는 안 되겠다.”
“왜요?”
“이 무공 만든 놈이 걔를 싫어해.”
가르쳐 주기 싫으면 싫다고 하지, 뜬금없이 무공 창시자를 거론하다니.
시후의 말에 조민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