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로그인하는 천마님-165화 (165/275)

제165화

시후는 프로게이머들에게 오늘 일정을 지시하고는 조민과 함께 빠져나왔다.

“오늘은 나랑 Safety World에서 퀘스트 좀 하자.”

“저번에 받았다는 그 히든 퀘스트요?”

“어. 우선 한스텔 마을에서 마르스를 데리고 가야 하니까 영주 성에서 보자.”

“네.”

시후는 조민과 함께 캡슐 방에 있는 최신형 캡슐에 들어가기로 했다.

그사이 다른 이들은 체력 단련을 위해 다른 곳으로 이동했다.

S.W SOFT는 직원 복지를 위해 마련한 것은 캡슐 방뿐만이 아니었다.

헬스, 클라이밍, 수영, 테니스 등등 신체를 단련할 수 있는 장소가 수두룩했다.

태산과 인호는 시후에게 훈련받은 경험을 살려 녀석들을 굴릴 터였다.

평치혁이 살짝 걱정되기는 했지만.

“뭐, 결과가 시원치 않으면 개인 훈련을 통해 알려주면 되지.”

예견이라도 하듯 평치혁과의 개인 훈련 일정을 생각해두는 시후였다.

그렇게 잠시 현실에서의 일은 다른 이들에게 맡겨두고 이제 Safety World에서의 일을 처리할 차례였다.

고글을 쓰고 접속을 하자 예의 빛이 번쩍였다.

시후는 마지막 접속 장소인 블칸 영주성이 아닌 한스텔 마을로 로그인했다.

다른 곳에서 로그인하기 위해서는 골드를 내야 했지만 블칸 영주나 공주에게 붙잡혀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았다.

눈부심이 잦아들자 가장 먼저 보인 것은 시계탑이었다.

“오랜만에 보니 정겹네. 그런데 여기 왜 이렇게 붐벼?”

한스텔 마을 광장에 로그인한 시후의 눈에 전과 다른 엄청난 인파가 들어왔다.

오크 침략 퀘스트, 환락탑이라 불리는 시계탑의 변화. 그리고 ‘무림인’ 직업을 공표한 장소.

모두 시후가 벌인 일들로 인해 한스텔 마을은 그야말로 대성황 중이었다.

한스텔 마을은 초보들을 위한 마을의 역할뿐만 아니라 관광 명소로 자리 잡고 있었다.

찾아오는 유저가 늘어나니 광장에는 상인들이 자리를 잡기 시작했고, 그만큼 마을은 시끌벅적했다.

“초보 마을에서도 착용 가능한 단검 팔아요~”

“10분간 스텟 올려주는 버프 음식 팔아요~”

“시계탑 대기표 있으신 분들은 음료 10% 할인해 드려요~”

마지막에 왔을 때는 디카 영주와 마르스의 또라이 짓 때문에 거리가 한산했던 것을 생각하면 엄청난 변화였다.

시후는 주변을 거닐며 상인들이 펼쳐놓은 것들을 구경했다.

헤라 왕국에서 봤던 것만큼 좋은 아이템들은 없었지만, 초보 마을이라 그런지 유저를 상대하는 NPC들이 더욱 활기찼다.

덕분에 초보 유저들은 Safety World 매력에 빠르게 빠져들었는지 상당히 즐거워하는 모습들이었다.

“그래. 사람이 사는 거리는 자고로 이래야지.”

천마 시절 일탈을 위해 찾아갔던 저잣거리가 떠올랐다.

황실이나 천마신교가 있는 거리에서는 느껴보지 못하는 사람 내음이 느껴졌다.

시후는 과거를 떠올리며 즐거운 마음으로 걸음을 옮겼다.

이미 영주성으로 가야 하는 목적은 잊은 지 오래였다.

그저 눈길이 닿는 대로 걸을 뿐이었다.

덕분에 목적지는 자연스럽게 한스텔 마을의 가장 유명한 장소인 시계탑이 되고 있었다.

사람의 발길이 가장 많이 닿는 곳이었기에 그만큼 번창했고 볼거리가 많았다.

덕분에 가는 동안 눈이 심심하지 않았다.

“음음, 아주 좋아. 시계탑은 날이 갈수록 번창하고 있군.”

아직 좀 더 걸어가야 하건만 시계탑의 대기 줄이 벌써 보였다.

분명 대기표를 나누어 준다고 들었는데 왜 저렇게 서서 기다리는지 알 수 없었지만, 덕분에 주변 거리는 활기를 띠었다.

“시계탑 대기표 있으시면 음료와 음식 할인해 드려요~”

“대신 줄 서 드려요~.”

“대기표와 아이템 교환해 드려요~”

대기표 하나로 꽤 많은 것들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하긴, 장사는 한 사람이라도 더 오는 게 나으니깐… 잠깐!”

시후의 발걸음이 우뚝 멈췄다.

번화한 거리를 보니 문득 떠오른 게 있었다.

“이럴 수가… 이런 명당을 내가 놓치다니….”

이만큼 번창한 거리에 정작 자신에게 돈을 벌어다 줄 수 있는 가계는 하나도 없었다.

자고로 돈이란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 것.

Safety World의 골드 역시 마찬가지였다.

시후는 앞으로 빠른 레벨업을 위하여 아이템 수급도 생각하고 있었다.

고레벨에서 착용할 수 있는 좋은 아이템들은 당연하게 고가였고 이미 점찍어둔 것들도 있었다.

시계탑과 광산에서 벌어들이는 골드들은 여전히 오크 부족의 배 속으로 들어가고 있는 시점에 이런 노다지를 놓치다니.

“미친!”

시후는 그 자리에 주저앉아 머리를 쥐어뜯었다.

이미 주변에 시후가 낄 만한 자리는 하나도 없었다.

“내 인벤토리에 있는 아이템들만 진열해놔도… 으악!”

인벤토리에 잠들어 있는 수많은 초보용 아이템을 팔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놓친 셈이었다.

현실에서의 일이 바빠 잠시 소홀했더니 손해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자신의 실수에 시후가 자책하며 머리를 쥐어뜯고 있자니 주변의 시선이 모여들었다.

거기에 시후를 발견한 유저들은 멀찍이 피해 가기까지 했다.

“어디서 뒤치기라도 당했나?”

“뭘 잘못 먹어나 보지.”

“미친 건 아니겠지?”

다들 시후의 모습에 수군대며 피해 가는 모습이었다.

그런데.

“후 님!!”

“뭐, 뭐야?!”

누군가가 쭈그리고 앉아 있는 시후를 덮쳤다.

무게감이 느껴질 정도의 무게는 아니었지만,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라 당황스러웠다.

게다가 이런 곳에서 자신을 이렇게까지 반길 만한 이가 누가 있을까 싶을 때 귀에 익은 목소리가 들렸다.

“후 님! 후 님! 왜 이제야 오셨어요~!”

“아, 타란이구나.”

어린아이처럼 등에 업혀 펑펑 우는 여성은 타란이었다.

거미 여왕이라는 닉네임과는 어울리지 않게 타란은 인간 형태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시후는 몸을 일으켜 타란을 떼어냈다.

“잘 지냈어?”

“잘 지냈을 리가 없잖아요!”

타란은 눈물을 훔치며 시후의 가슴을 토닥였다.

거미 여왕의 모습일 때도 상당히 매혹적인 얼굴이었지만 이렇게 인간형이 된 후의 모습은 더욱더 매력적이었다.

거기에 눈물을 훔치는 저 모습은 사람들의 시선을 끌어 모으기에 충분했다.

“뭐야?! 미치광이가 미인을 울린 거야?!”

“맞네! 맞아! 저거 봐! 펑펑 울잖아!”

“놓아달라고 발버둥 치는 거 아냐?!”

지금까지 쭈그려 앉아 머리를 쥐어뜯던 시후가 타란 같은 미녀를 울리자 다들 시후가 잘못했다 생각했다.

거기에 한술 더 떠.

“어이! 너 이리 좀 와봐, 어디 할 게 없어서 남자가 여자를 울려?!”

저런 삼류 대사를 읊으며 다가오는 녀석들까지 생겼다.

‘여기서 소란 피워봐야 좋을 게 없으니….’

시후는 소란스러워지는 주변에 귀찮아질까 자리를 뜰 생각이었다.

그런데 지금까지 눈물을 훔치던 타란이 한 박자 빠르게 움직였다.

“어디서 감히 이분께 오라 가라야?!”

타란은 엄청난 기세를 내뿜으며 다가오는 남자들을 위협했다.

어찌나 기세가 대단한지 허리까지 내려오는 타란의 머리카락이 하늘로 치솟았다.

‘저거 어디서 본 적 있는데…. 초싸이 뭐였는데?’

일전에 너튜브에서 본 만화 짤이 떠올랐다.

분노에 힘입은 주인공의 머리카락이 노란색으로 물들며 치솟는 그림이었다.

“노란색으로 물들면… 헐!”

시후의 말이 씨가 되듯 타란의 머리카락 색이 노란색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멈춰 선 남자들에게 성큼성큼 다가가는 타란의 발걸음에 주변 땅이 갈라졌다.

여기서 더 내버려 뒀다가는 한스텔 마을 광장에서 피바람이라도 불 것 같아 시후는 다급히 타란의 손목을 낚아챘다.

“타란, 가자.”

“네~ 주인님!”

시후의 부름에 타란은 언제 그랬냐는 듯 상냥한 모습으로 품에 안겨 왔다.

시후는 서둘러 타란의 허리를 낚아채고는 신형을 날렸다.

순식간에 둘이 사라져 버리자 주변인들은 눈을 비비며 잘못 본 것은 아닌지 확인까지 했다.

그리고 이날 커뮤니티에는 ‘한스텔 마을 미녀 초사이어인’이라는 제목의 게시글이 올라왔다.

그렇게 타란을 허리에 끼고 날아간 시후는 시계탑 옥상에 내려섰다.

시후가 허리를 놓아주자 타란은 한 발 뒤로 물러났다.

거미 여왕 때부터 타란은 항상 시후의 뒷자리에 자리했었다.

지금도 그때와 같이 거리를 유지하며 하염없이 다가오고 싶어 하는 얼굴을 하면서 말이다.

그런 타란에게 시후는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동안 잘 지냈어?”

“주인님께서 없으셔서 외로웠던 거 빼면 잘 지냈어요.”

“여기서 지냈어?”

시후는 시계탑 옥상에 마련된 의자에 앉았다.

일전에 투산을 대장간에서 이리로 데리고 왔을 때 이곳 경치가 좋아 이렇게 테이블을 마련하라고 했었다.

역시나 의자에 앉으니 한스텔 마을의 절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마치 한 폭의 그림 같은 마을 모습이었다.

시후는 손을 휘저어 반대쪽 테이블 의자를 빼 타란에게 앉으라고 손짓했다.

“네. 프랑시스가 적당한 방을 내어주어서 그곳에서 지냈어요.”

“오, 그랬어?”

프랑시스를 거론하는 타란의 모습에서 시후는 둘의 사이가 이전과 다름을 눈치챘다.

마주치면 언제나 잡아먹을 듯이 으르렁대던 둘이었는데.

“그새 친해졌나 봐?”

“하?! 그 맹랑한 꼬맹이랑 제가요? 그럴 리가요!”

일단은 발뺌하는 것을 보니 절친까지는 아닌 것 같았다.

그렇다고 이전처럼 벌레를 보듯 질겁하는 모습은 없었다.

이쯤 되자 시후는 궁금해졌다.

자신이 없는 사이 저 둘이 친해진 이유가 말이다.

“꼬맹이라뇨? 아줌마보다 젊어 보인다고 너무 어리게 부르지 말죠?”

어떻게 알았는지 프랑시스가 옥상 문을 열고 나타났다.

“프랑시스, 오랜만이야.”

“보고 싶었어요. 주인님.”

시후가 손을 흔들자 프랑시스는 치맛자락을 손끝으로 잡고 살짝 허리를 숙여 인사를 했다.

상당히 많은 시간을 들여 연습했는지 격조 있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시후의 눈에는 아직도 어린 소녀일 뿐이었다.

“오랜만에 봤는데도 여전히 프랑시스는 귀엽네. 이리 와.”

“헤헤, 정말요?”

웃으면서 칭찬하니 금세 헤벌쭉해져서 총총 걸어오는 귀여운 프랑시스였다.

그렇게 시계탑 옥상 테이블에 셋이 자리했다.

“그래서 둘에게 무슨 일이 있던 거야?”

시후는 바로 궁금한 것부터 물었다.

프랑시스와 타란은 이미 자신의 완벽한 종이었기에 굳이 입바른 소리를 할 필요가 없었다.

프랑시스가 어깨를 으쓱이며 타란을 봤다.

타란보고 이야기하라는 뜻이었다.

그런데 어째서인지 타란이 우물쭈물하는 모습이었다.

망설이는 타란의 모습에 시후는 그녀와 관련된 일이라 생각했다.

“왜? 누가 타란에게 치근덕거리기라도 했어?”

조금 전 광장에서도 그렇고, 저 정도 외모의 타란에게 치근덕거리는 것은 이제는 일상일 거라는 생각에 농담을 던졌다.

“어떻게 아셨어요?”

“뭐?”

그런데 그게 정답이었다.

뒤이어 들려주는 타란의 이야기에 시후는 눈썹을 꿈틀댔다.

“왜 여기서 그 이름이 나오는 거지?”

“그러니까요. 그분은 도대체 왜 한스텔 마을을 들쑤시고 다니는 걸까요?”

“주인님께서 어떻게 좀 해주세요.”

타란이 상당히 난처하다는 기색을 비쳤다.

그도 그럴 것이 시후의 머리를 지끈거리게 하는 그놈이 오늘 시후가 Safety World에 로그인한 목적이었으니 말이다.

그리고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더니.

“나의 운명이여~! 오늘도 그대의 사랑이 이렇게 찾아왔다오!”

시계탑 밑에서 미친놈의 목소리가 들렸다.

프랑시스는 질렸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마르스 이놈의 자식이.”

시후는 타란을 이렇게 곤욕스럽게 만든 장본인인 마르스의 얼굴을 보기 위해 고개를 빼꼼 내밀었다.

마르스는 어디서 구해왔는지 제 몸만 한 장미 꽃다발을 들고 있었다.

찰랑찰랑 흔들리는 단발머리를 손으로 한 차례 쓸어 넘긴 마르스는 더욱 힘차게 고함을 질렀다.

“나의 여인이여~! 내가 왔소이다~!”

시후는 당장 뛰어 내려가 녀석의 입에 주먹을 틀어박을까 싶다가 참았다.

때마침 자신의 수고를 대신해줄 이가 나타났기 때문이다.

“오빠, 왜 여기 계세요?”

조민이었다.

조민은 디카 영주성에서 시후를 기다렸다.

그런데 아무리 기다려도 시후가 나타나지 않자 이곳에 있을 것 같아 찾아온 거였다.

시후는 자신에게 삐쭉거리는 조민에게 변명대신 마르스를 향해 손가락질했다.

“어휴….”

눈치 빠른 조민은 단번에 알아듣고는 마르스의 곁에 다가가 그의 목덜미를 움켜쥐었다.

“누, 누구냐?!”

“저승사자요.”

그러고는 당황하는 마르스가 미처 반응하기도 전에 몸을 날려 시계탑 옥상으로 날아왔다.

마르스는 순식간에 납치당하자 당황했는지 허우적댔다.

“누가 감히! 헉!”

그러다가 타란을 발견하고는 순식간에 초롱초롱 눈을 빛냈다.

“아! 나의 여인이여~.”

“으….”

그 말에 타란은 질색하며 시후의 등 뒤로 몸을 숨겼다.

“어? 형님?!”

그제야 마르스는 시후를 발견했다.

‘저거였구만.’

시후는 타란과 프랑시스가 마르스의 진상 짓에 별다른 대응을 하지 못한 이유를 알아챘다.

시후 자신 때문이었다.

일전에 디카 영주와 마르스를 혼내주는 과정에서 종국에 마르스에게 자신을 형이라고 부르게 했었다.

그 자리에 있던 프랑시스가 그 사실을 타란에게 이야기했다.

주인과 호형호제하는 사이니 아무리 미친 짓을 해도 어찌하지 못하는 거였다.

이쯤 되니 궁금해졌다.

-저 녀석은 어떻게 만난 거야?

시후는 마르스가 왜 타란에게 관심을 두게 되었는지 타란에게 전음으로 물었다.

타란은 잠시 고민하더니 간략하게 말했다.

자신이 볼일이 있어 광장에 나간 날이 있었다는 거였다.

거리에 액세서리를 파는 직판장이 있었는데 그곳에서 마르스와 마주쳤다고 한다.

마르스는 타란에게 한눈에 반했는지 그 자리에서 고백까지 했었다.

타란은 이미 그런 대우를 받은 지 오래되었기에 평소대로 무시했다.

그런데 생각보다 마르스가 더 미친놈인 거였다.

마르스는 타란의 뒤를 졸졸 쫓아 시계탑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고는 이렇게 그녀를 보기 위해 매일 시계탑을 찾았다.

덕분에 시계탑을 운영하는 프랑시스는 영업 방해를 당하고 있고, 타란은 그렇게 좋아하던 거리 구경을 나가지 못하게 되었다.

시후는 그제야 둘이 친해진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공동의 적이 생겼으니.’

적의 적은 아군이라 했던가.

마르스라는 공동의 적이 생기니 타란과 프랑시스는 절로 친해진 거였다.

시후는 그동안 둘이 겪었을 노고를 생각하자 한숨이 절로 나왔다.

반면 마르스는 뭐가 그리 반가운지 두 팔을 활짝 벌려 시후에게 다가왔다.

“형님~! 뵙고 싶었습니…. 헉, 형님?!”

그런 반가워 미치겠다는 마르스에게 시후는 지풍을 선물했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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