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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그인하는 천마님-162화 (162/275)

제162화

박초연은 시후와 헤어진 후 산 아래 대기하고 있던 일행들과 함께 대력공방으로 복귀했다.

천 년의 맥을 이어온 대력공방이 자리한 곳은 용산이었다.

흔히들 전자제품을 파는 곳이라 알려진 용산 전자랜드가 그들의 표면적인 얼굴이었다.

예전에 대력공방의 힘을 미처 숨기지 못해 소문이 퍼진 일이 있었다.

용산에는 자재만 갖춰지면 탱크도 조립해주는 장인이 살고 있다고 말이다.

다들 웃자고 하는 얘기라 생각했지만 사실 대력공방의 정체가 흘러나간 것을 그리 막은 거였다.

그런 곳의 방주로 있는 박초연은 용산 전자랜드에 도착하자 평치혁을 찾았다.

[용산 전당포]

평치혁이 표면적으로 운영하는 사무실이었다.

똑똑똑-

박초연은 전당포의 문을 두드렸다.

들어오라는 대답이 없었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이미 평치혁이 안에 있음을 알기에 보인 행동이었다.

역시나 평치혁은 사무실 안에서 소파에 널브러져 있었다.

“왜?”

심드렁한 표정으로 왜 들어왔냐고 묻는 평치혁에 박초연은 어이가 없었다.

“왜요? 지금 ‘왜요’라는 말이 나오세요?”

“아, 뭐.”

“도대체 아까 그 일은 무슨 일이신 거에요? 해명을 해주셔야죠.”

비고에서 있었던 일을 말하는 거였다.

그때는 경황도 없고 시후의 천마지기에 눌려 물을 수 없었다.

하지만 알아야 했다.

대력공방 방주로서 앞으로 나아가야 하는 길에 조금의 실수도 없어야 했기에 말이다.

지금 평치혁은 자신이 모르는 무언가를, 그것도 엄청난 일을 벌이고 있었다.

평치혁은 씩씩거리는 박초연의 모습에 입맛을 다시며 자리를 고쳐 앉았다.

“알았어. 방주니까 말해주는 거야. 그리고 이거 진짜 비밀인 거 알지?”

쿵-

평치혁은 손을 휘둘러 전당포 문을 닫았다.

평소 개차반 같은 모습은 온데간데없는 그의 모습에 박초연도 진지하게 소파에 앉았다.

“우리 대력공방은 저마다 비밀이 있는 거 알지.”

“네. 저도 있으니 방주님이라고 다를까요.”

출생의 비밀은 대력공방 출신이라면 기본이었다.

충분히 이해한다는 박초연의 표정에 평치혁은 어렵게 입을 열었다.

“나는 천 년의 업을 이어받은 마천(魔天)의 후예야.”

“마천? 제가 아는 그 마천이요?”

“어. 그 마천.”

들어봤다. 아니. 잘 알았다.

대력공방의 방주가 되면서 가장 많이 들었던 단어 중 하나가 바로 ‘마천’이었다.

박초연은 떨리는 손에 힘을 주고는 고함을 질렀다.

“그걸 왜 지금 말씀하시는 거예요!!”

“뭐, 뭐야, 왜 갑자기 급발진이야?!”

평치혁은 당황스러웠다.

박초연이 지금까지 자기에게 이렇게 고함을 지른 적은 없었다.

아무리 방주라는 직함을 갖고 있다고 하지만 자신의 발끝에도 못 미치는 무공 수위 때문인지 박초연은 언제나 자기를 불편해했다.

딱히 그녀와 친해지고 싶은 생각이 없었기에 평치혁도 그녀의 태도에 대해 신경 쓰지 않았다.

그런데 박초연이 저렇게 꼭지가 돌아가 버린 모습을 보이자 당황스러우면서도 궁금했다.

“마천이 왜?”

“하아… 평 장로님. 여기가 어디죠?”

“여기? 내 방….”

쾅-

박초연이 테이블을 주먹으로 내리치자 평치혁은 순간적으로 찔끔했다.

더는 장난스럽게 대답해서는 안 될 것 같았다.

“대력…공방이요…?”

“그래요. 그럼, 저는 거기서 뭐죠?”

“방주?”

“그런데 마천과 관련된 일을 저에게 숨기신 거예요?”

“……! 아!!”

평치혁은 그제야 자기 잘못을 깨달았다.

대력공방을 만든 시조가 누구인지. 마천의 시조가 누구인지. 그 둘이 어떤 관계인지.

“아, 아니. 그건 대력공방의 운영 방식 때문에 내가 깜빡했어.”

“어떻게 그걸 깜빡하세요?!”

“그, 아, 음… 미안해….”

평치혁은 잔뜩 주눅 든 모습으로 사과를 했다.

지금은 이래야 했다.

자신의 잘못이 확실하니 말이다.

특히, 시후를 만난 이후였으니.

“그래서 아까 그분이 저희가 기다린 그분이 맞는 거예요?”

“어.”

“하아…. 그럼 지금이라도 당장 연락을 드려야….”

“아니야, 지금은 바쁘실 테니 내일 말씀드려.”

“이게 지금 내일까지 기다릴 사안이에요?”

대력공방과 마천이 기다린 귀인.

천 년의 업을 내려놓고자 기다린 당사자를 알아보지 못한 자신을 책망하는 박초연이었다.

평치혁도 그런 박초연의 마음을 알았기에 최대한 그녀를 다독였다.

“어차피 그분 성격상 지금 연락해봐야 좋은 소리 못 들어. 아까 봤잖아.”

“그건….”

박초연은 비고에서 보았던 시후의 모습을 떠올렸다.

힘을 쓰는 데 주저가 없으며 자기 위주로 일을 처리하는 전형적인 강자의 모습이었다.

그런 그에게 천 년의 업이니 뭐니 하며 떠들어 봐야 분명 내일 보자며 전화를 끊을 게 뻔했다.

하지만 이 착잡함은 가시지 않았다.

그 모습에 평치혁이 무언가 떠오른 듯 반색했다.

“아! 아마도 내일 엄청난 선물을 가져오실 거야.”

“선물이요?”

“아마도 대력공방 최대의 위기가 될 수 있는 선물.”

선물이면 선물이지, 위기까지 초래하는 것은 무엇인지 박초연은 짐작할 수 없었다.

그리고 다음 날. S.W SOFT 지하 주차장에서 시후를 만난 박초연은 평치혁의 말을 백분 이해했다.

시후가 아침에 주차장에서 만나자는 연락을 했었기에 박초연은 밴을 준비해놨다.

시후는 뭐가 그리 즐거운지 실실 웃으며 밴에 올랐고, 그런 시후의 모습에 박초연은 불안감이 엄습했다.

도대체 종잡을 수 없는 그의 행보에 어찌 장단을 맞춰야 싶을 때 시후가 꺼낸 물건을 보자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저… 시, 시후 님? 이게 뭐라고요?”

“뭐야, 귀먹었어?”

“아, 아니요. 제가 혹시나 잘못 들었나 해서요.”

“그거 독각룡 비늘이랑 뿔이라고.”

독각룡이라니.

우주로 로켓을 쏘아대는 이 시대에 무슨 독각룡이란 말인가.

눈앞의 것들은 무협 소설이나 구전으로나 전해 내려오는 것인 줄 알았다.

시후는 박초연의 놀라는 모습에 그럴 수 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충분히 이해해. 놀랐겠지. 처음 봤으니까.”

“그, 그럼, 시후 님은 처음이 아니시라는 거예요?”

“음… 난 뭐.”

독각룡을 직접 죽여본 적도 있는데 처음 봤을 리가.

시후는 뒷말을 아꼈다.

여기서 말이 길어져 봐야 호기심 많은 박초연의 궁금증이나 풀어주는 시간일 테니 말이다.

저 봐라. 벌써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호기심을 잔뜩 일으키고 있었다.

아무래도 무언가 말을 돌릴 필요가 있었다.

턱-

시후는 들고 온 캐리어를 활짝 열었다.

“이건 운철, 이건 음양옥, 그리고 이건….”

본래 사람이란 충격을 받았을 때 더 큰 충격을 받으면 전의 충격은 잊어버리는 법.

시후는 독각룡을 잊을 만한 물건들을 마구잡이로 꺼냈다.

“자, 자, 잠깐만요!!”

캐리어에서 쏟아져 나오는 물건들에 박초연은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그동안 고서에서나 보던 것들이 줄줄 쏟아져 나오니 말이다.

그 신기한 물건들을 보며 머릿속의 기억을 끄집어냈다.

“우, 운철이면 운석 말씀하시는 거죠?”

“역시. 대력공방 방주답게 잘 아네?”

“음양옥(陰陽玉)은 음과 양의 기운이 한데 들어있는 옥이고…. 헉! 이건?!”

“맞아, 그거 금강사(金剛砂)야.”

“이, 이게, 금강사!!”

박초연은 주먹만 한 실타래를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조심스럽게 들어 올렸다.

분명 대력공방에서 대대로 내려오는 고서에서 읽었던 기억이 있었다.

“이, 이게 다이아몬드의 강도를 가진 실이란 말이죠?”

“그렇다니까.”

시후는 슬슬 재미있어졌다.

처음 박초연을 만났을 때는 잔뜩 헝클어진 머리카락과 두꺼운 안경 탓에 음침한 녀석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 자신이 꺼낸 물건들을 보는 박초연은 놀이공원을 찾은 어린아이 같았다.

박초연은 대력공방의 고서들을 보며 상상의 나래를 펼쳤던 적이 있었다.

현시대에 없는 이 물건들에 대력공방의 기술을 집약해 무언가를 만든다면 과연 어떤 물건이 만들어질까.

장인으로서의 도전 정신이 활활 타오를 만한 상상들이었다.

그런데 그 상상의 나래를 펼치던 물건들이 지금 손에 들어왔다.

그것도 시후가 가져온 캐리어에 가득 찰 정도로 말이다.

대부분이 제련을 필요로 하는 물건들로, 대력공방 방주의 본능을 자극했다.

이것들 모두가 시후가 비고에서 찾은 거였다.

그리고 이 물건들을 봤을 때 마천서생 평수혁을 욕한 이유는 이것들 모두가 천마 시절 황실에 있던 것들이기 때문이었다.

‘술 마시러 놀러 갔을 때 봤었지.’

황실에 귀한 술이 있다고 숨어들었을 때 그것들이 보관된 창고에 들렀었다.

그때는 아무리 진귀한 것들이라고 해도 지괴에게 폭풍 잔소리를 듣기 싫어 내버려 뒀었다.

‘저것들을 그때 챙겼으면 황실과 전쟁이라도 할 거냐며 엄청나게 혼났을 거야.’

그런데 평수혁 이 미친 자식이 황실에서 그것들을 챙겨와서 비고에 넣어둔 거였다.

그것도 무혈검이 없으면 열지 못하는 장치까지 만들어서 말이다.

‘저것들 외에도 다른 것들도 많았지만 그것들은 대력공방이 아니라 다른 곳에서 쓸 거니까.’

시후는 셔츠 안에 입은 얇은 티를 힐끗거렸다.

보통의 반소매 티셔츠보다 살짝 얇아 시스루처럼 보이는 그것은 철잠사의 비늘을 엮어 만든 보호구였다.

시후가 이것을 챙겨 입은 이유는 자신이 아니면 착용을 할 수가 없기 때문이었다.

‘내공이 사 갑자가 넘지 못하면 이 기운을 견딜 수 없으니.’

철잠사 셔츠는 착용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착용자의 기운을 빼앗아 갔다.

아마 일반인이 착용한다면 한 시진 만에 탈수 증상을 일으킬 터였다.

이런 기생 능력을 갖췄음에도 시후가 입고 있는 이유가 있었다.

‘입고 있는 것만으로도 운기조식의 효과를 배는 볼 수 있으니까.’

평소 천마분심공을 통해 걸으면서도 자면서도 운기조식을 하는 시후였다.

그 덕분인지 운기조식을 하며 뿜어져 나온 기운을 철잠사가 흡수하고는 다시 돌려줬다.

그것으로 시후는 평소 하던 운기조식의 배에 가까운 효과를 얻을 수 있었다.

이것을 만든 녀석이 살아 있지 않으니 왜 이런 효과가 있는지 알 수 없었지만 감사한 마음으로 입었다.

물론 이 외에도 웬만한 방탄조끼 저리 가라 하는 내구력을 가졌지만, 그것은 시후에게 중요치 않았다.

“적당히 쓸 만한 거 만들어봐. 단, 음양옥은 목걸이 형태로 3개만 따로 만들어. 가운데 오백 원짜리만 한 구슬을 끼워 넣을 수 있게 말이야.”

시후는 박초연이 쓰고 있는 안경으로 대력공방의 실력을 짐작했다.

아마도 저만한 재료를 던져주면 중국에서 얻은 물건들보다 더 대단한 것들을 만들어 낼 터였다.

하지만 음양옥만은 달랐다.

그것은 꼭 목걸이 형태로 만들어 쓸 사람들이 있었다.

“알겠어요. 1주일만 기한을 주세요.”

“그래. 그럼, 이제 합숙을 위해 움직여 볼까?”

시후의 말에 박초연은 서둘러 캐리어를 정리하고는 차에서 내렸다.

이런 귀중한 물건은 남에게 맡길 수 없기에 직접 챙겼다.

바퀴가 달렸음에도 박초연은 두 손으로 캐리어를 품속에 꼭 끌어안았다.

그런 박초연의 모습에 시후는 기대를 높였다.

‘과연. 어떤 무구를 만들어 낼 것인지.’

과거에야 효과만 탁월하다면 모양이나 생김새는 전혀 신경 쓰지 않은 장인들이 많았다.

비고에서 아직 빼 오지 못한 물건들이 딱 그랬다.

‘요즘 시대에 누가 갑옷을 입고 다니냐고.’

비고에서 가장 효능이 좋아 보이는 물건은 청룡비갑이었다.

용의 비늘로 만들었다고 전해질 만큼 귀한 그 갑옷은 총탄도 튕겨낼 만한 내구도를 가졌다.

하지만 그것을 착용하고 서울 거리를 활보한다?

정신병자 취급을 받기 딱 좋았다.

그 외에도 언월도, 삼지창, 방패 등등.

황실 군부에서 사용하던 보물들이 수두룩했다.

‘만약, 대력공방의 물건이 쓸 만하다면….’

시후는 이번 기회에 대력공방을 평가할 생각이었다.

특히 운철로 만들어올 것을 본 후에 비고에 남겨진 것들을 대력공방에 넘길지 말지 결정할 거였다.

‘녹여서 다른 것으로 만들면 되니까.’

운철을 제련한다는 것은 그만한 실력을 갖추었다는 뜻이니 말이다.

혹시나 하는 기대감에 들뜬 시후는 기분 좋게 S.W SOFT 3층에 들어섰다.

전날 프로게이머들에게 오늘 합숙을 한다고 했으니 짐을 한 보따리 싸 와 기다리고 있을 터였다.

그런데.

“뭐야, 왜 너희뿐이야?”

3층 캡슐방에는 태산과 인호, 조민과 D.M, 그리고 평치혁뿐이었다.

그리고 그들 앞에 상당히 난처한 표정으로 시후를 기다리던 김철수가 달려왔다.

“시후 님, 저… 그게….”

김철수가 한참을 망설이다 꺼낸 이야기는 이랬다.

나머지 프로게이머들이 서로 합심을 해 합숙에 참여하지 않는다는 통보를 했다는 거였다.

저마다의 핑계는 달랐지만 그들의 이야기를 종합적으로 들은 김철수의 판단은 그랬다.

그들은 지금 시후에게 단체로 반항을 하는 거라고 말이다.

그 말은 들은 시후는 한쪽 입꼬리를 말아 올려 웃었다.

“보물찾기 다음은 숨바꼭질인가 보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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