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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그인하는 천마님-157화 (157/275)

제157화

시후는 세상 당황스러웠다.

잠에서 깨어난 공주는 대뜸 왕자를 찾더니 시후의 목을 두 팔로 휘감았다.

거기에 한술 더 떠.

“왕자님. 어서 키스해 주세요.”

이렇게 막무가내로 입술을 훔쳐달라 닦달까지 했다.

문제는 어찌 된 일인지 그녀의 손길을 뿌리칠 수도 없을뿐더러 이 자리를 벗어날 수도 없다는 거였다.

‘이거 왜 이래.’

띠링-

[상태 이상에 걸렸습니다.]

[이동이 제한됩니다.]

딱히 특별한 설명이 없는 상태 이상 메시지였다.

그것으로 시후는 확신했다.

“지금 이거 네가 하는 거야?”

“네. 맞습니다, 왕자님.”

“잠투정치고는 너무 과한 거 아닌가?”

장난은 그만하고 어서 풀라는 말이었다.

하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그것과는 전혀 상관없는 엉뚱한 말이었다.

“언제나 눈을 떴을 때는 차갑고 어두운 벽과 천정만 보였는데….”

“……”

공주는 갑자기 신세 한탄을 시작했다.

“오늘은 반짝이는 별님들이 가득한 밤하늘을 보았답니다.”

“그래? 잘됐네. 축하해.”

“그리고 또 보았답니다.”

“……”

시후는 공주에 말에 호응해 주었지만 여전히 몸을 움직일 수 없었다.

“달빛 아래 찬란하게 빛나는 왕자님을요.”

“그게 나라고?”

“네. 왕자님.”

아무래도 공주의 정신이 이상해 보였다.

같이 놀아주기에는 점점 시간이 아까워졌다.

“하아…. 이거나 풀어라.”

“그럴 수 없습니다. 왕자님의 키스를 받아야 비로소 공주는 자유로워지니까요.”

“이미 충분히 자유로우신 것 같으신데, 그놈의 키스 타령은 그만 좀 하시고 어서 풀지?”

“키스하지 못하시겠다면 저를 다시 재우시든가요.”

“너를 다시 재울 거면 왜 깨웠겠냐? 기껏 해주까지 해서 깨웠는데.”

“그러니 키스를 해 달라고요.”

“그 말 좀 그만하라니까?!”

“그럼, 다시 재워 달라고요.”

같은 말만 무의미하게 반복되고 있었다.

시후는 이 말도 안 되는 상황을 어찌할까 고민했다.

힘을 쓴다면 벗어나지 못할 것도 없었다.

영주성을 반 토막 낼 정도로 쓴다면 말이다.

하지만.

‘이런 꼬맹이에게 그만한 힘을 쓰는 건 좀….’

분명 저주에서 풀려나기 전에는 ‘성인 여성’이라고 부를 정도의 외모였었다.

그런데 어째서인지 해주된 후에는 중학생 정도의 외모로 변해버렸다.

어서 왕자님의 키스를 해달라며 칭얼대는 공주의 모습이 이제는 귀엽게 보이기까지 했다.

“아!”

그 순간 시후는 한 가지 비책이 떠올랐다.

‘굳이 그럴 필요는 없지?’

귀여운 공주의 모습에 굳이 피해갈 필요가 있을까 싶었다.

시후는 결심을 한 듯 칭얼대는 공주의 어깨를 살며시 잡았다.

“왕자님?”

시후의 달라진 분위기를 공주도 느꼈는지 한 차례 어깨를 떨었다.

“그대가 원하는 것이라면.”

시후는 최대한 분위기를 맞추기 위해 말투도 바꿨다.

어머니께서 일찍 퇴근하시는 날이면 언제나 챙겨보시던 드라마의 대사를 읊었다.

저녁 시간대에 30분만 하는 막장 드라마지만 순간 시청률이 40%가 넘은 드라마였다.

그 덕분인지 공주는 순식간에 환한 미소를 보였다.

“왕자님!”

공주는 어서 자신이 원하는 바를 들어달라는 듯 두 눈을 지그시 감았다.

거기에 한술 더 떠 입술까지 쭈욱 내밀었다.

시후는 그런 공주를 슬쩍 끌어당겼다.

그러고는.

쪽-

입술에 살짝 흡입력을 넣어 그녀에게 키스했다.

그런데 키스를 받은 공주는 되레 미간을 좁히며 눈을 떴다.

“뭐예요, 이건?”

“이마 키스.”

“제가 원하는 게 그것이 아닐 텐데요?”

“이게 아니었어요?”

시후는 정말 몰랐다는 듯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거기에 어디선가 ‘샤랄랄라’ 배경음이 들릴 것 같은 미소는 덤으로 지어주었다.

공주는 그런 시후의 모습에 좁혔던 미간을 풀었다.

“그거 아니니까, 정확히 입술에 다시 해요. 우~”

공주가 다시 입술을 쭈욱 내밀었다.

하지만 시후는 그런 공주의 양쪽 어깨를 잡아 살짝 밀어냈다.

“지금 저를 거부하시는 건가요?”

공주는 그런 시후의 모습에 당장이라도 울 것처럼 눈시울이 붉어졌다.

그 순간 시후는 공주보다 더 구슬픈 표정을 지었다.

“지조라는 말 아시지요?”

“그게 왜요?”

“지조가 여자에게만 있는 게 아니랍니다. 특히, 나처럼 잘생긴 남자에게는 더욱더 그렇지요.”

이미 타란과 프랑시스를 종으로 부리는 시후가 할 말은 아니었지만, 일단은 지금 상황을 넘기기 위해 아무렇게나 내뱉었다.

그런데 이게 먹힐 것 같았다.

그녀는 그야말로 순백의 도화지였다.

‘세상 물정 하나도 모르는 진짜 공주님.’

어디서 무엇을 보고 들었는지 모르지만, 키스를 닦달하던 그녀는 여러모로 아는 게 부족했다.

순진무구한 소녀라는 말이 어울린다고 해야 할까.

공주는 분위기에 휩쓸려 시후의 말도 안 되는 말을 믿기 시작했다.

“남자에게도 그런 게 있는지는 몰랐네요.”

그러고는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고민까지 한다.

시후는 속으로 터져 나오는 웃음을 꾹 참고는 다시 진지한 표정으로 그녀에게 한 발 다가갔다.

“오늘 이미 내 입술은 그대의 이마를 정복했습니다. 여기서 그대의 입술까지 정복한다면 아마 내 심장은 그 설렘을 견디지 못하고 터져버릴지도 몰라요.”

드라마 대사를 살짝 인용해 아무렇게나 내뱉었다.

지금 공주에게 문맥 따위는 중요해 보이지 않았다.

그저 ‘정복’이니 ‘설렘’이니, 그녀의 감정을 흔들 단어만 들려주면 되었다.

“제, 제 이마를 정복하셨나요?”

저 봐라.

공주는 어느새 발그레해진 양 볼을 수줍게 손바닥으로 감싸고 있었다.

“그렇습니다. 그러니 오늘은 여기까지만 허락해 주시겠나요?”

시후의 말에 공주는 수줍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띠링-

[‘블칸 영주성 침략’ 퀘스트 클리어]

[스페셜 히든 퀘스트 보상이 지급됩니다.]

[레벨업 : + 5]

[아이템 : 생명의 보옥(레전드리)]

[히든 퀘스트 연계 퀘스트 발생 : 어둠의 종사자를 멸하라.]

“허?!”

스페셜 히든 퀘스트의 보상 메시지라고 하기에는 내용이 간략했다.

하지만 웬만한 일에는 좀처럼 놀라지 않는 시후조차 깜짝 놀랄 정도의 내용들이었다.

‘레벨업을 시켜줘? 그것도 다섯 단계나 한 번에?’

지금까지 퀘스트를 클리어하면서 얻은 것은 경험치였다.

일정량의 경험치를 얻어야 레벨업을 할 수 있었고, 레벨을 올린 후에 스텟을 얻었다.

그런데 그 단계를 뛰어넘고 바로 레벨업이라니.

시후는 빠르게 스테이터스 창을 열었다.

종족 : 인간

직위 : 없음

직업 : 무림인

<스텟 정보>

힘 : 225

민첩 : 230

체력 : 175 (HP : 17,500)

지능 : 165 (MP : 16,500)

마기 : 19

분배 가능한 스텟 : 5

확실히 5레벨이나 올라 있었다.

“대박이잖아?! 그럼 이건?!”

경험치에 대한 보상이 이 정도면 보상으로 준 아이템이 대체 어느 정도일지 절로 기대가 되었다.

자그마치 레전드리 등급의 아이템은 과연 어떨지 잔뜩 기대하며 설명을 확인했다.

[생명의 보옥]

[등급 : 레전드리]

[복용 아이템으로 영구적으로 ‘부활’ 1회 패시브 생성]

[부활 : HP 0에 달하는 순간 부활. 사용 후 재사용 대기 시간 24시간]

“미쳤다.”

시후는 아이템 설명을 읽은 후 입을 다물 수 없었다.

Safety World에서 부활 아이템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시후 역시 드라큘라 백작을 잡은 후 얻은 아이템들 중에서 꽤 많은 부활 아이템들을 봤다.

하지만 그것들은 어디까지나 장비에 붙어 있는 옵션 스킬.

세계적으로 유명한 Safety World에서 ‘부활’이라는 특별한 옵션이 붙은 아이템에 대한 정보는 이미 파다했다.

일전에 시간이 있어 인벤토리에 들어 있는 부활 아이템들과 커뮤니티에 올라와 있는 정보를 대조한 적이 있었다.

모두 커뮤니티에 올라와 있는 것들이었다.

그렇다는 것은 그것을 착용하고 있으면 누구든 알아본다는 거였다.

그리고 부활 옵션이 있다고 해서 마냥 좋은 것은 아니었다.

아이템의 등급에 따라 붙어 있는 옵션의 개수는 정해져 있었고, 재사용 대기 시간이 있는 부활 옵션보다는 민첩을 올려주는 옵션이 더 쓸 만하다는 게 정론이었다.

“그런데 그게 패시브라면 이야기가 다르지.”

지금까지 부활 능력을 패시브로 가진 유저는 들어보지 못했다.

시후는 그 쓰임새를 떠올려봤다.

만약, 위리놈과 싸울 때 이 능력이 있었다면 어땠을까.

‘적어도 그 이죽거리는 면상에 발차기 한 방은 더 날려주고 로그아웃했을 텐데.’

시후는 망설임 없이 ‘생명의 보옥’을 입 안에 밀어 넣었다.

사탕만 한 크기의 푸른색 보옥은 입 안에 들어가자마자 솜사탕처럼 녹아버렸다.

띠링-

[부활 1회 패시브 생성]

어마어마한 효능에 비해 간략한 메시지가 눈앞에 나타났다.

“흐, 흐흐.”

절로 웃음이 새어 나왔다.

참으로 절제하고 싶어도 그럴 수가 없었다.

그 때문인지 시후의 달콤한 말에 마냥 수줍어하던 공주가 어느새 저 멀리 떨어져 이상한 사람을 보는 눈빛으로 그를 쳐다보고 있었다.

“와, 왕자님. 괜찮으신 거예요?”

“크, 크흠. 내 그대에게 추태를 부렸구려.”

시후는 멋쩍어하며 애써 변명을 했다.

여기서 공주와의 관계가 틀어져서는 안 된다.

이미 짭짤한 보상의 맛을 보았기에 앞으로 연계될 히든 퀘스트를 무시할 수가 없었다.

분명 저 어려 보이는 공주와 무슨 접점이 있는 게 분명했다.

괜히 여기서 미친놈이라고 낙인찍히는 날에는 굴러들어온 호박을 갈고 뭉개버리는 일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무엇보다 슬슬 이곳을 정리해야 했다.

좀 전의 소란 때문인지 테스트를 부탁했던 블칸 영주의 기척이 느껴졌다.

아니나 다를까.

쾅-

문을 박차고 들어온 블칸 영주는 곧장 공주에게 달려갔다.

“딸아!”

“아버지!”

둘은 서로의 안부를 뜨거운 포옹으로 대신 묻고 답했다.

둘의 그런 모습을 보자 퀘스트 보상으로 들떠 있던 시후의 마음도 점차 가라앉았다.

‘이곳은 정말 NPC도 사람 같군.’

그저 가상의 세계에서 만들어낸 것이라 치부하기에는 둘의 애틋함이 생생히 느껴졌다.

시후는 밖의 상황을 묻고 싶었지만 둘의 재회를 방해하지 않기로 했다.

다행히 궁금한 것을 해결해 줄 사람이 금방 뒤따라 들어왔다.

“여기 계셨어요?”

조민이 블칸 영주를 따라온 것인지 둘을 힐끗거리고는 시후에게 다가왔다.

“밖은?”

시후는 먼저 밖의 상황부터 물었다.

그런데 어째서인지 조민의 안색이 좋지 못했다.

무언가 떫은 감을 한 입 베어 먹었을 때의 표정이랄까.

“무슨 일 있었어?”

“그게….”

조민은 쉽사리 입을 열지 못했다.

평소 조민의 성격을 생각해서는 이해가 되지 않는 모습이었다.

“뭔데 그래?”

“아무래도 직접 보시는 게….”

조민은 말끝을 흐렸다.

시후는 그런 조민이 어째서인지 블칸 영주의 눈치를 보는 것 같았다.

일단은 상황 파악이 먼저라는 생각에 땅을 박찼다.

천마멸겁장으로 뻥 뚫려버린 영주 성 위에 올라서자 밖의 상황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었다.

“뭐야, 무슨 테스트를 했길래 제들만 남았어?”

시후가 블칸 영주에게 테스트를 맡기고 떠났던 그 장소에는 지금 딸랑 셋만 남아 있었다.

본래 프로게이머 10명에 태산과 인호까지 합류했으니 12명이 있어야 정상이었다.

하지만 그곳에는 태산과 인호, D.M만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렇다고 그들의 꼬라지가 멀쩡한 것도 아니었다.

셋은 바닥에 주저앉아 거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거기에 어찌 된 것인지 셋은 흰색 티셔츠에 반바지 하나만 입고 있었다.

“저건 그냥 기본 아이템 아니야?”

“맞아요. 상점에 있는 100은화짜리 아이템이죠.”

“그런 걸 쟤네가 왜 입고 있어?”

시후는 자기가 준 아이템들은 어쩌고 저걸 입고 있냐고 묻는 거였다.

그리고 그 대답은 조민이 아닌 다른 곳에서 들려왔다.

“내가 벗겼네.”

블칸 영주였다.

그는 딸과의 뜨거운 재회가 끝났는지 공주의 손을 꼬옥 잡고 시후를 불렀다.

시후는 좀 더 자세한 이야기를 듣기 위해 훌쩍 뛰어내려 블칸 영주 앞에 내려섰다.

“영감, 그게 무슨…! 하아… 영감, 얼굴 좀 닦고 이야기하자.”

시후는 대답부터 들으려다가 블칸 영주의 얼굴을 발견하고는 망설였다.

딸과의 감격스러운 재회도 좋지만 주름이 자글자글한 노인의 눈물, 콧물이 범벅된 얼굴은 쉽게 적응되지 않았다.

“허, 허허. 자네가 이해해 주게나.”

블칸 영주가 별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웃자 공주가 손수건으로 그의 얼굴을 쓱쓱 닦아주었다.

“아버지. 그래도 왕자님 앞에서 체통은 지키셔야지요.”

“저자가 왕자더냐?”

“우리. 그 이야기는 천천히 하기로 하고. 일단 내 질문에 답 좀 해줄래?”

시후는 이야기가 삼천포로 샐 것 같아 재차 물었다.

그리고 이어지는 블칸 영주의 말에 시후는 창피함이 밀려왔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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