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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그인하는 천마님-156화 (156/275)

제156화

블칸 영주가 꺼낸 저 붉은색 모자.

기억에 있었다.

“‘진짜 남자’였나?”

대한민국 연예인들이 군대에 들어가 5박 6일 동안 훈련을 받는 그런 예능이었다.

조교라 불리는 현역병이 연예인들에게 하나하나 군대식 생활을 가르쳐줄 때 썼던 모자였다.

“영감, 그 모자는 어디서 났어?”

“일전에 근위병으로 있던 유저가 두고 간 것을 내가 챙겼네만, 이것의 효능을 아는가?”

“효능?”

저 조교 모자에 효능이 있었던가.

시후는 붉은색 모자가 대단한 아이템인가 싶어 독안공을 펼쳤다.

‘특별한 거는 없는데?’

붉은색 모자는 그저 치장을 위한 아이템이었다.

블칸 영주는 시후가 고개를 꺾어 의문을 표하자 진중하게 말했다.

“훈련병을 교육하는 데 그 효과가 극대화되네.”

그럴 리가. 그런 설명은 없었다.

[붉은색 조교 모자]

[착용 시 두 눈을 가릴 수 있다]

[위압감 +1]

설명은 이 세 줄이 다였다.

하지만 저 모자를 쓴 이후 블칸 영주의 분위가 변한 것은 사실이었다.

시후는 순간 아차 싶어 물었다.

“영감, 혹시 그거 쓰고 여기 영주 성 근위병들 교육했어?”

“그것을 자네가 어찌 아는가?”

“어… 그랬어? 그랬구나.”

미친 영감탱이.

도대체 얼마나 빡세게 교육했길래 근위병들이 모두 도망갔단 말인가.

아마도 지금 뿜어내는 기세로 훈련에 임했을 터였고, 그 결과 밤에 모두 탈출을 시도했을 터였다.

보지 않아도 눈에 선한 그 장면에 시후는 다가오는 일행들을 불쌍히 바라봤다.

“걱정 말게나, 테스트라고 하지 않았나. 내 저들의 실력만 가늠함세.”

블칸 영주는 시후가 무슨 걱정을 하고 있는지 다 알고 있다는 듯이 말했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그 말을 하는 블칸 영주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가 보였다.

“그래. 뭐, 별일이야 있겠어? 영감, 저기 쟤만….”

시후는 조민을 가리키려다가 손가락을 접었다.

여전히 프로게이머 무리에 둘러싸인 채 걸어오는 조민.

사자후까지 펼쳐 천마의 이름을 저들에게 알렸건만.

그보다 인터넷 방송을 하는 조민의 인기가 더 많았다.

순간 울컥했다.

“쟤도 같이 해줘.”

“그러지.”

이건 결코 질투 때문에 그러는 게 아니었다.

현대의 지괴에게 좀 더 천마를 위해야 함을 일깨워 주려는 시도였다.

그렇게 시후는 자기를 합리화하며 조민에게 이 내용을 전달했다.

“네? 이분이 블칸 영주라고요?”

“어, 테스트를 도와줄 테니까 잘 따르고.”

“오빠는 뭐 하시고요?”

“나는 스페셜 히든 퀘스트 마무리 좀 하고.”

“그거 저번에 끝난 거 아니었어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는 조민에게 시후는 더는 설명하지 않았다.

이러는 사이에도 남은 시간이 줄어들고 있으니 말이다.

“다녀와서 말해줄게. 그러니 저 영감 말 잘 따르고 있어.”

“알겠어요.”

“그럼, 영감 부탁 좀 하자.”

“크흠, 다녀오도록.”

시후와 블칸 영주가 마지막 인사를 나누는 것을 본 조민이 빠르게 일행들에게 내용을 설명했다.

“뭐? 그게 무슨 말이야?”

“그래도 요즘 떠들썩한 ‘천마’라고 해서 따라줬더니만. 뭐?”

“어이가 없네?”

다들 NPC가 자신들을 테스트한다는 말에 불만을 토로했다.

“저 자식들이….”

시후는 가뜩이나 시간도 없는데, 시작부터 불만을 토로하는 이들에게 손을 좀 쓸까 싶었다.

검지를 들어 지풍을 날리려는데 블칸 영주가 그 앞을 막아섰다.

“크흠, 넘겨받았으니 내가 알아서 하겠네.”

강한 자신감을 보이는 모습이었다.

아무래도 블칸 영주는 작정한 듯 보였다.

그도 일행들의 저런 모습을 보니 시후가 부탁한 테스트가 다른 의미로 변질한 듯싶었다.

시후는 그것을 읽고는 블칸 영주 뒤로 일행들을 봤다.

솔직한 심정으로 당장 지풍을 날려 모두 입을 다물게 하고 싶었다.

그런데 블칸 영주가 이렇게 앞을 막으며 자신을 믿어 보라고 하니 다른 것을 챙겨야 할 듯싶었다.

시후는 확연히 분간되는 일행들의 모습을 보며 손을 들었다.

자신을 아는 태산과 인호와 D.M은 조민을 도와 나머지 일행들을 설득했다.

하지만 제멋에 사는 녀석들답게 조금 전에 당했던 희준과 태영 역시 다른 이들처럼 불만을 토하고 있었다.

“그래.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고 했지.”

“그런 말이 있나?”

“어. 있어, 한국 속담에. 그래서 말인데, 저기 네 놈은 빼자.”

“으흠… 그러지.”

시후는 손가락으로 태산, 인호, D.M, 조민을 가리켰다.

아무래도 블칸 영주가 작정한 테스트에 저들까지 굴릴 필요는 없어 보였다.

실력 향상을 위한 훈련은 본인이 직접 하면 되는 거였고, 지금 블칸 영주가 할 테스트는 일종의 기죽이기일 테니 말이다.

그리고 그 기죽이기는 바로 시작되었다.

쿵-

블칸 영주가 한 발 걸어 나갔다.

그러자 주변이 격동하는 소리가 울렸다.

그 소리에 일행들은 입을 다물었다.

쿵-

블칸 영주의 두 번째 발걸음.

그 걸음걸이에 일행들 모두가 짓눌렸다.

보이지 않는 힘에 페트병이 찌부러지듯 일행들이 짓눌린 모습이 보였다.

다들 저마다의 힘과 스킬로 버티는 모습이 보였지만.

“흥.”

쿵-

블칸 영주의 세 번째 발걸음에 모두 바닥에 납작 엎드렸다.

시후가 지적한 네 명만을 제외하고 말이다.

“오, 역시.”

시후는 블칸 영주가 보여준 컨트롤에 감탄했다.

일전에 블칸 영주를 속박했던 저주는 고만고만한 저주가 아니었다.

만약 다른 이들이 같은 저주에 걸렸다면 지금 바닥에 찌부러진 이들처럼 지냈을 거였다.

그것을 블칸 영주는 의자에 앉아 있을 수 있을 정도로 버텨냈었다.

그것도 의자를 부수지 않고 말이다.

힘의 넣고 빼기와 지금 보여주는 정확한 영역 지정까지.

“곁에 두고 싶은 인재란 말이야.”

실로 탐이 나는 인재였다.

하지만 NPC인 이상 그를 데리고 다니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일전에 타란과 지젤을 데리고 다니면서 알게 된 사실이었다.

‘타임 리미트라고 했었나?’

퀘스트로 연결되어 있지 않다면 NPC는 유저와 동행하는 시간에 제한이 걸렸다.

유저와의 상호 호감도에 따라 다르게 적용하지만 말이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타란이나 프랑시스를 항상 데리고 다닐 수 없었다.

블칸 영주는 아까운 인재였지만 시후는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고 몸을 돌렸다.

시후는 빠르게 몸을 날려 블칸 영주 성 꼭대기로 날아갔다.

“일전에는 여기에 있었는데….”

위리놈과 만났을 때 블칸 영주 성을 기감으로 훑었던 것을 기억했다.

그때 위리놈과 블칸 영주를 제외한 인기척은 오직 영주 성 꼭대기뿐이었다.

움직임도 없었고 마치 잠들어 있는 듯한 그것에 시후는 이곳에 있는 사람을 공주로 확신했다.

시후는 천잠음영술을 펼쳐 건물 속으로 스며들었다.

외부에 창이 있었지만, 굳이 그것을 부수고 들어갈 필요를 못 느껴서였다.

그리고 떨어져 내린 공간에는.

“빙고.”

한 여성이 곱게 잠들어 있었다.

꽤 넓은 공간임에도 상당히 비좁게 느껴질 정도로 가구들이 즐비했다.

누가 봐도 ‘공주 방’이라고 느껴질 정도로 블링블링한 장식들로 가득했으며, 특히 공주라고 생각되는 여성은….

“공주 옷을 입고 잠들어 있네.”

동화책에서나 나올 법한 공주 옷을 입고 잠들어 있는 금발의 여성이었다.

시후는 자신이 기척을 냈음에도 깨지 않는 그녀에게 독안공을 펼쳤다.

종족 : 인간(T.NPC)

직위 : 백작의 영애

직업 : 마법사

<스텟 정보>

힘 : ?

민첩 : ?

체력 : ?

지능 : ?

<속박의 저주에 걸려 잠들어 있는 상태.>

<저주 때문에 일부 정보 열람 제한 상태.>

“으흠, 일단은 맞는다는 거잖아?”

시후는 ‘?’로 되어 있는 부분을 읽으면서 ‘백작의 영애’라는 정보에 그녀를 공주로 생각했다.

거기에 그녀에게 걸린 저주가 ‘속박의 저주’라는 것에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여기서 이렇게 운이 따라주나?”

시후는 더는 망설일 것도 없이 그녀를 향해 손을 들어 올렸다.

“천마흡기공”

사아아-

일전에 블칸 영주를 해주했을 때처럼 천마흡기공을 펼쳤다.

그러자 검은색의 짙은 연기가 그녀의 몸을 떠나 시후의 손을 따라 흘러 들어왔다.

블칸 영주 때처럼 거부하는 현상은 없었다.

다만.

“크윽, 뭐야, 이 엄청난 양은?!”

되레 블칸 영주 때보다 막대한 양의 마기가 쏟아져 들어왔다.

마치 무언가에 가로막혀 있던 해일이 길을 찾은 듯이 한꺼번에 쏟아져 들어왔다.

마기를 흡수할 수 있다는 것은 기쁜 일이었지만 아무리 좋은 것이라도 단번에 먹으면 체하는 법.

“이대로는 안 된다.”

지금 상태로는 시후가 주화입마에 빠져 죽을 수도 있었다.

Safety World에서 죽는다고 현실에서 큰 영향을 받는 것은 아니었지만 스페셜 히든 퀘스트 클리어 시간까지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여기서 로그아웃을 당하면 24시간 제한이 걸리므로 말 그대로 실패였다.

시후는 이대로 이만한 기회를 놓칠 수 없기에 다른 한 손을 하늘로 뻗어 올렸다.

“아깝지만, 어쩔 수 없지. 천마멸겁장.”

쾅쾅쾅-

시후는 다른 한 손으로 천마멸겁장을 연신 뿜어냈다.

그것에 천마지기를 담아서 말이다.

그녀에게서 흘러 들어오는 마기를 모두 흡수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럴 수 없다고 판단했기에 아쉽지만 흘려보내기로 한 거였다.

그렇다고 흘러 들어오는 양이 해일 같은데 샘물처럼 흘려 내보낼 수 없기에 천마멸겁장으로 방출했다.

쾅-

덕분에 공주가 있던 방의 지붕은 한순간에 사라졌으며 푸른 하늘에 시후가 내뿜는 천마멸겁장의 흑기(黑氣)가 연신 폭발했다.

“크흑, 언제까지….”

그렇게 천마멸겁장으로 마기를 흘려보내는 것이 벌써 일각이 넘었다.

시후의 이마에는 구슬땀이 흘러내렸고 몸에 차오르는 마기와는 다르게 기력은 상실되어 갔다.

이대로 더 버텨야 하나 싶은 그때.

띠링-

[마기를 흡수하였습니다.]

[흡수한 마기가 스텟으로 조정됩니다.]

[공주의 저주를 해주하였습니다.]

눈앞에 메시지와 함께 밀려들어 오던 마기가 뚝 끊겼다.

시후는 천마흡기공과 천마멸겁장을 멈추며 몸 상태를 확인했다.

“이 기운. 기력은 쇠했지만 천마지기가 그만큼 차올랐어. 잘하면 2단계로 올라갈 수 있겠어.”

일전에는 깨지 못했던 천마지체 1단계의 틀을 깰 만큼의 천마지기가 고양되어 있었다.

Safety World에서는 그것이 ‘마기’ 스텟으로 조정되어 수치화되어 있었지만, 현실에서는 다를 터였다.

당장 로그아웃을 하고 천마지체 1단계 틀을 깰 운기조식을 하고 싶었지만, 아직 그럴 수가 없었다.

“왜 퀘스트 완료 메시지가 나타나지 않는 거야?”

스페셜 히든 퀘스트 완료 메시지가 나타나지 않은 거였다.

저주가 해주되었다면 당연히 공주가 깨어나고 퀘스트가 완료될 거라 생각했는데, 공주는 여전히 두 눈을 감은 채였다.

시후는 공주의 몸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곁으로 다가갔다.

그러고는 공주의 한쪽 손을 들어 기를 흘려 넣었다.

“으흠, 정상인데 왜 안 깨어나지?”

그녀의 몸 상태는 정상이었다.

시후는 혹시나 천마흡기공에 의해 그녀 또한 기력을 상실한 것은 아닌가 싶어 그 상태로 슬쩍 기를 흘려 넣었다.

그러자 지금까지 미동도 없던 공주의 몸이 꿈틀댔다.

시후는 잡고 있던 손을 놓고는 그녀를 지켜봤다.

천마멸겁장 덕분에 지붕이 뻥 뚫려 달빛이 그녀의 얼굴에 드리워졌다.

미간을 꿈틀대던 그녀는 천천히 눈을 떴다.

그녀는 자신을 내려다보는 시후를 발견한 듯 그를 주시했다.

그리고 달빛에 드리워져 점차 보이는 시후의 모습에 공주는 아주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대는… 왕자님?!”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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