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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그인하는 천마님-151화 (151/275)

제151화

시후는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시작하며 독안공을 펼쳤다.

그런데.

‘뭐야, 안 읽혀?’

박초연에게 독안공을 펼쳤지만, 아무것도 읽히지 않았다.

독안공이 상대방에게 통하지 않은 일이 처음은 아니었다.

천마의 자리에 오르기 전까지 수많은 고수들을 만나면서 자연스럽게 알았다.

자신보다 무위가 위인 무인에게는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말이다.

‘그런데 얘는 뭐지?’

하지만 박초연은 그런 무인이 아니었다.

분명 무공을 익힌 흔적이 느껴졌다.

적어도 단전은 만들어져 있었다.

하지만 그래 봐야 고작 일류에 살짝 못 미치는 정도의 무위였다.

‘그런데 독안공을 막아?’

생각할 수 있는 것은 단 한 가지였다.

“기계를 잘 다루시나 봅니다?”

“네?”

“여성분치고 손이 거치시기에 물어봤습니다. 실례가 되었나요?”

“아닙니다. 사실을 말씀하신 건데 실례까지는…. 크흠.”

박초연은 허리를 펴며 자세를 고쳐 잡았다.

호흡도 정상으로 돌아왔기에 당당한 자세를 보였다.

“정식으로 소개하겠습니다. S.W SOFT 엔지니어 팀장 박초연 이사입니다.”

“아~ 엔지니어시군요.”

시후는 엔지니어가 무엇을 하는 직업인지 알지 못했다.

지금은 그저 저 말에 맞장구를 치며 박초연의 몸을 훑을 뿐이었다.

박초연은 시후의 시선이 불편한지 안경을 고쳐 썼다.

“저거였어?”

시후는 위화감을 느꼈다.

천마 시절에도 있었다.

독안공이 통하지 않은 적이 말이다.

박초연과 다른 거라면 그들의 수장은 무림오절이라 불리는 엄청난 노인네였던 것뿐.

그들은 무공보다는 기계에 능한 자들이었다.

기계를 ‘기관진식’이라 표현하는 그들은 자기들 몸에도 기계를 달았다.

작게는 갑자기 투척되는 독화살부터 크게는 잘린 팔을 대신한 의수가 있었다.

“그때 그 노친네가 자기 꿈이 뭐라 했더라.”

개방의 거지 늙은이와 죽이 잘 맞던 그 노인네는 술만 먹으면 자기 꿈을 이야기했었다.

“아, 신이라도 들어오지 못할 곳.”

“네?”

시후는 기억을 더듬던 중에 저도 모르게 말을 뱉었다.

“아닙니다. 예전에 어떤 노인네가 하던 말이 떠올라서요.”

“아, 네….”

그런데 어째 박초연의 반응이 심상치 않았다.

살짝 안절부절못한 것처럼 손가락을 꼼지락거렸다.

처음 만난 여성의 그런 모습까지 세세하게 챙겨 줄 만큼 시후는 사려가 깊지 않았다.

“그럼 계약서 먼저 볼까요?”

계약서를 거론하자 뒤에 있던 무테안경을 쓴 직원이 다가와 박초연이 내민 서류를 받아 들었다.

잠시 그가 꼼꼼히 계약서를 살피는 사이 시후는 용정차를 음미했다.

‘뭐지? 왜 날 뚫어지게 보는 거지?’

그런데 박초연이 시후를 너무나도 대놓고 바라봤다.

그 시선이 따갑게 느껴질 정도라 신경이 쓰였다.

하지만 시후는 애써 모르는 체하며 무테안경을 쓴 직원이 넘겨주는 서류를 받았다.

“시후 님, 계약서의 내용은 잘 변경되었습니다.”

시후는 무테안경을 쓴 직원이 내민 펜도 받아 들었다.

“자, 그럼, 하던 이야기를 마저 해볼까요?”

시후가 김철수에게 눈짓했다.

조금 전 이야기에 관해 설명하라는 거였다.

김철수는 박초연에게 다가가 속삭였다.

그러자 박초연의 눈동자가 커지는 게 보였다.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제 훈련 방식을 가장 잘 이해하는 아이를 매니저로….”

“네. 그렇게 하시죠.”

“이사님!”

박초연은 시후의 말을 딱 자른 후 그 조건을 수락했다.

덕분에 김철수만 미칠 노릇이었다.

매니저 계약을 이렇게 간단하게 결정하다니.

김철수가 당황한 모습을 보이자 박초연이 김철수의 슬쩍 쳐다봤다.

“제가 이 자리에 오면서 그 정도 권한도 가져오지 않았을까요?”

“그럼….”

“인사권에 대한 모든 권한을 위임받고 왔습니다. 그러니 강시후 님, 다른 요구 조건들 또한 편히 말씀해 주십시오.”

박초연이 이렇게까지 이야기하니 김철수는 할 말이 없었다.

이제는 자기 손을 떠난 사안이 된 거였다.

그렇게 생각하자 허탈한 심정에 맥이 탁 풀려 절로 어깨가 축 처졌다.

그때.

“저분, 저희 팀에 소속시켜 주시죠.”

시무룩한 모습의 김철수를 시후가 가리켰다.

“김철수 씨를요?”

“저요? 저를 왜요?”

이유를 묻는 김철수에게 시후는 미소를 지어 보였다.

“쓸 만해서?”

쓸 만해서 옆에 두고 싶다는 시후의 말에 박초연은 김철수를 바라봤다.

그리고 자신이 아는 김철수의 정보를 되뇌었다.

일전에 무슨 일로 중국으로 발령을 받기는 했지만 시후와의 접점을 만든 공은 컸다.

생각해보니 시후 옆에 저런 연결점을 두는 것도 나쁘지 않아 보였다.

“좋습니다. 김철수 씨 부서를 변경하도록 하지요.”

“이사님? 그래도 되는 건가요?”

“권한 위임받고 왔다니까요?”

“아, 네. 뭐… 그럼.”

김철수는 ‘그래도 걱정이 되는데’라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하지만 솔직한 심정으로는 환호를 지르고 싶었다.

시후가 속하는 팀이 어디인가.

국가 대표팀이었다.

그런 팀에서 시후와 함께 일을 한다니.

그리고 직접 두 눈으로 보지 않았는가.

시후가 어떤 플레이를 하는지.

거기에 시후의 레벨은 Lv. 199.

만약 월드 오브 리그전 전에 레벨업을 꾸준히 한다면.

“대박….”

김철수는 저도 모르게 감탄사를 흘렸다.

그 소리에 시후는 씨익 웃었다.

‘생각보다 쉽게 꾀었어.’

시후 역시 김철수의 능력을 높이 사고 있었다.

Safety World를 운영하는 S.W SOFT 직원이라는 이점 때문이 아니었다.

그의 진정한 능력은 따로 있었다.

앞으로 그 능력을 시후는 자신을 위해서만 사용하게 할 생각이었다.

‘천천히 길들여 주겠어.’

앞으로 김철수를 어찌할지 계획을 떠올리자 김철수가 흠칫하는 게 보였다.

저런 어벙한 모습을 좀 더 보고 싶었지만 박초연의 시선이 너무 따가워 이쪽부터 해결해야 할 것 같았다.

“저도 조건이 있어요.”

“말씀하세요. 계약은 서로가 원하는 것을 주고받는 것이니.”

“…….”

조건을 말하라고 했더니 박초연은 되레 입을 닫았다.

아니. 입술만 움직이고 있었다.

- 좀 전의 그 말. 신이라도 들어오지 못할 곳. 그것에 대해 알려주세요.

전음술이었다.

전음술 중에서도 가장 기초적인 전음술로, 입술을 움직여 기를 전달하는 거였다.

그에 시후는 들고 있던 펜으로 자기 턱을 툭툭 쳤다.

그리고 전음을 보냈다.

- 장소와 상황이 여의찮으니 따로 약속을 잡지?

박초연과는 다르게 입술을 전혀 움직이지 않고 말이다.

주변 사람들은 그저 시후가 무언가 골똘히 생각하는 듯한 모습이었지만 박초연에게는 전혀 다르게 보였다.

전음술 하나만으로 그는 말하고 있었다.

자신의 무위는 감히 네가 견줄 수준이 아님을 말이다.

박초연은 품속에서 스마트폰을 꺼내 테이블에 올려놨다.

“현재 저희가 모신 프로게이머들과 오늘 자리를 마련하겠습니다.”

“밥이나 먹자는 건 아니실 거고, 이유는?”

“D.M에게 보여주었던 실력. 그들에게도 보여주길 바랍니다.”

“실력으로 그들을 설득해서 내가 내건 조건들을 수긍하게 해라? 너무 떠넘기는 것 아닙니까?”

“그 정도의 실력은 있다고 봅니다. 그리고 그 방법이 가장 빠른 방법이고요.”

박초연의 말에 옆에 있던 김철수가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김철수도 S.W SOFT에서 계약한 프로게이머들에 대해서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나이, 성별은 달랐지만, 그들에게는 공통점이 있었다.

“박 이사님의 말씀이 맞습니다. 그들은 하나같이 본인들 실력에 자신감이 차고 넘칩니다.”

말을 돌려 말하기는 했지만 건방지다는 거였다.

시후는 약속을 잡으라는 전음을 이런 방식으로 처리하는 박초연에 고개를 끄덕였다.

김철수만큼이나 이 사람도 곁에 두고 싶을 정도로 능력이 탐났다.

“좋습니다. 그럼, 그 자리에 D.M과 저 녀석도 같이 있었으면 좋겠군요.”

지잉-

시후가 문을 가리키자 때마침 캡슐방 문이 열렸다.

“오빠, 부르셨다고요?”

조민이었다.

어깨가 살짝 들썩이는 것을 보니 상당히 무리해서 달려온 것 같았다.

제갈상민은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나 조민을 시후 옆에 앉혔다.

“이 아이… 아니, 이분을 매니저로 계약하라고요?”

김철수는 어이가 없었다.

아무리 나이를 많이 쳐줘도 고등학생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런 그녀를 매니저로 앉히라니.

그건 박초연 역시 마찬가지였다.

시후의 조건을 모두 들어줄 생각이기는 했지만 이건 좀 너무한 게 아닌가 싶었다.

그런 둘의 반응에 시후보다 조민이 먼저 입을 열었다.

“안녕하세요. 제갈조민입니다. Safety World 닉네임은 유라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유라?! 냉혈미녀 유라?! 정말 그 유라이십니까?!”

조민의 자기소개에 김철수가 놀랐다.

이번에도 박초연 역시 같은 반응이었다.

자기소개 한 번에 반응이 180도 바뀐 것에 시후가 조민을 쳐다봤다.

그러자 조민이 검지와 중지를 들어 V를 그렸다.

“봤죠? 이런 게 100만 너튜버의 위엄이랍니다.”

한쪽 눈을 찡긋거리며 윙크까지 했다.

도대체 100만 명이나 구독하는 너튜버가 무엇인지 물어보기도 전에 김철수가 손을 불쑥 내밀었다.

“정말 팬입니다! 유라 님!!”

“호, 호호. 감사해요.”

조민은 김철수의 손을 마주 잡으며 가식적인 웃음을 흘렸다.

그런 반응에 시후는 이야기가 한결 쉬울 거라 생각했다.

“그럼 이 녀석의 능력은 입증된 겁니까?”

“네. 유라 님의 너튜브 영상은 저도 봤으니까요. 퀘스트에 대한 이해도와 분석력도 탁월하시고, 유라 님이라고 하시면… 그들도 반길 것도 같네요.”

또다시 거론된 다른 프로게이머들 이야기가 신경이 쓰였지만, 일단은 이야기를 진행했다.

“그럼, 그 내용들 포함하여 계약서 작성하시죠.”

“네.”

박초연은 계약서에 직접 수기로 내용들을 적어 시후에게 내밀었다.

시후는 내용을 확인한 후 계약서에 사인했다.

“앞으로 3년간 S.W SOFT의 프로게이머이니 잘 부탁드립니다.”

“그럼요, 물론, 프리랜서이시지만요.”

“소속감이 물씬 들고 있으니 걱정은 접어두셔도 됩니다.”

“그렇게 해주신다면 감사합니다.”

시후는 박초연과 악수하며 앞으로의 포부를 내비쳤다.

자신을 S.W SOFT가 굳이 귀찮게 하지 않는다면 3년간은 잘 따르겠다는 말이었다.

그렇게 시후의 계약이 끝나자 박초연은 그 자리에서 조민과 D.M의 계약을 진행시켰다.

시후가 저녁 시간까지 어디 가지 않았으면 하는 눈치였다.

‘걱정이 많은 타입이군.’

시후도 그녀의 의도를 눈치챘기에 스마트폰을 꺼냈다.

소파에 편하게 등을 기댄 채로 초록창 앱을 열었다.

‘박초연이라.’

눈앞에 있는 ‘박초연’을 검색하는 시후였다.

‘대전 출신, S.W SOFT 이사. 국제기능 올림픽 대회 등등 다수의 수상 경력.’

초록창에 나타난 정보는 일반적인 것들이었다.

시후는 박초연 사진 밑에 ‘인물 정보 더보기’를 눌렀다.

나타난 정보에 시후의 눈썹이 꿈틀댔다.

그러고는.

- 그녀도 무림인이다.

막 계약서에 사인을 끝마친 조민에게 전음을 보냈다.

조민은 들고 있던 펜이 떨릴 정도로 놀랐지만, 곧 침착함을 유지하며 시후를 돌아봤다.

“오빠? 왜 오빠는 항상 중요한 이야기는 나중에 하실까요?”

“네 그런 표정이 보고 싶어서?”

시후는 한쪽 눈썹을 꿈틀대는 조민의 볼을 슬쩍 꼬집었다.

“두 분께서는 상당히 친해 보이십니다. 허, 허허.”

그런 둘의 모습을 보고 김철수가 허허 웃었다.

하지만 이내 벌어지는 일에 웃음기는 순식간에 사라졌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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