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6화
시후는 당소영을 데리고 나와 제갈세가로 향했다.
대환단을 복용시키고 추궁과혈을 하기 위해 마땅한 장소로 제갈세가를 찾은 거였다.
쿵쿵-
내공을 실어 자연스럽게 제갈세가 대문을 두드렸다.
안쪽에서 서둘러 달려오는 발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문이 열리자.
“응? 너 왜 여기 있냐?”
“그러는 저분은 왜 여기 계시는데요?”
제갈세가 대문을 연 사람은 제갈 조민이었다.
조민은 시후의 질문에 다른 질문으로 답했다.
한껏 치솟은 눈썹으로 시후의 옆에 꼭 붙어 있는 당소영을 노려보며 말이다.
그에 당소영은 환한 미소로 슬쩍 손을 들어 흔들어 답했다.
그에 조민은 고개를 홱 돌려 시후를 노려봤다.
시후는 순간 뜨끔했다.
‘왜? 내가 왜?’
이유는 알 수 없었다.
그저 조민과 당소영과 자신이 있는 지금 이 자리가 불편했다.
괜히 조금 더 있다가는 이마에 식은땀이라도 흐를 기세였다.
“비켜. 수련관 좀 쓰자.”
“거긴… 아! 그리된 거군요?”
역시나 조민은 똑똑했다.
다크서클이 짙은 당소영이 이 늦은 시간 시후 옆에 있는 상황에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지 유추했다.
“쯧. 그 영감님은 참으로 복을 걷어차는 재주가 있으시네요. 아, 언니 미안요.”
“아니야, 나도 마침 같은 생각을 하던 차였어.”
시후가 앞장서 걸어가자 뒤에 따라오는 둘의 대화였다.
조민은 당성치를 욕했고, 당소영은 그걸 인정하며 받아쳤다.
제 아버지를 욕하는 데도 당소영은 그러려니 했다.
그만큼 이번 일은 당성치의 일생일대 실수였다.
그것도 결코 돌이킬 수 없는.
당소연은 품속에서 연신 울리는 스마트폰을 슬쩍 꺼냈다.
[아버지]
당성치였다.
그 외에도 톡이며 문자가 수두룩 왔다.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아버지일 거였다.
그 내용 또한 짐작이 갔다.
시후의 마음을 좀 돌려달라는 것일 거였다.
시후가 점혈을 해 놓았으니 비서를 시켜 연락했겠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이미 당성치의 이런 행동은 질릴 만큼 겪었으니 말이다.
당소영이 한숨을 내쉬자 그걸 물끄러미 보고 있던 조민이 손을 슬쩍 내밀었다.
“왜?”
“폰 주세요.”
“어?”
“수련관에서는 스마트폰 사용이 불가해요.”
어느덧 다다른 수련관 앞에서 조민은 당소영의 스마트폰을 수거했다.
물론, 그런 규정은 없었다.
그저 당소영이 스마트폰을 보며 마음 상해하는 것을 보기 싫었을 뿐이었다.
시후도 그랬지만 지금의 당소영은 보는 이로 하여금 도움의 손길을 주고 싶을 정도로 애처로워 보였다.
당소영 역시 조민의 그런 마음을 알았기에 미소를 띠며 스마트폰을 넘겼다.
그리고 실제로 스마트폰을 넘기자 한결 마음이 홀가분해졌다.
그 모습에 앞장서 걸어가던 시후의 입에 미소가 걸렸다.
둘은 보지 못했지만 말이다.
시후는 수련관 앞에 다다르자 손을 슬쩍 들어 올려 문을 열었다.
“뭐야, 너는 또 왜 여기 있냐?”
“오랜만에 뵙습니다.”
“오셨습니까.”
제갈신길과 제갈상민이 시후에게 허리 숙여 인사를 했다.
시후는 손을 슬쩍 들어 인사를 받고는 제갈신길을 바라봤다.
왜 제갈상민이 여기 있냐고 묻는 거였다.
“그간 이 아이도 많은 반성의 시간을 가졌기에 이제 일선에 나서려고 합니다.”
제갈상민은 이혼한 아내의 일로 그간 근신의 시간을 가졌다.
J.K 제약회사 사장이라는 직분이 있기에 그 일은 했지만 제갈세가의 일에는 손을 대지 못했다.
그랬기에 그동안 조민이 시후를 따르며 벌인 행보를 전해 듣기만 했다.
놀라웠다.
평소 똑똑한 것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능력을 펼칠 기회가 주어지니 날개를 펴고 훨훨 날았다.
그 결과 생전 처음 보는 보물들이 제갈세가에 들어왔다.
그중에는 탐이 날 정도의 보검도 있었다.
이미 세가에서는 차기 가주 후보로 제갈조민이 거론되고 있었다.
조악한 섭혼술에 빠졌던 제갈상민은 이미 장로들이 잊은 듯했다.
제갈상민 역시 자신의 처지를 이해했다.
그렇다고 세가의 일에서 손을 놓고 싶지는 않았다.
40년을 넘게 세가를 위해 살아왔고 자신 역시 제갈가의 일원이었다.
그래서 제갈신길에게 간청했다.
자신도 이제는 세가의 일에 손을 보태고 싶다고.
“앞으로 도련님께 작은 도움이나마 드리고자 이렇게 인사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제갈상민이 자신의 뜻을 시후에게 내비쳤다.
시후는 그저 물끄러미 제갈상민을 볼 뿐이었다.
그에 애가 타는 것은 제갈신길이었다.
제갈신길은 자신의 자식이 저지른 짓을 절대 잊지 않았다.
하지만 아비 된 자로서 언제까지 자식이 속상해하는 것을 두고 볼 수는 없었다.
그뿐만 아니더라도 객관적으로 봐도 제갈상민의 능력은 뛰어났다.
괜히 제약회사 사장 자리에 앉혀 놓은 게 아니었다.
경험이 적은 조민의 부족한 면을 제갈상민이 채워줄 거라 생각했다.
시후는 제갈상민을 소개하는 제갈신길의 표정에서 간절함을 보았다.
‘하긴, 앞으로 제갈가에서 벌일 일들을 생각하면 조민 하나로는 일손이 부족하기는 하지.’
시후 역시 조민 혼자서는 앞으로 벌일 일들을 모두 처리할 수 없을 거라 생각했다.
“뭐, 그러든가. 하지만. 저번처럼 뒤통수치는 일이 벌어지면, 알지?”
스윽-
시후는 엄지를 들어 올려 자기 목을 베는 시늉을 했다.
다소 거친 행동이었지만 이곳에 있는 누구도 그 행동에 뭐라 하지 않았다.
다들 시후의 성향을 알고 있었다.
자기 사람은 살뜰히 챙기지만, 등을 돌린 사람에게는 악귀보다 무서운 존재가 되는 것을 말이다.
그런 시후가 자기에게 칼을 휘두른 제갈상민을 다시 옆에 두기로 했다.
그것만으로도 시후가 큰 결심을 한 것을 알 수 있었다.
“감사합니다.”
“백골난망하여 보은하겠습니다.”
제갈신길과 제갈상민은 재차 허리를 숙여 인사를 했다.
시후는 그런 낯 뜨거워지는 장면에 손을 슬쩍 들어 둘의 허리를 일으켰다.
살랑이는 봄바람 같은 기운에 일어난 둘의 두 눈은 미친 듯이 요동쳤다.
이 한 번의 수로 시후의 무위를 짐작하는 거였다.
전에는 그저 높은 산을 보는 느낌이었다면 지금은 구름에 가려진 산을 보는 느낌이었다.
“중국에서 또 다른 기연이 있으셨군요. 감축드립니다.”
“뭐, 별거 아니었어. 그보다, 호위 좀 부탁해도 될까?”
제갈신길의 축하에 시후는 호위를 부탁했다.
그러면서 제갈상민을 슬쩍 봤다.
그 눈빛에 제갈상민은 순식간에 얼굴이 붉어졌다.
일전에 제갈신길을 치료할 때 자신이 달려든 것을 시후가 은연중에 지적하는 거였다.
“그런 일은 앞으로 절대 없을 것입니다.”
“사람 일은 모르는 거 알지?”
“절대. 없을 겁니다.”
제갈상민은 재차 다짐하듯 강조했다.
그 말에 지금까지 조용히 있던 조민이 슬쩍 다가왔다.
“숙부님을 나무라는 게 아니에요. 되레 응원하는 거예요. 그쵸, 오빠?”
조민의 말에 시후는 고개를 돌려 딴청을 피웠다.
그 모습에 제갈상민은 당황스럽다는 듯이 조민을 쳐다봤다.
저게 어딜 봐서 응원하는 태도냐는 눈빛이었다.
“오빠가 좀 츤데레시기는 해요.”
“츤데… 크흠.”
제갈상민은 하마터면 ‘츤데레는 저럴 때 쓰는 말이 아니다’라고 외칠 뻔했다.
“아, 됐고. 준비나 해.”
그만 떠들라는 시후의 말에 다들 움직였다.
당소영은 수련관 중앙에 가부좌를 틀고 앉았고 그 주위를 제갈가 세 명이 경계하듯 섰다.
시후는 당소영의 등 뒤에 자리한 후 등에 오른손을 얹었다.
그러고는 품속에 있던 대환단을 내밀었다.
“복용해.”
당소영은 한 차례 심호흡을 하더니 대환단을 입 안에 넣었다.
대환단은 입에 넣자 침과 뒤섞여 목구멍으로 스르륵 넘어갔다.
그러자 순식간에 후끈한 열기가 온몸을 뒤덮었다.
“내가 일러주는 대로 기를 운용하거라. 극양의 기운을 천천히 돌리는 거다. 중완에 모인 기를 기해를 지나 단전에 모아라. 단전을 가득 채울 정도의 느낌이 들면 다시 기해, 중완을 지나 거궐에 모아라. 그러고는 거대한 둑에 바늘구멍을 내어 물을 빼내듯 단중으로 흘려 넣어라.”
당소영은 시후가 시키는 대로 기를 운용했다.
몸이 부들부들 떨릴 정도로 기가 요동쳤다.
시후는 당소영의 등에 댄 손을 통해 기를 불어 넣었다.
“네가 정신을 잃거나 단전이 깨지는 일은 없도록 내가 손을 쓸 테니 너는 거기에만 집중해라. 그래야 네 심장에 파고든 오공단금술의 한기를 밀어낼 수 있다.”
그렇게 한 시진이 지날 때쯤, 당소영의 눈, 코, 입, 귀에서 하얀 액체가 흘러나왔다.
이는 몸속에 스며든 한기를 몸속의 수분을 통해 내보내는 거였다.
시후는 그제야 당소영의 등에서 손을 뗐다.
이제 당소영은 오공단금술의 마수에서 벗어났다.
그뿐만 아니라 음과 양의 기운을 받아들인 덕분에 적어도 일 갑자의 내공은 얻었을 거였다.
시후는 여전히 두 눈을 감고 있는 당소영을 물끄러미 보더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운기조식이 끝나면 한동안 보살펴 주거라.”
“네.”
“며칠 후에 오마.”
그 말을 끝으로 시후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수련관을 나왔다.
그곳에 더 있다가는 당소영의 얼굴에 손을 뻗어 흘러나온 액체를 닦아줄 것만 같아서였다.
“아직이다. 아직.”
시후는 당소영에 대한 자신의 마음을 아직 정확히 정의하지 못했다.
과거에 대한 연민인지. 현재에 대한 애정인지 말이다.
그 일은 시간이 해결해줄 거라 믿었다.
앞으로 그녀와는 자주 만날 것이고 그러다 보면 자기 마음에 대해 알게 될 거라 믿었다.
이제 당소영의 일도 해결했으니 다음 계획을 진행할 차례였다.
시후는 내일을 위해 서둘러 집에 돌아왔다.
그리고 다음 날. 9시가 되자마자 스마트폰을 들어 한쪽 손에 든 명함의 전화번호를 눌렀다.
- 네. S.W SOFT 운영기획실장 김철수입니다.
“한국이신가 봅니다?”
- 네?
“국제전화로 넘어가지 않는 거 보면. 축하드릴 일이 있으셨겠네요?”
- 너 누군데 아침부터 장난 전화야? 확 경찰에 신고해 버릴까 보다. 할 일이 없으면 Safety World나 해라. 어?!
띠릭-
김철수는 제 할 말만 하고 전화를 끊었다.
그런데 상대방이 먼저 전화를 끊었음에도 시후는 전혀 기분이 상하지 않았다.
되레 한쪽 입꼬리를 올려 웃고 있었다.
시후는 테이블 위에 스마트폰을 내려놓고는 물끄러미 바라봤다.
“하나, 둘, 셋, 네에….”
우웅-우웅-
넷을 세기도 전에 스마트폰이 울렸다.
발신인은 조금 전 시후가 전화를 걸었던 김철수의 번호였다.
스마트폰이 연신 울리는 데도 시후는 통화 연결을 하지 않았다.
화면이 부재중으로 바뀌자 다시 스마트폰이 울렸다.
역시 이번에도 발신인은 김철수였다.
그렇게 다섯 번이나 같은 일이 반복된 후에야 시후는 통화를 연결했다.
“아침부터 왜 계속 전화질입니까?”
- 아이고! 제가 잠이 덜 깨서 정신이 없었나 봅니다.
“아, 그러셨구나. 그럼 더 주무시죠.”
띠릭-
이번에는 시후가 전화를 끊었다.
그러자 바로 스마트폰이 울렸다.
우웅-
한 번 울리고 마는 것을 보니 문자 메시지였다.
김철수였다.
- 정말 정말 죄송합니다!!! (이모티콘)
죄송하다며 보낸 문자에는 귀여운 곰돌이가 허리를 굽신굽신하고 있었다.
“이 정도면 애가 좀 탔으려나.”
시후의 전략이었다.
누군가와 거래를 목적으로 대화를 진행할 때는 언제나 우위에 있어야 하기에 이러는 거였다.
시후는 다시 김철수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번에는 통화음이 울리기도 전에 받았다.
- 네! 김철수입니다! 세상에 이렇게나 어려운 발걸음을 해주셔서 감사할 따름입니다!
“그러니까요. 그렇게 어렵게 전화를 걸었는데 가볍게 끊어버리시니 마음이 아프네요.”
- 그건 제가 직접 만나 뵙고 사죄를 드리겠습니다! 어디 계시는지 말씀만 해주시면 제가 지금 당장이라도 달려가겠습니다!
“그러세요? 마침 저도 외출 준비 중이었는데. J.K 제약회사 1층에서 뵙죠.”
- 네! 네네! 지금 당장 달려가겠습니다!
실제로 스마트폰 너머로 빠르게 달리는 김철수의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시후는 집을 나와 다시 한번 천마비행공을 펼쳐 J.K 제약회사로 날아갔다.
그리고 잠시 후 헐레벌떡 달려온 김철수는 J.K 제약회사 사장실에 앉아 있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