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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그인하는 천마님-142화 (142/275)

제142화

사지가 잘린 린을 끌어안은 진류강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무공을 사용하면 안 되는 몸 상태임에도 경공술을 펼쳤다.

그 뒤를 혈교인들이 따랐다.

공사장을 벗어나 건물 위로 날아오른 이들이 도착한 곳은 허름한 건물 옥상이었다.

진류강이 내려서자 기다렸다는 듯이 사람들이 다가왔다.

“소교주님, 어서 이쪽으로.”

그중 허리가 굽은 꼽추 노인이 진류강을 안내했다.

옥상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니 외부와는 전혀 다른 공간이 나타났다.

당장 보수 공사가 필요할 것처럼 보이던 외부와는 전혀 다른 내부였다.

내려가는 계단부터 에스컬레이터로 되어 있었으며, 벽면은 두꺼운 철판으로 되어 있었다.

박격포 정도의 충격쯤은 가볍게 튕겨낼 것 같았다.

그 안에는 외부인의 침입을 저지할 수 있는 여러 가지 장치들도 있었다.

기관총, 독가스, 전기 충격기 등.

본래라면 이곳 혈교 쓰촨성 지부가 처음인 진류강에게 이것들의 기능을 연신 떠들어야 하는 꼽추 노인은 말없이 걸음을 빨리했다.

지금 진류강에게는 그런 것들이 전혀 중요치 않아 보였으니 말이다.

꼽추 노인은 진류강을 구석진 방으로 안내했다.

그 방 중앙에는 거대한 욕조 하나만 덩그러니 있었다.

“소교주님, 여기에 담그시면 됩니다.”

첨벙-

꼽추 노인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진류강이 린과 함께 거대한 욕조에 들어갔다.

찐득한 붉은색 피가 가득 담긴 욕조였다.

“후우, 후우, 후우.”

진류강은 연신 심호흡했다.

그사이 꼽추 노인이 단약 몇 알을 내밀었다.

“소교주님께서는 좀 더 옥체를 보존하셔야 합니다.”

“알아.”

“아시는 분이 지금 상태에서 경공을 펼치셨습니까.”

“안다고.”

“혈천마라강시가 중요하다 하지만 소교주님의….”

“마뇌불. 안다고 했잖아.”

“…….”

마뇌불(魔腦佛)이라 불린 꼽추 노인은 혈교의 두뇌 역할을 하는 책사였다.

그리고 혈천마라강시를 만든 장본인이었다.

그는 자기 말을 끊으며 인상을 구긴 진류강을 보며 얕은 한숨을 내쉬었다.

“혈영수에 몸을 담갔으니 곧 차도가 있을 겁니다. 저희는 물러가겠습니다.”

“그래. 너희들도 고생했다. 가서 몸을 보존하라.”

“네.”

진류강을 뒤따랐던 이들이 간결하게 대답한 후 마뇌불과 함께 물러갔다.

혈영수에 몸을 담그니 역류하던 기운과 심장박동이 느려지는 게 느껴졌다.

“후우…. 그놈의 사상지공.”

약선방에서 빼내지 못한 사상지공의 위력을 절실히 경험하고 있었다.

사상지공을 얻지 못한 것은 아쉬웠으나 지금은 다른 문제가 더 컸다.

“그 검. 어떻게 그놈 손에 있는 거지?”

멸마절지검은 혈교에서 진즉부터 찾고 있던 물건이었다.

멸마절지검뿐만이 아니었다. 혈교는 지금껏 자신들에게 위해를 가할 수 있는 것들은 모조리 찾았다.

진류강이 기억하는 것만 해도 100개가 넘었다.

혈교는 그것들을 찾아 없앴다.

교주가 바뀌는 몇 대에 걸쳐 이 같은 일들을 반복했다.

진류강 역시 그 일을 했고, 혈천마라강시를 만든 후에 가장 심혈을 기울여 찾던 것이 멸마절지검이었다.

“그런데 좀처럼 찾을 수 없던 멸마절지검이 고작 그런 녹슨 검일 줄이야.”

고작 녹슨 검이었지만 그 위력은 고문서에 적힌 그대로였다.

린의 모습이 그 위력을 증명했다.

혈영수가 없었다면 린의 팔과 다리가 저렇게 자라나지 못할 수도 있었다.

“그놈은 어떻게 그 검의 위치를 알았을까? 그리고 그 검이 혈천마라강시에게 이만한 피해를 줄 수 있는 보검이라는 것을 어찌 알았을까?”

진류강은 린의 의식이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이 모든 궁금증에 대한 해답은 린이 풀어줄 터였다.

차 한잔 마실 시간이 지났을까.

린의 팔꿈치가 보일 때쯤 그녀가 눈을 떴다.

진류강은 조급해하지 않았다.

자신이 닦달하지 않아도 린은 알아서 입을 열 터였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 침묵이 이어지는 게 싫었다.

그래서 먼저 입을 열었다.

“너를 안 지 벌써 20년이구나. 소교주 쟁탈전에서 처음 만났었지. 내 수발을 들기 위해 왔던 네가 이젠….”

뒷말은 굳이 잇지 않았다.

해봐야 린이나 자신이나 가슴만 아플 터였다.

“소교주님….”

린은 진류강을 향해 손을 들어 올리다 멈췄다.

손이라 생각하고 들어 올린 그것에는 아직 팔꿈치까지밖에 없었다.

린은 급히 혈영수에 다시 팔을 담그고는 예의 무표정을 지었다.

“그가 천마의 무공을 사용했습니다.”

“……! 뭐?!”

린의 입에서 믿기 힘든 말이 튀어나왔다.

진류강이 놀랐지만 린은 계속 말을 이었다.

“그리고 그는 화산과 소림의 무공도 사용했습니다.”

“설마?!”

“소교주님께서 생각하시는 게 맞는 것 같습니다.”

진류강은 혈영수에서 벌떡 일어났다.

만약 린의 말이 사실이라면 당장 그를 만나야 했다.

천마의 무공을 사용하고 그와 반대되는 정파의 무공도 펼칠 줄 아는 자.

진류강이 그토록 찾아 헤매던 자였다.

“린! 나는 잠시 나갔다 올 테니….”

덥석-

린은 당장 혈영수에서 뛰쳐나가려는 진류강의 팔을 붙잡았다.

진류강은 힘으로 그 팔을 뿌리칠 수 없었다.

린이 아직 손목뿐인 팔로 자신을 잡은 이유가 있을 거라 생각했다.

“왜?”

“찾으러 가지 않으셔도 돼요.”

“무슨 말이야?”

“그가 누구인지 알아요.”

“우리가 아는 자라고?”

진류강의 다급한 말에 린은 한 차례 심호흡을 하며 입을 열었다.

“네. 남궁세가. 그는 남궁세가의 가주 남궁정도였어요.”

* * *

시후는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검은색인지, 회색인지.

정확히 콕 집어 말할 수 없는 색에 빠져 있었다.

“또, 꿈인가?”

이런 감각이 느껴지는 것은 꿈일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딱히 주변에 무언가 보이지 않았기에 그저 걸었다.

한참을 걸었다고 생각했을 때.

“나 혼자가 아닌가?”

언제부터인지는 모르겠지만 주변에서 무언가가 느껴졌다.

그립다고 해야 할까. 반갑다고 해야 할까.

잠시 떨어져 있던 친우를 만나는 그런 느낌이었다.

그러고 보니 이 느낌. 언젠가 느껴본 적이 있었다.

“꿈이 아니라 심상의 세계였나. 무혈검?”

시후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검은 기류와 함께 한 자루의 검이 나타났다.

칠흑보다 어두워 보이는 무혈검이었다.

시후는 무혈검에게 다가갔다.

하지만 손을 뻗어 잡지는 않았다.

그저 무혈검의 주위를 거닐며 말을 걸었다.

“예전에는 멋모르고 널 잡으려다 된통 당했었지.”

끼이잉-

시후의 말에 대답이라도 하듯 무혈검이 울었다.

시후는 피식 웃었다.

천마 시절. 무혈검이 자신을 심상의 세계로 부른 적이 있었다.

꿈인 줄로만 알았던 곳에서 만났으니 아무 의심 없이 무혈검을 잡았다.

아니. 잡으려 했다.

손끝이 닿는 순간 무혈검이 날뛰었다.

마치 누군가가 이기어검의 술을 펼치는 것처럼 천마를 베어왔다.

천마는 자신이 펼칠 수 있는 모든 무공을 펼쳐 무혈검과 싸웠다.

그때가 떠오르자 시후는 절로 미소가 그려졌다.

“그때처럼 싸우고 싶은 것이냐?”

끼이잉-

옛 추억을 떠올리며 신명 나게 움직여 보는 것도 좋겠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특히 무혈검의 울림이 달랐다.

다른 무언가를 알려주려는 듯.

끼잉-끼이잉-

검신까지 떨며 우는 모습이 달랐다.

‘심상의 세계에서 저런 모습을 보이는 무혈검이라.’

시후는 생각이 많아졌다.

“오랜만에 만났다고 반갑다며 인사하는 것도 아닐 테고. 네가 원하는 게 뭘까?”

신의 금속이라 일컬어지는 현철로 만든 무혈검은 주인을 따른다.

보검이나 요검이 그러하듯 무혈검 또한 천마의 피를 먹었었다.

천마를 주인으로 여겼던 무혈검이 연신 우는 모습에 시후는 눈을 번쩍였다.

“그래. 너와는 인사가 먼저였구나.”

짝-

시후는 내공을 가득 담아 손뼉을 쳤다.

그러자 심상의 세계가 걷히며 다른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여긴…?”

“도, 도련님! 일어나셨습니까?!”

시후의 목소리에 가장 먼저 반응한 것은 진지춘이었다.

진지춘은 세상 다급한 목소리로 외쳤다.

그 뒤를 이어 태산, 인호, 조민이 외쳤다.

다들 비명에 가까운 외침이었다.

시후는 보지 않아도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 수 있었다.

‘천마 시절에도 이런 일이 있었으니까.’

무혈검을 얻은 후 천마가 정신을 잃었을 때 녀석이 일을 벌인 적이 있었다.

보검보다는 요검(妖劍)에 가까운 무혈검.

주인의 피를 머금음으로써 주인의 기를 가져와 스스로 움직였다.

그것으로 주인의 몸을 지켰다.

지금처럼.

“시, 시후야, 일어났으면 저것 좀 어떻게 해봐.”

태산의 다급한 목소리가 지금의 상황을 대변했다.

허공에 두둥실 떠 있는 무혈검은 예기(銳氣)는 없었으나 누군가 다가올라치면 그 앞을 막아섰다.

덕분에 시후의 곁에 있는 사람이라고는 당소영뿐이었다.

시후는 자신이 품에 안고 있는 당소영을 봤다.

입술이 시퍼런 색을 띨 정도로 창백한 얼굴이었다.

시후는 벌떡 일어나 빠르게 당소영의 몸에 혈을 찔렀다.

‘내가 기절한 사이 심장 근처에 쳐놓은 기막이 뚫렸어.’

그랬기에 당장 죽을 것 같은 혈색을 띠고 있는 거였다.

시후는 잔뜩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당소영을 품에 안았다.

“괜찮을 거다.”

“네.”

아직 늦지 않았다.

저런 상태가 되었음에도 정신을 잃은 자신을 놓지 않은 당소영이었다.

삶의 끈을 놓지 않았으니 오공단금술의 한기를 몰아내고 치료를 하면 되었다.

“돌팔이. 준비해라.”

척-

시후가 손을 들어 올리자 진지춘이 손에 든 침 하나를 꼭 쥐었다.

혈교인들과 싸울 때 품에 있던 침을 모두 날리고 겨우 하나가 남았다.

이것도 당소영의 상태를 알았기에 진지춘이 나름 남겨 놓은 거였다.

그걸 이제 사용할 때가 되었다.

시후가 들어 올린 손으로 무혈검이 빨려 들어가듯 날아갔다.

그러고는 시후의 손에 닿기 직전 갑자기 회전했다.

촤악-

예기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무혈검에 시후의 손바닥이 베였다.

시후는 상처에서 흘러나오는 피를 무혈검의 검신에 떨궜다.

그러자.

끼이잉-

무혈검이 길게 울었다.

그러고는 시후의 손에 살포시 올라갔다.

“그래, 나도 반갑다.”

촤라락-

시후는 무혈검을 허리에 가져갔다.

그러자 금색과 붉은색이 어우러진 허리끈이 되었다.

“돌팔이.”

시후의 부름에 진지춘이 한걸음에 달려왔다.

시후는 당소영을 반듯하게 눕혔다.

진지춘은 심혈에 심혈을 기울여 당소영의 천돌혈에 침을 찔렀다.

“하아….”

그러자 당소영이 편안한 듯 깊은숨을 내쉬었다.

그 모습을 지긋이 내려다보던 시후는 자리에서 일어나 주위를 둘러봤다.

“여긴, 어디냐?”

“사람들이 몰려들어서 급히 옆 공사장으로 왔어요.”

조민이 다가왔다.

혈교 녀석들이 떠나자 사람들이 몰려들었다고 했다.

아마 시후를 불러들였을 때부터 혈교 녀석들이 공사장 주변을 통제했을 거였다.

싸우는 소리를 공사 현장의 소음으로 무마시키려는 계획이었겠지만, 무공을 펼치는 소음이 무마되는 것도 한계가 있었을 거였다.

필연적으로 사람들이 몰려들었을 테고 혈교 녀석들이 떠나자 이목이 쏠렸을 터였다.

그 자리에 남아 있다가는 귀찮아질 게 뻔했으니 조민이 일행들을 이끌고 옆 공사장으로 피신한 것 같았다.

“잘했네.”

시후는 조민의 머리를 한 차례 쓰다듬어 주고는 다시 당소영을 봤다.

공청석유에 버금가는 법정의 사리를 먹였다 하지만 서둘러 치료를 해야 했다.

“그러려면 대환단이 필요한데….”

대환단을 거론하며 진권을 바라봤다.

진권은 시후의 말에 고개를 저었다.

소림사에도 대환단이 없다는 거였다.

“쯧. 돌팔이.”

“약선방에도 대환단은 없습니다.”

진지춘의 말에 시후는 입맛을 다셨다.

소림에도 없고 웬만한 약재는 모두 가진 약선방에도 없다면 어쩔 수 없었다.

“돌아가자.”

“어디를요?”

“한국으로.”

느닷없는 한국행을 결정하는 시후의 말에 다들 눈을 껌뻑였다.

“녀석들은 다시 한국으로 찾아올 거야. 그러니 돌아가 대비를 해야지. 그리고….”

뒷말은 잇지 않았다.

차마 당소영의 치료를 위해 돌아간다는 말은 할 수 없었다.

당소영의 성격상 그 말을 들으면 마음에 큰 짐을 지게 될 터였다.

몸도 편치 않은 그녀한테 그럴 수는 없기에 말을 아꼈다.

그렇다고 눈치 빠른 조민의 의심까지 피할 수는 없었다.

벌써 조민의 따가운 시선이 느껴졌다.

하지만 괜찮았다.

조민은 이곳을 떠나기 전까지 상당히 바쁠 테니까 말이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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