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로그인하는 천마님-141화 (141/275)

제141화

“역시 반푼이였어.”

시후는 멸마절지검을 휘둘러 린의 오른팔을 잘라버렸다.

어깻죽지부터 잘려 떨어져 내리는 팔에서 흩날리는 붉은 피에 조소를 보냈다.

천마 시절 수없이 많은 혈천마라강시의 몸을 조각내본 시후였다.

그들의 몸에서는 저런 붉은색이 아닌 검은색의 피가 흘렀었다.

완벽하지 않은 혈천마라강시라면 멸마절지검으로 해볼 만했다.

한편 린은 바닥에 떨어진 오른팔을 재빠르게 주워 들었다.

시간이 지나면 잘린 팔이 다시 나겠지만 시후를 한쪽 팔이 잘린 상태로 상대할 수는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는 이어 붙이는 게 빨랐다.

그런데.

“……? 뭐, 뭐야. 이거 왜 이래?”

잘린 팔을 어깻죽지에 가져갔는데 달라붙지 않았다.

마치 자석의 같은 극을 가져다 댔을 때처럼 서로 밀어냈다.

이런 황당한 상황에 린은 고개를 돌려 시후가 들고 있는 녹슨 검을 봤다.

“그 검….”

“왜 녹슨 검이라 몸에 잘 안 맞나 봐? 파상풍이라도 걸렸냐?”

유치한 말장난이었지만 반응은 확실했다.

“이런 개뼈다귀 같은 자식이.”

“쯧쯧. 겨우 이런 도발에 붙잡아가던 이성의 끈을 다시 놓게?”

“…….”

“그래, 머리가 잘 돌아야 잘 싸우지. 마구잡이로 싸우는 건 다른 놈 스타일이었잖아.”

“……!”

“그런데 너희들. 볼 때마다 저 정도 인원을 몰고 다니던데. 도대체 본교에는 얼마나 있는 거냐?”

“뭐?”

“남아 있는 혈교 놈들 말이야. 숫자가 어느 정도인지는 알아야 잡아 족치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어서 묻는 거다.”

“그걸 내가 말해줄 거라 생각하는 건가?”

“뭐,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았어. 그냥 궁금해서 물어본 것뿐이야.”

농담 따 먹기식인 대화를 이어가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멸마절지검을 쥐는 순간 느꼈다.

‘사파의 무공은 사용할 수 없다.’

누가 마(魔)를 자르고 죽이는 데 쓰는 검 아니랄까 봐, 검을 쥐고 있는 그의 안에 흐르는 기까지 막았다.

그래서 급한 대로 천마분심공으로 정의 기운이자 얼마 전에 사용했던 남궁세가의 기운을 불어넣었다.

정의 기운에 멸마절지검이 즉각 반응했다.

녹슨 검신 주위로 정순한 검기가 형성됐다.

검기를 만들고자 의지를 다진 것도 아닌데 그저 기운을 불어넣은 것만으로도 이리된 거였다.

‘이러니 맥을 못 췄지.’

천마 시절 왜 이 검에 그리 쩔쩔맸는지 이해가 되었다.

시후는 정순한 검기가 맺힌 멸마절지검을 휘둘렀다.

그저 검을 휘둘렀을 뿐인데 너무나도 간단하게 린의 팔이 잘렸다.

손에 딱히 느낌도 없었다.

잘 드는 보검으로 두부를 써는 느낌이었다.

그런데 그 이후의 반응이 더 놀라웠다.

잘린 팔이 다시 이어 붙지 않는 거였다.

피가 뿜어져 나오는 것을 막으며 잘린 단면이 재생되는 것이 보였다.

‘재생은 되지만 이어 붙일 수는 없다?’

상당히 효과적이었다.

몸을 쓰는 무인이라면 몸의 균형이 중요했다.

특히 고수 간의 싸움에서는 잠깐 틀어진 균형에 의해 승패가 결정이 날 수도 있었다.

‘이러니 혈교가 아미파한테 꼼짝을 못 했지.’

천 년 전의 궁금증이 뜻하지 않게 해결되었다.

그래서 시후는 실없는 소리로 시간을 끌었다.

정의 기운에 강하게 반응하는 멸마절지검.

남궁세가의 기운을 넣었는데 이 정도라면 더 효과적인 문파의 기운이 있을 수 있었다.

그래서 시간을 끌며 찾았다.

‘아미파의 기운이 찰떡이겠지만, 그건 쓸 수 없으니까.’

웬만한 문파의 무공은 사용할 수 있는 시후였지만 아미파만은 제외였다.

흉내는 낼 수 있었지만, 근본적인 심법을 사용할 수는 없었다.

아미파는 비구니로 이루어진 집단. 즉, 여성에게 가장 어울리는 심법을 갖고 있었다.

그래서 다른 문파 중에 가장 적합한 것이 없는지 은연중에 흘려 넣어 실험했다.

‘소림의 구양진경, 개방의 취팔선공, 무당의 태극심허…. 젠장. 어떤 것이냐, 네게 맞는 기운은.’

시후는 천마분심공을 통해 빠르게 찾아봤다.

아직은 시간이 필요했다.

적어도 중현사태의 손에서 펼쳐지던 그 정도의 기운에 버금가는 것을 찾아야 했다.

“그러고 보니 한 가지 궁금한 게 더 있었네. 너 아까 왜 놀란 것이냐?”

“뭐?”

“내가 천마멸겁장을 날렸을 때 놀랐잖아.”

시후의 말에 린의 동공이 커졌다.

시후는 그것을 놓치지 않았다.

“맞네. 뭐지?”

분명 천마멸겁장을 알고 있는 거였다.

어떻게 일천 년 전 천마의 무공을, 그것도 혈교인이 알고 있는지 궁금했다.

하지만 린은 입을 열지 않았다.

더는 말하고 싶지 않다는 듯이 눈에 독기까지 풀며 말이다.

“말하기 싫으면 말하고 싶게 만들어주면 되는 것.”

시후는 천투변용술로 모습을 바꾸며 검을 들어 올렸다.

그리고 린은 보았다.

녹슨 검에서 선 분홍색의 기운이 피어오르는 것을 말이다.

* * *

당소영은 애가 탔다.

두 평 남짓한 이 공간에서 움직일 수 없음이 한탄스러웠다.

지금 자신의 상태로는 시후가 펼쳐놓은 진법에서 나가는 순간 일행들의 짐이 될 게 뻔했다.

혈교인들의 접전이 길어질수록 일행들은 점점 위태로워졌다.

시후가 혈천마라강시를 끌고 사라졌을 때만 해도 괜찮았다.

스무 명 남짓 되는 혈교인들이 달려들자 미리 대형을 유지한 일행들의 공방은 비등했다.

이번에 시후에게서 받은 것들이 크게 한몫했다.

태산이 주먹을 뻗을 때면 푸른빛의 권기가 백호갑에서 뿜어져 나갔다.

간혹 수세에 몰릴 때는 땅을 구르면 주변 혈교인들의 동작이 둔해졌다.

그럼 그들 사이에 인호가 파고들어 발차기를 날렸다.

몸이 베일 정도의 예기를 담고 있는 발차기였다.

그리고 이들을 지휘하는 조민.

그녀는 시후에게서 받은 판관필 옥룡으로 제갈가의 검식을 펼쳤다.

다수의 공격을 한 곳에 모으는 듯한 검식이었다.

하지만 다구리에 장사 없다고.

다수의 공격에 빈틈이 생길 때면 진지춘이 나섰다.

대나무 침통에서 꺼낸 침을 암기처럼 날렸다.

문제는 이런 상황을 단 한수로 뒤집어버린 혈교 소교주였다.

그는 살짝 신경질적인 어조로 혈교인들을 지휘했다.

그러다 혼잡스러운 틈을 비집고 들어가 진권에게 쌍장을 날렸다.

기분 나쁜 핏빛 기운을 담은 쌍장을 겨우 막은 진권 스님은 그 이후로 급격히 움직임이 느려졌다.

이제는 진권이 뒤로 물러나고 태산과 인호가 선두에 나섰다.

그 이후로 점점 일행들의 몸에 상처가 늘어나고 있었다.

“어서 죽여!”

진류강의 목소리가 장내를 울렸다.

그러자 혈교인들의 기세가 올랐다.

진지춘이 침통에 있는 모든 침을 꺼냈다.

“모두 엎드려!”

일행들이 바닥에 납작 엎드림과 동시에 뿜어져 나간 침.

혈교인들의 주요 요혈에 적중했다.

누구는 손을 움직이지 못하고 또 누구는 다리를 움직이지 못했다.

덕분에 혈교인들의 움직임이 멈추며 잠시 소강상태에 접어들었다.

“허? 노인네가 힘도 좋으십니다?”

비꼬는 진류강의 목소리에 진지춘은 거친 숨만 몰아쉴 뿐이었다.

수다를 인생의 낙으로 삼은 진지춘이 입도 뻥끗하지 못할 정도로 지쳐있었다.

진지춘은 주변을 힐끗거렸다.

바닥에서 힘겹게 일어나는 일행들의 모습은 처참했다.

조민의 왼쪽 어깨는 이미 그 기능을 상실한 것인지 축 늘어져 있었다.

태산과 인호는 사이좋게 머리에서 피를 줄줄 흘리고 있었다.

무엇보다 진권이 제일 문제였다.

진류강과 한 수를 나눈 이후로 어떻게 된 것인지 제 몫을 못 하고 있었다.

지금은 온몸에 혈관들이 당장이라도 폭발할 것처럼 솟아올라 있었다.

그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았다.

시후가 귀띔해준 혈교 특유의 장법이었다.

혈폭(血爆)의 기운을 담고 있기에 조심하라고 일렀었는데 진권이 그만 실수하고 만 것이다.

“헉, 헉헉. 이봐. 소주인지 쇠주인지. 우리 이제 그만하는 게 어때?”

진지춘이 최대한 기력을 끌어모아 입을 열었다.

그리고는 혈교인들을 가리켰다.

몸에 꽂힌 침을 보라는 거였다.

그 말에 진류강은 대답을 행동으로 보였다.

서걱-

“저, 미친 새끼.”

진류강은 거침없이 손에 들고 있던 검으로 혈교인의 어깨를 그었다.

진지춘의 침이 꽂힌 자리만큼 잘랐다.

피가 꿀럭꿀럭거리며 뿜어져 나왔지만, 그 혈교인은 대수롭지 않게 서 있었다.

“모두 피혈단(避血丹)을 먹어라.”

진류강의 말에 혈교인들이 품속에서 단약 한 알을 꺼내 먹었다.

그리고는 침이 꽂힌 부분을 칼로 도려냈다.

그 끔찍한 장면에 시후 일행들이 아무 말도 하지 못하는 사이 믿지 못할 장면이 일어났다.

“허? 뭐야, 저거?!”

믿을 수 없지만 잘린 부위가 빠르게 회복되고 있었다.

피가 멈추고 새살이 돋아나며 근육이 재생되는 게 뚜렷이 보였다.

“미친. 그런 좋은 거는 나눠 먹는 거야, 임마.”

“흥, 좋아 보입니까? 드셔 보시지요.”

진지춘의 헛소리에 진류강이 품속에서 피혈단 한 알을 꺼내 진지춘에게 던졌다.

진지춘은 품속에 날아온 피혈단을 눈앞으로 들어 올렸다.

그리고는 인상을 확 구겼다.

괜히 약선방의 장로가 아니었다.

손에서 느껴지는 감촉으로도 이 단약이 무엇을 기초로 만든 것인지 알 수 있었다.

“미친 것들. 어찌 인육으로 단약을 만든단 말이냐?!”

“왜요? 효과만 확실하면 무엇으로 만들든 무슨 상관입니까?”

“…….”

“걱정 마십시오. 여러분들의 살과 피도 좋은 곳에 써드릴 테니까요.”

진류강의 비릿한 미소에 진지춘이 움찔했다.

이제 어찌할 방도가 없었다.

지금 이 상황을 타파할 방도는 하나뿐이었다.

“웬 계집애를 데리고 사라지더니 왜 안 나타나는 거야?! 우리 죽을 것 같구먼! 지는 계집질이나 하고 있는 거 아냐?!”

악에 받친 듯한 말투였다.

다들 그게 누구를 향한 욕인 줄 알고 있었다.

그리고 진지춘이 저리 말할 때면 그 당사자는 어김없이 나타났었다.

진지춘이 그것을 노리고 말한 것인지 모르겠지만.

쿵-

“깜짝이야!”

아미산에서 무서운 속도로 무언가가 떨어져 내렸다.

혈교인들과 일행들 사이에 떨어진 그것에 일행들은 시후라 짐작했다.

하지만 피어오른 먼지가 가라앉자 나타난 것은 조금 전 혈교인들의 자해 장면보다 더 끔찍한 거였다.

“린!!”

진류강의 절규에 가까운 목소리처럼 그것은 혈천마라강시 린이었다.

다만 두 팔, 두 다리가 모두 잘린 채 머리와 몸뚱어리만 남아 있었다.

“그어….”

린은 진류강의 목소리에 반응한 듯 몸을 꿈틀대며 기어가려고 발버둥 쳤다.

그 모습에 진류강이 먼저 움직였다.

“모두 린을 보호해라!”

그 외침과 함께 혈교인들이 움직였다.

진류강이 린을 품에 안자 그 앞을 막아섰다.

조민은 그 모습에 일행들을 툭툭 쳤다.

“뒤로 물러나요. 천천히.”

적을 자극하지 말고 움직이라는 말이었다.

다들 의미를 알았기에 천천히 당소영이 있는 곳까지 물러났다.

그리고는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혈천마라강시를 저리 만든 이가 분명 근처에 있을 거였다.

“돌팔이, 이 새끼. 너 내가 없을 때 나를 그렇게 씹었구나?”

다소 거친 말투의 시후 목소리였다.

시후는 하늘에서 천천히 떨어져 내렸다.

그의 모습도 멀쩡하지 못했다.

황 장로의 모습으로 변용한 시후는 온몸에 선혈이 가득했다.

옷은 차라리 벗는 게 나을 정도로 넝마가 되어 있었고, 그 안으로 피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것만으로도 린과의 혈투가 얼마나 치열했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시후는 진지춘 옆에 내려섰다.

“돌팔이. 너 아주 그냥….”

“도련님~!”

“돌팔이 미쳤어?!”

챙-

진지춘에게 한 소리 하려던 시후는 갑자기 안아오는 진지춘에게 멸마절지검을 치켜들었다.

스치기만 해도 파상풍에 걸릴 것 같은 녹슨 검의 모습에 진지춘은 더 이상 다가가지 못하고 눈물만 주르륵 흘렸다.

“저희가 도련님을 얼마나 기다렸는데요!”

“그런데 왜 껴안으려고 해?”

“감격에 겨워서 그랬죠.”

“미친. 역겹거든?! 그리고 너는 두고 봐. 내 뒷담화를 아주 그냥 찰지게 하더라?”

시후가 뒷담화를 언급하자 진지춘은 들어 올렸던 팔을 슬쩍 내리고 뒤로 물러났다.

“칫. 지가 늦어놓고서는….”

옆에 있는 조민조차 겨우 들리는 진지춘의 중얼거림이었다.

“넌 언제나 한 마디가 더 많다고 했지. 아주 뒤진다.”

그러나 시후는 그 중얼거림조차 들었다.

그 말에 진지춘은 몸을 떨었다.

시후의 말이 두려워서가 아닌, 시후가 염려되어서였다.

툭-

조민이 진지춘의 팔을 툭 쳤다.

진지춘은 급히 표정을 풀었다.

시후는 그제야 몸을 돌려 혈교인들을 봤다.

다들 시후의 등장에 긴장한 모습이었다.

“자, 이제 어쩔까나?”

“비켜라.”

시후가 비아냥거리자 진류강이 말했다.

그러자 혈교인들이 옆으로 비켜섰다.

그 뒤에서 린을 품속에 안은 진류강이 걸어 나왔다.

“황 장로….”

“내가 황 장로가 아닌 거는 이미 알고 있지 않나?”

“그렇지요. 도련님?!”

“그래. 차라리 그렇게 불러.”

진지춘이 시후를 부른 호칭을 진류강이 부른 거였다.

시후는 개의치 않다는 표정으로 멸마절지검을 치켜세웠다.

“어쩔래? 이대로 더할래? 아니면 서로 보살필 거 보살필까?”

“…….”

시후의 말에 진류강은 품속에서 떨고 있는 린을 내려다봤다.

시후의 뜻은 그런 거였다.

당소영과 린을 서로 챙기자는 거였다.

그 말에 진류강은 고민에 빠졌다.

혈천마라강시인 린은 시간만 지나면 회복될 거였다.

절대 죽지 않을 그녀였기에 당소영의 목숨과 저울질 자체가 불가였다.

그런데 문제는 시후의 손에 들린 저 녹슨 검이었다.

아까부터 저 검에서 흘러나오는 기운에 기분이 더러웠다.

마지 천적을 만난 느낌이랄까.

본능이 이 자리를 거부하고 있었다.

그때였다.

“소교…주님… 저 검… 멸마절….”

거기까지만 들어도 알 수 있었다.

진류강 역시 멸마절지검에 대해서는 익히 알고 있었다.

혈교에 보관된 고문서에서 읽어본 적이 있었다.

혈교인이라면 반드시 피해야 할 몇 가지 중의 하나였다.

“저 검이….”

“맞아. 그 검.”

진류강이 알아보자 시후는 멸마절지검을 빙글빙글 돌렸다.

장난스러운 그 모습에 진류강은 뒤로 물러났다.

“다음에는 좀 더 준비해 만나 뵙도록 하겠습니다.”

“아니. 다음에는 내가 찾아가지.”

“그러시다면… 기다리겠습니다. 돌아간다.”

사삭-

진류강의 말에 빠르게 혈교인들이 물러갔다.

그 모습에 시후 역시 일행들에게 돌아갔다.

“어서 버스로.”

“네.”

시후의 말에 일행들은 그를 둘러싸며 움직였다.

시후는 그 모습에 고개를 끄덕이고는 당소영 주위에 꽂힌 철근을 뽑았다.

당소영은 시후의 모습이 보이자 힘겹게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는 쓰러지는 시후를 향해 몸을 날렸다.

(다음 편에서 계속)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