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8화
시후는 떨리는 손을 움켜쥐며 기감을 넓게 펼쳤다.
지금 펼칠 수 있는 최대한으로 말이다.
그렇게 무리를 해서라도 당소영을 찾을 생각이었다.
하지만.
“젠장….”
기감을 펼치면 펼칠수록 돌아오는 건 욕설뿐.
아무리 넓게 펼쳐보아도 당소영의 기척은 잡히지 않았다.
시후가 이러는 사이 조민과 진지춘은 빠르게 판다 연구소로 달려갔다.
관리실에 사정을 이야기한 후 CCTV를 확인하기 위함이었다.
“죄송합니다. CCTV는 관계자 외에는 보실 수가 없습니다.”
“한시가 급한 상황입니다. 부탁드리겠습니다.”
“그러시면 공안과 함께 오십시오.”
진지춘의 정중한 부탁에도 직원들은 어쩔 수 없다는 태도로 일관했다.
진지춘과 조민의 실력이라면 이곳에 있는 이들을 제압하는 것은 일도 아니었다.
하지만 이곳 또한 CCTV가 있었고 괜히 일을 벌였다가는 뒤처리가 귀찮아졌다.
조민이 어떻게 하냐는 눈빛을 보내자 진지춘이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직원에게 다가갔다.
“음료를 사러 간다고 했으니 찾는 일이 그리 어렵지는 않을 겁니다.”
“아니 글쎄….”
“사람 하나 살리는 셈 치고 도와주십시오.”
스윽-
진지춘은 품속에서 꺼낸 것을 직원에게 슬쩍 들이밀었다.
그것을 받아 든 직원은 깜짝 놀랐다.
그는 주위를 한 번 두리번거리고는 받아 든 것을 재빠르게 품속에 집어넣었다.
“크, 크흠. 사람 살리는 일이라고 하시니 도와드리겠습니다.”
지금까지와는 사뭇 다른 반응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가 받아든 것은 엄지손가락 한 마디 크기의 금반지였다.
약선방으로 보내는 장식장에 진열되어 있던 것 중 하나를 진지춘이 슬쩍한 거였다.
은밀하게 건넸지만 조민은 그것을 보았다.
하지만 뭐라 하지는 않았다.
금은보화는 넘쳐났고, 당소영의 흔적을 찾기 위해 저 정도를 쓰는 것에 시후는 뭐라 하지 않을 거였다.
덕분에 둘은 당소영의 흔적을 찾을 수 있었다.
“어? 여기 이분 맞으시죠? 그런데… 갑자기 사라졌는데요? 뭐지?”
직원이 보여준 CCTV에는 당소영이 음료를 들고 있는 장면이 나와 있었다.
양손에 음료수를 들고 모퉁이를 도는 순간.
“갑자기 사라집니다? 뭐지?”
영문을 알 수 없는 일에 직원은 오류인가 싶어 기계 확인을 했다.
그사이 조민은 스마트폰으로 해당 영상을 촬영했다.
조민과 진지춘의 눈에는 직원이 보지 못하는 것이 보였다.
“감사합니다. 흔적을 찾았으니 저희가 찾아보겠습니다.”
“아, 네.”
직원은 CCTV를 조작하다 말고 둘이 관리실을 서둘러 나가자 고개를 갸웃거렸다.
“뭐, 나는 챙길 거나 챙기면 되지.”
본래 이런 곳에서 누군가가 행방불명이 되었다면 공안에 연락을 취해야 하겠지만 금반지를 받아 든 마당에 그럴 수는 없었다.
그리고 저들이 직접 찾아본다고 했으니 무슨 일이 있으면 저들이 신고할 거라 생각했다.
그렇게 직원이 금반지의 매력에 푹 빠져 있는 사이 조민과 진지춘은 버스로 돌아왔다.
“오빠, 이거요.”
조민은 도착하자마자 시후에게 스마트폰을 내밀었다.
영상에서 당소영이 사라지는 장면을 확인한 시후는 이를 갈았다.
“역시 그년이었어.”
짐작은 하고 있었다.
자신의 기감에도 잡히지 않을 정도로 이미 벗어난 그들.
당소영을 납치하면서도 기척을 남기지 않은 수법.
생각할 수 있는 거라고는 움직일 때 기척을 내지 않는 혈천마라강시뿐이었다.
‘너무 방심했어.’
시후는 자신의 안일함에 치를 떨었다.
“모두 모여 봐. 말해줄 게 있다.”
시후의 낮은 어조에 다들 숨죽이고 모였다.
시후는 혈교와 혈천마라강시에 대해 언급했다.
당소영을 납치한 것 또한 혈천마라강시이며 그것의 특징이 어떠한지 상세히 전했다.
“그, 그런 게 실존할 수 있는 겁니까?”
이야기를 모두 들은 진지춘의 솔직한 반응이었다.
어떻게 사람의 심장이 꺼내진 직후 강시로 남을 수 있는지.
외국 해적 영화에 나오는 문어발 선장도 아니고 말이다.
믿을 수 없다는 진지춘의 표정에 시후는 자기 등을 가리켰다.
“내 등에 상처를 남긴 녀석이다. 무슨 말인지 알겠지?”
꼴깍-
다들 말없이 침을 넘겼다.
시후가 누구인가.
지금까지 그가 보여준 무위가 어떠한가.
일행들은 약선방 지하에서 시후가 일으킨 기벽을 기억했으며, 진권은 화산을 내려오며 그가 펼쳤던 경공을 떠올렸다.
그런 그의 등에 저만한 상처를 남기다니.
“그럼, 도련님의 말씀대로 저희가 할 일은 버티는 것이겠네요?”
“그래. 내가 혈천마라강시의 대가리를 빠개는 시간 동안 죽지 말고 버텨.”
다소 거친 시후의 말에서 분노가 느껴졌다.
조민은 가슴이 찌릿함을 느꼈고, 태산과 인호는 짐이 되지 않겠다는 의지를 다졌다. 진지춘과 진권은 놀라고 있었다.
이들 중 무공 수위가 그나마 높은 둘이었기에 시후의 몸에서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무언가를 느끼는 거였다.
살기는 아니었지만, 그보다 더 써늘한 느낌이 등골을 오싹하게 했다.
시후는 긴장한 표정이 역력한 둘에게 전음을 보냈다.
- 너희 둘의 역할이 가장 중요한 거 알지. 내가 자리를 비우는 순간 너희가 일행들을 지켜야 한다.
둘은 미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시후가 말하는 역할이 무엇을 뜻하는지 이해하는 둘이었다.
그때였다.
똑똑-
누군가 버스를 두드렸다.
공안이었다.
세 명의 공안이 문을 열라며 손짓을 했다.
시후는 그들을 한차례 힐끗거리고는 진지춘에게 손짓했다.
그러자 진지춘이 버스 문을 열었다.
치잉-
“무슨 일이십니까?”
공안에게 용무를 묻는 진지춘이었다.
하지만 공안들은 아무 말도 없이 버스에 올랐다.
지금 같은 분위기에 공안이 막무가내의 행동을 보이자 진지춘이 그들의 앞을 서둘러 막아섰다.
시후가 이들에게 무슨 짓을 저지르진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 미리 막아서는 거였다.
그런데.
“어디지?”
밑도 끝도 없는 시후의 말에 공안들이 움찔했다.
그들은 서로 눈빛을 한 차례 교환하고는 한 명은 버스 운전석에 앉았다.
그제야 일행들은 이들이 누구인지 눈치챘다.
“이 자식들….”
“목적지에 도착할 때까지 얌전히 있길 바란다.”
진지춘이 내공을 끌어올리자 공안 한 명이 손을 들어 올려 제지했다.
끈적이는 붉은색 기운을 피워 올리며 말이다.
그랬다.
이들은 혈교인이었다.
시후는 이들이 주차장에 들어서는 순간 존재를 눈치챘다.
그래서 빠르게 일행들과 일련의 대화를 진행한 거였다.
당소영이 그들의 손에 있는 지금의 상황에서 손을 쓰기에는 어려웠다.
일단은 그들의 말에 따라줘야 했다.
적어도 당소영의 안전이 확인될 때까지는 말이다.
일행들이 붉으락푸르락한 표정으로 인상을 구기며 노려보자 공안 둘이 손짓으로 그들을 뒤로 물렸다.
모두 시후 주위에 앉자 버스가 출발했다.
“어디로 가냐고.”
“아미산.”
목적지를 묻는 시후의 질문에 공안 한 명이 대답했다.
그것만으로도 시후는 대충 짐작했다.
‘그녀는 무사하군.’
똑똑한 당소영이 자기 몸을 보호하기 위해 몇 가지 사실을 이들에게 말했을 거였다.
그렇다면 아직은 그녀의 신변이 보장되고 있다는 말.
시후는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일행들에게 얌전히 있으라며 손짓했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이 공안 한 명이 품속에서 스마트폰을 꺼냈다.
“출발했습니다. 네.”
스윽-
누군가에게 전화를 건 그는 이내 스마트폰을 시후에게 내밀었다.
손을 뻗어 받기에는 다소 거리가 있는 거리였지만 그는 당연하게 내밀며 기다렸다.
‘내 무위를 짐작한다는 건가.’
허공섭물을 가볍게 일으킬 수 있는 시후의 무위를 짐작하지 않으면 행할 수 없는 행동이었다.
시후는 생각보다 자신의 정보가 이들에게 알려졌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시후가 손을 들어 올리자 공안이 들고 있던 스마트폰이 둥둥 떠 왔다.
그것을 받아 든 시후는 천천히 귀에 가져갔다.
- 무례라 생각하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귀에 익은 목소리. 진류강이었다.
“원하는 게 뭐지?”
단번에 본론을 꺼내는 시후였다.
- 하, 하하. 역시 생각만큼이나 화끈하시군요. 제가 무엇을 원하는지 아시잖습니까?
진류강은 돌려 말했다.
하지만 시후는 콩떡같이 말해도 찰떡같이 알아들었다.
“사상지공을 원하나?”
- 그것뿐이겠습니까?
“내 목숨도 원하나?”
- 그것까지 주시면 더할 나위 없겠습니다만, 그게 쉽겠습니까?
주도권을 쥔 진류강은 시후의 속을 긁는 말을 내뱉을 줄 알았다.
시후는 입술을 한 차례 질끈 깨물고는 입을 열었다.
“그녀 목소리부터.”
- 생사 확인을 원하시는 거라면 들려드릴 수 있습니다만?
당소영에게 해코지를 하겠다는 말이었다.
시후는 다시 한번 인내심을 발휘했다.
“좋아, 넘겨주지. 사상지공.”
“도련님?!”
약선방의 비전 무공인 사상지공을 넘겨준다는 말에 진지춘이 당황하며 말했다.
시후는 그런 진지춘에게 손을 들어 올려 막았다.
조용히 하라는 거였다.
“이들에게 넘겨주면 되나?”
- 그런 중요한 것은 제가 직접 받아야겠지요.
얌전히 이들을 따라오라는 말이었다.
시후는 끝까지 속을 긁는 진류강의 말투에 한계를 느꼈다.
“만약, 그녀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겼다면.”
- 꺄악!
“……!”
엄포를 놓으려는데 당소영의 비명이 들렸다.
시후는 더는 말을 이을 수 없었다.
대신 얌전히 스마트폰을 공안에게 돌려줬다.
공안은 진류강으로부터 몇 가지 명령을 전달받고는 통화를 종료했다.
시후는 조용히 앞좌석을 부여잡고 머리를 숙였다.
진류강이 어떤 녀석인지 이미 알고 있으면서도 참지 못하고 꺼낸 말에 그녀가 고통을 받았다.
순간 자신의 실수를 탓했다.
하지만 덕분에 확실히 할 수 있었다.
‘넌 곱게 죽이지 않는다.’
시후는 자신이 알고 있는 가장 잔인한 방법으로 진류강을 대할 거였다.
살아도 살아 있는 게 아닌 삶을 살게 해줄 생각이었다.
그리고 한동안 시후는 그 자세를 고수했다.
시후의 그런 분위기에 일행들은 서로 눈빛을 주고받으며 앞으로의 일을 의논했다.
운전하는 혈교인을 제외한 나머지 둘은 시후와 일행들에게서 한시도 눈을 떼지 않았다.
특히, 시후에게서 말이다.
드디어 멈춘 버스. 시후는 고개를 들어 창밖을 봤다.
천년의 세월이 무색할 만큼 변하지 않은 아미산이 보였다.
하지만 추억이나 꺼내 감상에 젖어 있을 상황이 아니었다.
“내려라.”
공안 셋이 버스 문을 열고 내렸다.
시후와 일행들은 얌전히 그들을 따랐다.
주변을 둘러보니 아파트가 한창 지어지고 있는 공사장이었다.
공사장 방음벽 뒤로 사찰과 아미산이 보였다.
시후는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공안 셋을 따라갔다.
공사장 안쪽으로 들어가자 컨테이너 트럭 몇 대가 보였다.
그곳으로 가까워지자 트럭이 움직였다.
그러자 붉은색 장포를 뒤집어쓴 이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혈교인들이었다.
“멈춰라.”
앞서 걷던 공안 셋의 명령에 시후와 일행들은 걸음을 멈췄다.
공안 셋은 혈교인들 쪽에 허리를 숙여 인사를 하고는 끝 쪽으로 걸어가 자리했다.
그러자 가운데 있던 혈교인이 앞으로 나서며 장포를 젖혔다.
진류강이었다.
“다시 보니 반갑습니다.”
“…….”
시후는 진류강의 인사에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일행들을 향해 입을 뻥끗했다.
- 버텨.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