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로그인하는 천마님-136화 (136/275)

제136화

“왜 왔니?”

수송차에서 내리는 이를 보고 시후가 대뜸 말했다.

누구든 장시간 운행 후 차에서 내리는데 이런 말을 들었다면 기분이 퍽 상했을 거였다.

하지만 그녀는 그렇지 않았다.

“오고 싶어서 왔죠.”

“하….”

생긋 웃으며 말하는 당소영에 시후는 한숨만 나왔다.

분명 약선방을 떠날 때 말해뒀었다.

놀러 가는 게 아니라고.

황 장로로 변용까지 해가면서 가야 하는 위험한 일이라고.

국숫집 여아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손이 필요했기에 일행들을 불렀을 때도 당소영은 약선방에 남으라고 했었다.

무공 실력이 가장 떨어진다는 핑계로 말이다.

그런데 수송차를 직접 운전까지 해서 오다니.

“어이가 없네.”

당소영은 혀를 삐쭉 내밀고는 시후를 지나쳐갔다.

그러고는 다른 일행들과 정겹게 인사를 나누었다.

언제 친해졌는지 마치 가족 상봉이라도 하는 것 같은 모습들이었다.

‘결국 모두 모인 꼴이 되었잖아.’

위험한 일이니 되도록 혼자 움직이려 했던 계획은 이미 틀어진 지 오래였다.

시후는 이마를 짚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래, 그래도 진권이라도 있으니… 넌 또 왜?!’

그나마 진권이 있어 한시름 덜겠다 싶었는데, 이 자식이 당소영을 보더니 몸을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마치 못 볼 것을 봤다는 것처럼 말이다.

‘설마, 첫눈에 반했다거나 그런 건 아니겠지?’

땡중이 설마 그랬을까 싶었지만, 기분이 더러운 것은 참을 수 없었다.

“진권, 앞으로.”

“아, 네!”

전날 밤에 무공을 가르쳐 준다며 좀 굴렸더니 부름에 바로 응하는 진권이었다.

시후는 진권의 어깨에 팔을 걸치고는 한쪽으로 조용히 끌고 갔다.

“뭔데?”

“뭐가….”

“뭔데 파계승이 되려는 거냐고.”

“네?! 제가 언제….”

“그것도 아니면 쟤 보고 왜 그런 반응인데.”

시후는 곁눈질로 당소영을 가리켰다.

진권은 그제야 시후가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했다.

“아, 아닙니다! 그저 저 여시주께서….”

“쟤가 뭐?”

“…….”

진권이 말끝을 흐리며 뜸을 들이자 시후가 닦달했다.

하지만 그래도 말이 없자 시후는 전음을 보냈다.

- 여기서 말하긴 곤란한 것이냐?

끄덕-끄덕-

진권이 고개를 끄덕이자 시후는 등을 돌렸다.

“조민아, 나 잠깐 나갔다가 올 테니까. 오면 바로 떠날 수 있게 준비해놔.”

그러고는 조민의 대답도 듣지 않고 진권과 숙소를 나왔다.

둘은 그렇게 근처에 있는 카페로 들어갔다.

빠르게 나올 수 있는 음료를 주문하고는 둘은 마주 보며 자리에 앉았다.

음료가 나오자 시후가 먼저 입을 열었다.

“이제 말해봐.”

진권은 한 차례 숨을 고르며 말했다.

“아까 그 여시주와 똑 닮은 사람의 그림을 본 적이 있습니다.”

순간 시후의 눈썹이 꿈틀댔다.

당소영과 닮았다니.

‘그럴 리가 없…!’

믿기 힘든 말이라고 치부하던 그 순간 떠오른 게 있었다.

“설마, 그 그림… 벽화더냐?”

“어떻게 아셨습니까?!”

기억났다.

* * *

“여기입니까?”

진소령이 나를 돌아봤다.

황궁에서 도망쳐 나온 진소령의 소식에 나는 한걸음에 달려왔다.

그리고 그녀의 기분을 풀어주기 위해 좋은 곳이 있다며 이곳을 찾았다.

“강바람이 차기는 하지만 저만한 것을 보기에는 여기가 제격이지.”

내 손짓에 그녀가 고개를 돌렸다.

“어머? 저기에 누가 저런 걸 만들었을까요?”

“글쎄, 누가 만들었으면 어떠한가. 보는 이로 하여금 경애심이 든다면 그걸로 된 것이지.”

“정말 그렇네요. 저렇게 웅장한 대불을 보고 있으니 제 마음도 차분하게 가라앉는 것 같아요.”

그녀는 그리 말하며 내 품에 기대었다.

흔들리는 배 위에서 균형을 잡기 위해서가 아니라는 것은 알 수 있었다.

그녀의 가녀린 어깨에 손을 얹어 살포시 끌어당겼다.

내 손길에 이끌려온 그녀는 나를 살짝 올려다보았다.

흔들리는 큰 눈망울에 길 잃은 강아지 같은 저 표정.

배에 올라 있는 주변인들만 아니라면 당장 그녀의 입술을 훔쳤을 터였다.

“크흠, 그거 아는가?”

“풉. 뭘요?”

내가 당황해 다른 말을 돌리자 그녀는 재미있다며 따라 물었다.

“저 불상을 만든 승려는 자기 눈을 파냈다고 하더군.”

“눈을요?! 그건 어디에 쓰려고요?”

“강들이 합류하는 이곳에 저만한 불상을 만들기에 꽤 많은 돈이 필요했는데, 그 돈을 마련하기 위해 자기 한쪽 눈을 뽑아 사람들을 설득하고 모금을 했다더군.”

“그렇게까지 해서 저 불상을 만들었어야 했대요?”

“강줄기가 만나는 이곳에 상당한 수재가 있었다고 하더군. 그것을 막기 위해 저 불상이 필요했고. 실제로 저 불상을 만든 후 수재가 줄기도 했고.”

“아… 결국 스님의 희생은 자신이 아닌 민초들을 위한 것이었네요?”

“그런 셈이지.”

“대를 위한 소의 희생이라….”

“…….”

그녀는 내 말에 슬픈 눈을 하고 불상을 쳐다봤다.

그녀가 무슨 고민을 하는지 이미 알고 있었다.

신교를 나설 때 지괴가 이미 그녀에 대해 이야기해 주었었다.

‘원치 않은 혼약이 진행 중이라 했던가.’

그 말을 들었을 때 내 가슴속에서 부글부글 끓던 감정이 다시 일어났다.

“꽉 잡아.”

“네? 꺅!”

그녀의 비명과 함께 우리는 하늘을 날았다.

배 위에 있던 사람들의 놀라는 목소리 따위는 신경 쓰지 않고 다시 한번 절벽을 박차고 날았다.

대불상을 끼고 절벽을 돌자 우리가 타고 있던 배가 보이지 않았다.

나는 허공에 몸을 띄운 채 절벽을 향해 손을 휘저었다.

파스스스-

천마강기로 절벽을 빠르게 긁어냈다.

우리가 들어갈 정도의 동공이 생기자 그곳으로 들어섰다.

“그대를 이곳에 그릴까 하는데.”

“저요?”

“내가 또 그림에 조예가 깊거든.”

“그런 말은 처음 듣습니다만?”

“그럼 이참에 보여주지.”

사삭-사삭-

강기를 실은 내 손짓에 벽에 선이 이어지기 시작했다.

그녀는 내심 기대에 찬 눈빛으로 나를 기다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벽에는 그녀와 똑 닮은 벽화가 그려졌다.

“아직 색을 입히지 않아 저렇지, 색만 입히면 똑같을 거야.”

“저와 말이지요?”

“당연하지. 그러니… 그때까지만 기다려 주겠나?”

“…네?”

“그때가 되면 황궁이 아닌 신교에서 당신을 맞이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내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 이해한 그녀의 두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다.

그리고 얼마 후 내 말대로 벽화에는 색이 입혀졌다.

하지만, 그 그림을 그녀가 보는 일은 없었다.

* * *

그때의 일이 떠오르자 시후는 기분이 가라앉았다.

어두워진 시후의 표정에 진권은 말없이 음료를 마셨다.

시후를 알게 된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저런 표정을 지을 때에 건드려서 좋을 게 없었다.

진권이 들고 있던 음료를 모두 마실 때쯤, 시후가 입을 열었다.

“쓰촨성 대불상 옆. 맞지?”

“네… 맞습니다.”

시후가 어떻게 그 벽화의 위치를 아는지 묻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여전히 시후의 표정은 어두웠으며 기분은 저기압이었다.

대신 진권은 한 가지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시후가 당소영에 대해 상당히 신경을 쓰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무공 외에는 눈치가 없는 진권조차 알 수 있을 정도로 시후는 당소영을 특별하게 생각했다.

그리고 그것은 아미산으로 향하는 버스 안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진권과 그런 이야기를 나눈 후 숙소로 돌아가자 이미 금은보화들은 수송차에 실려 떠난 후였다.

뭐가 좋은지 생글생글 웃고 있는 당소영을 남겨둔 채 말이다.

시후는 당소영을 신경 쓰지 않으려 서둘러 버스에 올랐다.

버스 중간에 앉아 다른 이들이 오르길 기다렸다.

좌석은 2인석이니 태산이나 인호, 하다못해 조민이라도 옆에 앉으면 당소영에게 신경을 덜 쓸 것 같았다.

하지만.

“왜 네가 내 옆에 앉는 거냐?”

“그럼 어떻게 해요? 다른 분들은 저리 바쁘신데.”

당당하게 옆자리에 앉은 당소영의 말에 고개를 돌려보니 맨 뒷자리에 일행들이 몰려 있었다.

청력을 돋우지 않아도 태산과 인호와 조민이 진권과 함께 무공을 논하는 게 들렸다.

저들은 화산에서 이야기했던 자신의 명령을 충실히 수행 중이었다.

차에서 내려 숙소에서 지내는 동안은 대련을 진행하고 버스에서는 저렇게 논의하라고 했었다.

이동 시간이 길기에 저렇게 하는 것만으로도 수련이 되었다.

특히, 심상 수련을 꾸준히 해온 진권 덕분에 이 방법은 큰 효과를 봤다.

셋은 이미 진권과 무공을 논하는 것만으로도 성취를 보였다.

저렇게 학구열을 불태우는데 거기에 초를 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렇다고 운전대를 붙잡고 있는 진지춘에게 보내자니 저 녀석은 운전 말고도 바빠 보였다.

“샤오롱, 일단 스위스 계좌를 만들어. 그것도 안 되면 내 명의로 계좌를 만들란 말이야. 어떻게 해서든 빠르게, 최대한 실속 있게 처리하라고.”

금은보화들을 처리하는 데 필요한 일 처리를 위해 샤오롱과 자주 통화 중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당소영을 홀로 두게 된다면 다른 이들이 자신이 할 일을 하지 못할 게 뻔했다.

그런 눈치 보는 상황을 만들 수는 없기에 시후는 당소영이 옆에 앉는 것을 허락할 수밖에 없었다.

“좋아, 대신 얌전히 가.”

“‘얌전히’가 어떻게인데요?”

“뭐?”

고등학교에 교생으로 올 정도의 실력을 갖추고 있으면서 ‘얌전히’라는 말의 의미를 모르지는 않을 것이고.

저 장난기 섞인 눈빛은 의도가 불순해 보였다.

“왜 전의를 불태우는 듯한 눈빛을 보이는 거지?”

“제가 이번에 한 가지 사실을 알게 되었거든요.”

슬슬 불안해졌다.

그래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듣고만 있었다.

“도련님과 떨어져 있는 그 시간 동안, 하루도 한 시간도 도련님의 생각을 하지 않은 날이 없었어요.”

“…….”

“그리고 이번에 의원님의 연락이 왔다는 소식을 듣고 깨닫게 되었죠.”

“…….”

“제가 도련님을 좋아하고 있다는 것을요.”

당소영이 말하는 것을 듣고만 있던 시후는 마지막 말에 순간 심장이 철렁였다.

학교에서 당소영을 처음 봤을 때 다짐했었다.

‘너와 그녀를 겹쳐보지 않을 거라 했건만.’

시간이 지날수록 당소영과는 계속 엮였고 종국에는 이런 상황까지 다다랐다.

무슨 말을 해야 할까.

그녀를 받아들여야 할까.

당소영에게서 진소령을 그려내지 않을 수 있을까.

잠깐 순간에 시후는 많은 고민을 했다.

그 때문일까. 시후의 어지러워 보이는 표정이 그대로 드러났다.

당소영은 그런 시후의 모습을 예상이라도 했다는 듯이 속삭였다.

“너무 난감해하실 필요 없어요. 지금은 그냥 제 마음이 그렇다고요. 무엇을 어떻게 해달라는 게 아니에요. 저를 보시면서 떠올리시는 그분을 잊으시라는 것도 아니고요. 그저….”

“…….”

“그저, 저를 제대로 봐달라는 거예요.”

이렇게까지 저돌적으로 말할 줄이야.

이건 마치 절벽을 등지고 칼을 맞대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이런 걸 두고 진퇴양난이라고 하는 것인가.’

지금 상황에서 시후는 무엇도 할 수가 없었다.

당소영의 말에 무언가 반응하는 순간 그녀를 울릴 것만 같았다.

시후는 당소영을 빤히 쳐다보다 그녀의 눈이 젖어 드는 것에 흠칫했다.

진소령인지 당소영인지.

저 얼굴이 우는 모습은 다시 보기 싫었다.

“그래. 일단은 거기까지만 하자.”

“진짜죠?!”

시후의 말에 금세 화색을 보이는 당소영이었다.

어쩜 저런 것까지 그녀를 닮았는지.

시후는 저도 모르게 입꼬리가 올라갔다.

그리고 그 때문일까.

시후는 당소영이 질문하는 것에 곧잘 대답해주기 시작했다.

“쓰촨성에는 볼 것도 많고 먹을 것도 많은 거 아세요?”

“놀러 가는 거 아니라니까?”

“그래도요,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했는데 그 아름다운 아미산을 보러 가면서 아무것도 안 하고 그냥 가실 거예요?”

시후는 슬슬 당소영의 화법을 이해할 수 있었다.

‘이 녀석 정답을 정해 놓고 물어보는 거잖아.’

‘답정너’라는 말이 떠오를 정도로 당소영의 질문은 답이 정해져 있었다.

하는 말에 족족 거부를 해봤지만 당소영은 사과 돌려 깎기처럼 결국 제자리로 돌아와 질문을 했다.

“너 지금 ‘아’와 ‘어’만 다를 뿐, 결국 네가 하고 싶은 대로 맛난 거 먹고 구경은 구경대로 하면서 가자는 거잖아.”

“어머? 제 말이 그렇게 들렸어요?”

“그럼, 아니라고?”

“에이~. 너무 잘 들으셔서 놀라서 그렇죠.”

입술을 살짝 내밀려 삐쭉거리는 저 표정이 슬슬 귀여워 보였다.

그리고 어째서인지 시후도 이 여행에서 즐거운 추억 하나쯤은 만들어도 되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들고 있었다.

“그럼, 한 곳 정도는 들러볼까?”

“진짜요?!”

“진짜?!”

어느새 다가왔는지 시후의 말에 태산과 인호와 조민이 소리쳤다.

녀석들의 표정을 보니 내심 기대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래. 가자.”

“앗싸!!”

시후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다들 좋아했다.

왠지 저 모습을 보니 살짝 미안하기도 했다.

그러고 보니 해가 떨어진 지도 꽤 되었는데 진지춘은 여전히 운전 중이었다.

“돌팔이. 슬슬 잘 곳을 찾아봐라.”

퉁명스러운 시후의 말에 진지춘이 한쪽 손을 흔들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조금만 더 가면 청두시입니다. 그곳에 숙소를 잡아놨습니다.”

미리 알아서 한 것은 칭찬할 만한데 어째서인지 진지춘의 목소리가 잔뜩 들떠 보였다.

“너 왜 신났냐?”

“에이~. 제가 뭘요~.”

확실히 신났다.

당소영과는 반대로 녀석이 저런 말투를 하자 들어줄 수가 없었다.

“너 무슨 짓 했지?”

“하, 하하. 제가 무슨 짓을 했겠습니까. 그저~ 도련님께서 그리 말씀하실 줄 알고 미리 판다 연구소의 표를 샀다는 것 정도죠 뭐. 하, 하하!”

“우와~! 의원님 진짜요?!”

진지춘의 말에 시후를 제외하고 모두가 환호했다.

하다못해 진권까지 말이다.

이 어이없는 상황에 해답을 찾는 데 그리 긴 시간이 필요치는 않았다.

“아까 주유소에서 주유할 때 어르신께서 말씀해 주셨었어요. 도련님을 잘 꼬드겨서 판다 보러 가자고요.”

“하?”

그 말은 저 돌팔이가 짠 판에 자신이 놀아났다는 말처럼 들렸다.

마음 같아서는 달려가 뒤통수를 한 대 후려쳐주고 싶었지만 온종일 운전대를 놓지 않은 정성에 그럴 수도 없었다.

대신 전음을 날렸다.

- 넌 조만간 한 번 걸려봐. 단단히 각오해야 할 게야.

그 전음 이후로 진지춘은 입을 꾹 닫고 운전에 몰두했다.

어쨌든 덕분에 빠르게 일행은 청두시에 도착했다.

진지춘은 어제와 마찬가지로 독채로 이루어진 숙소를 구했고 일행들은 저마다의 방에서 휴식을 취했다.

그리고 다음 날. 가장 들떠서 제일 먼저 일어난 것은 시후였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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