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로그인하는 천마님-133화 (133/275)

제133화

시후는 옥천원 지하에서 느껴지는 이질적인 기운을 찾았다.

‘그런데 왜 익숙한 기운이지?’

처음 느껴보는 기운이 아니었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 바닥을 뜯어 안으로 들어가고 싶었다.

하지만 이렇게 많은 인파가 모여 있는 곳에서는 그럴 수 없기에 일단은 산에서 내려가기로 했다.

화산에 올랐던 케이블카를 타고 다시 내려와 진지춘이 마련한 숙소로 돌아왔다.

“다들 모여 봐.”

일행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시후 앞으로 달려왔다.

산에서 내려오면서 시후가 한 마디도 하지 않자 궁금한 거였다.

분명 무언가를 찾은 것 같은 표정인데 깊은 고민에 빠진 것 같아 보였기에 묻지 않았다.

하다못해 생각 없이 말하는 진지춘까지 말이다.

“궁금한 게 많을 텐데 다들 잘 참는구나?”

“뭐, 하루 이틀은 아니니까요.”

역시나 돌팔이 저 녀석은 한 마디가 꼭 많았다.

그래도 요번의 수고를 생각해 한 번은 참기로 했다.

“우선 그곳에서 무언가를 찾기는 했어.”

“진짜 뭐가 있기는 있었네요?”

“그래, 그래서 오늘 밤에 거기에 다시 가려고 해.”

그 말에 다들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밤에 그곳을 간다는 말은 공안의 눈을 피해 오른다는 말이었고, 즉 불법이라는 거였다.

거기다 화산의 험한 산세를 케이블카의 도움 없이 올라야 하기에 그만큼 힘들 터였다.

시후 역시 거기까지 생각했기에 다음 계획을 이야기했다.

“오르는 것은 나와 진권 둘. 나머지는 여기서 대기해.”

“네? 왜요?!”

조민이 반박했다.

여기까지 와서 정작 중요한 순간에 참여하지 못한다는 게 아쉬웠다.

“너희들 중에 내 경공을 따라올 수 있는 자가 없잖아.”

팩트에 일행들은 입을 다물었다.

반면 진권이 물었다.

“저도 경공에는 그다지 자신이 없습니다만….”

“그래, 너는 그래서 데리고 가는 거야.”

“네?!”

진권 한 사람만 모르고 있었다.

시후가 진권을 굴리겠다고 마음먹은 것을 실천 중이라는 것을 말이다.

진지춘이 안쓰럽다는 표정으로 진권의 어깨를 다독이고는 자리를 떠났다.

그렇게 해가 떨어지고 달이 뜨고 인적이 드물어지자 시후가 움직였다.

- 우선 옥천원으로 갈 거야, 잘 따라와라.

시후는 진권에게 전음을 보낸 후 몸을 날렸다.

둘은 검은색 무복과 복면을 사용해 어둠에 동화되어 산을 올랐다.

시후는 낮에 케이블카를 타고 편하게 올랐던 산등선을 내달리며 뒤를 힐끗했다.

‘제법인데?’

경공에는 그다지 자신이 없다던 진권은 의외로 발군의 실력을 보였다.

시후는 진권의 실력 좀 보겠다고 삼성의 내공으로 경공술을 펼쳤다.

그런데 힘들다는 말 한 마디 없이 줄곧 거리를 유지하며 따라오는 진권이었다.

시후는 그런 진권을 힐끗하고는 달리는 발에 박차를 가했다.

사실 진권은 죽을 맛이었다.

시후가 빠르면 얼마나 빠르겠냐는 생각은 숙소를 빠져나오는 순간 사라졌다.

순식간에 점이 되어 사라지는 시후를 죽을힘을 다해 쫓았다.

복면을 쓰고 있기에 찌푸린 인상이 보이지 않을 뿐.

팔 성의 내공으로 경공술을 펼치고 있었다.

그런데 시후가 자신을 힐끗거리고는 순식간에 멀어지고 있었다.

어차피 목적지는 옥천원이니 그곳에서 만나면 될 테지만.

진권은 호승심이 일어 내공을 더욱 끌어 올렸다.

그렇게 둘은 순식간에 옥천원에 다다랐다.

시후는 CCTV가 비추지 않는 구석으로 몸을 날려 진권을 기다렸다.

잠시 후 진권이 어깨를 들썩이며 옆에 내려섰다.

시후는 그런 진권의 숨이 고르기를 말없이 기다려줬다.

‘이만한 실력이면 걱정은 좀 덜겠어.’

앞으로 상대할 녀석들과 진권을 비교했다.

솔직히 지금 시후에게는 딸린 이가 너무 많았다.

혈교를 쫓고는 있지만, 그들과 마주칠 때 다른 이들은 없었으면 했다.

하지만 일행들이 오지 말란다고 오지 않을 이들도 아니었기에 최대한 보호를 하며 싸울 생각이었다.

그런 싸움에서 진권의 존재는 생각보다 힘이 될 것 같았다.

그래서 조금 챙겨줄 마음이 생겼다.

- 돌아갈 땐 좀 편하게 돌아갈 수 있게 해주마.

시후의 전음에 진권은 대답하지 않았다.

무슨 의미인지도 알 수 없었을 뿐더러 대답할 힘도 없었다.

마음 같아서는 지금 당장 운기조식을 하고 싶었지만 이미 시후가 쉴 만큼 쉬었다고 생각했는지 자리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진권도 힘겹게 무릎을 짚으며 일어났다.

시후는 진권에게 손짓하며 CCTV의 사각지대를 넘나들며 빠르게 옥천원으로 향했다.

케이블카가 없으면 오르기 힘든 화산이어서 그런지 경비는 보이지 않았다.

덕분에 쉽게 옥천원으로 들어온 둘이었다.

시후는 진권에게 손짓하며 위패들이 모여 있는 단상 뒤로 몸을 날렸다.

‘분명히 이 근처였는데….’

낮에 느꼈던 그 기운이 가장 강하게 느껴지는 곳의 바로 위였다.

솔직히 이 정도의 전각쯤은 발돋움 한 번에 날려버릴 수도 있었다.

하지만 무언가 안배를 해 놓았다면 외부에 충격이 가해지면 그곳을 방어하는 장치가 작동되도록 해놓았을 터였다.

그래서 좀 수고를 들이기로 했다.

시후는 기감을 아주 엷게 펼쳐냈다.

잔잔한 호수에 돌멩이 하나를 던진 것처럼 기파가 흘러나갔다.

진권은 그것을 느끼는 순간 시후가 무엇을 하려는지 알았기에 움직임을 멈췄다.

시후는 지금 퍼트린 기파가 닿는 것 중 이질적인 부분을 찾는 거였다.

그리고 역시나.

‘찾았다.’

뒤쪽 벽에 커다랗게 걸려 있는 족자에서 이질적인 기운이 느껴졌다.

시후는 펼쳤던 기파를 거두고 그곳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그곳에 걸린 족자를 들추자.

“아무것도 없습니다?”

진권의 말대로 족자 뒤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하지만 시후는 낙담하지 않았다.

이곳에도 남아 있었다.

화산 절벽에 천마멸겁장의 흔적이 남아 있던 것처럼 누군가의 수적(手蹟)이.

물론, 세월의 흔적으로 인해 많이 변모되어 있기는 했지만 말이다.

시후는 벽에 손을 슬쩍 대고는 천천히 기를 퍼트렸다.

이번에는 미세한 떨림이 일도록 꿀렁이게 말이다.

좀 전에도 그렇고 이번에도 그렇고 그 모습을 뒤에서 보고 있던 진권은 놀랄 뿐이었다.

스승님이나 소림 사대 수호신승의 사형들이나 그 누구도 시후처럼 기를 다채롭게 사용하는 이를 본 적이 없었다.

지금 진권은 일대일 과외를 받는 것 같았다.

시후가 기를 퍼트린 지 얼마 되지 않아 벽에 균열이 나타났다.

그것을 본 진권이 한 발 다가왔다.

“이건… 커다란 문이군요.”

“그렇게 보이지?”

족자를 거두자 균열의 크기가 명확히 보였다.

웬만한 자동차 한 대는 들어갈 정도로 열릴 수 있는 크기의 문이었다.

다만, 손잡이가 있어야 할 곳에 손바닥 자국 두 개가 있을 뿐.

“누가 봐도 밀라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렇게 보이네.”

시후는 시큰둥하게 말하며 고개를 까딱였다.

그 말은 진권보고 힘 좀 써보라는 거였다.

진권은 이곳까지 와서 자신이 한 일이 아무것도 없다는 생각에 자연스럽게 따랐다.

“그래, 그렇게 눈치 챙겨가는 거다.”

“그럼, 우웁!”

진권은 호흡까지 가다듬고는 문을 밀었다.

그리고 미는 순간 알 수 있었다.

이건 보통의 문이 아닌 아주 무거운 무게를 자랑하는 문이라는 것을 말이다.

진권은 다리에 힘을 주고는 내공을 끌어 올렸다.

경공을 펼치고 올라오느라 내공을 소모하기는 했지만, 지금의 내공만으로도 버스 한 대 정도는 밀 수 있었다.

그만한 힘으로 문을 밀었다.

하지만.

“…끄응.”

“너 그러다가 똥 싸겠다. 나와.”

아무리 내공을 끌어 올려 밀어도 밀리지 않는 문에 진권은 한 걸음 물러났다.

그러고는 시후에게 당신이 해보라는 눈빛을 보냈다.

시후는 그런 진권에게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어주며 벽으로 다가갔다.

‘뭐, 이건 여는 방법이 따로 있는 거니까.’

안배도 이런 안배가 없었다.

문손잡이 대신에 찍혀 있는 두 개의 손바닥 자국.

누가 보아도 그곳에 손을 대고 밀라는 거였다.

하지만 그게 다가 아니었다.

이곳이 어디인가.

화산(華山). 도가의 성지라 불리는 곳이다.

그런 곳에 가장 은밀하게 숨겨져 있는 비밀 장소에 ‘아무나’의 출입을 허락할 리가 없었다.

시후는 천마분심공을 통해 내공을 변질시켰다.

천마지체를 이루었기에 몸속 모든 혈에 단전처럼 내공을 응집할 수 있었고, 천마분심공을 통해 그 내공의 성질을 달리할 수 있었다.

시후는 천마동에서 읽었던 화산의 가주에게 전해져오는 자하신공을 일으켰다.

선분홍색의 기운이 시후의 팔을 휘감더니 벽으로 전해졌다.

그러자 문틈처럼 벌어진 균열을 따라 기운이 흘러갔다.

그 순간 시후가 문을 밀었다.

그거거걱-

무게를 짐작할 수 있는 소리가 들리며 안으로 열렸다.

“허….”

너무나도 쉽게 열리는 문에 진권은 헛바람을 삼켰다.

그런 진권의 어깨를 토닥이고는 안을 들여다봤다.

문 안쪽에는 가파른 계단이 있었다.

시후는 망설임 없이 계단을 내려갔다.

빛 한 점 들어오지 않는 곳이었지만 시후와 진권은 개의치 않았다.

5분 정도 내려가자 계단이 끝나고 그 앞으로 길이 이어졌다.

외길로 이루어진 그 길의 폭은 두 사람이 같이 걷기에도 부족하지 않았다.

그리고 드디어 저 멀리 은은한 빛이 보였다.

시후는 진권에게 신호를 보내며 경공을 펼쳤다.

순식간에 빛이 있는 곳까지 다다른 둘은 주위를 둘러봤다.

“이건….”

“야명주지.”

진권은 야명주를 실제로 처음 보았다.

소림사 서고에 비치된 여러 가지 문헌들에 적혀는 있었지만, 실물을 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스스로 빛을 내는 구슬이라니요, 신기합니다.”

누가 중 아니랄까 봐 저것을 보고 느끼는 감상이 그저 ‘신기함’이라니.

천마 시절에도 야명주는 쉽게 구할 수 있는 물건이 아니었다.

거기다가 저것들처럼 주먹만 한 크기의 야명주는 더욱더 말이다.

“그런 야명주가 이곳에 열 개나 박혀 있다는 것은?”

“여기가 목적지라는 말씀이죠.”

이런 일에는 눈치가 빠른 진권이었다.

시후는 앞을 막아서고 있는 벽을 만져보았다.

옥천원과는 다른 재질로 이루어진 벽은 냉기가 느껴졌다.

‘이거… 만년한철이잖아.’

천마 시절 만져본 적이 있었다.

더운 것을 가장 싫어하면서도 언제나 뜨거운 곳에서 살다시피 했던 인물.

‘황 노인.’

천마신교에서 그를 황 노인이라고 부른 것은 오직 천마뿐이었다.

대외적인 그의 이름은 대력거인(大力巨人) 황철력(黃鐵力).

칠척장신의 키를 가진 그는 대장장이였다.

천마신교 안에 그가 만들지 않은 것들이 없었다.

무인들에게는 무기를, 신도들에게는 생필품을 만들어줬다.

시후가 그런 황 노인을 지금 떠올린 것은 눈앞에 떡하고 버틴 만년한철 중앙에 그의 낙인이 보여서였다.

‘사람이 있기에 자신이 만드는 것들을 쓸 수 있다고 했던 그는 언제나 ‘사람 인(人)’ 자를 새겨 넣었었지.’

왜 도가의 성지인 화산의 비밀 창고에 천마신교 황 노인의 낙인이 찍혀 있는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그 답은 저 안에 있겠지.”

시후는 답을 찾기 위해 만년한철로 만든 문에 손을 얹었다.

그리고 이곳에 내려올 때 했던 것처럼 자하신공의 기운을 흘려 넣었다.

이번에는 밀지도 않았다.

물이 흐르듯 흘러 들어간 선분홍색의 기운은 만년한철 문을 스스로 열리게 했다.

문이 열리자 시후가 앞장서 들어갔다.

“와… 이것들이 다 뭡니까?”

“그러게, 이 많은 금은보화가 다 뭘까?”

안은 그야말로 보물이 산을 이루고 있었다.

금괴와 은덩이가 가지런히 놓여 있는가 하면, 금과 보석을 세공한 장식품들과 각종 무기들이 진열장에 가득 놓여 있었다.

대략 20평 정도 되는 공간에 시후 키만큼 금은보화가 쌓여 있었다.

평소 물욕이 없던 진권조차 넋을 잃고 두리번거렸다.

하지만 시후에게 다른 것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이곳에 들어오고 한 번 안을 둘러보던 그때.

가장 안쪽 가운데에 있는 단상이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그 단상에서 옥천원에서 느꼈던 익숙한 이질적인 기운을 느꼈다.

성큼성큼 단상 앞으로 걸어간 시후는 단상 위에 놓여 있는 물건을 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맞아, 네 녀석이 황 노인과 유독 친했었지. 마천서생(魔天書生) 평수혁(平數侐).”

(다음 편에서 계속)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