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1화
S.W SOFT 운영기획실장 김철수.
그에게 다시없을 일생일대의 기회가 찾아왔다.
일전에 버그 유저로 의심받던 유저를 섭외하려다가 크게 물을 먹었던 그였다.
덕분에 한국 운영기획실에서 물러나 중국으로 발령을 받았었다.
그것도 내근직이 아닌 외근직으로 말이다.
그렇게 신세 한탄만 하며 허송세월하던 어느 날, 한국에서 다시 연락이 왔다.
“네?! 그때 그 유저가 새로운 직업을 공표했다고요?!”
- 그래, 그래서 말인데. 자네가 좀 움직여 줘야겠어.
“제가요?”
여기까지만 들어도 무슨 말이 나올지 대충 알았다.
하지만 그때 그렇게 물먹었는데 지금은 어떻겠는가.
제대로 된 보상 정도는 들고 가야 말이 될 것 같았다.
아니. 무엇보다 그가 어디 있는지 어떻게 알고 움직인단 말인가.
그렇게 오만가지 생각을 하던 김철수의 귀에 뜻밖의 말이 들렸다.
- 그 유저 ID가 중국에서 연결이 되었어. 그것도 마침 자네가 있는 곳에.
“정말이요? 그런데… 그거 갖고 찾아가면 불법 아닌가요?”
불법이 맞았다.
유저 ID를 가지고 접속한 IP를 추적하고 찾아간다면 사생활 침해나 개인 정보 관련 쪽으로 법적 제재가 가능했다.
‘그런 상식적인 것을 무시할 정도로, 아니. 그런 것도 감수할 정도로 그 유저가 대단한가?’
얼마나 대단한 유저길래 이리 포섭에 목메나 싶었다.
그런데 전화기 너머로 들린 말은 의외였다.
- 불법까지 고수할 정도는 아니야. 다만 그 유저가 지금 스페셜 히든 퀘스트를 시작했네.
“진짜요?!”
깜짝 놀랐다.
버그 유저라고 의심받을 만한 실력에 새로운 직업을 공표하고 거기다가 이제는 스페셜 히든 퀘스트를 시작한단다.
전화기 너머로 들린 ‘그 정도는 아니야’는 순간 개소리로 들렸다.
김철수는 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스페셜 히든 퀘스트를 진행하면 어차피 의료진과 보안 요원이 나가야 했다.
본사에서 자신에게 직접 연락이 왔으니 자신이 그 사이에 끼어 나가는 건 일도 아닐 거였다.
문제는 그 유저와 접촉한 후에 자신이 해야 할 일이었다.
일반적인 스페셜 히든 퀘스트 유저 관리가 아닌 다른 사안을 해결해야 했다.
- 김철수 팀장. 자네가 이번 일을 진행해주게.
“알겠습니다. 하지만 그때 일도 있고 이번에 접촉하려면 무언가 미끼가 필요할 텐데요….”
김철수는 말끝을 흐렸다.
여운을 남기며 확답을 빠르게 받으려는 거였다.
역시나.
- 그건 걱정 말게. 그에게 제시할 공약 정도는 이미 준비해 뒀으니. 자네 메일로 보내 놓을 테니 이동하면서 확인하게나.
“알겠습니다.”
- 그럼, 꼭 성공하길 바라네.
띠릭-
그렇게 종료된 통화에 김철수는 서둘러 움직였다.
이미 본사에서 연락을 취해 놓았기에 자신은 준비된 차량에 탑승만 하면 되었다.
스페셜 히든 퀘스트를 진행하는 IP의 주소로 1시간 만에 당도했다.
그리고 제일 먼저 나서서 인터폰 벨을 눌렀다.
- 네.
“안녕하십니까, S.W SOFT에서 나왔습니다.”
인터폰에 들리는 목소리에 활짝 웃으며 당당하게 자신이 S.W SOFT 직원임을 밝혔다.
이제 문을 열어주면 안으로 들어가 의료진과 보안 요원들을 배치하여 분위기를 잡은 후 주도권을 쥘 생각이었다.
하지만.
- 안 사요.
“……!”
인터폰에서 들린 말에 다들 할 말을 잃었다.
그나마 김철수가 퍼뜩 정신을 차리고 다시 인터폰 벨을 눌렀다.
- 안 산다니까요.
“자, 잠시만요! 저희는 잡상인이 아닙니다! 현재 하고 계시는 스페셜 히든 퀘스트 때문에 S.W SOFT에서 나온 사람들입니다!”
김철수는 행여나 인터폰을 끊을까 싶어 서둘러 자기 신분증을 인터폰에 들이밀었다.
- …….
잠시 인터폰에서 아무 말도 없자 김철수는 드디어 되었다 싶었다.
하지만.
- 끝났어요.
“……!”
이 무슨 망언인가.
스페셜 히든 퀘스트를 한다는 소식을 듣고 달려온 지 겨우 1시간이 되었는데 벌써 끝나다니.
안에서 농담 따 먹기를 하려는가 싶을 때 옆에 있던 보안 요원이 김철수를 불러 세웠다.
“정말입니다. 조금 전에 퀘스트가 종료되어 접속이 끊겼습니다.”
“뭐라고요?!”
김철수는 보안 요원이 내미는 태블릿을 뺏어 들었다.
거기에는 ID가 접속한 시간과 종료 시간이 적혀 있었다.
“진짜 불과 몇 분 전에 종료했네요?”
“그렇습니다. 이렇게 되면 저희는 이곳에 들어갈 명분이 없어집니다.”
“…….”
김철수는 생각이 많아졌다.
이렇게 되면 자신이 계획한 모든 것이 허사였다.
서둘러 다른 방도를 찾아야 했다.
‘어떻게든 저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
영업에서 가장 우선시되어야 할 것은 대상을 테이블에 앉히는 거였다.
아무래도 숨겨둔 패를 먼저 내보여야 할 것 같았다.
“저 유저는 저 혼자 만나 봐야겠으니 다들 돌아가 주세요.”
김철수는 서둘러 보안 요원들과 의료진을 돌려보냈다.
그들도 스페셜 히든 퀘스트가 끝나 자신들이 필요 없는 상황이었기에 서둘러 자리를 떠났다.
그렇게 홀로 남은 김철수는 다시 인터폰을 눌렀다.
- 뭡니까?
“잠시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 계속 귀찮게 하면 공안을 부를 겁니다.
공안을 부른다는 소리에 김철수는 빠르게 스마트폰을 들이밀었다.
그리고 드디어.
- 들어오세요.
철컥.
방문을 허락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김철수는 드디어 1차 관문을 통과했다는 생각에 옷매무새를 가다듬으며 결의를 다졌다.
그리고 당찬 걸음걸이로 안으로 들어갔다.
“실례합니다.”
“어서 오시지요.”
진권이 합장을 하며 김철수를 맞이했다.
김철수는 왜 이곳에서 까까머리 중이 자신을 반기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렇게 김철수가 잠시 멍해진 사이 안쪽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이쪽으로.”
“아, 네!”
목소리가 들리는 방향으로 서둘러 들어갔다.
고급스러운 소파가 자리한 거실이 보이자 목소리의 주인공을 찾을 수 있었다.
시후는 소파에 앉아 여유롭게 차를 음미하고 있었다.
그런 시후의 뒤로 진지춘과 변용한 태산과 인호, 조민이 서 있었다.
진권은 김철수를 소파로 안내한 후 그들 옆으로 자리했다.
한눈에 보아도 고등학생 정도로 보이는 곱상한 남자가 이들의 수장으로 보였다.
김철수가 대충 주변 상황을 인지한 것을 눈치챈 시후는 찻잔을 내려놓았다.
“오랜만에 뵙네요.”
“오랜만… 아!”
오랜만이라는 인사에 김철수는 자신의 눈앞에 있는 시후가 일전에 자신을 물 먹인 그 유저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대화의 빠른 진행을 위해 시후가 미리 언질을 준거였다.
“보시다시피 그 퀘스트는 이미 끝났습니다.”
“네,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제가 당신을 이곳에 들인 연유는 그것 때문이라는 것을 알고 계시지요?”
“당연합니다. 이것이 아니었다면 만나주지 않으셨을 테니까요.”
스윽-
김철수는 스마트폰을 테이블에 올려놓고는 시후에게로 슬쩍 밀었다.
스마트폰에는 인터폰 화면으로 보던 내용이 나타나 있었다.
[Safety World 프로게이머 계약서]
S.W SOFT와 ___ 은 프로게이머 계약을 체결하고, 본 계약에 정함이 없는 사항은 당사 제규정에 따른다.
제1조 <계약자 인적 사항>
1. 성명 :
2. 소속 :
3. 주민등록번호 :
4. …….
스마트폰에 나타나 있는 것은 프로게이머 계약서였다.
시후는 스마트폰 화면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지금 이것을 보여주시는 것은 S.W SOFT가 저와 프로게이머 계약을 맺기를 원한다는 겁니까?”
“네! 맞습니다!”
시후의 말에 단호하게 대답하는 김철수였다.
시후는 그 모습에 관심이 없는 듯한 표정을 유지하며 스마트폰을 집어 뒤로 넘겨주었다.
그것을 받아 든 것은 조민이었다.
미리 준비된 인피면구와 정장을 입고 있는 조민은 영락없는 시후의 비서 같았다.
조민은 스마트폰을 조작하며 계약서 내용을 찬찬히 읽었다.
그러고는 앞으로 걸어 나와 김철수에게 돌려주었다.
“역시 이건 가계약서네요?”
“네, 그렇습니다.”
이번에도 역시나 당당하게 말하는 김철수였다.
마치 당연히 지적할 거라 생각한 듯한 태도였다.
시후는 그런 김철수에게 어서 더 말해보라는 듯이 손을 슬쩍 들어 올렸다.
김철수는 목을 가다듬고는 준비해온 멘트를 시작했다.
“크흠, 아시다시피 현재 Safety World는 프로게이머가 딱히 그 역할을 해주고 있지 못합니다.”
그건 시후도 익히 알고 있는 거였다.
일전에 너튜브를 통해 Safety World에 대한 정보를 취합하던 중에 조민에게 들었었다.
게임을 하는 것을 직업으로 삼는 이들이 있는데, 억대의 연봉을 받는 그들이 특별하게 활동하지 못하는 게임이 바로 Safety World라는 거였다.
AI가 직접 운영하는 Safety World는 시간만 투자한다고 해서 다른 이들보다 월등히 뛰어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물론, 일반인들보다 게임에 친숙한 프로게이머들이 고레벨 유저로 상당수가 자리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들이 자신들의 스폰서를 광고하듯 무언가를 하지는 않았다.
어찌 보면 프로게이머들은 기업의 광고판이었으니 그들이 나설 기회가 없다는 것이 더 맞는 말이었을 거였다.
그런 사실을 시후조차 알고 있는데 그것을 들먹이며 계약서를 내밀다니.
김철수에게는 무언가가 더 있었다.
“그래서 저희 S.W SOFT는 이번에 대대적인 이벤트를 준비 중에 있습니다.”
“이벤트요?”
“네. 회사 극비 사항이지만 특별히 말씀드리겠습니다.”
“……?”
잠시 뜸을 들이며 숨을 고르던 김철수는 눈을 번쩍 뜨며 입을 열었다.
“월드 오브 리그(World of league)!!”
“…….”
김철수가 두 팔까지 벌려 우렁차게 외친 것치고는 뜨뜻미지근한 시후의 반응이었다.
반면, 김철수가 원하는 반응은 옆에 있던 조민에게서 나왔다.
“리그전이요?!”
“네!”
그 반응에 김철수는 옳다구나 생각하며 몸까지 틀었다.
다년간 다져진 그의 짬바로 지금 자신이 설명을 해야 하는 상대는 조민임을 깨달은 것이다.
“세계 각국이 리그전을 펼치는 겁니다. 그것도 국가 대항전으로 말입니다.”
“마치 월드컵처럼 말이죠?”
“그렇습니다! 가슴에 떡하니 모국의 국기를 달고 서로 겨루는 것이지요.”
“그것을 전 세계에 생중계하고요.”
“역시! 잘 아시는군요. 그런 자리에서 우승한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부와 명성을 한꺼번에 얻을 수 있겠네요.”
다들 조민과 같은 생각이었다.
시후를 제외하고는 말이다.
딱히 시후는 지금 부와 명성에 관심이 없었다.
돈이야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 것이지만 고등학생 신분인 지금으로서는 개인 자산을 축적하기 힘들었다.
명성 또한 마찬가지였다.
천마 시절이었으면 모를까, 강시후로 살아가면서 세간의 이목이 쏠리는 게 그다지 반갑지는 않았다.
되레 무공을 펼치는 것에 있어 남들의 이목을 피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생길 수도 있었다.
하지만 김철수의 다음 말은 무시할 수 없었다.
“리그전은 팀전과 개인전으로 치러질 것입니다. 이미 어느 정도 구상이 끝난 사안이며 정부와 협약도 마친 단계입니다.”
“개인전?!”
김철수의 말에 처음으로 시후가 대꾸했다.
그 반응에 김철수는 다시 시후에게로 몸을 돌렸다.
“개인전은 팀전과는 다르게 이루어집니다. 말 그대로 개.인.전. 전 세계 약 80억 인구 중에서 절대적인 일인자를 뽑는 것이지요.”
“그 말은 일대일로 붙는다는 거지요?”
“당연합니다, 오로지 상대와 나! 이렇게 둘이서만 무대에 올라 겨루는 것입니다.”
“마치 비무처럼 말이지요?”
“그렇습니다. 개인의 레벨 차이는 무시할 수 없으나 Safety World가 어디 레벨만으로 승부가 나는 곳이겠습니까?”
‘비무’라는 단어에 시후의 한쪽 눈썹이 꿈틀댔다.
김철수는 그것을 놓치지 않았다.
이제 시후를 끌어들일 마지막 한 수를 꺼낼 차례였다.
“그렇기에 저희와 프로게이머 계약을 해주시면 그 리그전에 참여할 수 있도록 힘써 보겠습니다.”
“좋습니다. 내 요구 조건만 들어준다면 당장이라도 계약을 하죠.”
“뭐든 들어드리겠습니다!”
이미 본사에서 시후를 섭외하기 위해 어느 정도의 지원이 떨어진 사항이었다.
돈이면 돈, 아이템이면 아이템.
Safety World를 하는 유저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들어줄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자신감 넘치는 표정으로 시후의 대답을 기다리던 김철수는 잠시 후 허탈한 표정으로 진지춘의 집을 나서고 있었다.
그의 떨리는 손에 들린 스마트폰에는 시후가 말한 요구 조건이 적혀 있었다.
[지정 NPC와의 비무 약속]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