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로그인하는 천마님-130화 (130/275)

제130화

오늘 처음으로 Safety World를 해본 진권.

그는 현실과 다름없는 세계에서 위리놈에게 죽은 후 로그아웃되었다.

처음 Safety world에 들어갈 때 조민이 조언해준 것이 있었기에 게임 속에서 죽었다고 현실에서 죽는 것은 아니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소림사에서 무승으로 살아오면서 이런 감정을 느껴 본 적이 없었다.

“이런 패배감이라니.”

어렸을 때 무에 재능을 보여 소림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았다.

덕분에 다른 사형들보다 빠르게 성취를 보였고 사대신승에 자리에 앉게 되었다.

그런 그가 위리놈에게 손 한 번 써보지 못하고 죽임을 당하자 망연자실했다.

현실로 돌아온 진권은 고글을 벗으며 죽기 전 장면을 떠올렸다.

“모두 무사한 건가?”

설마 자기만 죽은 것은 아닌가 싶어 캡슐이 열리자 서둘러 나갔다.

그리고 한쪽에 모여 있는 이들을 보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순간 흠칫했다.

“허허… 번뇌로다… 아미타불.”

진권은 합장하며 쓸데없는 호승심에 부끄러워하며 자책했다.

그러다 한 가지 이상한 것이 보였다.

게임에 들어간 사람은 6명인데 현재 나와 있는 인원은 본인 포함 5명뿐이었다.

“설마, 아직 누군가 안에 남아 계십니까?”

“진권 스님 나오셨어요?”

“아, 네. 그보다 누가 아직… 설마, 시후 시주?”

진권은 자신을 바라보는 태산과 인호, 진지춘과 조민을 보며 보이지 않는 시후를 찾았다.

그리고 이들이 모여 있는 곳이 시후가 들어간 캡슐 앞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시후 시주께서는 아직이신 겁니까?”

“네.”

“허, 허허. 대단하십니다. 소승이 느낀 바로는 필패가 분명했는데요.”

진권의 객관적인 평가였다.

위리놈에게서 느낀 기운은 시후를 능히 능가했다.

시간 차이만 있을 뿐이지 잠시 후면 시후도 캡슐을 열고 나올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시후는 1시간이 지나도 나오지 않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다들 시후의 캡슐 앞에서 떠나지 않고 있었다.

“시후 시주가 그리도 걱정되십니까?”

“그분이 누구에게 걱정을 받으실 분은 아니지만, 지금은 좀 되네요.”

“지금은요?”

좀처럼 이해할 수 없다는 진권의 표정에 조민이 나섰다.

“Safety World에는 퀘스트라는 것이 있어요. 그것을 클리어하기 위해 여러 가지 활동을 하는 거고요.”

“그럼, 그곳에 찾아간 것도 그 퀘스트라는 것을 수행하기 위해서라는 겁니까?”

“네, 맞아요. 각각의 퀘스트는 저마다 정해진 난이도가 있는데 노말, 하드, 히든 이런 식으로 나뉘어요. 그런데 저희가 한 것은 히든 퀘스트예요.”

“그 말씀은 어려운 퀘스트라는 말씀이군요.”

“그렇죠. 문제는 히든 퀘스트 중에서도 특별한 퀘스트가 있는데 그걸 지금 오빠가 하고 있다는 거예요.”

조민은 시후가 들어가 있는 캡슐을 가리켰다.

다른 캡슐들과는 다르게 붉은색 LED가 들어와 있었다.

Safety World에 대해서 잘 모르는 진권조차 그 불빛에 불안감이 들었다.

조민의 말대로 지금 시후는 히든 퀘스트 중에서도 특별한 퀘스트, 스페셜 히든 퀘스트를 진행 중이었다.

이는 극히 드문 사례로 유저에게 제약을 가하는 퀘스트였다.

세계적으로 유행인 Safety World였지만 스페셜 히든 퀘스트를 해본 유저는 손에 꼽을 정도였다.

어떤 이는 전직을 위해 감옥에 갇혀 3일을 버티는가 하면 어떤 이는 장비 제련을 위해 대장간에서 3일 밤을 일한 적도 있었다.

저마다 퀘스트 내용은 다르지만, 이것들의 공통점이 있었다.

“스페셜 히든 퀘스트는 스스로 로그아웃을 할 수가 없어요.”

“네?! 그럼, 시후 시주께서는 영영 저기서 나오지 못한다는 겁니까?”

“꼭 그런 거는 아니에요. 그 퀘스트를 실패하거나 포기를 하면 클리어 전에 나올 수 있어요.”

조민의 말처럼 스페셜 히든 퀘스트는 안전장치가 마련되어 있었다.

우선 퀘스트를 시작해 로그아웃에 제약이 걸리면 해당 캡슐 IP가 S.W SOFT로 전달된다.

그럼 S.W SOFT 측에서 해당 IP를 사용하는 곳의 주소를 확인한 후 보안 요원들과 의료진을 파견한다.

그 시간이 평균 3시간.

즉, 시후가 앞으로 2시간 안에 나오지 않으면 S.W SOFT 직원들이 진지춘의 집으로 들이닥친다는 말이었다.

다른 이들이라면 자신들을 지켜주는 의료진과 보안 요원들을 쌍수 들고 반기겠지만 시후는 아니었다.

한스텔 마을에서 그만한 업적을 남겼고 얼마 전에는 ‘천마’라는 이름으로 ‘무림인’이라는 새로운 직업을 공표했다.

그만한 이슈를 남기면서도 시후는 S.W SOFT와 연결되기를 꺼렸다.

괜히 귀찮은 일에 휘말리기 싫다는 이유였다.

그것을 알고 있는 조민이었기에 시후가 늦으면 S.W SOFT 직원들을 어찌해야 싶어 골머리를 썩이고 있었다.

“진지춘 의원님, 여기 막을 방법은 없나요?”

“막아봐야 뭐 하나, 저 문 앞에서 열라고 계속 두드릴 텐데.”

“그렇다고 저들이 들어오는 것을 그대로 내버려 둘 거예요?”

“크흠… 그럴 수는 없지만….”

진지춘 역시 짐작은 할 수 있었다.

아무 대처 없이 일이 벌어지게 되면 시후가 어떤 역정을 낼지 말이다.

다른 이들이야 어떨지 모르지만, 이 집 주인인 자신은 분명 호되게 당할 거였다.

‘여기까지 오는 버스에서 그렇게 까불었는데….’

진지춘은 버스에서 일들을 떠올리자 사색이 되어갔다.

“내가 어떻게든 막아보지.”

“의원님께서요? 어떻게요?”

“뭐 별거 있나? 그냥 다들 기절시켜 버리면….”

“큰일 나요! 그러다가 공안에게 쫓기는 일이라도 생기면 어쩌려고요.”

“그럼, 이대로 도련님에게 꾸지람을 들으란 말인가?! 나는 아마 점혈을 당해 몇 날 며칠이고 갇혀 일을 못 할지도 모르는구만!”

“…….”

그 말에 다들 진지춘에게 벌어질 일들을 상상해봤다.

인과응보라는 생각에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 반응에 진지춘은 더욱 열을 올렸다.

“그 보게! 내 당장 밖에 나가서….”

띠-띠-띠-띠-

그때 시후의 캡슐에서 알림음이 울렸다.

그 소리에 다들 한걸음에 캡슐로 달려갔다.

스페셜 히든 퀘스트 중임을 알리는 붉은색 LED가 점멸되었다.

그리고 열리는 캡슐.

“뭐지? 스페셜 히든 퀘스트가 이렇게 빨리 끝난 적은 없었는데?”

“시후가 한 방에 해결한 거 아니야?”

태산과 말에 다들 그럴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하지만. 고글을 벗고 나오는 시후의 표정에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시후는 무표정한 얼굴로 일행들을 지나쳐 주방으로 향했다.

냉장고에서 생수 한 병을 꺼내고는 벌컥벌컥 들이켰다.

“크흐.”

단숨에 생수 한 병을 비운 시후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 모습에 다들 하고 싶은 말은 태산처럼 많았지만 하지 못했다.

그렇다고 S.W SOFT에서 언제 쳐들어올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이렇게 시간만 보낼 수는 없기에 일행들은 자연스럽게 진지춘을 쳐다봤다.

누구는 가장 연장자이니 나서라는 눈빛.

누구는 이 집 주인이니 나서라는 눈빛.

누구는 어차피 곤욕을 치를 거니 시원하게 이야기나 듣고 곤욕을 치르라는 눈빛.

시후처럼 독안공을 사용하지는 못하지만, 일행들의 그런 눈빛쯤은 읽을 수 있는 진지춘이었다.

“칫. 알았다. 저… 도련님… 히익!”

꽈드득-

진지춘이 시후를 부르는 순간 시후의 손에 들려 있던 생수병이 확 찌그러졌다.

얇은 생수병이 찌그러진 게 뭐가 대수롭겠느냐마는 그 생수병이 살기로 인해 찌그러진 거라면 달랐다.

그 살기가 자신에게 향하지 말라는 법이 없으니 말이다.

진지춘은 마른침을 꼴깍 삼키며 태산과 인호를 바라봤다.

세상 간절한 눈빛으로 말이다.

그래도 너희는 친구이니 죽이지는 않지 않겠냐는 거였다.

결국, 태산과 인호가 시후에게 다가갔다.

“시후야, 괜찮냐?”

“…….”

“지금 말하기 좀 곤란해?”

“…….”

“무슨 일이 있었길래 그래?”

둘의 계속되는 질문에 드디어 시후가 입을 뗐다.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졌…어.”

“뭐?!”

일행들은 그 말을 믿을 수 없었다.

지금까지 시후가 보여온 행보가 어땠는가.

버그 유저라고 불려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레벨에 맞지 않는 강함을 보였다.

그런 시후가 ‘졌다’라고 말하다니.

“도대체 무슨 퀘스트였길래 그래요?!”

“누, 누가 도련님을 죽일 수 있습니까?!”

조민과 진지춘이 다가와 자세히 물었다.

시후는 다시 한번 깊은 한숨을 내쉬고는 위리놈과 있었던 일을 설명했다.

블랙 라이칸을 타고 진실된 어둠의 공간에 들어간 것하며 블칸 영주를 만나고 위리놈과 격전을 벌인 것까지 말이다.

“내가 비장의 한 수까지 내보였는데 그 자식 몸에서 뛰쳐나온 늑대 새끼들에게 물어 뜯겨 죽었어.”

“헐….”

시후는 위리놈의 마지막 스킬을 되새겼다.

위리놈의 탄탄한 근육들이 찢어지며 그 틈으로 삐져나오는 무시무시한 어둠의 늑대들이 사방에서 자신을 물어뜯는 순간을 말이다.

블칸 영주성에서 기감을 펼쳐 공주를 찾기 위해 통각 옵션을 조정해 놨었다.

덕분에 몸 이곳저곳이 아직도 찌릿찌릿했다.

하지만 그것보다 시후의 기분이 이토록 저기압인 이유는 다른 것에 있었다.

‘비무에서 내가 지다니….’

천마 시절 천마동에서 나온 후로 일대일 비무에서는 패배를 모르던 시후였다.

마지막 패배의 순간도 소림에서 일천에 달하는 고수들과의 결전이었다.

‘패배라는 두 글자가 이리도 쓰게 다가오다니.’

시후는 이번에 얻은 것보다 그 상실감이 더욱 컸기에 이러는 거였다.

솔직한 지금 심정으로는 당장 다시 접속해 위리놈에게 이길 때까지 싸우고 싶었다.

하지만 유저는 죽게 되면 24시간 접속 제한이 있었다.

거기다가 로그아웃되기 전에 들은 위리놈의 말이 상당히 거슬렸다.

“다음에 들어올 때는 뭐?! 웃으면서 보자고? 하! 네 웃는 그 낯짝을 뭉개주마!”

주먹을 움켜쥐며 스스로 다짐하는 시후를 보며 다들 앞으로 험난한 일정을 짐작했다.

시후는 위리놈의 낯짝을 뭉개주기 위해 그에 필요한 정보가 필요했다.

“조민아.”

“네. 그 위리놈이라는 대악마는 말이죠.”

역시나 조민은 이미 시후가 자신에게 무엇을 요구할지 알았는지 준비를 마친 상태였다.

캡슐에서 나온 후에 조사해둔 위리놈에 대한 자료를 시후에게 보여주었다.

대악마라는 생소한 존재에 대한 이해와 함께 시후는 위리놈에 대한 정보를 기억했다.

“그래, 지피지기(知彼知己)하면 백전백승(百戰百勝)이라 했지. 두고 보자.”

시후는 이까지 바득바득 갈며 다음 접속 때 위리놈에게 어떻게 복수할지 계획했다.

근래 보기 드문 시후의 집중력에 다들 지켜보고만 있었다.

하지만 표정까지 숨길 수는 없었다.

“뭐야, 그 표정은? 볼일 보고 깔끔하게 뒤처리 못 한 그 표정은?”

“시후야, 그게 말이야. 우리 서둘러 도망쳐야 해.”

“도망을 쳐? 우리가? 왜?”

“그게….”

인호는 시후에게 스페셜 히든 퀘스트와 S.W SOFT가 조금 후면 찾아올 거라는 이야기를 설명했다.

모두 이야기를 들은 시후는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런데 왜 도망을 가?”

“우리 여기 지금 다른 신분으로 와 있잖아.”

“그게 왜?”

“지금 우리 모습을 봐.”

“아…!”

시후는 그제야 인호의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자신이야 천투변용술로 역용을 한 상태이지만 태산과 인호, 조민은 인피면구를 사용한 상태였다.

그런데 접속한 ID가 조사당하면 분명 일이 생길 터였다.

혹여 명의 도용이나 심하면 해킹을 의심받을 수도 있었다.

그렇게 되면 지금의 ID들은 접속이 불가능할 수도 있었다.

‘그렇게 되면 앞으로 나와 함께 다니기 힘들어지지.’

이들의 도움 없이 퀘스트를 진행하는 것이 얼마나 비효율적인지 이번에 깨달았다.

“그런 시간 낭비를 할 수는 없지.”

“그러니까. 어서 도망을….”

“아니. 내가 해결할게.”

“뭐?”

시후는 자신이 해결하겠다면 천투변용술을 풀며 본래 시후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때마침 집의 인터폰이 울렸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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