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5화
“크아아악!!”
시후를 중심으로 솟구쳐 오르는 불기둥들.
시후를 포위했던 이들은 그 속에서 비명을 질렀다.
천마화등공(天魔火登功)은 일반적인 삼매진화와는 달랐다.
내공으로 공기 중에 발화를 일으키는 것이 아니라 살아 있는 생명체 속에서 발화를 일으켰다.
그들이 화염에 휩싸여 비명을 지르자 주변 이들은 주춤거리며 물러났다.
아무리 게임이라지만 누군가 불 속에서 비명 지르는 모습은 좋은 구경거리가 아니었다.
시후는 불기둥 속에서 사라지는 이들을 보며 유저와 NPC가 섞여 있는 것을 확인했다.
Safety World에서 유저가 사망하게 되면 빛을 발하며 사라진다.
반면, NPC는 일반적인 형태를 유지하며 쓰러졌다가 사라진다.
화공을 입었다고 해서 현실처럼 잔인하게 타들어 가서 죽는 게 아니라는 거였다.
‘유저와 NPC가 같이 연계하는 퀘스트라.’
이번 퀘스트가 보통의 몬스터 토벌과는 다를 거라는 증거였다.
그렇게 NPC와 유저가 사라지자 불기둥이 사그라졌다.
그리고 여전히 천마압정에 짓눌려 있는 둘이 보였다.
시후가 그들 중 레벨이 가장 높은 이들 둘만 남겨 놓은 거였다.
스윽-
시후가 손을 들어 올리자 둘이 천마압정에서 풀려났다.
하지만 보이지 않는 힘에 움켜쥐듯 온몸을 웅크리고 시후를 향해 둥둥 떠왔다.
둘은 시후를 바라보며 벌벌 떨고 있었다.
방금 여럿의 NPC와 유저를 죽인 시후였기에 머리 위 닉네임이 붉게 물들어 있었다.
둘은 아무렇지도 않게 동료들을 죽인 시후를 카오로 단정 지었다.
“사, 살려 주십시오.”
“걱정 마, 대답만 잘하면 살려는 줄게.”
차갑게 내려앉은 시후의 눈빛에 살려 준다는 것을 믿을 수 없었지만 둘은 있는 힘껏 고개를 끄덕였다.
둘에게 독안공을 펼쳐 사실 여부를 파악하고 싶었지만 천마기사를 펼쳐 둘을 옭아매는 중이라 독안공을 펼칠 수 없었다.
“묻자, 너희는 블칸의 수하인가?”
“그, 그렇습니다.”
“그런데 왜 여기서 행패를 부리는 거였지?”
“한스텔 마을에서 문제를 일으켜 공포 분위기를 조성해 유저들을 떠나게 하라는 지시가 있었습니다.”
예상대로였다.
그렇게 유저가 떠나게 되면 결국 방비가 허술해질 거였고, 그렇다면 가볍게 한스텔 마을을 먹을 수 있을 테니 말이다.
“계획은 좋았는데 나는 내 것에 눈독 들이는 것을 여간 싫어해서 말이야.”
“죄, 죄송합니다. 환락탑이 당신의 것인지 몰랐습니다. 저희를 놓아주시면 당장 블칸 영주님에게 달려가 중재를 하겠습니다.”
“그것보다 더 좋은 방법이 있어.”
되지도 않는 꼼수를 부리는 것에 시후는 다른 제안을 했다.
“우리와 함께 가는 거지.”
“히익! 그, 그러면 저희는 블칸 영주에게 죽습니다!”
“아니면 여기서 죽을래?”
“아, 아닙니다! 제가 모시겠습니다!”
둘은 사력을 다해 대답했다.
그런 둘을 보며 시후는 잠시 고민에 빠졌다.
“굳이 둘은 필요가 없으려나?”
그런데 그 고민이 그만 입으로 튀어나와 버렸다.
그에 둘은 사색이 되며 입을 놀렸다.
“저, 저를 살려주시면 블칸 영주성으로 들어가는 비밀 통로를 알려 드리겠습니다!”
“아, 아닙니다. 그건 저도 압니다. 저를 살려주시면 블칸 영주의 아킬레스건을 알려 드리겠습니다!”
“그건 제가 말씀드리겠습니다!”
둘은 서로 살겠다며 시후에게 정보를 내뱉었다.
시후는 녀석들이 알아서 정보를 나불댈 때부터 영상을 녹화해뒀다.
그렇게 녹화한 영상을 조민에게 전송했다.
‘그걸 토대로 계획을 짜 놓겠지.’
알아서 잘하겠지만 확실한 계획을 위해 정보를 던져준 거였다.
한편 둘은 시후가 아무 말도 없자 눈치만 보며 벌벌 떨고 있었다.
도대체 시후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전혀 알 수가 없었다.
그리고 문제는 알 수 없는 힘에 속박당한 후로는 로그아웃을 할 수 없다는 거였다.
시후 역시 그 부분을 눈치채고 있었기에 여유가 있었다.
“눈깔 돌아가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린다?”
“아, 아닙니다.”
“뭐, 됐고. 너희 둘 친추나 해라.”
“네….”
둘은 울며 겨자 먹기로 친구 추가를 했다.
이제는 자신들이 로그인하면 언제든 시후가 알 수 있게 되었으니 허튼짓을 할 수가 없었다.
괜히 여기서 밉보였다가는 로그인하면 죽고 로그인하면 죽고 이런 일을 반복할 것만 같았다.
띠링-
[골드가최고 님이 친구가 되었습니다.]
[뒤통수치기존잼 님이 친구가 되었습니다.]
시후는 등록된 닉네임을 확인하며 피식 웃었다.
“닉네임들하고는. 따라와.”
둘을 데리고 조민을 찾아갈 생각이었다.
그런데 뜻하지 않은 방해가 생겼다.
환락탑 주위에서 지금의 일들을 구경하던 유저들이 길을 막아선 거였다.
“뭐지?”
다들 시후에게 한마디 하려는 모습이었다.
시후는 혹시나 이들이 자신에게 덤벼드는 것은 아닌가 싶어 긴장감을 높였다.
그런데.
“우와!! 당신 뭡니까?! 장난 아니던데?”
“쩔어! 대박! 나 그런 스킬 처음 봐!”
“막 천마 어쩌고저쩌고 스킬! 존 멋!”
“친구 추가 해주세요!”
다들 시후를 향해 환호성을 질렀다.
사실 이들에게 조금 전 시후가 보여준 광경은 두려움을 넘어서 환희를 불러일으킬 만한 장면들이었다.
한스텔 마을에는 초보 유저 마을답게 Lv. 100을 넘지 않는 이들이 수두룩했다.
그런 이들 앞에 시후는 천둥소리를 동반하며 하늘에서 내려왔고, 손만 휘둘러서 고레벨 유저들과 NPC들을 찍어 눌렀으며, 결국에는 태워 버리기까지 했다.
그런 모습이 이들로 하여금 이렇게 환호하게 하는 거였다.
“당신 직업이 뭡니까?”
“맞아요! 저희도 그 직업 스킬 트리 좀 알려주세요!”
시후는 자신처럼 되고 싶다며 환호하는 이들의 모습에 한동안 잊고 있던 만족감을 느꼈다.
천마 시절 언제나 모든 이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으며 느꼈던 그 감정을 다시 느끼자 주변인들이 다르게 보였다.
전에는 그저 스쳐 지나가는 이들로 보였건만 지금은 가는 길에 이정표 정도는 되어주고 싶어졌다.
“나는 무림인이다.”
“네? 직업이 무림인이라고요?”
그 말에 다들 커뮤니티를 검색하며 ‘무림인’에 대한 정보를 찾았다.
하지만 아무것도 찾을 수 없었다.
주변인들의 표정에서 의구심이 비치자 시후가 움직였다.
“무림인이란, 무엇인가? 발길질 한 번에 땅을 가르며.”
시후가 발을 살짝 들어 땅을 내려찍었다.
쾅-
그 중심으로 거미줄처럼 땅이 갈라지며 땅거죽이 일어났다.
주변에 있던 이들은 균형을 유지하기도 힘들어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시후는 자신을 올려다보는 이들을 한차례 훑어보더니 말을 이었다.
“손짓 한 번에 바람을 일으키며.”
시후가 손을 살짝 들어 손바닥을 가볍게 뒤집었다.
후앙-
고작 손바닥을 뒤집었을 뿐인데 엄청난 바람이 일어났다.
덕분에 주저앉아 있던 이들 모두가 공중에 떠오르며 다시 일어나게 되었다.
이게 무슨 일인가 싶어 어리둥절한 표정의 그들을 향해 시후가 다시 말했다.
“말 한 마디에 힘을 싣는 이를 말한다. 그게 바로 무림인. 내가 바로 천마(天魔)다.”
쩌정-
마지막 ‘천마’라는 말에 내공을 실어 말하자 공기를 찢는 듯한 사자후가 퍼져나갔다.
고막을 찢을 것 같은 소리에 모두가 두 귀를 움켜쥐고 고통스러워했다.
그리고 그와 함께 모두의 눈앞에 메시지가 나타났다.
띠링-
[Safety World 직업에 새로운 직업이 추가되었습니다.]
[‘무림인’이 직업으로 추가되어 금일부터 전직이 가능합니다.]
[무림인의 시조로 <천마>가 등록되었습니다.]
[그의 명성이 Safety World 전역에 퍼집니다.]
시후가 무림인을 언급한 것과 자신을 천마라고 공표한 일이 알림 메시지로 나타났다.
이 메시지는 현재 접속하고 있는 유저, NPC 그리고 Safety World 개발사인 S.W SOFT에도 전달되었다.
시후 역시 나타난 메시지를 읽으며 추가로 나타나는 메시지를 읽었다.
[히든 직업 ‘무림인’을 공표하여 Safety World에 새로운 직업을 창조하셨습니다.]
[이에 대한 보상으로 전 스텟 +10 이 주어집니다.]
[Safety World에 <천마>에 대한 명성이 퍼집니다.]
[<천마>로 활동 시 경험치 +10% 추가 혜택이 주어집니다.]
[닉네임을 <천마>로 변경하시겠습니까? Yes or No]
닉네임을 ‘See 후’에서 ‘천마’로 변경할 거냐고 묻는 메시지에 시후는 망설임 없이 손을 뻗었다.
“당연히 Yes지.”
띠링-
[닉네임이 변경되었습니다.]
[Safety World에 <천마>의 명성이 퍼져 명성이 +300이 오릅니다.]
그 메시지와 함께 시후는 몸속에 기운이 고양되는 것을 느꼈다.
일전에 오크들이 눈앞에서 초록의 물결을 보여주듯 무릎을 꿇었을 때와는 또 다른 느낌이었다.
이건 말 그대로 기억의 되짚음이었다.
‘그리웠던 느낌이군. 그리고… 강해졌어.’
명성치와 함께 추가로 보정된 스텟을 느낌만으로 알 수 있었다.
주변에 있던 이들은 S.W SOFT에서 이벤트 공지도 없었는데 이만한 일이 벌어진 것에 다들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그러면서 이 일의 중심에 있는 인물이 바로 눈앞에 있다는 것에 다들 기대감에 부풀어 보였다.
시후는 그들의 기대에 부응해 주기로 했다.
‘앞으로 명성치가 내게 어떤 힘을 줄지, 기대되는군.’
이왕 이정표를 제시해 주기로 마음도 먹었으니 아주 작은 보상 정도는 바라도 되겠다 싶었다.
“내가 환락탑의 주인이다. 무림인으로 전직해서 내게 무공을 배우고 싶은 이들은 환락탑에 등록을 하도록.”
그 말을 끝으로 시후는 골드가최고와 뒤통수치기존잼의 머리를 움켜쥐고는 천잠음영술을 펼쳐 사라졌다.
이 사건은 당연히 세계적인 이슈로 떠오르며 인터넷을 뜨겁게 달구기 시작했다.
S.W SOFT는 긴급회의를 소집하여 사건의 내막을 파악하고 이에 대한 공지를 띄우기 시작했다.
당연히 시후 일행들 역시 갑자기 나타난 메시지에 시후에게 여러 가지 질문들을 했다.
시후는 일행들도 그에 대해 알아야겠다 싶어 어느 정도는 알려주었다.
그리고 세계에서는 이 일의 중심에 선 ‘천마’를 찾겠다며 난리가 나고 있었다.
어디서든 ‘천마’를 지칭하는 유저가 나타나면 극진히 대접하여 인터뷰라도 할 심산들이었다.
하지만, 시후는 그 극진한 대접을 의외의 장소에서 받을 수 있었다.
빰바바바-뺨빰빰-빰바바바-
시후 일행은 루프를 타고 블칸 영주성이 있는 바니힐 마을에 당도했다.
그런데 어떻게 알고 있는 것인지 루프에 시후 일행이 나오자마자 사방에서 팡파르가 울리며 레드 카펫이 깔려 왔다.
성대한 환영식이라는 말이 어울릴 정도로 많은 인파가 손뼉을 쳐왔으며 레드 카펫의 끝에는 휘황찬란한 마차까지 대기하고 있었다.
그 모습에 시후 일행들은 주변을 둘러보며 놀라고만 있었다.
“와~! 시후가 무림인을 공표하자마자 이런 대접이라니. 대박!”
“우리 여기 싸우러 온 거 아니야? 이런 대접 받아도 되는 거야?”
“그러게요? 상당히 당황스럽네요.”
다들 시후를 따라 레드카펫을 걸어 나가며 휘황찬란한 구경거리를 즐겼다.
그렇게 마차 앞에 다다르자 마부석에서 검은색 턱시도를 입은 이가 내려왔다.
“처음 뵙겠습니다. 저는 블칸 영주님의 시종인 위리놈입니다. 영주님의 명으로 여러분들을 마중 나오게 되었습니다.”
모자까지 벗어 정중하게 인사하는 위리놈의 모습에 다들 얼떨떨하게 마주 인사했다.
오직. 시후를 제외하고 말이다.
“하는 짓이 제법이다만, 내가 이런 것에 취미가 없단다.”
“…….”
시후는 기를 몸속에 한 차례 갈무리하더니 터트리듯이 분출했다.
쾅-
시후 일행들을 중심으로 엄청난 굉음과 함께 기의 폭풍이 몰아쳤다.
잠시 후 폭풍이 잠잠해지자 일행들의 눈앞에 보이는 것은 차가운 미소를 짓고 있는 위리놈뿐이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