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3화
시후는 자신을 반기는 디카의 모습에 독안공을 펼쳤다.
‘이것 봐라?’
디카는 오크 침략을 막은 시후를 여전히 은인으로 생각했다.
거기에 내면 깊숙한 곳에 감추어진 두려움까지.
‘그렇다면 저 녀석과 내 관계를 모른다는 건데.’
아무래도 마르스를 투산의 대장간에 맡긴 것이 시후라는 사실을 모르는 것 같았다.
“하긴. 네가 알았다면 그러지 않았겠지.”
“그게 무슨 말….”
“이봐! 디카 영주!”
급하게 마르스가 끼어들었다.
둘의 관계가 자신이 생각하던 관계가 아니라는 것에 빠르게 대응하려는 거였다.
하지만 상대는 시후였다.
뻔히 보이는 짓을 내버려 둘 사람이 아니었다.
후웅-
“으악!”
손을 휘젓자 강한 풍압이 일어나며 마르스를 밀어냈다.
식탁에 있던 집기와 음식들이 같이 날아가는 것이 엄청난 풍압이었다.
마르스는 가까스로 몸을 세워 나자빠지는 것은 면했지만 날아온 음식을 뒤집어쓰는 것은 피할 수 없었다.
꼴이 말이 아니게 된 마르스는 시후를 잡아먹을 듯이 노려봤다.
“그래, 그래. 그 눈빛 아주 좋아. 계속 그런 눈깔을 뜨길 바라. 그래야 내가 갱생시키는 보람이 느껴질 테니까.”
“이…!”
순식간에 벌어진 난장판에 디카 영주는 쉴 새 없이 눈알을 굴렸다.
한쪽은 오크 부족장을 물리친 유저.
다른 한쪽은 헤라 여왕의 아들.
현재 둘이 가진 신분의 차는 명확했기에 디카 영주의 계산은 빨랐다.
“이게 무슨 짓인가?!!”
디카 영주는 마르스 곁으로 다가가 시후를 향해 고함을 질렀다.
그러면서 하인들에게 손짓하여 마르스의 몸에 붙은 음식물들을 털어내라고 지시했다.
시후는 이미 디카 영주가 마르스의 편에 설 줄 짐작했었다.
“솔직히, 그쪽에 서주기를 바랐고.”
“내 그대가 한스텔 마을 치안에 크게 이바지한 바가 있기에 홀대하지 않았건만! 한낱 유저 나부랭이 주제에 혓바닥이 길구나?!”
이제는 아주 대놓고 시후를 깎아내리는 디카 영주였다.
시후는 자신을 노려보는 둘을 향해 고개를 까딱였다.
“일단 앉아, 너희를 위해 내가 준비한 게 있거든.”
시후는 손을 슬쩍 들어 허공섭물을 일으켜 나자빠져 있는 의자를 둘에게 보냈다.
자신 역시 근처에 있던 의자에 앉으며 들고 있던 칠면조 다리를 입으로 가져갔다.
지금 이 사달을 만들어 놓고 천연덕스럽게 칠면조 다리를 뜯는 시후의 모습에 디카와 마르스는 어이가 없었다.
“저번에도 그렇고 네가 정녕 미쳤구나? 감히 헤라 왕국의 왕자에게 이런 짓을 하고도 네가 무사할 줄 알아?”
“그건 나중에 생각하고 너희들은 앞으로 닥칠 일이나 걱정해.”
“도대체 무슨 짓을 꾸미고 있는 것이냐?”
알 수 없는 말만 하는 시후의 의도를 깨닫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쾅-
“영주님!”
문을 부술 듯이 밀치고 들어온 것은 치안대장이었다.
치안대장은 사색이 된 표정으로 디카 영주에게 다가와 속삭였다.
치안대장의 말을 들은 디카는 놀란 토끼 눈으로 시후를 봤다.
“이, 이게 무슨 짓인가?!”
“글쎄? 난 도대체 무슨 말인지…?”
시후는 어깨를 으쓱이며 지금 일어난 일은 자신과 상관없다는 듯이 말했다.
셋이 그렇게 눈싸움을 하는 사이 가장 안절부절못한 것은 치안대장이었다.
“저… 영주님. 지금 밖의 상황이….”
“쳇, 알았어. 나가보지.”
치안대장의 성화에 디카 영주가 테라스로 나갔다.
마르스 역시 그 뒤를 후다닥 따라붙었다.
혹여나 시후와 단둘이 있다가 봉변을 당할까 싶어서였다.
그 모습에 시후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저런 녀석을 왕으로 내세워야 한다니… 괜찮은데?”
유약하기만 왕이 무슨 소용이 있겠냐고 생각하던 시후는 문득 괜찮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천마 시절에도 종종 저런 녀석을 가주나 방주로 앉히던 이들이 있었다.
그들은 섭정(攝政)이라는 명목하에 주권을 쥐었다.
만약, 마르스를 헤라 왕궁의 왕으로 앉힌 후에 자신이 섭정을 한다면 어떨까 하는 상상을 했다.
“나쁘지 않겠어. 만약 그렇게 되면 골드도 넘칠 거고 대규모 퀘스트도 진행해서 레벨업도 팍팍 될 거고.”
마르스가 자신을 따르도록 해야 하는 초기 투자 시간이 필요했지만 이미 갱생 프로그램에 직접 관여하기로 한 이상.
그건 문제 되지 않았다.
한편, 마르스는 갑자기 등골을 타고 흐르는 싸한 느낌에 몸을 부르르 떨었다.
무언가 신변에 위협을 받을 것 같다는 본능에서 기인한 두려움이었다.
하지만 그것이 시후로 인한 것임을 미처 깨닫기도 전에 테라스에서 보이는 광경에 넋을 잃었다.
“디, 디카 영주? 저게 뭡니까?”
“젠장… 보면 모르시겠습니까? 오크잖습니까, 오크!”
“아니. 누가 오크인지 모릅니까? 문제는 왜 오크들이 영주성 담벼락을 때려 부수고 있는 겁니까?”
마르스의 말대로 오크들은 신나게 영주성 담벼락을 때려 부수고 있었다.
오크들은 양손에 거대한 도끼를 들고는 마구잡이로 휘둘렀다.
한 번 휘두를 때마다 영주성 담벼락은 폭발이라도 하듯 무너졌다.
그런 엄청난 짓을 벌이는 오크들 숫자가 대략 50이 넘어 보였다.
녀석들은 한쪽을 부수는 데 그치지 않고 다른 담벼락으로 이동해 다시 부수기를 반복했다.
마치 영주성을 두른 담벼락 모두를 부수려는 듯했다.
그 중심에는 델루가 있었다.
온몸의 문신에서 빛을 뿜어내는 델루는 다른 오크들에게 손을 휘적이며 지휘를 했다.
그러다 테라스에 나와 있는 디카를 발견했는지 손을 들어 인사를 해왔다.
그 모습에 디카 영주의 이마에 힘줄이 튀어나왔다.
“델루! 이게 무슨 짓인가?!”
“크륵, 디카 영주 잘 있었냐? 크크큭.”
“지금 안부나 물을 상황인가?! 미치지 않고서야 감히 영주성을 공격해?!”
“크륵, 나는 시키는 대로 하는 거다.”
델루는 디카의 말에 콧방귀를 뀌며 코를 후비적거리더니 그 안에서 나온 이물질을 디카가 있는 방향으로 튕겼다.
마르스는 그런 델루의 행동에 디카를 다그쳤다.
“뭡니까?! 저런 몬스터가 마을에 있었습니까? 여기는 귀족들이 기거하는 그런 풍요로운 마을이 아니었습니까?!”
“그게….”
“뭐야, 뭐야. 인제 보니 디카 영주와 마르스 사이에 비밀이 상당히 많네?”
뒤에서 들리는 시후의 목소리에 둘은 깜짝 놀랐다.
어느새 다가왔는지 시후는 둘의 바로 지척에 있었다.
시후는 둘 사이를 비집고 들어갔다.
“저들은 얼마 전에 이곳을 침략했던 오크들이야.”
“뭐? 저것들이?”
“왕국에서 아무리 변두리 마을에 관심이 없다지만 한스텔 마을의 영웅에게 남작의 직위까지 수여하는 정도였다면 그 일에 대해서 모르지는 않겠지?”
“그래. 알고 있다. 다른 때와는 다른 더블 오크 님비 현상.”
마르스는 헤라 왕국에서 있었던 회의를 떠올렸다.
그때 변방에 있는 어떤 마을에서 오크 님비 현상이 동시에 두 군데가 일어났다는 소식을 들었다.
처음 있었던 일이기에 왕국에서는 회의가 소집되었고 결국, 은빛 날개 기사단을 보냈다.
“그때 아킬라이 기사단장을 필두로 한 은빛 날개 기사단의 활약으로 잘 마무리되었다는 보고를 받았는데. 저것들은 뭐지?!”
“…….”
자신이 들은 보고 내용과 다른 지금의 상황을 디카 영주에게 묻는 마르스였다.
하지만 디카는 대답하지 않았다.
사실 디카 영주가 헤라 왕국에 올린 보고서는 어느 정도 사건의 내용과 비슷했다.
다만, 디카 영주가 오크 부족을 도발한 내용과 자신은 전선에 나서지 않은 내용은 빠져 있었다.
대신 뒷정리를 깔끔하게 하는 조민의 노력을 자신의 공로인 양 올린 거였다.
이제 대충 일이 어찌 벌어진 것인지 눈치챈 시후와 마르스였다.
“예로부터 말이야. 쥐꼬리만 한 권력을 쥐고 있는 녀석들은 언제나 윗선에 보고를 달리하지.”
“크흠….”
디카 영주가 헛기침하자 시후는 마르스를 봤다.
“그렇게 눈과 귀가 닫히고 결국에는 꼭두각시가 되는 거야.”
“……!”
마르스는 저 말이 자신에게 하는 말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제국학을 배울 때 가장 먼저 들었던 말이기도 했다.
[왕은 다른 눈과 다른 귀를 가져야 다른 이들을 보살필 수 있다.]
그때는 그저 흘려들었던 글귀가 오늘따라 가슴에 와닿았다.
그리고 왜 자신의 어머니가 시후에게 자신을 맡겼는지 그 이유를 이제야 알 것만 같았다.
시후는 자신을 바라보는 마르스의 눈빛이 변하는 것을 보며 인자한 미소를 지었다.
“군주란 말이다. 스스로 고난을 함께 나누어야 하는 거란다.”
그 말에 마르스는 고개를 떨구었다.
대장간에서 일하는 것에 몸이 힘들다 하여 자신을 찾아온 디카 영주를 따라나섰다.
귀족 거리를 거닐며 자신에게 머리를 조아리는 이들을 보며 우월 의식에 빠졌다.
밖의 사정을 직접 보지 않은 채 디카 영주가 하는 말만 듣고 그게 사실이라 생각했다.
자신을 이런 변두리 마을에 보낸 어머니의 의중을 읽지 못하고 말이다.
그렇게 마르스가 자책하자 시후가 슬쩍 다가가 어깨를 토닥였다.
“괜찮다. 처음부터 잘하는 이가 어디 있단 말이냐. 앞으로 군주가 무엇인지 제대로 배워 진정한 군주의 모습을 사람들에게 보여주면 되는 것이다.”
“알겠다. 내 그대에게 군주에 대한 모든 것을 배우리라!”
결의에 찬 마르스의 눈빛에 시후는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좋았어. 그렇게 네가 나를 믿고 군주가 되는 것이야.’
시후는 마르스를 왕으로 만든 후 자신의 말을 따르게 할 계획의 첫 단추를 끼웠다.
본래는 아무것도 모르는 허수아비 왕으로 만들까 싶었지만, 계획을 바꿨다.
자신이 없는 동안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곳이 Safety World였기에, 마르스를 스스로 왕의 자리를 지키고 백성을 굽어살필 수 있는 왕으로 만들 생각을 했다.
물론, 자신의 말이라면 껌뻑 죽는 그런 왕으로 말이다.
“그래! 앞으로는 편하게 형이라고 불러.”
“알겠다. 아니, 알겠습니다. 형!”
띠링-
[헤라 왕국의 마르스 왕자와의 우호도가 증가했습니다.]
[헤라 왕국의 친밀도가 상승합니다.]
마르스가 자신을 진심으로 따르겠다고 결심한 것은 알림 메시지로 알 수 있었다.
한편 갑자기 마르스와 시후의 관계가 정리되는 것에 디카 영주는 불안했다.
자신은 이제 낙동강 오리알 신세였다.
‘이제는 저자에게라도 빌어 붙어야 한다.’
까딱 잘못하다가는 목이라도 날아갈 판이었다.
“크, 크흠. See 후여. 내 그대가 진작부터….”
“헛소리 말고.”
“……!”
시후는 디카 영주의 말을 딱 잘랐다.
그러고는 날이 시퍼렇게 선 눈으로 디카 영주를 노려봤다.
“왜… 왜 그렇게 보는 것인가?”
“왜? 내가 왜 이렇게 보는지 몰라?”
“무슨….”
“모르겠으면 알려주지. 들어와.”
덜컥-
시후의 부름에 문이 벌컥 열렸다.
들어온 이는 태산과 인호였다.
그리고 그들의 뒤를 따라 들어온 것은 아리따운 모습의 여인이었는데 시후도 익히 아는 얼굴이었다.
“프랑시스. 어서 와.”
“후 님!!”
태산과 인호를 따라 들어온 이는 프랑시스였다.
고혹적인 드레스를 입은 프랑시스는 치마의 앞자락을 살짝 들고 후다닥 달려와 시후의 품에 안겼다.
그러고는 연신 눈물을 흘렸다.
그런 프랑시스의 머리를 쓰다듬던 시후는 디카 영주에게 차갑게 말했다.
“마르스가 관심 좀 가졌다고 여자를 납치해?”
“그, 그건….”
프랑시스는 디카 영주에 의해 탑 꼭대기에 감금되어 있었다.
태산과 인호가 비천잠행술로 영주성을 돌아다니며 찾은 프랑시스는 이 일에 대한 전모를 시후에게 메시지로 알렸다.
마을을 거닐다 우연히 보게 된 프랑시스의 미모에 마르스가 관심을 두자 디카 영주가 프랑시스를 납치해 소개할 생각이었다는 거였다.
만약 시후가 며칠만 늦었다면 프랑시스는 마르스의 침실에 들어갔을 터였다.
그것을 생각하니 살기가 피어올랐다.
“자, 잠깐만.”
살기를 느낀 디카는 깜짝 놀라며 당황했다.
자신이 아는 시후는 손속에 망설임이 없는 유저였다.
당장이라도 목이 잘릴 것 같은 느낌에 디카는 말도 제대로 못 했다.
그런 그의 앞을 누군가가 막아섰다.
“형. 여기서 디카 영주를 죽이시면 안 됩니다.”
“왕자님!”
마르스였다.
하지만 여전히 시후의 살기는 거두어지지 않았다.
그 모습에 마르스는 침을 꼴깍 삼키며 빠르게 말했다.
“디카 영주를 지금 죽이시는 것보다는 살려두고 이용하시는 것이 더욱 득이 됩니다.”
“득? 저 탐관오리 같은 녀석을 살려두는데 내게 득이 된다고?”
“네! 아직 형님께서 클리어하지 못하신 귀족들에게 인정받기 위한 퀘스트를 위해서는 디카 영주가 살아 있어야 합니다.”
“뭐야? 네가 그걸 어떻게 알아?”
시후는 자신이 공유해주지 않은 퀘스트 내용을 마르스가 읊자 의아했다.
그에 마르스는 별것 아니라는 듯이 말했다.
“별거 아니지만, 왕자의 고유 스킬입니다. 진실의 눈.”
마르스가 설명하는 ‘진실의 눈’은 시후도 익히 아는 능력이었다.
‘독안공과 비슷한데?’
현실에서는 상대의 생각을 읽는 무공이었지만 Safety World에서는 상대의 상태창을 볼 수 있게 해주는 독안공.
마르스의 진실의 눈은 독안공과 비슷한 능력이었다.
시후는 마르스에 대한 쓸모가 더욱 커지는 것을 느꼈다.
“좋아. 하지만 프랑시스가 당한 것에 대한 처벌은 받아야겠지?”
“헉!”
시후는 죽이지는 않겠다는 생각으로 내공을 일으켜 디카 영주를 옭아맸다.
진실의 눈으로 시후가 디카 영주를 죽이지 않을 것을 알게 된 마르스도 그것까지 막지는 않았다.
디카 영주는 목을 조여 오는 힘에 모든 것을 포기하고 받아들였다.
“네게 금제를 가할 거야. 네가 내 사람들에게 쓸데없는 짓을 하지 않게 말이지.”
“받아들이겠네.”
시후는 디가 영주의 말에 천천히 기를 흘렸다.
일전에 퀘스트 여관 마스터에게 가한 금제 오공단금술(五孔斷禁術)이었다.
그렇게 일이 일단락되자 시후는 퀘스트 창을 열었다.
그런데 당연히 완료되었을 거라 생각했던 퀘스트들이 완료되어 있지 않았다.
[‘영주성 침략’ 퀘스트 발생.]
[1. 영주성의 높아진 담을 허물어라. 0/1]
[2. 영주성에 감금되어 있는 공주를 구해라. 0/1]
[3. 귀족의 후원을 받아라. 0/1]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