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2화
눈앞에 나타나는 수많은 메시지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이게 다 뭐야?”
“후야? 알림 설정 안 해놨구나?”
뒤이어 접속한 인호가 서둘러 다가왔다.
지금까지 이렇게 많은 메시지 알림이 뜬 경우가 없었기에 설정의 필요성을 모르던 시후였다.
인호의 도움으로 바로 알림음과 팝업 시스템을 변경한 시후는 찬찬히 메시지를 들여다봤다.
“뭐야? 도대체 우리가 없던 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메시지의 내용을 읽던 시후는 인상을 구겼다.
그리고 그것은 뒤따라 들어온 일행들 모두가 마찬가지였다.
시후는 일단 가장 처음 온 메시지부터 확인했다.
<발신자 : 투산>
- 허, 허허. 자네가 두고 간 마르스는 참으로 쓸 만하군.
- 키워볼 만하겠어.
- 덕분에 우리 대장간이 유명해지고 있다네.
- 자네를 위해 좋은 아이템을 만들어 뒀다네.
- …….
투산의 메시지들은 마치 일정을 보고하는 것 같았다.
그러다 어느 순간 내용이 급변했다.
- 아무래도 마르스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네.
- 자네 힘이 필요할 듯한데… 걱정이군.
- 자네가 왔을 때 크게 한바탕 소란이 일겠어.
투산의 메시지 내용이 걱정으로 가득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던 거야?”
뒤이어 다른 메시지도 확인했다.
<발신자 : 마스터>
- 후 님! 저희가 드디어 2호점을 오픈했습니다~
- 후님의 명성이 이렇게나 대단하시다니~
- …….
퀘스트 여관 마스터의 메시지는 아부성이 다분했다.
그러다 또 내용이 급변했다.
- 후 님!! 이게 도대체 뭡니까?!!
- 후 님!! 제발 도와주십시오!
- 이 자식아! 저런 거를 던져 주고 가면 어쩌자는 거야?!!
- …….
시후에 대한 원망이 가득한 메시지였다.
“얜 또 왜 이래?”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지 파악하기에는 읽지 못한 메시지들이 너무 많았다.
시후는 이럴 때면 자연스럽게 찾는 이에게 눈을 돌렸다.
역시나 조민은 이미 시후가 자신에게 어떤 것을 물을지 알았는지 다른 이들과는 다르게 Safety World 커뮤니티를 확인했다.
“오빠, 아무래도 영주 성에 먼저 가 보셔야겠는데요?”
“거긴 왜?”
“일단 가면서 말씀드릴게요.”
‘일단 가면서’라는 조민의 말에 걸음을 떼려고 하는 순간 시후를 멈추게 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오오! 이, 이게 무엇입니까?!! 오오오!!”
“아… 네가 있었지.”
감탄에 탄성까지 내뱉는 저 촌놈을 잊고 있었다.
제대로 된 교육을 좀 해야겠다는 생각에 데리고 들어왔건만 지금은 힘들 것 같았다.
‘그래. 일단 여기 적응부터 시킨 후에 굴려도 되겠지.’
오랜만에 인자한 마음을 품은 스스로를 대견하게 생각하는 시후였다.
그런데, 고개를 돌린 순간 까까머리 땡중이 아닌 다른 이가 있었다.
훤칠한 키에 짙은 눈썹, 검은 흙발을 어깨까지 늘어트린 녀석이 말이다.
“쟤 뭐냐?”
“진권 스님께서 외모를 좀 바꿔보고 싶다고 하셔서 진지춘 어르신께서 현질해 주셨어요.”
“그래서 머리카락을 저렇게 했단 말이지?!”
중 주제에 모발에 욕심이라니.
법정이 살아 있었다면 경을 쳤을 터였다.
뭐가 되었든 지금 일어난 일에 녀석을 끼워주기에는 녹록지 않아 보였다.
“진권아.”
“오오! 현실보다 더 현실 같은 곳이 있다니!”
“야! 진권!”
“이런 곳을 왜 이제야 알았는지!”
“저 자식이!”
푸슉-
분명 자신의 말을 듣고 있음에도 무시하는 진권의 모습에 시후는 손가락을 튕겨 지풍을 날렸다.
돌멩이로 얻어맞는 정도의 충격이면 저 호들갑이 멈출 것 같아서였다.
그런데.
휘릭-
진권이 몸을 팽그르르 돌더니 지풍을 피해버렸다.
분명 Safety World는 처음 하는 것일 텐데 지풍을 피하다니.
흥미로웠다.
“어디….”
푹푹-
혹시나 하는 심정으로 연속해서 지풍을 날렸다.
휘릭-휘릭-
이번에도 진권은 몸을 팽이처럼 회전해 지풍을 피했다.
그러고는 시후를 노려봤다.
“왜 갑자기 공격하십니까?”
“네가 이것도 받으면 알려주지.”
“헉! 그건?!”
우웅-
시후는 검지를 치켜들고 기운을 일으키자 진권이 놀랐다.
검지에서 느껴지는 기운은 진권이 익히 아는 기운이었다.
고작 동전 하나만 하게 응집되는 기였지만 그 안에 담긴 힘은 어마어마했다.
진권은 자신은 도저히 저것을 막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그 기파가 일렁이는 순간.
“……!”
진권은 자신의 한쪽 머리카락이 출렁이는 것을 느꼈다.
소리도 없이 한 점의 바람도 없이 출렁인 진권의 한쪽 머리카락은 뻥 뚫려 있었다.
이는 탄지신통이 극에 달했을 때 보이는 오의(奧義)였다.
진권은 비전서에 적혀 있던 오의를 직접 보게 된 것을 믿을 수가 없었다.
순간 사고가 정지한 진권의 모습에 시후는 전음을 보냈다.
- 이게 바로 성소형소다.
그 전음에 진권은 확신했다.
‘저분은 분명 탄지신통을 아신다.’
일인전승으로 내려오는 탄지신통을 시후가 어찌 아는지는 모르지만 말이다.
시후는 불타오르는 진권의 눈빛에 피식 웃었다.
‘저만하면 말 좀 듣겠군.’
이제 쓸데없이 시간 낭비하는 일은 없을 것 같았다.
진권을 정리한 시후는 빠르게 영주 성으로 향했다.
그런데 가는 길의 풍경이 전과 달랐다.
전에는 분명 거만한 표정의 귀족들이 사는 거리였는데.
“뭐야? 이 귀곡 산장은?”
지금은 을씨년스럽기까지 했다.
한껏 죽어버린 거리 풍경은 분명 이상했다.
“조민아, 도대체 여기 무슨 일이 있던 거냐?”
“그게… 마르스랑 디카 영주 때문에 이렇게 된 것 같아요.”
“그 녀석들이 왜?”
“왜긴 왜겠어요. 다~ 그놈의 욕심 때문이죠.”
조민의 말은 이랬다.
마르스가 투산의 대장간에서 일한다는 소식이 디카 영주 귀에 들어갔다.
헤라 여왕의 아들이 한낮 변두리 마을 대장간에서 일한다는 것에 믿기지 않았지만, 마을 순찰차 방문했다가 사실임을 알게 되었다는 거였다.
그 후 자연스럽게 디카 영주는 마르스와 접촉을 했고, 마르스는 영주가 자신을 받들어주자 본래 습성이 튀어나왔다.
결국은 잘하던 대장간 일도 때려치우고 지금은 영주 성에서 기거 중이라는 거였다.
“그런데 그거랑 여기가 이렇게 된 게 무슨 상관인데?”
“마르스가 여기 거리를 통째로 달라고 했나 봐요.”
“…이놈의 시키가.”
문득 헤라 여왕이 부탁한 게 떠올랐다.
[사람 좀 만들어다오.]
개망나니짓만 하던 마르스를 곁에 두고 갱생을 시켜달라던 헤라 여왕의 부탁.
시후는 마르스가 투산 옆에서 연마를 해야 하는 대장간 일을 하는 동안 인내를 배울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기껏 한다는 게 전보다 더한 개망나니짓이라는 거지?”
아무래도 마르스를 너무 가볍게 대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후는 메시지 창을 열어 퀘스트 여관 마스터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 나 지금 디카 영주성으로 가는데 퀘스트 줘봐.
이왕 들쑤실 거 조금이나마 경험치를 얻으려는 심산이었다.
그런데 곧바로 돌아온 마스터의 메시지는 의외였다.
- 드디어 오셨군요! 제가 부탁드리고 싶은 마음입니다. 이 퀘스트들로 부탁드립니다!!
“퀘스트들?”
한스텔 마을 영주에게 가는 거라 퀘스트가 있어 봐야 뭐가 있겠냐는 생각이었는데 그게 아니었다.
띠링-띠링-띠링-
[‘마을 영주성 침략’ 퀘스트 발생.]
[영주성에 감금되어 있는 공주를 구하시오.]
[귀족의 후원을 받으시오.]
시후는 제게 온 메시지를 일행들에게 공유했다.
“영주성 침략? 공주? 귀족의 후원은 또 뭐야?”
좀처럼 의미를 알 수 없는 퀘스트에 다들 조민을 바라봤다.
이제는 익숙한 시선에 조민은 빠르게 커뮤니티 창을 열었다.
“얼마 전에 올라온 영상이에요.”
조민이 보여준 영상은 가관이었다.
마르스와 디카가 거리를 거닐자 행인들 모두가 머리를 조아렸다.
개중에는 영문을 몰라 멍하니 서 있는 아이들이 있었다.
그런 아이들에게 기사들이 달려와 강제로 무릎을 꿇렸다.
그들을 내려다보며 흐뭇해하는 마르스의 표정이 클로즈업되면서 영상이 종료됐다.
그 영상을 본 시후는 당장이라도 달려가 마르스의 얼굴을 땅에 파묻어 버리고 싶었다.
그런데 그런 시후보다 급발진한 이가 있었다.
“저런 천인공노할 녀석들이 있습니까?!!”
진권이 씩씩거리며 앞으로 나섰다.
탄지신통에 대한 기대감에 부풀어 올랐을 때보다 더욱 불타올랐다.
정의감에 불타오르는 그 모습에 시후는 눈을 번뜩였다.
천마 시절 간혹 정의감에 불타올라 주변인들에게 영웅이라 추앙받던 이들이 떠올랐다.
‘무슨 운명인지 모두 단명했지만, 뭐… 여기는 Safety World니까.’
여기서 죽는다고 해도 24시간 후에 로그인하면 그만이니 잘되었다 싶었다.
시후는 조민을 힐끗거리더니 진권을 어찌 사용할지 전음을 보냈다.
조민의 눈동자가 커지며 눈썹이 꿈틀대는 게, 명백히 놀란 모습이었다.
시후는 다른 이들이 그것을 눈치채기 전에 나섰다.
“성 침략하는 데는 오크 녀석들이 제격이니 밥값 좀 하라고 하고, 공주가 누구인지는 모르지만 그건 태산과 인호가 찾아보고, 진권 너는 조민의 지시에 따르고.”
시후의 지시에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어느덧 영주성 앞에 당도하자 시후 일행을 발견한 기사들이 깜짝 놀라며 달려 나왔다.
챙-챙-
묻지도 따지도 않고 칼과 창부터 빼 드는 모습에 이미 이야기는 필요 없어 보였다.
시후는 그런 그들을 한차례 훑어봤다.
그 시선이 닿은 기사들은 마른침만 꼴깍 삼켰다.
일전에 시후가 영주성에서 난동부린 것을 잊지 않은 거였다.
자신들의 힘으로는 어찌해볼 수 없는 이였지만 그렇다고 겁먹고 도망갈 수는 없는 게 기사의 숙명이었다.
잔뜩 긴장한 기사들을 훑어본 시후는 조민의 어깨를 두드렸다.
“알아서 정리하고 들어와.”
“네.”
훅-
그리고 시후와 함께 태산과 인호가 땅으로 꺼졌다.
셋이 사라진 모습에 놀란 것은 진권 혼자였다.
* * *
“하, 하하! 왕국으로 돌아가면 내 디카 영주의 공로를 친히 치하할 것입니다.”
“하, 하하, 왕자님께서 그렇게 저를 생각해 주시니 더할 나위 없이 감사할 따름입니다.”
술과 고기가 가득한 만찬 자리에서 서로의 얼굴에 칭찬 세례를 퍼붓는 디카와 마르스였다.
둘은 이미 취기가 상당히 올랐는지 몸을 비틀거리면서도 연신 술을 따랐다.
“왕자님께서는 그래서 언제 가시려는지요?”
“크으, 저도 빨리 가고 싶습니다.”
“혹시 무슨 일이 있습니까?”
“…뭐… 아주 작은 문제가 있습니다만… 별거 아닙니다. 크으!”
디카의 질문에 마르스는 말끝을 흐렸다.
차마 여기서 누군가에게 겁을 먹어 도망칠 수 없다고 할 수는 없는 거였다.
‘훗. 네놈이 얼마나 대단한지는 모르지만 어디 한번 와봐라. 여기는 영주성이다. 네깟 놈이….’
디카 영주로 시후를 견제하려는 생각의 마르스였다.
시후를 생각하니 저도 모르게 소름이 돋았다.
그런데.
“네깟 놈이 뭐?”
“헉!”
마르스는 갑자기 들리는 목소리에 깜짝 놀랐다.
무엇보다 속마음을 읽은 그 목소리.
단 한 마디였지만 절대로 잊을 수 없는 음성이었다.
스륵-
쨍그랑-
마르스는 자신이 앉아 있는 건너편 식탁에 솟아오른 그림자에 들고 있던 와인 잔을 놓쳤다.
“너… 너… 네놈이 어떻게 여기에….”
“왜? 내가 못 올 곳이라도 왔나?”
식탁에서 솟아오른 그림자는 시후였다.
시후는 아주 자연스럽게 식탁에 놓여 있는 칠면조 다리를 들어 올렸다.
“아주 기름진 것을 꾸역꾸역 처드시고 계셨네? 마르스 왕자?”
“……!”
마르스는 시후의 눈빛에 오금이 저렸다.
여기서 살짝 긴장을 놓치는 순간 바지에 크게 지릴 것 같았다.
영주성에 저리 쉽게, 당당하게 시후가 들어올 줄 몰랐다.
마르스는 고개를 홱 꺾어 디카를 바라봤다.
어서 무엇 좀 해보라는 뜻이었다.
그런데.
“아이고! 이거 See 후 님 아니십니까? 허, 허허. 한동안 보이시지 않기에 궁금했습니다?”
어찌 된 것인지 디카 영주의 반응이 예상과 달랐다.
마치 은인이라도 대하는 듯한 모습이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