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9화
시후의 연락을 받은 조민은 빠르게 준비했다.
일단 쓰촨성까지 가는 버스 편을 마련하기 위해 샤오롱에게 전화를 했다.
“언니, 오빠가 아미산으로 가신대요.”
- 아미산? 쓰촨성에 있는 그 아미산? 거기는 아미파가 있는데?
“아미파만 있는 게 아닌가 보죠.”
- 알겠어. 그쪽 지리를 잘 아는 사람을 보낼게.
“네. 아! 그리고 혹시 가는 길에 Safety World에 접속할 만한 곳 없어요?”
- 갑자기 게임은 왜?
“오빠가 잠깐 접속할 거라고 해서요.”
사실 조민 또한 시후가 왜 갑자기 Safety World에 접속하려는지 알 수는 없었다.
한국을 떠날 때만 해도 당분간 접속하지 않는다고 했었는데 무슨 의도인지 알 수 없었다.
아마 시후가 천마분심공을 통해 내공을 증진한다는 사실을 알았다면 놀라 기절할지도 몰랐다.
“오빠 성격이 좀 까탈스러운 건 알죠?”
- 알지…. 그럼 인터넷 환경이 좋은 곳으로 알아봐야겠네?
“역시. 언니는 말귀를 빨리 알아들어서 좋아요.”
- 후훗, 그동안 그렇지 못한 사람들만 만나봤나 봐?
“뭐… 대체로요.”
조민은 자신의 옆에서 귀를 쫑긋 세우며 엿듣고 있는 태산과 인호를 힐긋 바라봤다.
‘오빠 친구들이라지만 저럴 때 보면 참으로 어려 보여.’
남자는 역시 시후처럼 중후한 매력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조민이었다.
- 그럼, 그것도 알아봐서 연락해줄게.
“고마워요. 언니.”
그렇게 샤오롱을 통해 아미산까지 갈 방법을 마련한 조민은 스마트폰을 들어 지도 앱을 켰다.
그곳 지리를 잘 아는 사람이 동행한다고 하지만 자신도 어느 정도는 알고 있어야겠다는 생각에서였다.
대축척 지도를 통해 아미산을 확인하자 이름만큼이나 험한 산세가 보였다.
그밖에도 그곳까지 가는 동안 있는 도시의 지적도도 확인하며 혹시 모를 일에 대비책도 마련했다.
그런 조민을 보며 태산과 인호는 조용히 밖으로 나왔다.
“조민도 저렇게 열심인데 우리도 놀 수만은 없잖아?”
“너도 그렇게 생각했냐? 나도 몸이 근질거리더라.”
태산과 인호는 무공 연마를 위해 밖으로 나온 거였다.
국숫집 뒤뜰에는 커다란 공터가 있어 안성맞춤이었다.
둘은 얼마 전부터 시후가 가르쳐준 방법을 사용했다.
척-
둘은 자세를 낮추고는 손을 맞대었다.
경험이 적은 둘이 초식을 체화할 수 있도록 대련을 하는 방법이었다.
소량의 기를 운용하여 초식을 펼치되 거북이보다 느리게 움직이는 거였다.
맞대고 있는 손에서 느껴지는 상대방의 기의 흐름을 읽고 다음 수를 예측하는 거였다.
주먹 한 번을 내지르는 동안 수많은 허초를 떠올리는 방법이었기에 둘에게는 알맞은 공부 방식이었다.
한 시진이 지나자 둘의 몸에서 수증기가 피어올랐다.
팡-
인호의 발차기를 태산이 주먹으로 막자 둘은 씨익 웃으며 떨어졌다.
“후…. 네 발차기가 어디로 올지 몰라 엄청 힘들어.”
“후우, 무슨. 네 주먹 한 방이면 수많은 허초들이 하나도 소용없구만.”
다행이라면 다행일까.
태산과 인호의 실력은 비슷했다.
어느 정도의 라이벌 의식도 있어 둘은 연습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그리고 둘의 목표는 결코 서로가 아니었다.
강시후.
넘사벽이라고 느낄 만한 자신들의 친구였다.
이번에 시후가 어린아이의 시체를 안고 들어왔을 때.
시후의 등에 열십자의 커다란 상흔을 봤을 때.
둘은 알 수 없는 박탈감에 치를 떨었다.
한국을 떠날 때 시후에게 도움이 되고자 했었는데 지금 자신들의 형색은 그저 관광을 온 것 같았다.
“후… 한국을 떠날 때 그렇게 다짐했는데.”
“그러게… 여전히 우리는 시후에게 도움이 되지 않고 있으니…!”
인호는 말끝을 흐리며 태산에게 눈짓을 줬다.
대화하는 도중 마당 뒤쪽에서 인기척을 느낀 거였다.
태산도 느낀 것이지 인호의 눈짓에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그와 동시에 인호가 움직였다.
그리고 마당 뒤쪽의 누군가도 같이 움직였다.
인호를 향해 날아오른 그는 검은 무복에 복면을 썼다.
인호는 허공에서 맞닥뜨린 괴한이 내질러 오는 수도에 급히 몸을 회전했다.
핑-
허공을 가르는 날카로운 파공성과 함께 인호가 담벼락에 섰다.
“태산!”
“누구냐?!”
인호가 태산을 부르자 태산은 갑자기 나타난 괴한에게 달려들었다.
단순한 날아 차기였지만 그 안에 담긴 무게감은 달랐다.
묵직하게 허공을 가르는 소리에 주변 공기가 짓눌리는 것 같았다.
괴한은 태산의 발차기를 두 손을 교차하여 막았다.
쾅-
엄청난 굉음과는 다르게 괴한은 가볍게 마당에 내려섰다.
그사이 태산과 인호가 괴한을 앞뒤로 포위했다.
태산은 발끝에서 묵직한 타격감이 느껴졌음에도 아무렇지 않아 하는 괴한에 긴장했다.
인호 역시 조금 전 공방에 결코 자신들보다 하수가 아님을 깨닫고 자세를 잡았다.
“웬 놈이냐?”
“…….”
“우리를 감시하는 이유가 뭐냐?”
“…….”
인호의 물음에도 괴한은 대답이 없었다.
대신 태산과 인호를 향해 검지를 들어 올렸다.
괴한의 검지가 자신들을 조준하는 것에 둘은 반사적으로 몸을 비틀었다.
퍼벙-
그리고 이어진 관통음.
둘은 괴한과 거리를 벌리며 자신들의 뒤를 힐끗거렸다.
그곳에는 오백 원짜리만 한 구멍이 뚫려 있었다.
둘은 손가락과 동전 모양의 구멍에 한 가지를 떠올렸다.
“탄지신통(彈脂神通)?!”
이곳이 소림사 근처였기에 무협지 덕후답게 소림사 무공을 떠올렸다.
탄지신통이라는 말에 괴한은 다시 한번 검지를 둘에게 가리켰다.
그러자 괴한의 손가락이 일렁였다.
태산과 인호는 그 순간 등골이 오싹한 느낌에 급히 몸을 움직였다.
인호는 천기보를 펼치며 이형환위와 같은 보법을 펼쳤다.
태산은 이번에 시후가 개방의 독분 보법이라며 가르쳐준 취팔선보(醉八仙步)를 펼쳤다.
잔상을 남기며 이동하는 인호와 어디로 움직일지 모르는 종잡을 수 없는 태산이었다.
덕분에 기관총처럼 쏘아지는 탄지신통의 공세를 피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 피하기만 해서는 결판이 나지 않기에 태산이 소리쳤다.
“인호야!”
파팟-
태산이 인호를 부르며 취팔선보를 펼치는 도중 땅을 긁었다.
파도처럼 일어난 흙더미가 괴한을 덮쳤다.
덕분에 태산의 모습이 보이지 않자 괴한이 태산을 찾기 위해 시선을 돌렸다.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인호가 움직였다.
인호는 천기보를 극한까지 펼치며 순식간에 괴한의 머리 위로 향했다.
일전에 시후가 보여줬던 것처럼 발에 강한 내기를 담아 괴한의 머리를 찍어갔다.
쾅-
땅이 움푹 파일 정도의 굉음이 일었지만, 괴한은 이미 그 자리에 없었다.
발을 어지럽히며 인호의 공격을 피한 거였다.
하지만.
“걸렸어! 삼 초식!”
마치 그곳으로 피할 거라고 예상이라도 한 듯 태산이 괴한의 머리 위에 나타났다.
그러고는 괴한이 당황하는 순간 개걸폭렬권 삼 초식을 펼쳤다.
권기의 소나기가 괴한을 덮쳐갔다.
태산의 공격을 피할 수 없다고 생각한 괴한은 두 다리를 벌려 마보를 취했다.
“대력금강장(大力金剛掌).”
괴한의 두 손이 은은한 황금빛을 띠었다.
그리고 소나기처럼 쏟아지는 개걸폭렬권을 향해 뻗었다.
콰광-
허공에서 부딪힌 강기에 엄청난 충격음과 충격파가 일었다.
덕분에 허공에 떠 있던 태산이 균형을 잃고 날아갔다.
척-
“괜찮냐?”
“땡큐.”
다행히 인호가 날아와 태산을 받았다.
둘은 흩날리는 먼지 속에 우뚝 서 있는 괴한을 노려봤다.
괴한은 손을 휘저어 먼지를 흩트리고는 둘을 향해 몸을 돌렸다.
“어? 뭐야?”
“스…님?”
좀 전의 충격파로 인해 괴한이 쓰고 있던 복면이 벗겨져 얼굴이 드러났다.
머리카락이라고는 한 올도 없는 반질반질한 민머리에 여섯 개의 점이 찍혀 있었다.
그 모습에 태산과 인호는 소림사 스님을 떠올린 거였다.
왜 스님이 자신을 공격하고 저만한 무공을 보이는지 알 수 없었지만 둘은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대신 괴한이 자세를 고쳐 잡더니 두 손을 들어 올려 합장을 했다.
“아미타불. 두 시주께서는 경계를 푸시지요.”
“…….”
“저는 적이 아닙니다.”
“하?”
태산과 인호는 어이가 없었다.
죽일 듯이 공격한 게 누군데 갑자기 적이 아니라니.
괴한의 말만 듣고는 믿을 수 없기에 둘은 경계를 풀지 않았다.
그때 다른 이가 괴한의 정체를 물어갔다.
“넌 누구냐?”
흠칫.
괴한은 자신의 뒤쪽에서 들리는 목소리에 깜짝 놀랐다.
자신의 정체를 묻는 단 한 마디였지만 그 말의 무게에 숨을 쉴 수가 없었다.
‘의념기의 경지에 이른 자란 말인가?’
생각만으로 무를 펼칠 수 있는 자라는 생각에 괴한은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중국으로 넘어오면서 받은 위장 신분으로 변용한 시후가 서 있었다.
시후는 자신을 향해 합장하는 괴한을 물끄러미 봤다.
“저는 소림수호승 진권이라 합니다.”
“그래서?”
시후는 독안공을 통해 진권의 말이 사실임을 알았다.
하지만 소림 방장도 혈교인이었는데 저 녀석이라고 아니라는 법이 없기에 좀 더 자세히 물었다.
“제 말이 거짓이 아님을 아셨다면 일단 자리를 옮기시는 게 어떠실지요?”
“굳이?”
“그렇지 않으시면 좀 귀찮아질 것 같아서 그렇습니다.”
“……!”
진권의 말에 시후는 기감을 넓혔다.
그러자 저 멀리서 국숫집을 향해 빠르게 다가오는 기척을 느꼈다.
그런데 그들에게서 느껴지는 기운이 흥미로웠다.
한편, 시후가 눈빛을 빛내자 진권은 진권 나름대로 놀랐다.
‘사형들이 오는 것을 느낀 것인가?’
지금 국숫집을 향해 다가오는 것은 진권을 포함한 소림사대수호승 중 나머지 셋이었다.
진권이 그들보다 먼저 이곳으로 온 것은 다른 이의 명령에 따라서였다.
그런데 조금 전 의념기를 펼친 것도 그렇고, 자신은 느끼지 못하는 사형들의 존재도 눈치챈 것도 그렇고.
아무래도 계획을 수정해야 할 것 같았다.
“좋습니다. 그럼, 안에서 그들을 기다리시는 게 어떠실지요?”
“녀석, 생긴 것답지 않게 눈치가 빠르구나?”
“처음 듣는 소리입니다만.”
“앞으로 자주 듣게 될 거야. 들어가자. 녀석들이 오기 전에 듣고 싶은 이야기가 있구나.”
“네.”
시후가 앞장서고 그 뒤를 진권이 따르자 태산과 인호가 그 뒤를 따랐다.
태산과 인호는 이미 시후로부터 진권에 대한 정체를 전음으로 전해 들었지만, 여전히 경계를 풀지 않았다.
안으로 들어가자 조민이 기다렸다는 듯이 모두를 맞이했다.
“앉으세요. 자리 마련해 놨어요.”
“역시 우리 조민이.”
“실없는 소리 하시기는요. 그쪽도 앉으세요.”
“감사합니다.”
작은 테이블에 시후가 앉자 그 앞에 진권이 앉았다.
하지만 다른 이들은 자리에 앉지 않았다.
대신 시후의 뒤에 일렬로 자리했다.
시후는 자신을 보스처럼 대하는 셋의 모습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진권이라 했나?”
“네. 긴히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만.”
진권은 아무래도 시후와 단둘이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하지만 시후는 어깨를 으쓱였다.
“저들이 들어서 나쁠 것은 나도 들을 필요가 없다.”
“…알겠습니다.”
지금의 말로 시후가 저들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눈치챈 진권이었다.
얼핏 보면 부하처럼 행동하는 이들이었지만 시후는 그들을 전혀 부하로 생각지 않는 것 같았다.
그 모습에 진권은 진중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저를 이곳으로 보내신 분은 법정 스님이십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