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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그인하는 천마님-116화 (116/275)

제116화

방장실에는 후덕한 인상의 승려가 앉아 있었다.

승려는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의자를 가리켰다.

“어서 오세요, 황 장로.”

“…….”

“약선방에서 변고가 있으셨다는 이야기는 들었습니다.”

“…….”

“허, 허허. 그렇게 경계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분께 황 장로에 대한 이야기를 직접 들었을 뿐입니다.”

“……! 그렇습니까.”

다행이었다.

혹여나 혈교 녀석들을 만나면서 황 장로와 친분이 있는 녀석을 만나면 어쩌나 싶었었다.

수틀리면 독안공으로 정보나 캐내려 했는데 그러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그렇다면 이야기가 빠르겠군요. 그분을 만나 뵐 수 있겠습니까?”

“당연히 그러셔야지요, 듣기로는 아주 중요한 정보가 있으시다고요?”

“그렇습니다. 혈교에 아주 큰 화를 가져올 만한 인물에 대한 정보입니다.”

“그것 참으로 궁금하군요.”

쪼로록-

승려는 찻잔에 차를 따라 시후에게 내민 후 자신도 같은 차를 따라 차향을 맡고는 한 모금 홀짝였다.

“그렇지 않아도 그분께서 오고 계신다고 들었습니다.”

“그렇습니까? 언제쯤….”

“허, 허허. 뭘 그리 급하십니까. 여기는 소림입니다. 그 누가 방장과 같이 있는 분을 해하겠습니까?”

“…….”

“조금 있으면 당도하신다고 하셨으니 차 한잔하시면서 기다리시지요.”

자신을 방장이라고 소개한 이를 보며 시후는 찻잔을 들었다.

방장을 따라 차향을 음미하며 홀짝였다.

그 모습에 방장은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그나저나 참으로 안타깝게 되었습니다.”

“뭐가 말씀입니까?”

“황 장로께서 여아(女兒)를 좋아하시는 줄은 몰랐는데 말입니다.”

“무슨 말씀이신지요?”

“허, 허허. 그분의 눈과 귀가 미치지 않는 곳이 없거늘 무엇을 부끄러워하십니까?”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지 좀처럼 알 수 없었다.

그때였다.

지금까지 사람 좋은 미소를 짓고 있던 방장이 실눈을 뜨며 미소를 지웠다.

잠시의 침묵을 깨고 먼저 입을 연 것은 방장이었다.

“국숫집 여아가 마음에 드셨으면 그냥 취하시지 그러셨습니까?”

“……!”

“그러셨으면….”

그 뒷이야기는 듣지 않아도 되었다.

“역시 그리되었는가.”

“허, 허허. 그렇지요. 저희에게 반하면 그리되는 것은 이미 알고 계시지 않으셨습니까?”

“알지. 네놈들 방식이야 질리도록 봐왔으니까.”

“허, 허허. 그보다 궁금한 게 있습니다.”

“물어봐. 가는 길 선물이라 생각하고.”

시후는 이미 이곳을 뒤집어엎을 생각이었다.

조민에게 아이를 잘 챙기라 말해놓았지만 아무래도 녀석들이 먼저 손을 쓴 것 같았다.

저 후덕한 인상의 방장 자식은 맛대가리도 없는 차를 내온 성의를 생각해 특별히 챙겨줄 생각이었다.

“도대체 혈고를 어떻게 제거하신 겁니까? 그분께서도 그 부분을 가장 궁금해하시더군요.”

“벌레는 태워 죽여야 제 맛이지.”

“허, 허허. 그 말씀은 뇌 속에 자리한 혈고를 죽였다는 말씀이군요?”

“왜? 네 뇌 속에 있는 벌레도 죽여주랴?”

“허, 허허. 제게는 그런 것은 없습니다.”

“그래? 너는 없단 말이지?”

생각을 바꿨다.

녀석이 생각보다 혈교에서 한자리하는 인물인 것 같았다.

‘녀석들은 쓰고 버릴 인물에게만 혈고를 사용하니까.’

바꿔 말하면 혈고가 없는데 요직에 있는 인물이라면 혈교의 사정을 잘 아는 인물이라는 소리였다.

시후는 한쪽 귀에 손을 대 꺼 놓았던 통신 장치를 켰다.

그러자 다급한 조민의 목소리가 들렸다.

- 오빠! 아이가 없어요!

“알아. 너희는 별일 없고?”

- 네…. 미안해요, 오빠.

“아니야, 너희 잘못도 아닌데. 그보다 거기서 대기해.”

- 알겠어요. 조심하세요.

“그래.”

조민의 걱정스러운 목소리에 간단하게 답해주었다.

시후가 하는 이야기를 가만히 듣고 있던 방장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약선방에서 조력자를 데려오셨나 봅니다?”

“뭐, 그렇지.”

“허, 허허. 그래도 약선방에서 황 장로님 입지가 나쁜 것은 아니셨나 봅니다, 그런 수완가인 줄 알았다면 다른 방도를 썼을 텐데 말입니다. 아깝군요.”

“응?”

말 많은 방장 녀석의 말을 들어보니 뭔가 이상했다.

아무래도 자신을 아직도 황 장로로 오인하고 있는 듯했다.

“생각보다 네 녀석이 쓸모가 있어 보이는구나.”

푸푹-

마혈과 아혈을 짚어 방장을 데리고 갈 생각으로 지풍을 날렸다.

그런데.

휘릭-

“어쭈?”

방장이 몸을 비틀어 지풍을 가볍게 피해버렸다.

“허, 허허. 소승을 너무 가볍게 보시는 듯합니다?”

“그러게? 내가 실수를 했네?”

훅-

시후는 직접 달려들었다.

능글맞게 웃는 저 얼굴을 보니 슬슬 짜증이 올라와 금나수를 펼쳤다.

그런데.

휙휙-

“허?!”

그마저도 피했다.

아무리 황 장로의 실력에 맞게 움직였다지만, 생각보다 녀석의 실력이 좋아 보였다.

그리고 이제는 되레 공격까지 해왔다.

“소림의 용은 제법 매섭습니다.”

손가락을 날카롭게 세워 잡아 오는 소림의 자랑, 용조수(龍爪手)였다.

살초에 버금가는 매서운 공격에 시후는 땅을 박차며 창문으로 날았다.

콰직-

창문을 부수며 빠져나온 시후는 마당에 내려서며 방장실을 올려다봤다.

그런데 어째서인지 용조수를 펼치며 죽일 듯이 달려들던 방장은 따라오지 않았다.

“포기하는 건가?”

“그럴 리가요, 부디 극락왕생하시길 바랍니다. 아미타불.”

방장은 두 손을 모아 합장까지 했다.

무슨 뚱딴지같은 짓인가 싶을 때였다.

흠칫-

목덜미가 서늘할 정도의 살기가 날아왔다.

강시후로 살면서 이만한 살기를 느껴본 적은 처음이었다.

고개를 천천히 돌려 살기가 흘러나오는 곳을 봤다.

담벼락 밑에 어둠이 짙게 깔린 곳에서 누군가 천천히 걸어 나왔다.

“너?!!”

“노…사…님….”

국숫집에서 봤던 여아였다.

죽었으리라 생각했던 여아의 등장에 시후는 달려 나가려 했다.

하지만 이내 여아의 머리에 올려져 있는 손을 보고는 멈췄다.

핏기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창백한 손의 주인은 악귀 가면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었다.

붉은색의 악귀 가면.

혈교의 상징이었다.

아이의 백회혈에 떡하니 손을 올리고 있는 혈교인의 등장에 시후는 한 걸음도 뗄 수 없었다.

“황 장로.”

“……!”

차갑게 깔린 목소리.

그런데 어째서인지 어디선가 들어본 목소리였다.

“이 아이를 살리고 싶나?”

“그렇다.”

“그렇다면 혈고를 제거한 방법을 말해라.”

이제야 혈교가 여아를 살려둔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녀석들은 황 장로의 머릿속에 심어 두었던 혈고가 사라진 것에 대해 궁금한 거였다.

지금 황 장로의 모습을 하고 있는 이가 시후라는 것을 전혀 모른 채 말이다.

혈고를 제거하는 방법이야 알려줄 수 있었다.

약선방에서 행할 수 있는 약물을 이용한 방법을 알려주면 되니까.

하지만 그랬다가는 녀석들은 그것을 이용해 더욱 강력한 혈고를 만들게 뻔했다.

그리고 이렇게 질질 끌려가는 협상은 시후의 스타일이 아니었다.

부우욱-

시후는 옷자락을 길게 찢었다.

그러고는 손가락에 기운을 집중하여 글귀를 써 내려갔다.

옷자락에 무언가 적고는 고이 접어 검지와 중지 사이에 끼고는 내밀었다.

“동시에 교환하겠나?”

“좋다.”

가면을 쓴 녀석이 아이를 앞세워 천천히 걸어왔다.

시후 역시 녀석과 발걸음을 맞추어 걸어 나갔다.

드디어 지척까지 다다랐을 때였다.

여아의 쉴 새 없이 흔들리는 눈동자와 부들부들 떠는 모습과 혈교인의 가면 밑으로 입꼬리가 슬쩍 올라가는 것이 보였다.

촤아악-

“크윽!”

등이 베였다.

호신강기를 일으킬 새도 없이 당했다.

‘아무 기척도 없었건만.’

누가 자신의 이목을 속이고 등 뒤를 공격했는지 보고 싶었지만 참았다.

대신.

“손!”

“노사님!”

쾅-

시후는 여아에게 소리쳐 손을 잡고는 혈교인을 공격했다.

여아의 백회혈에서 혈교인의 손이 떨어지자 잽싸게 여아를 품에 안았다.

등에서 뜨거운 통증이 느껴졌지만, 땅을 박차며 날아올랐다.

소림사의 담장을 훌쩍 뛰어넘은 시후는 우거진 숲으로 달렸다.

나뭇가지가 옷을 찢는 것도 신경 쓰지 않으며 경공술을 펼쳤다.

품속에 안긴 여아가 떨리는 손으로 옷깃을 붙잡았다.

“노사님, 노사님….”

당장이라도 울 것 같은 표정이었다.

시후는 애써 미소를 지었다.

황 장로의 얼굴이었지만 최대한 입꼬리를 올려보았다.

“잠시만 참으면 된다. 아주 잠시만.”

내기를 좀 더 끌어올렸다.

어둡고 우거진 숲이었지만 화살보다 빠르게 산을 내려갔다.

저 멀리 바리케이드가 쳐진 숭산 입구가 보였다.

저기만 넘고 조금만 더 내달리면 일행들이 대기하고 있는 국숫집이었다.

시후는 조민에게 아이를 넘길 생각뿐이었다.

하지만 입구가 얼마 남지 않았을 때, 시후는 멈춰야만 했다.

촤아악-

땅에 미끄러지며 멈춘 시후는 입구를 막아선 인물을 노려봤다.

그의 손에는 붉은 피가 뚝뚝 떨어지는 단도가 쥐어져 있었다.

“네놈… 아니, 년이구나?”

“…….”

“비켜라.”

“…….”

“비키지 않는다면 죽여주마.”

스윽-

시후는 한쪽 손을 들어 올렸다.

천마멸겁장에 미치지는 못하지만 강한 내기를 담은 장법을 펼칠 생각이었다.

“황 장로, 그만 기운을 거두시지요.”

시후는 자신을 말리는 차갑게 가라앉은 목소리에 내기를 거두었다.

드디어 기억이 났다.

“소교주.”

고개를 돌리자 핏빛 가면을 쓴 혈교인이 걸어오고 있었다.

저번과 분위기는 좀 달라졌지만 분명 혈교 소교주 진류강이었다.

“그렇습니다, 황 장로. 내가 직접 나섰다는 게 무슨 뜻인지 알잖습니까.”

“…….”

“나는 그대를 살려서 보낼 생각이 없습니다.”

“그게 그대 마음대로 되는가?”

“글쎄요. 나 혼자서도 충분하지만, 저 아이까지 있다면 절대라 생각합니다만.”

다시 고개를 돌리니 입구를 막아서던 녀석이 천천히 걸어오고 있었다.

‘움직이는 기척을 느끼지 못했다.’

눈으로 보기 전까지는 기척을 느낄 수 없다니.

천마 시절에도 그런 적은 없었는데.

혈교에 어떻게 저런 실력자가 있는지 의문이었다.

정체가 궁금해질 때 녀석의 얼굴이 보였다.

“설마….”

붉게 불타는 흐릿한 눈.

창백하다 못해 시체라고 느껴지는 혈색.

걸어오고 있음에도 전혀 느껴지지 않는 기척.

천마 시절 저런 녀석에 대한 보고를 받은 적이 있었다.

“혈천마라강시(血天魔羅彊屍).”

그 금단의 존재를 또다시 보게 되다니.

믿을 수 없었다.

하지만 그런 시후의 마음을 부정이라도 하듯 진류강이 말했다.

“그것까지 알다니. 황 장로, 당신의 뒤에 도대체 누가 있는 겁니까?”

“글쎄…?”

도망가야 했다.

혈천마라강시라니.

천마 시절에도 혈천마라강시 한 구가 절정에 다다른 100명의 고수에 필적했다.

그때도 검마 정도는 되어야 상대가 가능하던 녀석이었는데.

등에 상처까지 입고 여아까지 품은 상황에서는 절대로 저 녀석을 상대할 수 없었다.

천잠음영술을 펼치고 싶었지만 진지춘도 버티지 못하던 것을 여아가 버티기는 힘들 거였다.

어찌할까 고민하던 때에 진류강이 말했다.

“도망갈 생각일랑 버리시고 같이 가시지요. 듣고 싶은 말이 많습니다.”

“미안하지만 나는 할 말이 없다.”

시후는 품속에서 바들바들 떠는 여아를 다시 한번 갈무리하며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그 모습에 진류강은 피식 웃었다.

“훗. 아무래도 그 아이가 황 장로님의 발목을 잡는 것 같군요.”

“…….”

“제가 해결해 드리겠습니다.”

진류강이 손을 들어 올리자 품속의 여아의 떨림이 거세졌다.

깜짝 놀란 시후는 여아를 내려다봤다.

“노… 노사님. 저… 커헉!”

푸악-

시후의 옷자락을 꼭 움켜쥐던 여아는 있는 힘을 다해 피를 토하듯 각혈을 했다.

그것을 시작으로 여아의 오공에서 피가 흘러나왔다.

시후의 품속을 흥건하게 적실 정도로 여아의 피가 계속해서 뿜어져 나왔다.

여아는 곧 눈에서 생기를 잃더니 움켜쥐었던 옷자락을 놓으며 축 늘어졌다.

시후의 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저희 혈교에서도 몇 분밖에 알지 못하는 수법입니다. 오공혈….”

“오공혈시한장(五孔血時限掌).”

“허?! 그것까지 아십니까?”

“알지.”

천마 시절 유일하게 사랑한 여인이 자신의 품에서 그 수법에 의해 싸늘한 시체가 되었으니.

시후는 여전히 피를 뿜어내는 여아를 다시 품속에 꼭 안았다.

“진류강이라 했던가.”

“어찌 내 이름을?”

“혈교 소교주 진류강. 다시금 빌어먹을 장면을 떠올리게 해주다니. 그 보답을 꼭 해주고 싶네?!”

“무슨?”

시후는 혈천마라강시의 손에서 벗어날 방법을 떠올렸다.

천잠음영술로 그림자 속에 스며들어 도망갈 수도 있었지만, 지금의 분노를 아주 조금은 풀어주고 가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강시후가 아닌 천마로 돌아갈 것 같았다.

훅-

바람이 흔들리는 순간 시후가 움직였다.

그리고 나타난 곳은 진류강의 코앞이었다.

진류강은 생각지도 못한 황 장로의 움직임에 미처 반응할 수 없었다.

대신.

촤아악-

혈천마라강시인 린이 움직여 시후의 등을 다시 한번 베었다.

좀 전보다 더 끔찍한 고통이 밀려왔지만 시후는 아랑곳하지 않고 손을 뻗어 진류강의 가슴을 후려쳤다.

쾅-

“크헉!”

진류강이 피를 한 움큼 토하며 뒤로 밀려나자 린이 달려와 부축했다.

“어, 어떻게 황 장로, 당신이 이런 움직임을….”

“다음에 만날 때까지 개고생 좀 하고 있어라.”

훅-

그 말을 끝으로 시후는 그림자 속으로 사라졌다.

순식간에 시후의 기척까지 사라진 모습에 진류강은 어안이벙벙했다.

그리고 밀려오는 흉통에 정신이 아득해졌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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