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4화
샤오롱은 빠르게 약선방 건물의 뒷수습을 시작했다.
딱 반쪽만 폭격 맞은 것처럼 부서져 버린 대회의실 정리를 위해 직원들을 불렀다.
다들 피범벅인 대회의실 모습에 주춤거렸지만 샤오롱의 지시에 빠르게 움직였다.
그때 직원 한 명이 샤오롱을 찾았다.
“사장님, 아무래도 문제가 좀 생긴 것 같습니다.”
“무슨 문제요?”
“그게… 대회의실로 들어오는 전력이 차단되었습니다.”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다는 말에 샤오롱은 천장을 바라봤다.
그곳에는 깔끔하게 잘려 나간 단면이 보였다.
시후가 혈교인들의 자폭에 대한 피해를 막기 위해 기벽을 일으킨 자국이었다.
‘도대체 얼마나 뻗어나갔길래 지하 4층 깊이인 이곳까지 다다르는 전력에 문제가 생겨.’
아무래도 정확한 피해 범위부터 파악해야 할 것 같았다.
“일단은 정리부터 하세요. 물을 길어다가 피 좀 닦고 잔해부터 모아보세요.”
그렇게 직원에게 간략한 지시를 내려준 후 샤오롱은 시후 일행과 함께 계단을 통해 1층으로 향했다.
그리고 그곳에 도착한 샤오롱은 다시 한번 놀랐다.
“도대체 어디까지 뻗어나간 거예요?”
도대체 기벽을 얼마나 일으켜 세운 것이기에 1층 로비 천장도 갈라져 있었다.
이만한 기벽을 일으키는 시후의 존재가 다시금 궁금해졌다.
그래서 조민을 찾았다.
지금까지 저들의 행동으로 보아 조민이 저들의 구심점이었다.
시후에 대해서 그녀만큼 잘 아는 이는 없을 거라는 생각에 물었다.
“조민 양, 도대체 그분은 누구십니까?”
“그분이요?”
“그분이요, J.K 제약회사 직원의 신분이신 그분이요.”
“아~! 오빠요?”
“네! 그분이요!”
샤오롱은 드디어 시후의 정체에 대해 들을 수 있다는 생각에 목소리가 살짝 격양되었다.
하지만 돌아온 것은 맥 빠지는 대답뿐이었다.
“오빠는… 그냥 오빤데요?”
“네?”
샤오롱은 순간 조민이 자신을 약 올리는 거라 생각했다.
그때였다.
“그냥 오빠라니.”
시후가 1층 로비로 들어서면서 둘의 이야기에 끼어들었다.
시후를 발견한 일행은 한걸음에 다가갔다.
“왜 엿들어요.”
“엿듣기는, 네가 틀린 말을 하니깐 끼어든 거잖아.”
“그럼, 그냥 오빠를 오빠라고 하지 뭐라고 해요?”
설마 여기서 진짜 시후의 정체를 노출하라는 말인가 싶어 조민이 물었다.
시후는 그런 조민의 머리를 슥슥 쓰다듬고는 말했다.
“‘아주 멋진’이 빠졌잖아.”
“오빠, 진심이에요?”
“네가 잘 모르나 본데, 내가 예전부터 엄청나게 잘나갔었거든?”
시후는 천마 시절 저잣거리에 나갈 때 여인들이 따랐던 것을 떠올렸다.
천마라는 사실을 감추기 위해 초라한 옷을 입어도 그 잘남은 어디 가지를 않았다.
그때의 영광(?)을 회상하는 시후를 일깨우는 소리가 들렸다.
“시후야, 그건 아니지.”
“맞아. 솔직히 네 예전 모습은… 좀… 연약했다고 해야 하나?”
“바람 불면 날아갈 것 같은 그런 이미지?”
“맞아, 맞아!”
천마의 영혼이 깃들기 전 강시후의 흑역사를 읊는 태산과 인호였다.
죽이 척척 맞아 떠들기 시작하는 둘을 보며 시후는 빠르게 화제를 돌렸다.
“크흠, 뭐 어쨌든. 너는 왜 내게 관심을 두는 것이냐?”
“당연한 거 아닌가요?!”
샤오롱은 갑자기 자신이 거론되었음에도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답했다.
“무공을 배운 이후로 이만한 무위를 본 적은 없었습니다.”
“진짜?”
“네! 지하 4층부터 지상 2층까지 기벽을 세우는 무위라니. 듣지도 보지도 못했습니다.”
“…….”
시후는 샤오롱의 말에 되레 의문을 가졌다.
대회의실에서 자신이 보여준 기벽이 결코 쉬운 것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일 갑자가 넘는 내공을 가진 샤오롱이 처음 볼 정도의 무위는 아니었다.
검결(劍決)만 알고 있다면 삼 갑자의 내공만으로 저 정도는 펼칠 수 있었다.
그리고 이곳 약선방의 방주라는 녀석 또한 삼 갑자가 넘는 내공을 갖고 있었다.
‘그런 녀석이 이만한 무위를 보여준 적이 없다?’
그러고 보니 의아했다.
고작 이 갑자의 내공을 가진 황 장로라는 녀석이 어떻게 방주 송하룡에게 혈고와 혈독을 아무도 모르게 먹일 수 있었는지.
“역시 이런 거는 당사자에게 직접 들어야겠지?”
“네? 누구요?”
“너희 방주. 지금쯤 일어났을 테니 올라가 보자.”
시후가 앞장서 비상계단으로 향하자 다들 뒤를 따랐다.
전력 이상으로 엘리베이터가 작동되지 않기에 시후는 비상계단을 빠르게 날아올랐다.
이제는 익숙하게 다들 시후의 뒤를 따랐다.
그리고 다다른 약선방 방주실 문이 열리자 병상에 일어나 앉아 있는 송하룡이 보였다.
“방주님!!”
샤오롱은 송하룡을 발견하고는 한걸음에 달려갔다.
그러고는 품속에 달려들 듯이 안겼다.
송하룡은 창백한 안색이었지만 그런 샤오롱을 다독이며 웃어주었다.
“허, 허허. 녀석. 꽤 걱정했나 보구나.”
“흑, 흑흑. 죄송합니다.”
“죄송하기는. 너는 내가 지시한 대로 잘 따랐을 뿐이거늘.”
“그래도요, 방주님께서 혈독에 당해 쓰러지실 때는 정말 하늘이 무너지는 줄 알았습니다.”
“허, 허허. 그래도 지춘이 녀석 덕분에 이렇게 털고 일어나지 않았느냐, 그러니 그만 울거라.”
송하룡의 말에 옆에 있던 진지춘이 머쓱해했다.
그러다 여전히 문 앞에 서 있는 시후를 발견하고는 후다닥 달려갔다.
“도, 도련님. 방주님께서 방금 막 일어나셔서 몸 좀 보훈하시고 나서….”
“그럴 시간 없다.”
시후는 진지춘이 자신을 왜 말리는지 알고 있었다.
방금 병상에서 일어난 방주에게 약선방에서 일어난 일을 알려 건강에 우려가 끼칠까 싶어서였다.
하지만 그런 배려를 해줄 시간 따위는 없었다.
황 장로가 이미 혈교와 접선할 약속을 잡았으니 말이다.
시후의 단호한 말에 진지춘은 어쩔 수 없이 뒤따라 송하룡에게 향했다.
송하룡은 시후를 대하는 진지춘의 모습에 빠르게 상황을 파악했다.
“고인께서는 누구십니까.”
“오늘따라 왜 이리들 내 정체가 궁금할까? 지들 발등에 떨어진 불덩이나 끌 생각하지?”
“크흠….”
시후의 말에 송하룡은 낮은 침음성을 흘렸다.
송하룡 역시 무엇이 우선인지 아는 거였다.
자신이 쓰러진 후 약선방에 어떤 화가 미쳤는지 예상은 하고 있었다.
그리고 방금 시후의 말로 인해 알 수 있었다.
당장 자신이 나서야 할 정도로 약선방에 큰 화가 미쳤음을.
하지만 움직이고 싶어도 전혀 기력이 없는 몸뚱어리에 한탄스러울 뿐이었다.
시후는 시시각각 변하는 송하룡의 표정을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이미 송하룡과 눈이 마주치면서부터 독안공을 펼치고 있었기에 무슨 생각을 하는지 전부 읽었다.
‘지금의 상황부터 알려주는 게 우선이겠군.’
황 장로가 거론한 숭산으로 가서 혈교 녀석들을 만나려면 송하룡의 도움이 필요했기에 우선을 도와주기로 했다.
“조민아, 3분.”
“네.”
서두도 없는 명령이었지만 조민은 이미 준비하고 있었다.
조민은 현재 약선방에서 벌어진 일에 대해 빠르게 말하기 시작했다.
송하룡이 왜 쓰러졌는지와 약선방에 녹아들어 있던 혈교인들에 대한 것과 대회의실에서 일어난 일에 대해서 빠르게 말했다.
조민의 이야기에 송하룡은 점점 얼굴을 구기며 힘이 들어가지도 않는 주먹을 움켜쥐었다.
“고맙습니다. 그대들이 아니었다면 약선방은 와해되었을 겁니다.”
“알면 되었고. 이제 내가 무슨 말을 할지 알겠지?”
“네, 제가 무엇을 도우면 되겠습니까?”
“우선, 숭산으로 갈 채비. 그리고 그곳 주위에 있는 문파에 대한 정보.”
“문파에 대한 정보는 지춘이를 통해 전달해 놓겠습니다. 한데 채비라 하시면….”
“그곳에서 혈교 녀석들과 황 장로가 만나기로 했거든.”
“네?!”
황 장로와 혈교가 접선한다는 말에 다들 깜짝 놀랐다.
시후가 별일 없다는 듯이 돌아왔기에 모두 황 장로가 처리되었을 거라 생각했다.
대회의실을 빠져나가기 전에 잔뜩 열받은 시후의 모습으로 미루어보면 말이다.
“오빠, 황 장로가 살아 있어요?”
“걔가 왜 살아 있어?”
“네? 지금 황 장로와 혈교가 만난다고… 설마?”
“맞아. 내가 만날 거야.”
“아~! 알겠어요.”
시후 일행들은 무슨 뜻인지 알았다.
반면 고개를 끄덕이는 일행들과는 달리 송하룡과 샤오롱은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도대체 무슨 말씀이신지….”
“내가 이 모습으로 녀석들을 만날 거라고.”
뚜둑-두둑-
시후가 천투변용술을 통해 황 장로의 모습으로 변했다.
그 모습에 송하룡과 샤오롱은 입이 쩌억 벌어졌다.
생전 처음 보는 변용술에 놀란 거였다.
* * *
하늘에라도 닿을 것 같은 높은 봉우리들이 우거진 숭산 중턱에 자리한 소림사.
지금은 많은 관광객을 맞이하며 중국의 관광지로 자리매김한 소림사에 오늘따라 인적이 드물었다.
아니. 전혀 없었다.
공양드리는 시주도 무술을 연마하는 스님도 없었다.
해가 지고 밤이 오고 있음을 알리는 부엉이의 구슬픈 울음소리가 울릴 때였다.
쾅-
소실산(少室山) 정상에서 엄청난 굉음과 함께 흙먼지가 날아올랐다.
그리고 뒤이어 떠오른 작은 인영.
그 인영은 달빛을 갈무리하며 아무도 없는 소림사 전각 위에 사뿐히 내려섰다.
그 순간 사방에서 스님들이 뛰어나왔다.
그들의 손에는 소림이 자랑하는 봉이 들려 있었다.
촤라락-
다들 일사불란하게 자리를 잡고는 봉 끝을 전각 위로 향했다.
한 덩치 하는 스님이 숨을 깊게 들이마시고는 외쳤다.
“감히 소림에 쳐들어와 살생을 일으킨 중생은 당장 내려와 백팔나한진의 단죄를 받으라!”
그랬다.
이들은 소림이 자랑하는 백팔 명의 무승.
관광객들의 눈을 즐겁게 해주기 위해 무술을 연마하는 이들이 아닌, 비밀리에 소림에 해가 되는 이들을 단죄하기 위한 백팔나한이었다.
그의 외침에 전각 위에 있던 이는 대답 대신에 폴짝 뛰어내려 무승들 가운데 내려섰다.
그리고 달빛에 드러난 모습에 다들 눈을 부릅떴다.
핏기라고는 전혀 없는 얼굴이었지만 한눈에 알아볼 만큼 미인이었다.
그런 그녀의 얼굴은 다른 누군가의 피로 뒤덮여 있었다.
무승들은 그 피가 누구의 피인지 알고 있기에 이를 악물었다.
“여 시주를 단죄하라!!”
덩치 큰 무승의 말에 다른 무승들이 움직였다.
바람 한 점 불지 않는 이곳에 먼지가 치솟아 올라갈 정도의 기폭풍이 일어났다.
순식간에 백팔나한진이 발동되자 무승들의 봉이 여인에게 날아갔다.
그런데 어째서인지 여인은 엄청난 기운이 담긴 그 공세를 피할 생각이 없어 보였다.
쾅-
그대로 그 공세에 적중당한 여인은 바닥에 널브러지며 날아갔다.
어찌나 대단한 공세였는지 한쪽 벽을 뚫고 나간 여인은 거목에 부딪히고서야 멈추었다.
무승들은 단 한 수에 여인이 적중당하자 살짝 놀랐다.
하지만 그 놀람은 곧 다른 놀람으로 변했다.
스윽-
여인이 천천히 몸을 일으킨 거였다.
백팔나한진의 엄청난 위력이 말해주듯 상의가 전부 찢겨 나간 여인의 몸에 상처는 전혀 없었다.
무승들이 그런 여인의 모습에 놀랄 때였다.
“명불허전이라던 백팔나한진의 위력이 고작 이 정도였나?”
“누, 누구… 커 헉!”
거목 위에서 들린 목소리에 덩치 큰 무승이 소리를 질렀지만 말을 끝까지 잊지 못했다.
그의 머리가 몸을 떠나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대사형!!”
그의 죽음에 다른 무승들이 소리쳤다.
덩치 큰 무승은 백팔나한진 무승들의 우두머리 격인 대사형이었다.
목을 잃어버린 대사형의 몸 뒤에서 모습을 드러낸 이는 바닥에 떨어진 머리를 발로 툭 찼다.
“고작 이런 실력으로 대사형이라니. 쯧, 더는 볼 것도 없구나.”
그 말이 끝나자 고목 앞에 있던 여인이 움직였다.
그리고 백팔나한무승들의 절규에 가까운 비명이 숭산의 깊은 밤을 울렸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