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로그인하는 천마님-107화 (107/275)

제107화

첫눈이 내린 후에야 시후는 중국으로 향할 수 있었다.

부모님을 설득하는 것을 포함한 표면적인 준비와 중국에서 쓸 시후의 위장 신분을 포함한 심층적인 준비를 하는 데 꽤 시간이 필요했다.

제갈신길이 표면적인 이유로 준비한 것은 학교에서 진행하는 겨울 방학 과제를 위한 중국 여행이었다.

그래서 인솔자로 학교 선생님의 신분인 당소영도 참가했다.

시후는 인천공항 수화물 센터에서 캐리어를 부치고 있는 당소영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언어에 대한 장벽만 없었어도 굳이 데리고 가지 않을 텐데.’

중국에 대해서 검색해본 뒤, 자신이 알던 과거의 언어와는 조금 차이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래서 정확한 소통을 위해 당소영을 데려가게 된 것이다.

자신이 당성치에게 제안하기는 했지만 정말 당소영과 동행을 하고 싶지는 않았다.

이번 중국에 가는 목적이 여행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현대 시대에 어느 정도의 무림이 형성되어 있는 것인지 정확히 알아보기 위해 숭산을 찾아 소림의 흔적을 알아보려는 거였다.

겸사겸사 혈교라는 뱀을 꺼내기 위해 수풀을 두드렸으니 이제 슬슬 그 뱀을 찾아보려는 것도 있었다.

그 과정이 결코 유익한 시간만은 아닐 것이기에 당소영의 존재가 걱정되는 거였다.

‘만약, 내가 이번에 오 할의 내공을 찾지 않았다면 이리 결정하지는 않았을 거야.’

시후는 어쩔 수 없다는 듯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런 시후의 옆으로 태산과 인호가 다가왔다.

“왜? 신경 쓰여?”

“당연하지, 시후는 당 쌤 좋아하니까.”

“올~ 눈치 꽝인 태산이가 그런 건 언제 눈치챘대?”

“야, 내가 모쏠이기는 하지만 이런 눈치는 백 단이거든?”

자신을 사이에 두고 이야기를 나누는 태산과 인호를 보며 어이가 없었다.

본인들의 입장이 결코 당소영과 다르지 않음을 이 녀석들은 모르는 듯했다.

아무리 개걸심법과 천투신법을 대성하고 개걸폭렬권과 투신검각권을 팔 성까지 익혔다 하지만, 이 녀석들은 아직 애송이였다.

본래라면 홀로 다녀올 생각을 했던 시후는 둘의 어깨를 움켜쥐었다.

“아야! 아퍼!”

“아프라고 누르는 거다. 너희 중국에 가서는 내 말 잘 따라야 한다? 이번 여행은 생각보다 험난할 거야, 알지?”

태산과 인호는 시후의 말에 피식 웃었다.

“알아. 우리가 저번에 말했지? 네가 가는 길이 얼마나 가시밭길인지는 모르지만, 결코 우리가 너만 보내지는 않을 거라고.”

“지금이야 우리가 네게 짐이지만 두고 봐라? 언젠가 우리가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게 해줄 거니까.”

시후는 태산과 인호의 당찬 포부를 들으며 움켜쥐었던 어깨를 놓아주었다.

“두고 보겠어.”

“그러시든지!”

시후는 둘의 대답에 피식 웃었다.

그리고 그들의 뒤에서 서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진지춘과 제갈조민을 보았다.

중국으로 넘어가면 가장 먼저 들러야 하는 곳이 약선방이었다.

그곳에 숨어 있는 혈교 녀석들을 찾을 생각이었다.

‘겸사겸사, 방주라는 녀석도 좀 고쳐주고.’

약선방 방주를 치료하는 것보다 혈교의 꼬리를 잡는 데 더욱 신경을 쓰는 시후였다.

진지춘과 조민은 제갈신길이 준비해둔 위장 신분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시후는 저번의 내공 증진으로 인해 특별히 내공을 운용하지 않아도 청력이 전보다 배는 발달되었다.

그래서 지금 진지춘과 조민이 나누는 이야기를 똑똑히 들을 수 있었다.

“중국으로 넘어가면 오빠가 역용할 얼굴은 이 얼굴이에요. 저희 J.K 제약회사의 사원이죠. 목적은 어르신과 함께 약선방을 찾아가 새로운 약품에 대한 의견을 나누기 위함이에요.”

“알았다, 알았어. 한 번만 더 말하면 백 번이다, 백 번! 귀에 딱지 앉겠다.”

“어르신께서 대충대충 흘려들으시니까 제가 계속 말씀드리는 거잖아요!”

“하! 거참! 알았다니까?”

아무래도 걱정이 많은 조민의 말을 진지춘이 흘려듣는 것에서 시작된 투덕거림 같았다.

시후는 둘의 대화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어째 저 녀석은 자기네 방주를 위해 가는 길인데도 저리 태평한 것인지.

“어. 르. 신? 잠깐 이리 좀 와보실래요?”

“왜…요?”

시후의 부름에 진지춘은 머뭇거렸다.

그런 그를 보며 시후가 손가락을 까딱거렸다.

그 모습에 진지춘이 후다닥 달려와 시후의 옆에 찰싹 붙었다.

이제는 시후가 손가락을 들어 올리기만 해도 식은땀이 나는 진지춘이었다.

저 손가락을 튕기는 날이면 자신은 몇 시간이고 마비가 되기 때문이었다.

“헤헤, 도련님. 여기서 그러시지는 않으실 거죠?”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중국에 가면 쟤랑 쟤는 꼭 네 옆에 데리고 다녀라. 알았냐?”

조민과 당소영을 가리켰다.

아무래도 아직은 자신 다음으로 진지춘이 강했기에 혹시나 하는 마음에 말하는 거였다.

그 말을 들은 진지춘은 뒤에 있는 조민과 이쪽으로 걸어오는 당소영을 번갈아 봤다.

‘저 둘의 성격상 내 옆에 있으라고 해도 분명히 도련님 옆으로 갈 건데….’

진지춘의 눈에는 이미 둘의 마음속에 시후가 크게 자리한 것이 보였다.

그렇다고 여기서 시후에게 자신이 말해봐야 소용없을 거였다.

괜히 헛소리한다며 지풍이나 날아오지 않으면 다행이었다.

“하, 하하, 걱정하지 마십시오. 제가 무슨 일이 있어도 저 둘은 잘 돌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래야 할 거야. 혹여 쟤들이 염라대왕이라도 만나러 가게 되면 네가 직접 가서 데리고 와야 할 테니까.”

“하, 하하…. 도련님, 농담도… 하, 하하….”

진지춘은 시후의 말에 식은땀을 흘리고 있지만, 농담이라고 생각하고 싶었다.

그사이 수화물을 모두 부친 당소영이 둘에게 다가왔다.

“무슨 말씀을 나누시길래 진지춘 어르신께서 저리 당황하세요?”

“알 거 없어. 그보다 이제 들어가면 되는 건가?”

“네, 한 명씩 가서 여권 보여주고 티켓 확인하면 돼요.”

“쯧, 비행기 한번 타기 더럽게 어렵네.”

“……! 혹시 비행기 처음 타세요?”

다들 시후가 비행기를 처음 타는 것을 지금 알았다.

시후는 자신을 바라보는 모두의 시선에 의아함을 느꼈다.

다들 비행기를 처음 타는 자신이 신기하다는 듯이 쳐다보고 있었다.

“뭐야? 여기 비행기 처음 타는 건 나 혼자야?”

끄덕-끄덕-

시후의 말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반응에 시후는 순간 울컥했다.

천마 시절, 모두의 우상이었던 자신은 언제나 모든 것의 선두 주자였다.

광마(狂魔)가 만들었던 벽련탄을 처음 던진 것도 자신이었고, 시마(矢魔)가 만든 빛이 나는 활을 처음 쏴본 것도 자신이었다.

그런데 그런 자신을 향해 이런 눈빛을 보내다니. 자존심에 상처가 될 만한 일이었다.

“뭣하면 나는 그냥 날아가도 된다만?”

“네?!”

시후의 말에 다들 그 말이 농담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일전에 보여주었던 경공술이라면 여기서 중국까지 날아가는 데 비행기보다 빠를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랬다가는 국제적인 문제가 발생할 수가 있었다.

중국 공안에게 발각이라도 되는 날에는 곳곳에 설치된 CCTV를 통해 시후의 얼굴이 수배될 수도 있었다.

그런 일은 막아야 했기에 태산과 인호가 나섰다.

“뭘 또 그렇게 민감하게 반응해. 그냥 이번에는 경험이다~ 생각하고 그냥 타고 가자.”

“그래, 우리도 너랑 비행기 타는 거는 처음이란 말이야.”

“뭐… 너희가 그렇게 말한다면, 알았어.”

못 이기는 척 따르는 시후를 보며 다들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사실 시후 역시 비행기를 타는 데에 살짝 들떠 있기는 했다.

어떻게 철로 만든 저리 큰 물체가 하늘을 날아갈 수 있는지.

그것이 제일 궁금한 거였다.

그렇게 국제 범죄자가 될 뻔한 시후를 달래며 출국 절차를 마친 일행은 비행기로 향했다.

시후는 오늘 타고 갈 비행기가 보이자 초롱초롱한 눈빛을 보냈다.

그런 시후의 옆에 진지춘이 슬쩍 다가왔다.

“도련님, 근데 그거 아십니까?”

“뭐를?”

“비행기 탈 때 말입니다? 비행기 내부에 흙이 묻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 신발을 벗고 타야 합니다.”

“뭐? 굳이?”

“네, 그게 에티켓입니다.”

“쓸데없는….”

“그리고 비행기에서 편안하게 주무시려면 수면실이 있으니까 꼭 스튜어디스에게 말씀하시고 안내해 달라고 하셔야 합니다.”

“그건 나름대로 괜찮군. 알았다.”

시후는 진지춘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경유지인 중국 칭다오까지는 2시간이 조금 못 되면 도착한다고 했었다.

고작 그 정도의 시간이지만 졸음이 온다고 하면 굳이 불편한 의자에 앉아서 졸기보다는 편하게 누울 수 있는 공간을 활용하는 게 낫다는 생각이었다.

시후는 오랜만에 진지춘이 쓸모가 있어 보였다.

“일등석을 이용하시는 손님께서는 이쪽으로 이동해 주십시오.”

퍼스트 클래스 탑승 고객을 부르는 소리에 진지춘이 시후를 안내했다.

“도련님. 먼저 들어가시지요?”

“그럴까?”

시후는 진지춘의 안내에 앞장서서 게이트로 향했다.

간단하게 티켓과 여권 확인을 마친 시후가 먼저 연결 통로로 들어갔다.

시후는 드디어 비행기를 타게 된다는 기쁨에 진지춘이 뭉그적거리면서 따라오는 것을 눈치채지 못했다.

드디어 연결 통로를 지나 기체 문에 다다르자 스튜어디스가 방긋 웃으며 반겼다.

“반갑습니다, 손님.”

“반갑습니다.”

스튜어디스의 인사에 고개를 살짝 숙여 답한 시후는 비행기 앞에 잠시 멈췄다.

그러고는 허리를 숙여 신발을 벗었다.

인사를 했던 스튜어디스는 그런 시후의 모습에 입을 가리고 살짝 웃었다.

간혹 비행기를 처음 타는 이들 중에 지인의 장난에 속아 신발을 벗고 타는 이들이 있었기에 놀라지는 않았다.

“후훗, 손님. 친구분께서 매우 짓궂으신가 봐요.”

“네?”

“비행기를 타실 때는 굳이 신발을 벗지 않으셔도 됩니다. 혹여 자리에 앉으신 후에 신발이 불편하시면 그때 벗으셔도 된답니다.”

“……!”

시후는 스튜어디스의 말에 무언가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하며 고개를 홱 돌렸다.

그러자 연결 통로를 건너오는 진지춘의 모습이 보였다.

진지춘은 신발을 손에 들고 있는 시후를 발견하고는 입꼬리를 씰룩쌜룩하고 있었다.

그 모습에 시후는 자신이 당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오….”

빠득-

시후는 이를 갈며 중국에 가서 두고 보자는 눈빛을 보내고는 비행기 안으로 들어갔다.

스튜어디스의 안내를 받아 비행기 앞쪽으로 이동했다.

퍼스트 클래스답게 좌석부터가 예사롭지 않았다.

한눈에 보아도 폭신한 좌석이었다.

시후는 자신의 티켓에 적힌 번호와 같은 자리에 앉았다.

그 근처 좌석은 다른 일행들이 자리했다.

시후는 자신의 옆자리로 들어가는 진지춘을 향해 작게 속삭였다.

“너는 도대체 왜 그러냐?”

“무슨 말씀이신지요?”

“매번 나한테 마혈과 아혈을 짚어져 개고생하면서도 나한테 개기는 이유가 뭐냐고.”

시후는 진지춘이 자신에게 비행기 타는 에티켓이라며 거짓말을 한 것을 말하는 거였다.

진지춘은 퍼스트 클래스 의자의 푹신함을 체크하며 웃었다.

“후훗, 그야 도련님과 친해지려고 그러죠.”

“뭐?”

“도련님은 제가 아무리 무슨 짓을 해도 죽이지는 않으실 거 아닙니까?”

“죽지는 않을 거니까 장난치는 거라는 거냐?”

“그게 전제 조건이기는 하죠. 제가 생각보다 나이가 많습니다. 그리고 약선방에 가면 아시겠지만, 거기는 상당히 재미가 없는 곳입니다. 그런 곳에서 자란 제가 다른 이와 친해지기 위해서 익힌 방법은 이런 것이었습니다.”

진지춘은 자신의 어린 시절 다른 동도들과 어울리기 위해 장난을 자주 쳤었다.

매번 방주에게 혼이 나면서도 진지춘은 장난을 쳤고, 덕분에 약선방에서는 유명했다.

시후는 진지춘의 어리숙한 사교 방법을 듣고는 어이가 없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하? 그래서 언제까지 그러려고 그러냐?”

“음…. 도련님께서 제게 존댓말을 하실 때까지… 읍!”

푹-

진지춘의 말을 굳이 끝까지 들을 필요가 없다고 느낀 시후가 어느새 손가락을 튕겼다.

그리고 언제나처럼 마혈과 아혈을 짚었다.

덕분에 진지춘은 퍼스트 클래스에서 누워보지도 못하고 뻣뻣한 자세를 유지하게 되었다.

“넌 중국까지 그 상태로 가라.”

시후의 말을 들은 일행들은 진지춘의 상태를 힐끗 보고는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진지춘의 마음을 이해하고 있었다.

시후에게 다가가기는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시후의 눈을 마주 보고 이야기를 나눌 때면 어째서인지 자신의 내면까지 보이는 느낌이었다.

누군가에게 자신의 속사정을 모두 보인다는 것은 그리 좋은 기분이 아닐 터였다.

그리고 어째서인지는 모르지만 시후에게서는 알 수 없는 이질감이 느껴졌다.

마치 다른 시대를 살아가는 것처럼 말이다.

그래서 이들은 Safety World를 감사하게 생각했다.

게임 속에서만큼은 시후에게서 이질감이 느껴지지 않으니 말이다.

현실에서는 너무나도 큰 존재이지만 게임 속에서는 아직도 자신들이 알려줄 게 많은, 그저 친해지고 싶은 사람으로 보였다.

일행들이 시후에 대한 저마다의 생각을 정리하는 동안 비행기는 이륙했다.

(다음 편에서 계속)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