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로그인하는 천마님-103화 (103/275)

제103화

조민은 당장이라도 쓰러질 것 같은 몸을 겨우 지탱하며 힘껏 소리쳤다.

“사비! 가진 마력 모두를 써서 전방에 공격해!”

“네! 이거나 먹어라! 볼케이노!!”

펑-퍼퍼펑-

조민의 외침과 사비의 외침이 뒤섞이는 가운데 모래만 가득한 사막의 땅이 뒤집혔다.

모래 언덕은 활화산이 되어 용암을 뿜어내었고, 뿜어져 나오는 용암은 그 주위에 있는 전갈들을 덮쳤다.

- 꾸에에엑!!

- 크아아악!!

전갈의 비명과 그 위에 올라타 있던 병사들의 비명이 한데 뒤섞여 끊임없이 울려 퍼졌다.

잠시 후, 전갈 부대의 일원 중 살아 숨 쉬는 이는 없었다.

누군가는 승리에 환호를 외칠 만도 한데 어째서인지 그 누구도 입을 벌리지 않았다.

오히려 잔뜩 긴장한 눈빛으로 활화산 같던 모래 언덕이 모래로 뒤덮이는 것을 노려봤다.

“……!”

“드, 드디어 끝난 건가?”

“그, 그런 것 같은데?”

다들 이 지긋지긋한 전투가 드디어 끝난 것인가 하는 의문의 눈빛을 시후에게 보냈다.

시후는 동글이의 등 위에서 가장 편안한 자세로 타란의 다리에 누워 있었다.

일행들의 시선을 느끼고는 시후가 몸을 일으켰다.

기감을 높여 주변 탐색하고는 박수를 보냈다.

“오호~! 대단들 한데?”

“그 말씀은, 이제 적이 없다는 거죠?!”

진지춘이 힘겹게 입을 뗐다.

처음 전갈 부대가 등장했을 때와는 다르게 진지춘 역시 전투에 참여했다.

가지고 있던 모든 마나 물약까지 사용하며 치열한 전투를 치른 결과 금발을 휘날리던 조각 미남은 초췌한 거지가 되어 있었다.

Safety World에서 그렇게나 외모를 중요시하던 녀석이 이런 몰골이 되자 시후는 그동안 쌓였던 앙금이 조금 줄어드는 것 같았다.

이 정도 앙금이라면 현실로 돌아가 마혈을 짚어 반나절 정도만 집에 가두어두면 될 것 같았다.

진지춘은 자신을 빤히 바라보는 시후의 눈빛에서 스산함을 느끼고는 후다닥 뒤로 물러났다.

그리고 이번에 찾은 안식처인 아라크네에게로 달려갔다.

아라크네는 친위대 거미들에 둘러싸여 보호받고 있었다.

전갈 부대가 쳐들어온 목적의 1순위는 아라크네였기에 조민이 내린 지시였다.

아라크네는 헐레벌떡 달려오는 진지춘을 향해 두 팔을 활짝 벌렸다.

그녀는 부들부들 떠는 진지춘을 꼬옥 안고는 시후에게 눈을 부라렸다.

“후 님, 너무하신 거 아닙니까? 다주힐 님께서 얼마나 고생하셨는데, 이렇게 대하시는 겁니까?!”

언성까지 높이며 따박따박 말하는 아라크네의 모습에 다들 안절부절못했다.

던전에서 나온 뒤로 둘이 벌이는 애정 행각에 시후의 심기는 외줄을 타고 있었다.

그런데 지금 아라크네의 발언은 그 외줄을 뒤흔드는 발언이었다.

다들 놀란 가슴에 시후를 바라봤다.

그런데 웬일인지 시후는 아라크네를 지그시 바라볼 뿐 아무 짓도 하지 않았다.

그 모습에 태산은 인호의 옆구리를 쿡 찌르며 속삭였다.

“야, 저런 거를 보고 폭풍전야라고 하는 거 맞지?”

“너도 느껴지냐? 시후의 안쪽에서 꿀렁이는 기운?”

“어, 다들 그건 느껴지지 않나 보다? 저런 가식적인 미소에 안심하는 것을 보면?”

시후와 오랜 시간을 보낸 둘이었기에 시후의 가슴 속 깊은 곳에서 몽글몽글 피어오르는 살기를 느꼈다.

하지만 다른 이들, 하다못해 조민조차 시후의 얼굴에 피어나는 웃음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시후는 아라크네를 향해 미소를 띠며 입을 열었다.

“그래, 다음에는 좀 더 챙겨주도록 하지. 자~ 이제 가볼까? 저 언덕만 넘으면 헤라 왕국이니까?!”

시후의 말에 거미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헤라 왕국에 들어가는 통상적인 방법은 루프를 이용하는 거였다.

다른 길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생명의 흔적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여행자들에게 크나큰 역경을 선사하는 사막이 그러했다.

물론 그곳에서만 발생하는 퀘스트도 있었지만, 그 장소까지 걸어가는 유저는 없었다.

모두 헤라 왕국에서 구매할 수 있는 이동 스크롤을 이용해 퀘스트를 진행했다.

그래서 지금 유저들은 자신들이 하던 일을 멈추고 넋을 잃었다.

헤라 왕국 루프의 뒤쪽에서 흙먼지를 일으키며 나타나는 거미 몬스터들의 위용에 말이다.

“뭐, 뭐야? 헤라 왕국이 공격이라도 받는 거야?”

“돌발 퀘스트인가? 아닌데?! 퀘스트 알람 없는데?”

“와~! 장난 아닌데? 거미 몬스터들 레벨이 Lv. 300 대야!”

“우리 도망가야 하는 거 아니야?!”

“헤라 왕국 기사단은? 그들이 막아줘야 하는 거 아니야?”

유저들은 점점 다가오는 거미 몬스터들의 모습에 우왕좌왕했다.

그때 헤라 왕국 성문에서 빛이 번쩍였다.

“우와! 헤라 왕국 은빛 날개 기사단이다!”

“우와~! 아킬라이…가 없네?”

헤라 왕국을 대표하는 은빛 날개 기사단이 등장한 거였다.

그 뒤로도 헤라 왕국의 황금 사자 기사단, 성기사 기사단이 뒤따랐다.

“우왓! 뭐야?! 성기사 기사단도 있어? 그럼, 헤라 여왕까지 나온다는 거야?”

한 유저의 말대로 성기사 기사단은 헤라 여왕의 직속 기사단이었다.

성직자와 사제들로 이루어진 기사단은 헤라 여왕이 움직이지 않으면 그 어떤 일이 있어도 움직이지 않았다.

그 말은 성기사 기사단이 움직인다는 것은 헤라 여왕이 움직인다는 거였다.

그리고 유저들이 기대하는 대로 헤라 여왕이 호위를 받으며 성문을 빠져나오고 있었다.

“우와아~!!! 헤라 여왕님!!”

좀처럼 보기 힘든 헤라 여왕의 등장에 어떤 유저는 환호성까지 질렀다.

하지만 헤라 여왕은 그런 유저들의 함성은 들리지 않았다.

사막을 지나 자신의 영토에 발을 들여놓는 거미 몬스터의 등장에 긴장한 거였다.

저렇게나 많은 몬스터의 출현은 자신이 여왕의 자리에 오른 이후로 처음이었다.

그랬기에 모든 기사단을 이끌고 출정했다.

본인도 전투를 위한 갑옷까지 입고 말이다.

“모든 기사단, 거미 몬스터가 공격하기 전에는 절대 공격하지 말라. 시민들의 안전이 최우선임을 잊지 말라!”

- 네!!

헤라 여왕의 외침에 기사단 전원이 대답했다.

그 위용에 거리에서 직판장을 열던 유저들과 NPC들은 서둘러 판을 거두고 멀찍이 물러나고 있었다.

그리고 드디어 사막을 건너온 거미 몬스터들이 루프가 있는 곳을 지나 왕도에 들어섰다.

헤라 여왕은 점점 가까워져 오는 거미 몬스터들을 보며 마른침을 꼴깍 삼켰다.

그 수가 어림잡아도 천이 넘었으며 개체 하나하나가 기사단 한 명 한 명에 뒤떨어지지 않는 레벨을 보였다.

전투가 벌어진다면 패하지는 않겠지만 헤라 왕국에 큰 피해가 올 것은 뻔했다.

그런 긴장감에 불안과 초조함을 감추고 신경을 곤두세우던 그때 누군가가 보였다.

“설마…?”

가장 큰 거미 몬스터 등에서 손을 흔드는 유저의 모습이 확대되어 눈에 들어왔다.

그는 헤라 여왕과 시선이 맞닿자 더욱 반갑게 손을 흔들었다.

“여~! 헤라 여왕~ 마중 나와 준 거야?”

“See 후… 님?!!”

일전에 자신의 성에 들어와 집정관을 죽음 직전까지 몰고 간 그 유저였다.

헤라 여왕은 좀처럼 이해되지 않는 상황에 어리둥절했다.

반면, 시후는 헤라 여왕에게 손까지 흔들며 반가움을 표현했다.

‘녀석들, 저런 성대한 환영식까지 해주다니.’

오와 열을 맞추어 정렬한 기사단의 모습이 자신들의 맞이하는 것이라 오해한 거였다.

하지만 D.M이 느끼는 것은 달랐다.

본디 눈칫밥을 먹고 산 이들이 가장 분위기를 잘 살피는 법.

D.M은 머리카락이 쭈뼛 서는 느낌을 받자 후다닥 조민에게 달려갔다.

“유라 님, 아무래도 환영식이 아닌 것 같은데요?”

“알아요.”

“아신다고요? 근데 왜 후 님께 알리지 않으세요?”

“알린다고 달라질 건 없으니까요.”

“그게 무슨….”

“어떤 상황이었든 금방 상황을 정리했을 거예요. 뭐, 만약 저들이 공격했다면 헤라 왕국의 멸망을 거론할 만한 전쟁이 벌어졌겠지만요.”

“헐!”

D.M은 조민의 말에 어이가 없었다.

이 무슨 자신감이란 말인가.

물론, 그동안 시후가 보여준 능력들이 엄청난 것은 알고 있었다.

특히, 사막에서 맞닥뜨린 전갈 부대와의 전투로 시후 일행들의 엄청난 전투 능력까지 알게 되었다.

하지만, 지금 상대는 왕국이었다.

왕국에서 척살령이라도 내리는 날에는 Safety World 아이디를 삭제하고 다시 만들지 않는 이상 편히 돌아다니지 못할 거였다.

그런데 자신들을 종처럼 부리는 시후의 당당함과 그를 따르는 일행의 맹목적인 자신감은 도대체 어디서 나오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헤라 여왕을 향해 손을 흔드는 시후의 등을 보고 있자니 자기 어깨에 힘이 들어가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툭-

그때 누군가가 D.M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어깨동무를 해왔다.

진지춘이었다.

“다주힐 님, 저 See 후라는 분은 도대체 어떤 분이신 겁니까?”

“도련님? 으흠… 뭐랄까, 힘의 상징? 우리가 원초적으로 원하는 이상향? 아니면… 보스?”

진지춘의 장난 섞인 대답이었지만 D.M은 답을 찾은 것 같았다.

저도 모르게 말아 쥔 주먹을 느끼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천 마리가 넘는 거미 몬스터 위에 자리한 저분들의 동료들. 그들은 헤라 왕국의 기사단이 다가오고 있음에도 전혀 긴장하지 않았다.

하다못해 가장 어려서 일행들의 귀여움을 독차지하는 비천대 사비까지도 말이다.

그 모습에 D.M은 언젠가 시후가 한 말을 떠올렸다.

- 앞으로 너희도 비천대다.

그때는 그 말이 무슨 뜻인지 몰랐지만, 지금은 알 것 같았다.

일행을 이끌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강한 리더가 자신들을 원하는 거였다.

‘저분이 가는 길의 끝이 어디인지 함께하며 보고 싶어.’

이런 생각을 한 게 D.M만은 아니었는지, D.M의 다른 일행들 또한 벅차오르는 감정으로 시후를 바라봤다.

그들의 그런 모습을 유심히 관찰하던 진지춘은 피식 웃었다.

“이~야, 고생길에 스스로 뛰어든 것 축하한다. 그리고 너희가 막내인 것은 알아둬라.”

“네!”

“크윽, 도대체 도련님은 어떻게 저런 매력을 갖고 계신 건지 알 수 없단 말이야.”

진지춘은 스스로 고난의 길을 겪으려는 이들과 같은 심정으로 쿵쾅거리는 자기 가슴을 어루만지며 미소 지었다.

그사이 시후는 기사단 맨 앞에 나선 헤라 여왕의 앞에 당도했다.

시후가 동글이 등에서 뛰어내리자 그 뒤를 따라 타란이 내렸다.

헤라 여왕은 매혹적인 상반신을 가진 타란을 향해 눈을 흘기고는 시후에게 말했다.

“저자는 내가 부탁한 아라크네가 아닌 것 같다만?”

“당연하지, 얘는 타란이니까. 네가 부탁한 아라크네는 저쪽.”

시후의 말에 거미 몬스터들에 둘러싸여 있던 아라크네가 모습을 드러냈다.

아라크네를 발견한 헤라 3세는 고개를 끄덕였다.

“대단하군. 여기까지 오는 길이 쉬운 길은 아니었을 텐데.”

“역시, 알고 있었구나?”

시후는 전갈 부대의 존재를 헤라 여왕이 알고 있었다고 생각했다.

왜 알고 있었으면서 말해주지 않았는지 의중을 물은 거였다.

“그대라면 그 정도 고난과 역경은 이겨낼 거라 생각했으니까.”

“뭐, 사람 볼 줄 아네. 그건 그렇게 넘어가고. 그럼, 이제 보상을 좀 받아볼까?”

“그러지. 내 부탁을 들어준 See 후여, 감사하게 생각한다.”

띠링-

헤라 여왕의 말과 함께 시후와 일행들의 눈앞에 알림창이 나타났다.

[‘헤라 여왕의 간절한 부탁 퀘스트’를 클리어하셨습니다.]

[보상이 지급됩니다.]

[그 누구도 해내지 못한 퀘스트 클리어에 보상 내용이 상향됩니다.]

[경험치 정산까지 시간이 필요합니다.]

[00:59:59]

[‘국보 사용권’이 ‘국보 소유권’으로 변경됩니다.]

[헤라 왕국 보물 창고에서 헤라 여왕의 승인이 떨어지는 국보를 선택하십시오.]

[유니크 아이템이 레전드리 아이템으로 변경됩니다.]

[레전드리 아이템은 아라크네가 제작하여 지급됩니다.]

시후는 눈앞에 나타난 메시지 창을 읽으며 미소를 띠었다.

상당히 마음에 들었다, 아이템이야 그렇다 쳐도 시후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레벨업에 필요한 경험치였다.

그런데 정산까지 필요할 정도라면 꽤 엄청날 거라는 생각에 흐뭇한 거였다.

“그렇게나 좋은가?”

“당연하지. 레벨업을 할 수 있게 되었으니까.”

“그런가? 그래 보이는군. 그렇게나 바보처럼 웃는 것을 보니.”

“뭐?”

시후는 헤라 여왕 3세의 말에 자신이 무슨 표정을 짓고 있는지 깨달았다.

급히 표정을 바꾼 시후를 보며 헤라 여왕은 피식 웃었다.

“아라크네여, 나는 그대를 내 곁에 두고 싶다. 그러니 그대의 수하들은 이곳에 대기시켜 놓고 성으로 들어가 이야기를 나누자꾸나.”

“감사합니다, 여왕님.”

아라크네는 허리를 숙여 감사 인사를 했다.

그 모습에 시후는 드디어 끝났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돌아가 볼까.’

그렇게 몸을 돌리려는데 누군가 옷깃을 잡아 왔다.

헤라 여왕이었다.

“왜?”

“우리 왕국은 귀인을 그냥 보내지 않는다. 식사라도 하고 가지 않겠는가.”

“식사?”

시후는 밥을 먹고 가라는 헤라 여왕의 말에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Safety World에서 밥은 시후에게 큰 의미가 없었다.

현실에서는 접하기 힘든 술이야 이곳에서 맛을 볼 수 있어 좋았지만, 배를 채우는 밥은 달랐다.

천마 시절 맛보았던 산해진미를 이곳에서는 느낄 수 없었기에 Safety World에서는 밥을 먹지 않았다.

‘그저 공복감을 해소하기 위한 식사 자리라면 시간 낭비지.’

거절 의사를 밝히려는 찰나 진지춘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식사요?!! 헤라 왕국 성에서 하는 그 식사 말입니까?!!”

갑자기 달려오며 소리치는 진지춘의 모습에 시후는 어이가 없었다.

그깟 식사가 뭐라고 저리 들떠서 달려오는지.

“뭐야, 돌팔이, 그깟 식사가….”

“그깟 식사라뇨! 도련님!! 자그마치 헤라 왕국 성에서의 식사입니다! 이는 엄청난 겁니다요!”

앞뒤 없이 대단하다며 침만 튀기는 진지춘의 모습에 시후는 한 걸음 물러났다.

로그아웃해서 현실에서 만나 분풀이를 하려던 계획을 지금부터 해볼까 하는 생각을 하던 때에 조민이 가세했다.

“오빠, 이번에는 어르신의 말씀이 맞아요. 꼭 참석해야 해요.”

“뭐야? 다들 그깟 밥 한 끼에 왜 이리 난리인 거야?”

조민은 떨떠름한 표정을 짓는 시후의 귓가에 작게 속삭였다.

“거기서 먹는 음식이 곧 경험치로 변해요.”

“진짜?!”

시후는 조민의 말에 몸을 홱 돌려 헤라 여왕 3세를 바라봤다.

지금까지 보여준 적 없는 초롱초롱한 눈망울로 말이다.

그 모습에 헤라 여왕은 저도 모르게 뒷걸음질을 쳤다.

하지만 그보다 시후의 손이 빨랐다.

덥석-

헤라 여왕의 손을 두 손으로 꼬옥 잡은 시후는 한껏 격양된 목소리로 말했다.

“앞장서라. 오늘 먹방 한번 찍어 보자꾸나.”

(다음 편에서 계속)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