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7화
한강 가운데에 자리한 뚝섬에는 수풀이 우거진 곳이 있었다.
좀처럼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는 이곳에 무슨 이유에서인지 야심한 밤에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한쪽은 남궁진성을 필두로 한 남궁세가, 다른 한쪽은 붉은색 장포(長袍)를 깊게 뒤집어쓴 이들.
남궁진성은 주위를 힐끔거리며 누군가를 찾는 듯 두리번거렸다.
눈앞에 붉은색 장포를 뒤집어쓴 인물들과 마주하고 있었지만 지금 남궁진성이 기다리는 것은 이들이 아니었다.
“이봐, 남궁 둘째 아들!”
“뭐, 뭐요?”
남궁진성은 갑자기 자신을 부르는 말에 저도 모르게 당황하여 말까지 더듬었다.
평소라면 하지 않았을 실수였기에 속이 쓰렸다.
그런 남궁진성의 반응 때문이었을까, 붉은색 장포를 뒤집어쓴 인물 중의 한 명이 거칠게 걸어 나왔다.
“무슨 꿍꿍이야?!”
“꿍꿍이는 무슨? 무슨 꿍꿍이가 있다고 말하는 거요?”
“허? 이 자식 보게? 너 아까부터 누군가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잖아.”
“내, 내가 무슨.”
남궁진성은 잡아떼려고 했지만 이미 늦었다.
쾅-
큰 굉음과 함께 붉은색 장포가 확대되는가 싶더니 거대한 기운을 담은 주먹이 코앞까지 다가와 있었다.
“칫!”
챙-
남궁진성은 재빠르게 허리를 뒤로 젖히며 검을 빼 들어 주먹을 베어갔다.
그런데 주먹과 검이 맞닿았음에도 철이 튕기는 소리가 들렸다.
남궁진성은 그것에 의문을 품기도 전에 다른 쪽 주먹이 지척까지 다가온 것을 보고는 급히 풍미보를 펼쳤다.
쾅-
흙먼지가 피어오르자 남궁진성과 함께 온 이들이 놀랐다.
다행히 남궁진성이 아무렇지도 않게 풍미보 특유의 바람 같은 신법으로 흙먼지 사이를 뚫고 나오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정작 당사자인 남궁진성은 달랐다.
풍미보를 펼쳐 뒤로 물러나려고 했는데 어째서인지 땅에 꽂힌 주먹으로 몸이 딸려 들어갔었다.
깜짝 놀라 그동안 감추었던 초식까지 펼치며 빠져나왔다.
부디 흙먼지에 가려져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길 바랐지만 그른 것 같았다.
“이것 봐라? 남궁세가 둘째 자식이 가주에게만 내려오는 제왕무적검을 익혔네?”
그의 말에 남궁진성은 인상을 잔뜩 구겼다.
그리고 뒤를 돌아보았을 때 자신과 함께 온 이들조차 의문의 눈빛을 보내왔다.
“야! 이것 봐라? 이거 어떻게 생각하냐? 크큭,”
“췐, 그만하고 들어와라.”
“펭, 이게 바로 확실한 증거야! 안 그래? 저 자식이 다른 놈들 다 제꼈다는 거!”
췐의 말에 의심의 눈길을 보내던 이들이 이제는 불신의 눈빛을 띠었다.
남궁진성은 이도 저도 하지 못하는 상황에 식은땀까지 흘러내렸다.
‘도대체, 언제 오시는 거야!’
지금 이 사달을 만든 장본인이 왜 아직도 오지 않는지 도무지 알 수 없어 속으로 육두문자를 쓰던 그때 하늘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런데 그 목소리는 남궁진성이 기다리던 목소리가 아니었다.
“무슨 그런 섭섭한 말을 하는 것이냐?”
“어?! 가주님이시다!!”
남궁진성 뒤에 있던 이들의 말대로 하늘에서 내려오는 목소리의 주인공은 남궁정도였다.
“아, 아버지?!”
아버지일 리가 없었다.
분명 남궁정도의 심장에 매화검이 박히는 것을 똑똑히 보았다.
그리고 그의 시신을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게 하려고 아버지와 형제들만 알던 장소에 은닉했다.
시체가 살아 돌아온 것이 아니라면 저것은 분명 자신이 기다리고 기다리던 그일 게 뻔했다.
남궁진성은 여기까지 빠르게 두뇌 회전을 마치고는 검 끝을 땅에 꽂으며 한쪽 무릎을 꿇었다.
“남궁진성이 가주님을 뵙니다.”
“가주님을 뵙니다!!”
남궁진성의 말을 시작으로 뒤에 있던 이들이 따라 무릎을 꿇었다.
반면, 남궁진성을 공격하고 득의양양하게 소리를 질러대던 췐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뒤를 돌아보았다.
그러자 한쪽 끝에 있던 이가 손가락을 까딱거리는 것을 보고는 훌쩍 날아 자리로 돌아갔다.
남궁진성은 자신의 앞에 내려선 남궁정도를 올려다보며 입을 열었다.
“폐관 수련은 성과가 있으셨습니까?”
“뭐, 그럭저럭?”
“감축드립니다.”
남궁정도의 모습으로 나타난 이는 시후였다.
시후는 뚝섬으로 날아오는 도중에 천투변용술을 이용하여 얼굴과 모습을 남궁정도로 바꾸었다.
성질 같아서는 녀석들을 잡아 족치며 뒤를 캐내고 싶었지만, 그랬다가는 혈교에서 이 녀석들을 도마뱀 꼬리 자르듯 버릴 것만 같아서 계획을 바꾼 거였다.
한편, 남궁정도의 모습을 한 시후가 나타남으로써 이곳의 판도가 뒤바뀌고 있었다.
잔뜩 긴장해 있던 남궁세가 식솔들은 한껏 기세가 오르고 붉은색 장포를 뒤집어쓴 녀석들은 기세가 한풀 꺾였다.
지금 상태라면 대충 몇 마디 말로 겁만 주어도 원하는 대답을 얻을 것 같았다.
“너희들 그곳에서 얼마나 높은 신분이더냐?”
“무슨 헛소리냐?”
“나는 남궁세가의 가주다. 그런 나와 이야기를 나눌 만한 신분이 있냐고 묻는 거다.”
“뭐? 이 영감탱이가 며칠 사이에 약을 처먹었나? 어디서 헛소리야?”
자리에 돌아갔던 췐이 시후의 말에 발끈하며 앞으로 나섰다.
입고 있는 붉은색 장포가 부풀어 오르며 붉은색 기류가 스멀스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췐은 당장이라도 시후를 향해 뛰쳐나가려고 다리에 체중을 실었다.
그런데 췐의 돌진보다 먼저 시후의 말이 허공을 갈랐다.
“혈천수라강(血天修羅罡)이라, 생각보다 잔챙이구나?”
흠칫-
시후의 말에 첸을 비롯한 붉은색 장포를 입은 모두가 놀랐다.
어찌나 놀랐는지 지금까지 얼굴을 가리고 있던 장포를 뒤집어 까며 얼굴을 낼 정도였다.
시후는 녀석들을 한번 스윽 훑어보고는 구석에 자리한 창백한 얼굴의 녀석에게 시선을 고정했다.
“네가 대답해 보아라, 나와 말을 나눌 만한 신분인지.”
“……!”
시후의 말에 녀석들은 좀 전보다 더욱 놀라며 고개를 홱 꺾어 시후가 말을 건 이를 바라봤다.
잠깐의 정적이 흐르자 시후는 한숨을 내쉬며 남궁진성을 돌아봤다.
“검 좀 빌리자꾸나.”
“네? 아, 네!”
핑-
남궁진성의 대답과 함께 들고 있던 검은 빨려 들어가듯 시후의 손에 안착했다.
“우와! 능공섭물(凌空攝物)이다!”
능공섭물 수법에 남궁세가 녀석들의 탄성이 들렸다.
자신들이 알고 있는 가주가 능공섭물을 저 정도로 능숙하게 펼치는 것은 처음 본 거였다.
그들은 이번 폐관 수련에 엄청난 성과가 있었다고 생각했다.
시후는 손에 들린 검을 허공에 몇 차례 휘둘러 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너희 쪽에 괜찮은 녀석이 있는 게 분명하구나?”
시후의 말이 무슨 뜻인지 남궁진성은 단번에 알아챘다.
저번 매화검 때도 그렇고 지금 자신의 애병기인 백련검도 그렇고, 시후가 상당히 마음에 들어 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시후의 저 말은 검을 만든 장인을 찾는다는 말이었기에 남궁진성은 고개를 숙여 대답을 대신했다.
시후는 눈치가 빠른 남궁진성의 모습에 피식 웃고는 시선을 돌려 창백한 얼굴의 녀석을 바라봤다.
그러자 그가 앞으로 한 걸음 걸어 나왔다.
“남궁세가 가주님이신 남궁정도 님을 뵙습니다. 저희 교주님께서는 출타가 어려우셔서 부득이하게 소교주인 제가 대신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다시 한번 인사드리겠습니다. 혈교 소교주 진류강 인사드립니다.”
“소, 소교주님!”
진류강이 포권을 하며 인사를 하자 옆에 있는 녀석들이 진땀을 뺐다.
이로써 시후는 이들이 혈교 녀석들이 확실하다는 것을 확인했다.
그렇다면 이제는 바로 본론이었다.
“그래. 네가 소교주인 것은 알겠는데, 나와 이야기를 나누려면 교주가 와야 하지 않겠느냐?”
진류강의 인사는 대충 흘려 넘기며 슬슬 신경을 긁는 시후였다.
그래도 소교주쯤 되는 녀석이라면 이런 말에 자존심이 상하며 반응이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어째서인지 반응은 다른 곳에서 나타났다.
“뭐야?! 제까짓 것이 가주면 가주지 어디서 소교주님께 막말을! 뒈지고 싶구나?!”
쾅-
췐은 좀 전의 일도 있고, 더는 참지 못하겠다며 시후를 향해 뛰쳐나갔다.
이미 잔뜩 기운을 일으켜놓은 상태였기에 폭발적인 스피드를 보였다.
그는 붉은색 기류를 주먹에 가득 담고는 시후의 얼굴을 향해 일직선으로 뻗었다.
주변 공기가 진동할 정도로 엄청난 기운이었다.
웬만한 자들이라면 저 주먹이 근처에만 다가와도 숨이 막혀 쓰러질 것만 같았다.
췐 또한 자신이 내지른 주먹에 자신감에 차 있는 표정이었다.
시후가 들고 있던 백련검이 어느새 주먹 앞을 가로막는 것을 보기 전까지는 말이다.
카가강-
주먹과 검이 맞부딪쳤지만, 이상한 쇳소리가 울려 퍼졌다.
췐은 자신의 일격이 막힌 것에 인상을 확 구기며 다음 주먹을 내질렀다.
카가강-
하지만 결과는 마찬가지.
췐은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이를 빠득 갈며 더욱더 거세게 달려들었다.
“죽어!! 죽어!!”
캉-카캉-카가강-
엄청난 기운을 담은 주먹질이었지만 번번이 백련검에 막혔다.
시후는 이 정도 버텼으면 뒤에 있는 녀석이 말릴 거로 생각했다.
그런데 어째서인지 췐의 공세를 방관하는 진류강의 모습에 인상을 구겼다.
시후는 그것이 자신의 무위를 가늠하는 행위라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너무 군자다웠나? 이제 그만하지. 제왕무적검 이 초식, 제왕검벽(帝王劍壁).”
쾅-
“크아악!”
시후가 검을 휘두르자 췐의 주먹을 가로막는 거대한 벽이 생겨났다.
제왕무적검 이 초식 제왕검벽은 검기로 벽을 만드는 거였다.
단지 적의 공격을 막는 역할이 아닌 반탄강(反彈罡)의 효력까지 있어 신나게 주먹질하던 췐은 비명을 지르며 튕겨 나갔다.
하지만 비명은 지를지언정 바닥에 나뒹굴 수는 없는지 몸을 수차례 회전하더니 두 발로 땅에 내려섰다.
시후는 췐의 그런 모습을 보며 다시 한번 검을 휘둘렀다.
“제왕무적검 일 초식, 섬전(閃電).”
번쩍-
“크아악!!!”
빛이 번쩍이는 순간 췐의 비명이 울려 퍼졌다.
“오호~ 녀석, 제법이구나?”
시후는 섬전으로 췐의 목에 바람구멍을 내어줄 생각이었다.
그런데 췐이 어떻게 피했는지 목 대신에 어깨에 커다란 구멍이 생겨 있었다.
췐은 이를 빠득 갈며 시후를 노려봤다.
단 두 번의 공세였지만 분명 자신의 상대가 아니었다.
지금까지 자신들이 알고 있던 남궁정도의 모습이 아니었다.
검기로 막을 형성하고 검기를 빛보다 빠르게 날린다는 것은 검기상인(劍氣傷人)의 경지가 분명했다.
솔직히 이번 공격도 췐 본인이 피한 것이 아니었다.
췐은 고개를 슬쩍 돌려 진류강을 바라봤다.
진류강은 췐을 향해 들었던 손을 스윽 내렸다.
그 모습을 발견한 시후는 피식 웃었다.
“소교주가 도왔던 거구나? 하긴, 저런 버러지 같은 녀석이 섬전을 피했을 리가.”
“크윽, 네놈….”
“그만.”
시후의 말에 췐이 발끈하자 진류강이 만류했다.
이는 명백히 췐을 물리는 말이었기에 췐은 구멍 뚫린 어깨를 감싸 쥐고는 뒤로 물러났다.
췐이 자신의 몸에 혈도를 짚으며 출혈을 막는 사이 진류강이 나섰다.
“가주님께서 이번에 큰 기연이 있으셨나 봅니다?”
“왜? 네가 알던 내가 아니라 당황스럽냐?”
“그럴 리가요. 그저 조금 얻게 된 안일한 힘을 믿고 경거망동하시는 것 같아 걱정되어 드리는 말씀입니다.”
“어린놈이 말이 맵구나?”
“어디 말만 맵겠습니까?”
시후는 꼬박꼬박 말대답하는 진류강에 입맛을 다셨다.
오늘은 그저 달라진 남궁세가를 각인시켜 주며 후일을 도모하려 했는데 이건 아무래도 손을 좀 봐야 할 것 같았다.
시후는 고개를 슬쩍 돌려 뭐 마려운 강아지마냥 어찌할 줄 모르는 남궁진성을 향해 입을 열었다.
“잘 봐두어라, 앞으로 네가 배워야 할 제왕무적검(帝王無敵劍)이니라.”
“네?”
“제왕무적검, 삼 초식 제왕폭(帝王爆).”
“산개하라!”
콰과광-
시후가 제왕폭을 펼치는 순간 진류강이 소리를 질렀다.
거대한 폭발음과 함께 붉은색 장포들이 사방으로 흩어졌다.
그리고 그들이 있던 자리는 미사일이라도 떨어진 것처럼 땅거죽이 뒤집히며 수풀들이 사라져버렸다.
시후는 산개한 혈교 녀석들을 보며 어이없다는 듯이 말했다.
“허, 네 녀석들 무위가 고작 그거더냐? 피하라고 던진 돌 하나 피하지 못하다니.”
“크윽.”
시후의 말대로 진류강을 제외한 다른 녀석들의 몰골이 말이 아니었다.
진류강의 외침에 빠르게 산개했지만, 제왕폭의 폭발 범위에서 완전히 벗어나지는 못한 거였다.
이미 입고 있던 붉은 장포는 너덜너덜해졌고 그중 몇몇은 입에서 붉은 선혈까지 흘렀다.
진류강은 처음으로 이를 갈며 인상을 구겼다.
“정말 해보자는 겁니까?”
“쯧쯧, 아직도 말버릇이 고약하구나? 그럼, 어디 더 받아 보아라. 제왕무적검, 사 초식 만천검(滿天劍).”
“사, 사 초식?!!”
시후가 ‘제왕무적검 사 초식’이라 외치자 뒤에 있던 남궁진성의 놀라는 목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그와 함께 시후가 휘두른 검에서 검기가 뻗어져 나갔다.
뻗어져 나간 검기는 혈교 녀석들 주위를 가득 채워갔다.
피할 곳이 사라진 혈교 녀석들은 자신들의 무기를 꺼내어 방어 태세를 갖추었다.
그 순간 시후가 다시 한번 검을 휘두르자 혈교 녀석들을 둘러싸고 있던 검기가 폭우처럼 쏟아져 내렸다.
콰과과광-
“크아아악!!”
쏟아져 내린 검기에 혈교 무리는 저마다 방어를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그나마 머리와 심장과 같이 즉사가 될 수 있는 급소들은 최대한 방어를 하여 죽음은 모면했다.
하지만 그만큼 다른 곳의 피해는 상당했다.
팔이며 다리이며 성한 곳이 없었고 잘려져 나간 이들도 있었다.
진류강 역시 입고 있던 붉은색 장포는 이미 사라진 지 오래였고 몸 이곳저곳에서는 붉은 피가 흘러내렸다.
이곳에 있는 모두가 시후가 펼친 무공에 넋을 잃었다.
특히, 남궁진성은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었다.
남궁진성은 제왕무적검에 대해서 이미 빠삭하게 알고 있었다.
아니, 알고 있다고 자부했었다.
총 삼 초식으로 이루어진 제왕무적검.
빛보다 빠른 섬전(閃電), 무엇이든 튕겨내는 제왕검벽(帝王劍壁), 눈앞에 펼쳐진 모든 것을 지워버리는 폭발력을 가진 제왕폭(帝王爆).
이 세 가지 초식이 제왕무적검의 절초였다.
그렇게 알고 있었는데 시후의 손에서 펼쳐진 사 초식 만천검을 보는 순간 머릿속이 멍해졌다.
이는 진류강 역시 마찬가지였다.
혈교에서도 이미 남궁세가에 대한 정보를 확보한 상태였기에 가주에게만 내려진다는 제왕무적검에 대한 것도 알고 있었다.
단 삼 초식만으로 이루어진 검결에 진류강은 충분히 맞설 수 있다고 판단했는데 큰 오판이었다.
“크윽, 제왕무적검은 단 삼 초식뿐이 아니었습니까?”
“누가 그러더냐? 삼 초식뿐이라고? 그 잘못된 지식을 고쳐주어 마지막 초식까지 보여주고 싶다만 견딜 수 있겠느냐?”
시후의 말에 진류강은 입술을 잘근 깨물었다.
저 말은 분명 한 초식이 더 남았으나 자신들에게 그 초식을 펼친다면 모두 목숨을 부지할 수 없다는 말이었다.
척-
“후학 진류강, 가주님의 배려에 감사드리옵니다만, 나머지는 후에 견학할 수 있도록 허락해 주십시오.”
“크큭, 그러자꾸나.”
진류강이 포권을 취하며 한 발 물러서 기세가 꺾인 모습을 보이자 시후는 어깨를 으쓱였다.
역시 대화를 할 때는 확실한 힘의 차이를 보여주고 우위를 점한 후에 이끌어가는 게 최고였다.
진류강은 오늘만 날이 아니라는 생각에 주변을 둘러보았다.
다들 성한 곳이 한 군데도 없었기에 어서 이곳을 벗어나는 게 상책이었다.
“그럼, 저희 애들이 많이 다쳤습니다. 이제 그만 돌아가 몸을 돌보아도 되겠습니까?”
“으흠….”
진류강의 말대로 혈교 녀석 중에 멀쩡한 녀석은 진류강 혼자였다.
저대로 두었다가는 출혈 과다로 죽을 녀석들도 있어 보였다.
그런데 어째서인지 시후는 물러가도 되냐는 진류강의 말에 대답하지 않고 있었다.
진류강의 말에 뒤쪽에 물러나 있던 남궁진성이 다가왔다.
“가주님, 오늘은 이만 저들을 물리고 후에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어떠시겠습니까? 저대로 두었다가는 죽는 이들이 생길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이만한 무위를 보여 주었으니 후에 편하게 이야기를 진행할 수도 있다는 계산이었다.
만약 저들 중 누군가가 죽는다면 자칫 칼바람이 불 수도 있었다.
하지만 남궁진성의 말을 들은 시후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너희는 저 녀석들에 대해서 아는 게 전무하구나?”
“네? 그게 무슨….”
시후의 말을 이해하지 못한 남궁진성은 이유를 되물었다.
시후는 남궁진성의 질문에 대답을 진류강의 질문에 대답하는 것으로 대신했다.
“그냥, 이곳에서 치료하지? 다들 혈천수라강을 익힌 것 같은데 그 정도로 떨어진 팔, 다리 정도는 이 자리에서 붙일 수 있잖느냐?”
“그, 그걸 어떻게?!”
시후의 말에 진류강을 비롯한 혈교 무리가 눈을 찢어질 듯 부릅떴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