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로그인하는 천마님-93화 (93/275)

제93화

시후는 Safety World에 접속했다.

내일 혈교 녀석들과 마주칠 생각에 조금이라도 만전을 기하기 위해서였다.

천마 시절이었다면 이런 행동은 하지 않았을 터였다.

그때는 이미 무의 정점이었고 어떤 함정이 있어도 모두 파해버릴 자신이 있었으니 말이다.

“그런 나를 몰락시킨 것이 정(情)이라는 감정일 줄이야.”

시후는 배신의 쓴맛을 맛보게 해준 의형제들을 떠올렸다.

그들을 위해서라면 염라대왕과도 싸울 마음도 있었다.

그래서 그들도 자신과 같은 마음일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던 것 같다.

이쯤 되자 슬슬 궁금해졌다.

‘도대체 왜?’

왜 그들은 그날 소림사를 오르지 않았는가.

왜 그들은 천마를 배신하여야 했는가.

왜 그들은 천마가 죽을 때 당당하게 나서지 못하고 정파 녀석들 뒤에 숨어 있어야 했는가.

그 모든 것들이 궁금해졌다.

“찾아보면 되겠지.”

시후는 찾을 생각이었다.

마청우가 약선방을 만들었듯이 그들도 무언가 발자취를 남겨두었을 거였다.

아주 작은 실마리라도 좋으니 찾을 생각이었다.

그리고 그러려면 강해져야 했다.

“내가 가는 길을 멈추지 않으려면 말이지.”

목적이 바뀌었지만 가는 과정은 같아졌다는 생각에 시후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Safety World 헤라 왕국의 하늘은 참으로 맑았다.

밤늦은 시간 접속했기에 친구 목록에 있는 이들은 모두 미접속 상태였다.

“오랜만에 혼자군.”

오랜만에 홀로 Safety World에 접속한 시후는 일단 성문을 빠져나갔다.

성문 밖은 여전히 상인들로 바글바글했다.

여러 가지 아이템들을 진열해 놓고 길을 지나는 유저들과 협상을 하는 모습들을 종종 보였다.

시후 역시 쓸 만한 아이템이 있나 진열대를 구경하며 거리를 거닐었다.

그렇게 한참을 거닐자 일전에 시후가 상점을 열었던 자리가 보였다.

그런데 그곳에는 의외의 인물들이 있었다.

시후가 가까이 가자 녀석 중 한 명이 활짝 웃는 얼굴로 시후를 맞이했다.

“아이고~ 손님~ 어서 오십… 헉!!”

“너희 여기서 뭐 하냐?”

“혀, 혀, 형님!!”

인사를 하던 녀석은 시후의 얼굴을 확인하고는 화들짝 놀라며 ‘형님’을 찾았다.

그 목소리에 뒤편에 있던 녀석이 앞으로 나왔다.

“뭔데 그렇게 놀라고… 흐엑!!”

우당탕탕-

형님이라는 녀석은 인사를 하던 녀석보다 더욱 놀라며 나자빠졌다.

덕분에 가지런히 진열되어 있던 진열대가 엎어지며 아이템들이 사방으로 흩어졌다.

시후는 그런 난장판을 물끄러미 보며 입을 열었다.

“너희는 직업을 바꾼 것이냐?”

“……!”

녀석들은 일전에 이곳에서 시후의 아이템을 팔아준 유저들이었다.

그때 적당히 골드 몇 푼을 쥐여 주고 보냈던 거로 기억했다.

뒤이어 다른 녀석들까지 나타나 저번과 마찬가지로 5명 전원이 모였다.

시후는 자신을 보며 어버버거리고 있는 녀석들 보며 다시 입을 열었다.

“그때 내가 말하지 않았었나?”

“네? 뭐…를….”

“내가 두 번 말하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고.”

“히익, 딸꾹!”

녀석은 시후의 말에 어찌나 놀랐는지 딸꾹질까지 했다.

저번에도 그렇고 이번에도 그렇고 시후의 눈빛은 다른 유저들과 달랐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게임 속에서라도 저자에 손에 죽으면 너무 끔찍할 것만 같았다.

녀석들은 바닥에 나자빠져 있는 녀석을 서둘러 부축해 일으키더니 시후 앞에 나란히 정렬했다.

“그, 그때 저희가 호객 행위를 했었는데… 그게… 그만….”

형님이라 불리는 녀석은 시후를 보고 놀란 것에 아직도 정신을 못 차렸다.

그에 시후는 두 손을 눈높이까지 천천히 들어 올렸다.

녀석들의 시선도 따라 천천히 올라갈 때 시후가 손뼉을 쳤다.

짜아악-

손뼉 소리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청아한 소리가 울려 퍼져나갔다.

그 소리에 주변 상인 NPC와 유저들도 일순간 조용해졌다.

이런 청아한 소리가 어디서 났는지 그 근원지를 찾으려고 목을 길게 빼 드는 자들도 있었다.

하지만 그것이 시후에게서 난 소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는지 이내 자신들이 하던 일을 다시 이어가기 시작했다.

어차피 시후의 목적은 눈앞의 5명을 집중시키는 것이었기에 다른 쪽에는 신경을 껐다.

그 결과 5명은 멍하던 표정은 온데간데없이 똘망똘망한 눈빛을 보내고 있었다.

사실 방금 시후가 친 손뼉에는 내공이 담겨져 있었다.

듣는 이의 기혈을 들끓게 할 수도 있었지만, 지금은 청아한 소리를 울려 주의를 끌기 위함이었다.

천마신교에서 천마의 등장을 알리는 용도였던 손뼉 치기를 시후가 방금 사용해본 거였다.

“그러고 보니 그때 참 편했는데, 내가 내 입으로 누구인지 밝히지 않아도 좋았고.”

시후는 그때를 회상하며 눈앞의 5명을 물끄러미 보았다.

그러다 문득 무언가 생각났는지 씨익 웃었다.

“너희들 여기서 장사하던 거였냐?”

“네, 그때 저희가 호객 행위를 했잖습니까? 그랬더니 그게 은근히 재미있더라고요. 적성에도 맞고 무엇보다 그것과 관련된 스킬도 생겼고요.”

“스킬이 생겼어?”

“네, 여기.”

형님이라는 녀석이 자신의 스테이터스 창을 시후에게 공유하자 다른 녀석들도 뒤따랐다.

종족 : 인간

직위 : 헤라 왕국 시민

직업 : 암살자/상인

스킬 : 헤라 왕국 판매왕(헤라 왕국에서 상인으로 물품 판매 시 경험치 획득, 수수료 할인, 일정 판매금 달성 시 직위 상승).

….

….

….

….

형님이라고 불리던 녀석의 닉네임은 ‘King D.M’이었다.

“D.M? 무슨 뜻이냐?”

“저희가 왕을 좋아해서… 그래서… 역대 왕 이름으로 닉네임을 지었습니다.”

“그래서 너희 닉네임 앞에 King이 붙어 있는 거야?”

“네, 제가 동명왕, 쟤가 온조왕, 그 옆으로 의자왕, 태조, 정조….”

“그만.”

갑자기 한국사 시간처럼 왕의 이름을 나열하는 D.M의 말을 멈추었다.

시후가 알고자 하는 것은 이들 5명에게 똑같이 생성된 스킬이었다.

[헤라 왕국 판매왕]

저번에 호객 행위로 인해 얻게 된 스킬을 다섯 명이 똑같이 갖고 있었다.

“물건을 팔면 경험치 획득에 수수료 할인에 직위까지 얻을 수 있다고?”

“네! 저희도 이런 스킬은 처음 보았기에 좀 더 경험해보고 커뮤니티에 올리려고 했습니다.”

D.M의 말처럼 ‘헤라 왕국 판매왕’이라는 스킬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랬기에 히든 스킬이라 생각했고 어떤 효과를 얻는지 파악한 후 자신들의 너튜브에 올릴 생각이었다.

잔뜩 들뜬 모습의 녀석들을 보며 시후는 생각에 잠겼다.

‘확실히 저번에도 그렇고 이번에도 그렇고, 나와 관련되면 이런단 말이지?’

자신이 Safety World를 플레이할 때뿐만 아니라 타인이 자신과 관련되면 히든 스킬이나 히든 퀘스트가 등장하는 것에 궁금증이 생겼다.

“너희 히든 스킬 처음 보는 거냐?”

“처음 보는 것은 아니지만 가져보는 것은 처음이 맞습니다.”

“그럼 처음 얻은 히든 스킬을 내 덕분에 갖게 된 거네?”

“뭐, 정황상 그렇다고 할 수는 있지… 그, 그 눈빛은 무엇입니까?”

D.M은 시후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다가 살벌하게 웃고 있는 시후를 발견하고는 입을 닫았다.

“내 덕! 분! 이라는 거잖아? 그치? 그치이?!!”

“…네.”

녀석들은 점점 살벌하게 변하는 시후의 표정에 어쩔 수 없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보답하는 것이 인지상정 아니겠냐? 그러니 너희들 나와 어디 좀 가자.”

“어, 어디를요?”

“경험치 올리러.”

“저, 저희는 이걸 판매해야 하는….”

“내가 다 사마. 진열대에 있는 물건 모두 구매.”

“헉!!”

시후가 진열대의 아이템들을 스윽 훑더니 모두 구매했다.

저번 일로 골드가 두둑해진 시후의 행동에 다섯은 깜짝 놀랐다.

그리고 이제는 핑계 댈 게 없다는 생각에 서로 눈치를 봤다.

“그, 그런데 왜 저희와 사냥을 가려고 하십니까? 그냥 혼자 가시는 게 더 이득이실 텐데요?”

그걸 모르는 시후가 아니었지만, 문제가 있었다.

“아직 내 레벨이 Lv. 199거든. Lv. 200이 안 되니까 헤라 왕국에서 퀘스트를 못 받더라고.”

헤라 왕국 퀘스트 여관에 들어가니 그곳 마스터가 해준 말이었다.

Lv. 200이 되어야 시후가 원하는 퀘스트를 받을 수 있다고 말이다.

하는 수 없이 한스텔 마을로 돌아가야 하나 싶을 때에 D.M 일행들을 만난 거였다.

‘이 녀석들이 퀘스트를 받고 나와 공유하면 간단하게 해결되는 것이지.’

반면 편법을 떠올려 신난 시후와는 달리 녀석들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살벌한 눈빛만 마주쳐도 꼼짝을 못 하던 저 유저가 고작 Lv. 199라니.

그 레벨에 자신들 다섯이 쩔쩔매는 것에 믿을 수 없는 거였다.

시후는 녀석들의 눈빛이 변하는 것을 보고는 피식 웃었다.

“왜? 한번 엉겨보게?”

“아, 아닙니다.”

“에이~ 아니기는, 너 지금 인벤토리에서 단도 꺼낼 생각 하고 있었잖아.”

“……!”

시후의 말대로였다.

암살자 직업의 D.M은 은신 스킬로 모습을 감추고 ‘치명적인 찌르기’ 스킬을 사용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단도를 꺼내기도 전에 시후가 알아채자 뜨끔했다.

시후는 독안공을 통해 녀석들의 생각을 한 번 스윽 훑었다.

모두가 같은 생각이었다.

평소 함께 어울려 다니던 녀석들답게 생각하는 수준이 거기서 거기였다.

“아무래도 너희들은 정신 교육이 먼저겠다.”

“네?”

“그런데 내가 시간이 없으니, 빠르게 가자.”

푹푹푹푹푹-

시후는 말을 끝내며 지풍을 날려 녀석들의 마혈과 아혈을 눌렀다.

다섯은 갑자기 몸이 움직이지도 말을 할 수도 없게 되자 당황하여 눈동자만 이리저리 굴렸다.

시후는 그런 녀석들에게 손을 뻗어 허공섭물을 일으켰다.

다섯은 통나무처럼 꼿꼿이 서서는 허공에 둥둥 떠올랐다.

“일전에 고전 동영상에서 봤었다, 예전 사람들은 ‘서울 구경’이라고 하더라? 그럼, 다녀오거라.”

피슝-

그리고 녀석들을 하늘 높이 던져버렸다.

다섯은 미친 듯한 속도로 하늘 높이 솟구쳐 올라가며 빠르게 변하는 풍경에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하지만 마혈을 짚어져 발버둥도 치지 못하고 아혈을 짚어져 비명도 지를 수 없었다.

그렇게 솟구쳐 올라 까마득한 하늘이 보이자 갑자기 땅으로 떨어져 내렸다.

솟구쳐 오를 때보다 더욱 빠른 속도로 떨어져 내리는 통에 다섯의 입은 쩌억 벌어져 침이 사방으로 흘러나왔다.

그리고 저 멀리 작은 점으로 보이던 시후가 점점 켜졌다.

이대로라면 땅에 폭격이라도 맞은 것처럼 떨어져 죽을 거였다.

다섯은 이대로 죽을 수는 없었기에 로그아웃을 하려고 했다.

그런데.

띠링-

[상태 이상으로 인해 로그아웃할 수가 없습니다.]

생전 처음 보는 메시지에 다들 넋이 나갔다.

그사이 땅은 가까워져 왔고, 이제는 죽었다고 생각하던 때에 갑자기 우뚝 멈췄다.

무시무시한 속도로 떨어지던 다섯이었기에 갑자기 멈추자 오장육부가 뒤틀리는 듯 울렁거렸다.

현실에서였다면 내장을 토하며 죽었을 터였지만 Safety World의 통각 제어 시스템 덕분에 울렁거리는 정도로 끝났다.

하지만 하늘을 왕복하는 그 공포는 고스란히 남았다.

시후는 손을 휘저어 창백한 얼굴의 다섯을 나란히 정렬시켰다.

“어때? 서울 구경 잘하고 왔어?”

“……!”

“대답이 없네? 그럼, 다시 다녀와.”

피슝-

다섯은 ‘네가 입을 막았잖아!!’라고 소리치고 싶었지만 이미 하늘 높이 솟구쳤다.

그렇게 비명 없는 서울 구경을 몇 번 되풀이하자 다섯의 눈동자에 초점이 흐려졌다.

그제야 시후는 다섯의 아혈을 풀어주었다.

“어때? 서울 구경 좀 더 해볼까?”

“크어어, 아… 아니히이힙다…. 으어….”

다섯은 침을 질질 흘리며 최선을 다해 대답했다.

그 모습에 이제는 됐다는 생각에 마혈까지 풀어주었다.

비틀대며 자리에 주저앉는 다섯을 보며 시후는 입을 열었다.

“좋아, 너희 나와 친추하고 가서 퀘스트 받아와.”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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