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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그인하는 천마님-92화 (92/275)

제92화

마청우(魔淸牛).

잊을 수 없는 이름 중 하나였다.

천마 시절, 마신방을 뒤집어 놓을 때 한 꼬마에게 직접 하사해준 이름이었다.

녀석은 약초를 캐는 데 내공을 사용하지 않고 우직하게 손으로 흙을 헤집었다.

그렇게 융통성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던 녀석은 후에 천마신교에는 어울리지 않는 ‘의선(醫仙)’이라는 호(號)를 가지게 되었었다.

‘의선(醫仙) 마청우(魔淸牛). 녀석은 환자를 가리지 않았었지.’

오죽하면 무림 정복이라는 이름 아래 쓰러져 가던 정파 녀석들을 직접 치료까지 했었다.

천마는 그런 마청우가 싫지 않았다.

자신의 신념으로 인생을 사는 녀석들은 좋아하던 천마의 유별남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 이름을 진지춘에게서 듣다니.

믿을 수가 없었다. 아니, 믿고 싶지 않았다.

혹여나 하는 생각에 마지막 확인을 해봤다.

“혹시 그 마청우라는 녀석의 사진이라도 있냐?”

“사진이요? 에이~! 도련님도! 천 년 전에 사진기가 어디 있었나요?”

“그렇겠지?”

얼굴을 확인할 수 있다면 좋으련만, 아쉬워하던 그때 진지춘이 말을 이었다.

“하지만! 제가 누굽니까? 시조님의 초상화를 언제나 핸드폰에 넣고 다니는 아주~ 소임을 다하는 약선방의 의원이… 도련님?!”

시후는 자신의 기분을 들었다가 놨다가 하는 진지춘의 쓸데없는 장난기에 화가 치밀었다.

스윽-

거두절미하고 손부터 내밀었다.

진지춘 역시, 화를 꾹꾹 누르는 시후의 모습에 말 대신 행동을 보였다.

착-

스마트폰 사진 앱에서 빠르게 사진을 찾은 진지춘은 두 손으로 공손하게 폰을 시후에게 넘겨주었다.

그곳에는 검은색 마의를 입고 있는 흰머리의 노인이 있었다.

얼핏 보면 부드러운 인상이었지만 초상화에서도 느껴질 정도로 두 눈에는 힘이 넘쳐났다.

그런데 그 초상화에서 시후의 눈길을 끈 것은 따로 있었다.

“이마에 이 상처….”

“아, 그 상처에 대해서는 속설이 있습니다. 독강룡의 내단을 얻기 위해 싸우시다가 다치셨다나?”

“아니, 이건 술병에 맞아서 생긴 상처다.”

“네?!”

마청우 초상화에는 이마에 한일(一)자로 길게 흉이 져 있었다.

약선방 녀석들에게 어떻게 와전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시후만은 저 상처의 원인을 알고 있었다.

천마가 휘두른 술병에 얻어맞아 생긴 상처였다.

“에이~ 도련님! 저희 조사님의 무위가 얼마나 대단하셨는데 술병에 맞았다고 상처가 생깁니까? 듣기로는 당대 무림에 적수가 없다 하셨는데요?”

“…됐다. 넌 인제 그만 가봐라. 그 사진은 나한테 전송해주고.”

시후는 진지춘의 말에 무언가 변명을 하려다 입을 닫고 축객령을 내렸다.

평소라면 투정이라는 투정을 죄다 부렸을 진지춘이였지만 마청우에 관한 이야기를 할 때부터 시후의 표정이 평소답지 않았기에 조용히 집에 돌아갔다.

그렇게 거실에 홀로 남은 시후는 진지춘이 보내준 사진을 보고 있었다.

“미련한 녀석. 약이라도 바르든가. 그랬으면 그런 흉은 지지 않았을 것을.”

시후는 마청우의 초상화를 보며 알 수 없는 아련한 눈빛을 보냈다.

그러고는 마청우의 이마에 술병을 내려치던 천마 자신을 추억해 보았다.

* * *

퍽-

옥으로 만든 술병이 마청우의 이마를 후려치고는 공중에서 산산조각이 났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마청우는 망부석이라도 된 것마냥 움직이지 않았다.

천마는 그런 마청우를 보며 소리를 질렀다.

“꺼져라!! 너까지 내 앞을 막는 것이냐?!!”

“교주께서 굳이 가셔야 한다면 제 피로 길을 만드시고 가시지요.”

“그래? 그럼, 네 말대로 해주마!”

콱-

천마는 마청우의 목을 단숨에 움켜쥐었다.

마청우는 이번에도 천마의 손을 피하지 않고 그저 담담하게 자신의 목을 쥔 그를 바라봤다.

그런 마청우의 이마에서 방울방울 피가 맺히더니 이내 줄줄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흘러내린 피는 마청우의 얼굴을 지나 목을 움켜쥐고 있는 천마의 손까지 적셔갔다.

천마는 끈적하면서도 따뜻한 마청우의 피를 보며 인상을 구겼다.

그 모습에 마청우가 다시 입을 열었다.

“교주, 교주께서 가시는 길에 그 누가 반하겠습니까.”

“…….”

“하지만 그 목적지가 황제가 있는 황실이라면, 그것도 황제를 죽이기 위해 가는 것이라면.”

“…….”

조용히 마청우의 말을 듣고 있는 천마를 보며 마청우는 한 자 한 자 또렷하게 말했다.

“제 목숨 먼저 취하고 가시지요.”

“……!”

천마는 마청우의 말에 이를 갈았다.

지금 이 손에 내공을 살짝만 흘려 넣어도 마청우의 목은 지는 가을의 나뭇잎처럼 똑 떨어질 거였다.

하지만 그러지 못했다.

마청우가 어떤 자인가.

자신이 옳은 일이라 생각하면 그대로 하는 이였고 그 옳은 일의 기준은 언제나 천마가 있었다.

그랬던 녀석이 지금 천마의 앞을 막아섰다는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다는 거였다.

스윽-

천마는 마청우의 목을 움켜쥐고 있는 손을 풀면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천마신교에서 보는 밤하늘은 언제나 맑았기에 밤하늘 가득 수놓은 별들을 만끽할 수 있었다.

그런데 어째서인지 오늘따라 그 별들이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쏟아져 내릴 것 같은 별들 대신에 흘러내리는 것은 천마의 눈물뿐.

툭-툭-

쿵-

천마의 볼을 타고 흘러내리는 눈물이 땅에 떨어질 때 마청우의 무릎도 땅에 떨어져 내렸다.

“교주의 앞길을 막은 죄, 언제든 달게 받겠나이다. 허나, 지금 황실을 적대한다면 저희 천마신교는 황실과 전쟁을 하게 됩니다.”

“허면, 그녀를 죽인 그 파렴치한 개자식을 그냥 두라는 말이더냐?”

“아닙니다, 다만, 지금은 시기가 좋지 않다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

“무림 정복을 위해 이미 많은 신도가 강호에 나가 있습니다, 그 빈자리를 채운 후에….”

“무림 정복 먼저 하고 황실을 정복해라?”

“네!”

마청우는 자신이 하려는 말의 요점을 정확히 집는 천마의 말에 이를 악물고 대답했다.

사실 마청우 또한 당장 황실로 쳐들어가고 싶었다.

그만큼, 지금 천마가 느끼는 감정을 자신도 느끼고 있었다.

“진소령 마마께서 그리되신 것은….”

“그만! 네 말대로 무림 정복을 먼저 할 것이다. 그리고 앞으로 그녀의 이름을 거론하는 자는 그 누구를 막론하고 목을 칠 것이다.”

“교주의 명을 받듭니다!”

쿵-

마청우는 머리를 땅에 찧으며 천마의 말을 되새겼다.

그리고 천마와 같은 마음으로 눈물을 흘리고는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천마의 명을 천마신교 신도들에게 알리기 위해 날아간 거였다.

홀로 남은 천마는 주변을 돌아보았다.

자신이 마시던 술병들과 마청우의 이마를 후려쳐 깨진 술병.

마청우의 이마에서 흐르던 피.

그리고 세상 아름다운 모습으로 두 눈을 감은 채 싸늘하게 식어가는 진소령의 시신이 있었다.

천마는 온기가 사라져가는 진소령에게 다가가 털썩 주저앉았다.

“소령, 천마인 것이 이리 후회되는 날이 올 줄은 몰랐소.”

그 말과 함께 천마는 차갑게 식어가는 진소령의 손을 잡고 흐느끼기 시작했다.

* * *

시후는 그때를 회상하니 착잡했다.

그리고 그와 함께 지금의 사태에 대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내가 살던 그때가 정녕 과거란 말인가?”

그동안 어렴풋이 의심은 하고 있었다.

강시후로 살아가는 이곳이 미래라는 것을 말이다.

법정에 의해 몸이 갈기갈기 찢기던 그때 영혼만이 강시후의 몸속에 들어왔다.

그때는 그저 다른 세계라 여겼었는데, 제갈세가를 발견하고 당가를 발견하고 거기에 혈교의 잔재까지 발견하자 의심은 점차 확신이 되어갔다.

마지막으로 진지춘을 통해 마청우의 초상화를 보게 되자 시후는 이곳이 천마가 죽고 난 후에 미래라는 확신이 들었다.

마음이 착잡했다.

세계가 달랐다고 생각했을 때는 다시 돌아가 복수를 다짐했다.

하지만, 세계는 같은데 시간이 다르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복수를 다짐할 수 없게 되었다.

법정이 자신에게 무엇을 했는지, 세계가 다르다는 것은 돌아갈 장소가 있었다는 소리였다.

하지만 시간이 다른 것은 ‘환생’이라는 것을 했다는 말이었고, 그것은 신의 영역에 있는 것이었다.

“세계가 달랐다면 성화(聖火)의 힘으로 어찌해 보겠지만, 이건… 하아….”

천마신교에는 예부터 성화가 있었다.

무(武)를 담당하는 천마, 성화(聖火)를 담당하는 성화 신녀가 있었다.

성화 신녀는 성화의 힘으로 천마신교가 나가야 할 길을 만들어주는 역할을 해주었다.

믿음과 힘이 있기에 천마신교가 다른 문파들과 다른 것이었다.

그리고 시후는 성화의 힘을 직접 경험해 보았었다.

천마의 즉위식에서 천마는 성화를 몸에 담아야 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시후는 분명 보았었다.

신들이 사는 세상을 말이다.

그랬기에 시후는 믿은 것이었다.

세상이 다르면 천마의 세상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것을.

하지만 이제는 그럴 수 없다는 생각이 들자 몸에 힘이 빠졌다.

“아직도 내 몸을 찌르던 그 자식들 칼의 감촉을 잊지 못했건만. 이대로 포기해야 하는가.”

복수에 대해 생각을 하면 할수록 방법을 찾을 수 없는 시후였다.

우웅-우웅-

시후는 핸드폰이 울리고 있었지만 착잡한 심정에 받기가 싫었다.

하지만 누구인지 집요하게 전화를 걸어왔다.

벌써, 10번째의 진동음이 울리자 시후는 한숨을 내쉬며 폰을 집어 들었다.

남궁진성이었다.

“무슨 일이냐?”

- 그동안 강녕하셨….

“용건만.”

자신의 안부를 물어오는 남궁진성의 말을 툭 끊었다.

그 말에 남궁진성은 머쓱했는지 헛기침을 하고는 다시 말해왔다.

- 크, 크흠, 중국 쪽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약속 시각을 내일로 변경한다고요.

“갑자기?”

- 네, 그쪽 소교주의 개인적인 사정이라는 말만을 일방적으로 전해왔습니다.

“쯧, 너희 남궁세가 녀석들이 어지간히도 얕잡아 보였나 보구나?”

- 죄, 죄송합니다.

자신의 빈축에도 사과해오는 남궁진성의 말에 시후는 한숨을 내쉬었다.

남궁진성이 잘못한 것은 없었다.

그저 혈교 녀석들이 약은 거였고 남궁세가가 힘이 없는 것뿐.

“됐다, 약속 시각과 장소나 톡으로 남겨 놔라.”

- 네, 알겠습니다.

“아! 그리고 너희 남궁세가에서 쓸 만한 놈들 몇 명만 추려봐라.”

- 네? 그건 왜….

갑자기 사람을 추리라는 시후의 말에 남궁진성이 의아해했다.

시후는 오늘 같은 날 남궁진성과 말을 길게 섞고 싶은 생각이 없었기에 그대로 통화를 종료했다.

“제대로 써먹으려면 그만한 실력이 되어야 써먹겠지.”

제갈세가와 당가에 이어 시후는 남궁세가 또한 자신의 밑으로 넣을 생각이었다.

제갈세가에는 현원진신공을. 당가에는 호접무를.

이제 남궁세가에도 쓸 만한 것을 가르칠 때였다.

물론, 그 과정이 그리 편하거나 순탄치만은 아닐 거였다.

남궁진성이 선발한 인원들은 남궁진성을 포함하여 당분간 지옥을 맛보게 될 테니까 말이다.

시후가 남궁세가 녀석들을 어떻게 굴릴지 생각하던 그 시각, 남궁진성은 밀려오는 오한에 몸을 부르르 떨고 있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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