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로그인하는 천마님-85화 (85/275)

제85화

동시에 검을 내질렀지만 시후의 검이 반 박자 빨랐다.

아킬라이는 얼굴 지척까지 다가온 시후의 검을 고개를 홱 꺾어 피했다.

그리고 반 박자 늦었지만, 시후의 얼굴로 검을 내질렀다.

“이것 봐라?”

재미났다.

아니, 흥미롭다고 해야 할까.

아킬라이의 동영상을 봤을 때는 이화접목의 수법이 주였다.

그런데 조금 전 검을 피하는 아킬라이의 모습은 이화접목 따위는 개나 줘버린 모습이었다.

마치, 오직 살육만을 위해 움직이는 살수들의 움직임 같았다.

단 한 수였지만 아킬라이가 생각보다 능구렁이 같은 속내를 갖고 있다는 것을 깨달은 시후였다.

시후는 아킬라이와 똑같이 고개를 슬쩍 틀어 검을 흘렸다.

그리고 아직 내지르지 않은 한쪽 검으로 아킬라이의 팔을 베어갔다.

시잉-

공기를 가르는 날카로운 소리가 울려 퍼졌지만 아킬라이의 팔은 베지 못했다.

어느새 검을 거두어들인 아킬라이는 자세를 낮추며 시후의 다리를 찔러갔다.

하지만 시후는 찔러오는 아킬라이의 검을 피하기는커녕 용호쌍검을 교차시켜 아킬라이의 목을 잘라갔다.

다리 하나쯤은 내어주는 대신 목을 자르겠다는 심산이었다.

“미친!”

핑-

아킬라이는 생각보다 패도적인 시후의 검에 다리를 찔러가던 검의 방향을 틀어 땅을 찔렀다.

그리고는 그 반동을 이용해 뒤로 쭉 물러났다.

간발의 차로 목이 떨어지는 것을 모면한 아킬라이는 목을 한 번 쓰다듬고는 이를 악물었다.

“그래, 해봅시다.”

스윽-

아킬라이는 한쪽 발을 반보 뒤로 물리며 ‘헤라의 분노’를 높이 치켜들었다.

명백히 수직으로 내려 긋는 자세였다.

그 모습에 시후는 걸음을 멈추고 용호쌍검을 양쪽으로 늘어트렸다.

뭔지는 모르지만, 어서 해보라는 뜻이었다.

“허, 자만심이 도가 지나치군요? 그럼 막아 보시든가. 분노의 일격!”

헤라의 분노가 가진 스킬 중 하나인 ‘분노의 일격’.

스킬 발동 자세는 지금 아킬라이가 보이는 일도양단의 자세였다.

아킬라이는 이 스킬의 숙련도를 MAX까지 찍기 위해 몇 주는 고생했었다.

덕분에 ‘분노의 일격’은 단번에 발동됐다.

검의 끝에서 푸른빛이 일렁이더니 하늘 높이 치켜 올라갔다.

그 빛은 곧 형체를 잡아가더니 하나의 거대한 검이 되었다.

일전에 아킬라이가 이 스킬로 거인족과 싸우는 동영상은 시후도 봤었다.

시후의 눈에 분노의 일격은 검기를 유형화시킨 기술로 보였다.

천마 시절, 이런 기술을 자유자재로 다룬 녀석이 있었다.

검마(劍魔).

언제나 비무를 하자며 덤비던 녀석은 어느 날 이런 초식을 펼쳤었다.

그때 대단하다며 칭찬하다가 머리카락 세 가닥이 잘린 게 기억났다.

‘내 머리카락 뒤로 아름다운 산봉우리 하나가 더 잘려 나갔지만.’

그때 보았던 초식을 이곳에서 보게 되다니 일단 반가웠다.

그래서 아킬라이의 이 스킬이 검마의 초식과 같은지 확인하기로 마음먹었다.

아킬라이는 시후가 거대한 검을 보고도 피할 생각을 하지 않는 것에 미소를 지었다.

“이것을 막으면 인정해 드리지.”

쿠아앙-

아킬라이는 말을 마침과 동시에 거대한 검을 내려쳤다.

분노의 일격에는 특수 옵션이 하나 있었다.

띠링-

[상태 이상에 걸렸습니다.]

[움직임 제약 3초.]

바로 스턴 옵션.

분노의 일격이 내려치는 순간 그 표적은 3초간 몸을 움직일 수 없는 상태 이상에 걸린다.

그렇지 않으면 민첩 스텟이 높은 유저나 몬스터들은 쉽게 피할 만한 속도였으니 말이다.

스턴 3초는 생각보다 긴 시간이었고 시후는 눈앞에 나타난 메시지의 사실을 확인하듯 몸을 꿈틀댔다.

확실히 몸이 생각처럼 움직여지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전혀 움직이지 못하는 것은 아니었다.

빠르게 가까워져 오는 분노의 일격을 보며 시후는 천천히 용호쌍검을 움직였다.

왼쪽의 용검은 하단으로 오른쪽의 봉검은 상단으로.

그리고 어느새 지척까지 다가온 헤라의 분노가 봉검에 닿는 순간 용호쌍검으로 작은 원을 그렸다.

쿠과과광-

굉음과 함께 연병장이 들썩였다.

흙먼지가 순식간에 연병장을 가득 채우는 바람에 다들 어찌 된 상황인지 알 수가 없었다.

물론, 시후가 당했을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지만, 걱정은 되었다.

그만큼 아킬라이의 이번 공격은 강렬했다.

치솟았던 먼지가 슬슬 가라앉자 연병장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럼, 그렇지.”

“괜찮으면 말 좀 합니다!”

태산과 인호의 외침에 화답하듯 시후가 검을 치켜세웠다.

그리고 완전히 먼지가 가라앉자 처참한 연병장의 모습이 보였다.

방금 아킬라이의 일격으로 인해 연병장에 지진이라도 난 듯 땅거죽이 쩍쩍 갈라져 있었다.

저 공격에 맞았다면 로그아웃 될 게 분명했다.

그런데 시후가 저리 멀쩡한 것을 보면 잘 피한 것 같았다.

하지만 사실상 시후는 본래 자리에서 1mm도 움직이지 않았다.

아킬라이의 당황한 표정이 그 증거였다.

“어, 어떻게?!”

“어떻게? 설마, 이화접목의 수법을 너만 사용할 수 있는 줄 알았나?”

“이화접목?!”

아킬라이는 자신이 내려친 분노의 일격이 시후의 용호쌍검에 닿는 순간을 똑똑히 보았다.

저런 가는 검 따위는 단숨에 절단시키며 시후의 몸을 양단하기에 충분한 일격이었다.

그런데 용호쌍검이 작은 원을 그리는 순간 깜짝 놀랐다.

수직으로 내려치던 헤라의 분노가 급격히 방향을 틀더니 시후를 비껴가는 거였다.

말이 간단하지, 그만한 스킬의 기운을 흘린다는 것은 결코 쉬운 게 아니었다.

시후가 이화접목이라 말하는 아킬라이의 스킬의 정확한 명칭은 ‘리바운딩 카운터’로, 적의 기술을 흡수하여 반격하는 기술이었다.

물론, 시후가 말하는 이화접목의 수법이라는 것이 무엇인지는 알았다.

하지만 그것을 Safety World에서 사용한다고?

듣도 보도 못한 소리였다.

그런데 문제는 그 기술을 눈앞에서 봐버렸으니 믿기 싫어도 믿어지고 있었다.

시후는 생각이 많아 보이는 아킬라이를 보며 한 발 뒤로 물러났다.

“오랜만에 네가 추억을 돋게 해주었으니 그 보답을 좀 해볼까?”

시후는 검마를 떠올리게 해준 아킬라이에게 무언가 보여줄 생각이었다.

챙-

용호쌍검을 부딪치자 검이 빛을 발하며 손목띠로 돌아갔다.

대신 아킬라이에 의해 난장판이 된 연병장 구석에 널브러져 있는 검을 향해 허공섭물을 일으켰다.

왕국 기사단들이 연습용으로 사용하는 묵직한 소드가 시후에게 날아왔다.

시후는 소드를 한쪽 손에 들고 무게를 측정하듯 이리저리 휘둘렀다.

중심축이 잘 맞은 느낌이 들었다.

‘쓸 만하네.’

이 정도면 그 무공을 사용하는 데에 큰 무리가 없을 것 같았다.

시후는 고개를 돌려 태산과 인호를 바라봤다.

“너희들, 잘 봐!”

시후의 시선에 다들 둘을 바라봤다.

저게 무슨 말이냐고 묻는 시선들이었지만 이미 태산과 인호는 시후에게 집중한 상태였다.

시후가 저렇게 말할 때면 결코 한눈을 팔아서는 안 되는 것을 알았다.

그사이 아킬라이는 헤라의 분노를 거두어들여 눈앞에 치켜세웠다.

분노의 일격으로 인해 갖고 있던 마나의 2/3를 사용했다.

잽싸게 인벤토리를 열어 마나포션을 마셨지만 마나가 차오르려면 아직 멀었다.

그렇게 준비 자세를 잡은 아킬라이를 보던 시후도 처음으로 자세를 잡아갔다.

소드를 가슴까지 끌어당기고는 곧장 앞으로 찔렀다.

“충뢰(衝雷).”

검마의 삼재검법 세 번째 초식이었다.

파직-

스파크가 튀는 듯한 소리가 들리더니 소드의 끝에서 일렁이던 기운이 아킬라이를 향해 뻗어져 나갔다.

“헉! 헤라의 가호!”

쾅-

아킬라이는 엄청난 기운이 빠르게 쏘아져 오는 것을 보고는 반사적으로 ‘헤라의 가호’를 사용했다.

헤라의 가호는 분노의 일격과 마찬가지로 헤라의 분노에 담겨 있는 스킬이었다.

마법사 유저가 사용하는 실드와 비슷한 스킬로 전방에 신성력이 담긴 막을 만들어 공격을 막는 거였다.

하지만 헤라의 가호로도 충뢰를 막을 수는 없었다.

폭탄이 폭발하듯 헤라의 가호가 폭발하자 아킬라이는 헤라의 분노로 기운을 막았다.

“크윽! 이 무슨… 헙!”

“검을 쥔 손은 가볍게, 심기는 무겁게, 기감은 넓게.”

손바닥에서 느껴지는 통증에 놀랄 새도 없이 어느새 시후가 소드를 휘둘러 왔다.

좌에서 우로, 우에서 좌로 횡 베기뿐이었지만 그 빠름에 반격의 틈을 찾을 수 없었다.

채챙챙-

그렇게 아킬라이가 방어만 고수하던 그때 시후의 목소리가 연병장을 울렸다.

“검을 쥐었다면 방어할 때는 태산같이 막아서는 거다. 단뢰(斷雷)!”

이는 점점 힘을 잃어가는 아킬라이에 대한 충고였다.

그리고는 검마의 삼재검법 제 이 초식인 단뢰를 펼쳤다.

좌에서 우로 수평 베기를 하는 시후의 소드에는 흐릿하게 일렁이는 무언가가 맺혀 있었다.

피슝-

단음과 함께 일렁이던 무언가가 아킬라이를 향해 날아갔다.

아킬라이는 순간 느낄 수 있었다.

날아오는 저것은 방금과 마찬가지로 전혀 방어할 수 없는 것이라는 것을 말이다.

“큭.”

휙-

단뢰를 막는 대신에 피하기로 마음을 먹고는 뒤로 몸을 젖혔다.

아킬라이는 자신의 눈앞에 단뢰가 지나가는 것을 보았다고 생각하는 순간 뒤쪽에서 무언가 썰리는 소리를 들었다.

서걱-

참을 수 없는 궁금증에 고개를 돌리니 연병장 벽면이 횡으로 크게 잘려 있었다.

등골이 오싹한 광경에 잠시 당황한 사이 자신의 위로 드리워지는 그림자가 보였다.

“제법 올바른 판단이었으나, 이만 끝내자. 낙뢰(落雷)!”

쿠콰과광-

어느새 누워 있는 아킬라이의 지척에 다가온 시후가 소드를 두 손으로 움켜쥐고는 내려쳤다.

검마 삼재검법의 첫 번째 초식 낙뢰였다.

실내임에도 천둥소리가 울려 퍼지며 시후의 소드에서 번개가 내려쳤다.

다들 이번 공격으로 아킬라이가 로그아웃될 거라 생각했고, 아킬라이 역시 끝이라는 생각에 눈을 질끈 감았다.

그런데.

“헤라의 가호.”

어디선가 아킬라이가 사용한 스킬인 ‘헤라의 가호’를 외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러자 아킬라이 앞에 신성력이 가득한 방패가 만들어졌다.

파치지직-

낙뢰가 헤라의 가호를 내려치는 순간 번개가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시후 일행 역시 그 여파에 당할 순간이었다.

그런데 어느새 비천대가 앞으로 나와 자신들의 무기를 꺼내고 자세를 잡았다.

“비천화벽진 삼 초식!!”

파바바밧-

일비의 외침과 함께 비천대 네 명이 무서운 속도로 몸을 회전시켰다.

그러자 일행들에게 날아오던 번개가 사방으로 튕겨 나갔다.

다들 비천대의 빠른 대응에 놀라면서 시후의 일격을 막아낸 ‘헤라의 가호’의 주인을 찾아갔다.

그런데 어디선가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다.

“여, 여왕님!!”

집정관은 호들갑을 떨며 연병장 입구를 향해 달려갔다.

그 모습에 다들 연병장 입구를 바라보자 화려한 드레스를 입고 왕관을 쓴 여자가 보였다.

“우와! 진짜 헤라 여왕이네?”

“나 실제로 처음 봐.”

“저도요.”

일행들은 커뮤니티에서나 보았던 헤라 여왕이 보이자 신기해했다.

시후 또한 낙뢰를 막은 주인공이 헤라 여왕이라는 것을 확인하고는 흥미를 보였다.

아무리 본래 천마의 실력은 아니라고는 하지만 이미 현경(玄境)의 경지에 들어선 자신이었다.

그런 자신이 펼친 검을 막았다다는 것은 그에 필적하는 실력을 지녔다는 소리였다.

Safety World에 들어와 처음으로 강한 NPC를 만난 시후였기에 헤라 여왕에게 관심이 쏠렸다.

이미 바닥에 널브러져 거북이처럼 움츠려 있는 아킬라이 따위는 관심 밖이었다.

“이제 그만하시지요? 그분은 저희 왕국을 지켜주시는 중요한 분이십니다.”

띠링-

싸움을 말리는 헤라 여왕의 목소리와 함께 알림음이 들려왔다.

시후는 눈앞에 나타나는 메시지를 먼저 읽었다.

[헤라 여왕이 당신의 싸움을 말립니다.]

[헤라 왕국에서는 헤라 여왕의 말이 곧 법이므로 거부권을 행사할 수 없습니다.]

[거부할 시 헤라 왕국과는 척을 지게 되며 척살령이 내려집니다.]

결국, 헤라 여왕의 말을 들으라는 소리였다.

‘척살령’ 따위에 겁먹을 시후는 아니었지만 헤라 왕국과 척을 지어 굳이 고생할 필요는 없다는 생각에 따르기로 했다.

툭-

시후가 들고 있던 소드를 땅에 내려놓자 여기저기서 안도의 한숨 소리가 들렸다.

시후는 그 소리에 어깨를 으쓱이고는 아직도 누워 있는 아킬라이를 바라봤다.

“그만 일어나지?”

“…크, 크흠.”

아킬라이는 시후의 말에 멋쩍어하며 일어서더니 헤라 여왕을 향해 한쪽 무릎을 꿇었다.

“은빛 날개 기사단장 아킬라이가 헤라 여왕을 뵙습니다.”

“그래요. 저도 반가워요.”

으레 오가는 둘의 인사가 지나자 헤라 여왕은 시후를 바라봤다.

사실 헤라 여왕은 둘의 싸움에 나설 의사가 없었다.

잠시 산책을 즐기던 그녀는 연병장이 보이는 반대쪽 건물에 있었다.

그런데 익히 알고 있는 모습의 아킬라이가 싸우는 모습에 걸음을 멈추고 구경을 했다.

평소 왕국을 수호하던 아킬라이의 모습이 아닌 공격적인 모습에 흥미가 돋았다.

그러다 상대방의 공격에 먼지가 자욱이 일어나 시야를 방해해왔다.

그래서 하는 수 없이 직접 연병장으로 찾아온 거였다.

오랜만에 보는 흥밋거리를 즐기기 위해서 말이다.

그런데 어찌된 것인지 연병장에 도착했을 때 이미 아킬라이는 위기의 상황이었다.

연병장 벽이 갈라지고 하늘에서 벼락이 떨어지는 순간 헤라 여왕은 저도 모르게 스킬을 사용했다.

그리고 놀랐다.

‘헤라의 가호’에서 느껴지는 충격이 상상 이상이었던 거였다.

조금만 마나를 덜 썼더라면 아킬라이는 그 자리에서 죽었을 거였다.

이쯤 되자 정작 흥미는 아킬라이가 아닌 상대방 유저에게로 쏠렸다.

(다음 편에서 계속)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