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로그인하는 천마님-83화 (83/275)

제83화

시후는 일행들을 모두 소집했다.

그리고 생각보다 빨리 모인 일행들에 살짝 놀랐다.

일행들을 찾겠다고 기감을 펼쳤을 때 분명 중구난방으로 퍼져 있던 것을 확인했었다.

일일이 찾아갈 수 없기에 왕국 입구에서 만나자는 메시지를 보낸 지 얼마나 되었다고 벌써 다 모였다.

“너희들 제법 빠릿빠릿하다?”

“당연합죠. 누구의 부름이신데 늦겠습니까요?”

시후의 말에 태산이 비아냥거리며 투덜댔다.

“뭐야? 바로 달려온 것 치고는 불만이 많아 보이는데?”

“꼭 사고 싶은 아이템이 있어서 흥정 중이었단 말이야.”

“맞아요.”

다들 아이템 흥정 중에 달려온 듯했다.

살짝 토라진 일행들의 태도에도 시후는 기분이 상하지 않았다.

오히려 눈앞의 물욕을 뿌리치고 한걸음에 달려온 일행들의 행동이 고마웠다.

“잘했어. 대신 좋은 거 줄 테니까 가자.”

“진짜? 후 님~~! 인벤토리에 있는 거 주시는 겁니까?!”

좋은 거 준다는 말에 태산은 시후의 인벤토리를 떠올렸다.

드라큘라 백작에게서 받은 아이템 목록을 모두 본 것은 아니었지만 일행들이 레벨을 올리면 그에 맞는 아이템들을 던져 주었다.

지금 착용하고 있는 장비들 역시 이번에 시후가 새로 맞추어 준 것들이었다.

이는 태산뿐만이 아니라 인호와 비천대 또한 마찬가지였다.

시후를 따라나선 후부터 상당히 힘든 일들이 많았지만, 그 끝에는 언제나 이런 달콤한 보상이 있었다.

아무리 친한 사이라지만 몇백, 몇천 골드씩이나 하는 아이템들을 선뜻 주니 다들 고마운 마음이 가득했다.

그리고 그 고마운 마음은 자연스럽게 시후에 대한 충성심으로 나타났다.

지금과 같이 소집하라는 한 마디에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모인 것처럼 말이다.

사실 이 방법은 시후가 천마 시절 수하들을 길들였던 천마의 방식 중 하나였다.

[굴릴 때는 굴리고, 베풀 때는 베푼다.]

그 결과 천마 시절 비천대는 가장 먼저 사지로 뛰어드는 충신들이었다.

이곳에서 그 정도까지는 바라지 않지만 그래도 시시콜콜 토는 달지 않았으면 했다.

이제 그동안의 노고에 대한 결실이 나오는 것 같아 흐뭇했다.

“아주 좋은 반응들이야.”

“네? 오빠, 뭐라고요?”

“아니야. 스크롤 상점이 어디 있다고?”

“아! 저기요.”

시후는 자신의 혼잣말에 일일이 대답하는 조민에게 화제를 돌리기 위해 스크롤 상점을 물었다.

조민이 가리킨 곳은 성문 안쪽에 있는 건물 중 가장 앞에 있는 건물이었다.

작은 간판에 양피지 모양이 그려져 있는 곳이 스크롤 전용 상점 같았다.

“좋아. 그럼 저곳에서 살 것만 사고 서둘러 가자.”

시후의 손짓에 모두 성문으로 향했다.

성문 앞에는 아킬라이와 같은 은색 갑옷을 입은 병사들이 창을 들고 양쪽에 도열해 있었다.

딱히 무슨 입국 심사를 하는 것으로 보이지는 않았지만, 지나치는 유저들과 NPC들을 계속 힐끗거렸다.

경비가 생각보다 허술하다고 생각하던 찰나 왕국 기사단의 창이 시후 앞을 가로막았다.

챙-

“잠시 검문이 있겠습니다.”

“갑자기?”

“소지하고 계신 물건 중 왕국 안으로 가져가실 수 없는 물건이 있으십니다.”

왕국으로 갖고 들어갈 수 없는 물건이라니.

그 말에 시후는 조민을 바라봤다.

분명 인벤토리에 넣은 아이템들은 제약이 없을 거라고 했었다.

그래서 노점상에서 산 어둠 계열 아이템들은 모두 시후의 인벤토리에 넣어둔 상태였다.

그런데 이렇게 막아서는 것을 보면 그게 아닌가 싶었다.

그에 조민이 왕국 기사 앞으로 나섰다.

“저희가 소지하고 있는 것에 무슨 문제가 되는 아이템이 있나요?”

“있습니다. 다주힐 유저, 소지하고 있는 불순 물품을 내놓으시오.”

‘다주힐’이라는 닉네임을 사용하는 진지춘에게 시선들이 모였다.

“하, 하…. 제게 그런 게 있을 리가요? 저는 신성력을 갖고 여러분들에게 힐을 선사하는….”

“가슴 안쪽에 숨겨둔 그것을 꺼내시오.”

문제가 되는 무언가가 어디에 있는지 정확히 집는 왕국 기사였다.

이 상황을 지켜보던 시후는 조민을 슬쩍 끌어당겼다.

“쟤네 어떻게 아는 거야?”

“아, 왕국 기사단은 경비 지역에 있으면 유저나 NPC가 소지한 아이템을 투시할 수가 있어요.”

그제야 왕국 기사단이 성문을 들어가는 이들을 계속해서 힐끗거렸던 게 이해가 갔다.

그런데 어째서인지 진지춘은 품속의 물건을 꺼내는 것을 꺼리고 있었다.

덕분에 왕국 기사단의 목소리는 점점 커지고 주위 분위기는 험악해져 갔다.

그에 시후가 나섰다.

“돌팔이, 뭔데?”

“아… 그게, 그러니까.”

진지춘은 시후가 다가오자 그제야 조심스럽게 품속의 물건을 꺼냈다.

“뭐야? 이걸 왜 네가 갖고 있냐?”

진지춘이 꺼낸 것은 시후도 익히 알고 있는 아이템이었다.

송곳니를 꿰어 만든 목걸이로, 일전에 태산과 인호가 오크 부족 창고에서 훔쳐 온 그것이었다.

아니, 그것과 똑같이 생긴 목걸이였다.

그때의 그 목걸이는 아직 시후의 인벤토리 안에 있으니 말이다.

어떻게 된 건지 묻는 시후의 눈빛에 진지춘은 멋쩍은 미소를 지었다.

“하, 하…. 선물 받은 겁니다.”

“그걸 누가?”

“그게… 델…루….”

진지춘은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델루를 거론했다.

“델루가? 왜?”

“제가 떠난다고 하니 잘 다녀오라며….”

“안부차 그걸 줬다고?!”

얼마 전까지만 해도 오크 부족장인 델루와 진지춘은 전장에서 서로를 상대로 주먹다짐하던 녀석들이었다.

그게 며칠이나 지났다고 저런 선물을 주고받는다니 어이가 없었다.

그런 시후에게 조민이 슬쩍 다가와 속삭였다.

“그러고 보니 그때 이후로 진지춘 어르신께서 델루와 만남을 자주 가지신다는 소문이 있었습니다.”

“그랬어? 돌팔이, 무슨 꿍꿍이야?”

“꿍꿍이라뇨, 도련님. 너무하십니다. 저와 델루는 전장에서 피어난 우정을 키우는 중입니다.”

당당한 진지춘의 대답이었지만 의심의 눈초리는 풀리지 않았다.

저 돌팔이 의원 녀석의 성격상 득과 실이 없는 것에 뻘짓을 할 리는 없었다.

여튼, 그건 나중에 알아보기로 하고 일단은 이곳을 지나가는 게 먼저였다.

“그거 어서 인벤토리에 넣어.”

“안 됩니다. 발견된 이상 저희에게 반납하십시오.”

왕국 기사가 인벤토리를 여는 진지춘을 막았다.

검문당하기 전이면 모를까 검문 중에 발견된 불순 아이템은 이곳에 두고 들어가야 한다는 거였다.

그런데 어째서인지 진지춘은 송곳니 목걸이를 내주지 않았다.

뺏으려는 왕국 기사와 주지 않으려는 진지춘의 실랑이가 거세지며 소란스러워지고 있었다.

진지춘이 저렇게까지 하는 거면 무언가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시후가 나섰다.

“돌팔이, 그거 꼭 갖고 들어갈 거야?”

“네!!”

“좋아, 인벤토리에 넣어. 갖고 들어가자.”

진지춘은 시후의 허락이 떨어지자 잽싸게 목걸이를 인벤토리에 넣었다.

그 모습에 왕국 기사들이 창을 들었다.

챙-

“지금 국법에 반하는 겁니까?!”

번쩍이는 창끝이 시후를 향했다.

험악해진 분위기에 조민은 시후에게 조용히 다가갔다.

“오빠, 어쩌려고 그래요?”

“어쩌긴? 갖고 들어가려고 그러지.”

“어떻게요?”

“어떻게? 그걸 왜 나한테 물어?”

“네?!”

조민은 자신을 바라보는 시후의 눈빛에 흠칫했다.

저 눈빛은 분명 오크 부족 퀘스트 당시 자신에게 종종 보이던 눈빛이었다.

전략을 짜고 영주를 만나고 유저들을 통솔할 때마다 자신에게 일을 미루던 그 눈빛.

“저보고 해결하라고? 이렇게 일을 벌여 놓고요?!”

“당연하지. 이런 건 원래 지괴가 하는 거야.”

천마 시절 천마가 사고를 치면 수습은 언제나 지괴의 몫이었다.

그때도 정체를 숨기고 마을로 내려가던 중에 산적을 만나 실랑이가 벌어졌던 일이 있었다.

당연히 산적들은 천마의 털끝 하나 건드리지 못했지만, 그 일을 빌미로 천마는 산적 토벌을 명했다.

그리고 그 명령에 지괴는 산적들이 모여 만든 녹림산채(綠林山寨)를 토벌했다.

세간에는 천마신교가 영토 확장을 위하여 녹림산채를 토벌했다고 알고 있었지만, 사실은 그저 작은 실랑이에서 비롯된 결과였다.

시후는 이번에도 일은 자기가 벌여 놓고 마무리는 조민에게 떠넘기고 있었다.

다만, 천마 시절의 지괴를 따라가기엔 조민은 아직 덜 여물었다는 생각에 작은 도움을 주기로 했다.

시후는 머리를 굴리며 진땀을 빼는 조민의 머리를 양손으로 잡고는 한쪽으로 틀었다.

“쟤를 이용해봐.”

“네?! 누구를… 저분을요?”

조민은 소란스러워진 이쪽으로 걸어오는 은빛 갑옷을 입은 금발 미남 아킬라이를 발견했다.

아킬라이를 어떻게 이용해서 이 난관을 헤쳐 나가라는 건지 이해할 수 없을 때 시후가 황당한 행동을 하는 게 보였다.

“여~! 아킬라이~!! 여기야! 여기!!”

휙-휙-

마치 죽마고우를 부르듯. 아킬라이를 향해 손을 크게 흔드는 시후였다.

그 모습이 어찌나 자연스러운지 걸어오는 아킬라이도 반사적으로 손을 들어 올렸다.

그렇게 시후와 아킬라이가 서로 인사를 주고받자 왕국 기사들이 주춤거리며 창을 내리고 있었다.

아킬라이가 ‘헤라 왕국 은빛 날개 기사단장’이라는 직업을 갖고 있기에 저런 반응인 거였다.

조민은 왕국 기사단과 아킬라이를 번갈아 보더니 시후를 홱 하고 째려보았다.

“오빠! 이러기에요?”

“역시 눈치가 빨라. 잘할 수 있지?”

“몰라요! 흥!”

조민은 시후에게 콧방귀까지 뀌고는 아킬라이를 향해 걸어갔다.

조민이 떠나자 태산과 인호가 시후에게 다가왔다.

“뭐야? 쟤 왜 저렇게 토라졌어?”

“뭘 시킨 거야?”

“별거 아니야. 어른의 병법?”

“어른의 병법? 그게 뭐야?”

까딱-

태산과 인호의 물음에 시후는 대답 대신 고개를 까딱이며 조민을 가리켰다.

조민은 아킬라이와 가까워지자 ‘냉혈미녀 유라’라는 닉네임에 어울리지 않게 활짝 웃었다.

“왜 이제야 오셨어요? 한참을 기다렸잖아요.”

“허업!”

그녀의 환한 미소에 아킬라이는 심장이 덜컹 내려앉는 듯한 기분에 헛숨을 들이켰다.

아킬라이는 냉혈미녀 유라가 하는 너튜브 방송 애청자 중 하나였다.

영상이 올라올 때마다 구독과 좋아요는 빼놓지 않았고, 악플을 다는 놈들이 있으면 대댓 악플을 달아 복수를 대신하기도 했다.

그만큼 유라에 대한 관심이 많은 아킬라이였지만 오늘처럼 환한 미소를 보여주는 냉혈미녀 유라를 본 기억이 없었다.

그 미소를 보는 순간 큐피드의 화살이 날아와 심장에 박히는 느낌이었다.

“유… 유라 님, 그 미소는 제게 너무나도 큰 자극입니다.”

“자…극…이요? 호, 호호, 말씀하시는 단어가 상당히 기품이 있으시네요~.”

자극이라는 단어가 언제부터 기품 있는 단어였는지 의아하다는 생각이 들 때 이미 조민은 아킬라이의 팔을 잡아끌었다.

질질 끌려가다시피 하는 상황이었지만 아킬라이에게는 그 어느 때보다 감격에 차오르는 순간이었다.

“어서 가요~ 헤라 왕국 은빛 날개 기사단장이신 아킬라이 님! 어서 왕국으로 안내해 주세요~!”

“네!! 암요!! 가시죠~!”

아킬라이는 반쯤 풀린 눈에 있는 힘껏 힘을 주며 조민의 손에 끌려가다시피 걸어갔다.

아킬라이가 다가오자 시후 일행을 막아서고 있던 왕국 기사단이 우물쭈물하며 길을 비켜섰다.

그렇게 길이 열리자 시후는 진지춘의 목덜미를 잡아갔다.

“넌 들어가서 보자?”

“헤, 헤헤, 도련님… 여기서 보셔도… 으아아아!”

부웅-

진지춘은 너스레를 떨며 입을 놀리는 중에 긴 비명을 남기며 쏜살같이 날아갔다.

시후가 성문 안으로 냅다 던진 거였다.

오크 부족장 델루에게 던질 때와 비슷한 힘으로 던졌으니 진지춘은 왕성 앞에까지 날아갈 터였다.

그렇게 미인계에 홀린 아킬라이의 뒤를 따라 시후와 일행들은 왕국 안으로 들어갔다.

시후는 조민에게 곧장 왕성으로 가라는 지시를 했고 모두 그 뒤를 따랐다.

왕성은 이미 시야에 보일 정도이니 시후는 홀로 남아 빠르게 스크롤 상점으로 들어갔다.

“오서 오십시….”

“이동 관련 스크롤 모두 주시오.”

스크롤 상점 주인이 인사를 하기도 전에 용건부터 내미는 시후였다.

상점 주인은 얼떨떨한 표정으로 눈을 껌뻑이며 스크롤을 꺼내기 시작했다.

“스크롤은 모두 세 종류입니다. 본인이 원하는 지역으로 이동하실 수 있는 ‘본인 이동 스크롤’, 여러 명이 이동할 수 있는 ‘다인 이동 스크롤’, 누군가를 이곳으로 불러올 수 있는 ‘픽업 스크롤’. 각기 30장씩 해서 모두 250골드….”

“여기. 그럼, 이만.”

이번에도 상점 주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골드를 지급하는 시후였다.

그는 빠르게 인벤토리에 스크롤들을 담고는 상점을 빠져나갔다.

이미 일행들은 눈에 보이지 않았다.

“어디, 따라가 볼까?”

퉁-

시후는 제자리에서 살짝 땅을 박차며 수직으로 솟구쳐 올랐다.

주변 건물보다 높이 치솟자 몸을 살짝 앞으로 숙이며 허공을 박찼다.

“천마뢰음보(天魔雷音步).”

쿠앙-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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