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2화
‘시크릿 아이템’.
이름만 들어서는 그 가치가 엄청날 것 같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았다.
시크릿 아이템이라고 해서 종류가 다른 게 아니었다.
시크릿 아이템의 다른 이름은 ‘시크릿 옵션 아이템’.
즉, 보통의 아이템에 숨겨진 옵션이 있는 것이 시크릿 아이템이었다.
하지만, 아이템 정보 창에는 숨겨진 옵션이 있는지 표기되어 있지 않았다.
그렇다면 그것을 어떻게 발견할 수 있냐.
우연히. 무조건 우연히 발견되었다.
어떤 퀘스트를 클리어하게 되면 소지 아이템의 정보가 변경되는 거였다.
그제야 유저들은 자신이 소지하고 있던 아이템이 시크릿 아이템이었구나 하며 감격하게 된다.
이는 S.W SOFT 회사에서 게임에 대한 유저들의 흥미를 높일 수 있도록 기획한 작은 이벤트였다.
그리고 시크릿 아이템의 시크릿 옵션이 꼭 좋은 것이라는 법도 없었다.
일전에 마법사 유저가 커뮤니티에 올린 글이 있었다.
자신이 사용하는 지팡이 아이템이 시크릿 아이템이라고 올린 거였다.
다들 로또라도 맞은 거 아니냐며 글을 읽다가 박장대소를 터트렸었다.
마법사 유저에게 유용한 아이템 옵션은 광역 피해, 마나 소모량 감소, 화력 증가와 같은 것들이 대세였다.
그런데 그 지팡이에 나타난 시크릿 옵션은 그것들과는 전혀 무관했다.
[직접공격력 : +10%]
마법사 지팡이 아이템에 직접공격력 향상이라니.
그 마법사 유저는 직접 시연까지 하는 동영상을 올렸었다.
지팡이를 들고 한스텔 마을 입구에 있는 토끼를 찾아가 달려들었다.
결과는 스킬 한 방이면 죽을 토끼를 100대나 때리고 나서야 잡았다.
그랬다. 시크릿 아이템에 붙는 시크릿 옵션은 복불복이었다.
그래도 사람이라는 게 최악의 확률에도 대박을 기대하고 흥분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지금의 조민처럼 말이다.
조민은 블락칸토의 심장 목걸이에 숨겨진 옵션이 있다는 말을 듣는 순간 눈을 번쩍였다.
그리고는 냉혈미녀 유라라는 닉네임에 어울리지 않게 시후의 팔을 붙잡고는 알랑방귀를 뀌고 있었다.
“오빠~! 오빠~! 네? 네?!”
“잠깐만, 기다려봐.”
시후가 어떻게 알게 된 것인지는 모르지만 목걸이에 시크릿 옵션이 붙어 있는 것은 확실했다.
그리고 그 비밀을 푸는 방법 역시 시후가 알 거라는 생각에 이러는 거였다.
시후는 팔에 대롱대롱 붙어 있는 조민을 무시한 채 노점들을 돌았다.
블락칸토의 심장 목걸이와 같은 특별한 옵션이 붙은 아이템들을 찾는 거였다.
사실 시후 또한 어떤 옵션이 붙어 있는지는 몰랐다.
독안공을 사용해 목걸이를 보는 순간 ‘숨겨진 옵션 0/1’이라고 되어 있기에 이와 같은 아이템들을 찾는 거였다.
그렇게 독안공을 사용하여 노점들을 둘러보던 그때 드디어 눈에 들어오는 것이 있었다.
“찾았다.”
분명 불락칸토의 심장 목걸이와 마찬가지로 아이템 옵션에 ‘숨겨진 옵션 0/1’이라고 표기되어 있었다.
조민은 노점 앞에 멈추어 아이템을 바라보는 시후의 시선을 따랐다.
“데스 나이트의 반지?”
“아이고! 보는 안목이 탁월하십니다요!?”
조민의 말에 상인이 재빠르게 다가왔다.
사실 블락칸토의 목걸이나 데스 나이트의 반지는 그렇게 좋은 아이템이 아니었다.
특히 이곳 헤라 왕국에서는 더욱더 말이다.
헤라 왕국은 헤라 여신의 보호 아래 신성력으로 가득 찬 곳이었다.
왕국 안쪽에는 신성력을 다루는 신전까지 있었다.
그래서 헤라 왕국 안에 들어가려면 어둠 계열 아이템들은 대부분 인벤토리에 넣어야 했다.
괜히 왕국 기사단에 책이라도 잡혔다가는 쓸데없는 사건에 휘말려 시간을 낭비할 수도 있었다.
그런데 이런 곳에서 데스 나이트의 반지를 팔고 있으니 사는 이가 없는 게 당연했다.
상인도 조민이 그런 생각을 하는 것을 눈치챘는지 입에 침을 힘껏 바르더니 말을 내뱉었다.
“물론, 헤라 왕국에서는 사용할 수 없는 아이템이기는 합니다, 하지만! 이 반지를 다른 곳에서 사용하신다면 유용한 거 아시죠?”
상인의 말이 틀린 것은 아니었다.
데스 나이트의 반지에 붙어 있는 ‘어둠에 동화되어 인기척 감소’라는 옵션은 상당히 쓸 만했다.
헤라 왕국 근처에 있는 던전에서 사용한다면 아주 유용할 거였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Lv. 180~200대 유저들의 이야기.
유라는 이미 이런 아이템과는 비견할 수 없는 아이템도 갖고 있었다.
거기다 시후에게는 인기척 감소가 아니라 직접 어둠에 스며드는 능력이 있으니 딱히 필요한 아이템은 아니었다.
그것을 시후 또한 모를 리가 없을 텐데 이렇게 시선을 둔다는 것은 무언가 있다는 뜻이었다.
알아서 잘 사봐라.
시후의 전음에 조민은 상인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반지가 이쁘기는 한데 내 망토 옵션에 비하면 별것 없는 거라 아쉽네요?”
“아… 망토요.”
상인은 조민의 말에 조민이 두르고 있는 망토를 보았다.
확실히 유니크 아이템 티가 팍팍 나는 어둠 계열 아이템이었다.
그래도 이곳에서 상인 짬밥을 먹은 게 몇 개월인데 여기서 포기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반지 아이템 아닙니까? 다다익선! 끼고 계시면 분명 도움이 되실 겁니다.”
“으흠… 글쎄요? 디자인이 이쁘기는 한데… 얼마죠?”
가격을 물어오는 조민의 말에 상인은 빠르게 입을 놀렸다.
“이게 100골드인데 이렇게 아름다우신 유저님께서 구매하신다면 90골드까지만 받겠습니다.”
“90골드라… 으흠….”
아이템 가격에 조민이 잠시 고민하는 척을 하자 시후가 대뜸 끼어들었다.
“50골드.”
그것도 상인이 제시한 가격에 반을 후려친 50골드를 제시하면서 말이다.
상인은 단번에 반을 훅 깎아버리는 시후의 말에 그렇게 놀리던 입도 멈췄다.
조민 역시 시후가 나서자 한 발 물러나며 입을 닫았다.
그렇게 아이템만 물끄러미 바라보는 시후와 그런 시후를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바라보는 상인의 매치가 시작되었다.
“손님? 너무 터무니없는 가격을 말씀하시면….”
“51골드.”
“네? 에이, 손님? 농담하시는….”
“52골드.”
“……!”
상인은 자기 말이 끝나기도 전에 제시하는 금액이 어떤 의미인지 눈치챘다.
‘1골드씩 올리고 있어? 미친….’
그렇다면 이런 실랑이를 40번은 해야 자신이 원하는 90골드를 받을 수 있다는 소리였다.
그 시간에 다른 아이템을 하나 더 팔고 말지.
자신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고 아이템만 바라보며 가격을 제시하는 시후의 반응에 장사하는 재미를 느낄 수 없었다.
자고로 상인이란 손님과 뜨거운 언쟁을 벌이며 아이템을 시세보다 높게 팔아야 그 쾌감을 느끼는 건데 지금은 그런 것을 바랄 수 없었다.
상인은 빠르게 머리를 굴려 결심을 한 듯 데스 나이트의 반지를 집어 들었다.
“60골드! 그것보다 낮게는 못 드립니다!”
“콜.”
가격을 후려친 상인의 말이 무색하게 재빨리 낚아채며 골드를 지급하는 시후였다.
그런 시후의 모습에 상인은 아이템을 팔았음에도 오히려 인상을 구겼다.
“쯧, 볼일 끝났으면 인제 그만 가슈!”
재수 옴 붙었다는 생각에 상인은 인벤토리에 넣어둔 소금을 꺼냈다.
시후가 떠나면 그 자리에 소금을 뿌릴 생각이었다.
그런데 어째서인지 시후는 떠나지 않고 다시 노점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에이… 설마, 손님?”
“저거 50골드.”
“네?!”
상인은 시후의 시선에 끝에 있는 듀리한의 허리띠와 시후를 번갈아 보며 당황했다.
이는 분명 조금 전과 같은 전개였다.
“소… 손님? 이 아이템은….”
“49골드.”
“예에?”
이번에는 되레 가격이 내려가고 있었다.
당황하는 상인과 반대로 시후는 냉철했다.
처음 60골드에 구매한 데스 나이트의 반지를 기준점으로 잡은 거였다.
지금 보고 있는 듀리한의 허리띠 역시 레어 등급 아이템이었지만 데스 나이트의 반지와 같은 옵션은 없었다.
그래서 낮게 부른 거였다.
그런 시후의 생각을 모르는 상인은 또다시 말도 안 되는 상황이 벌어지는 것에 울컥했다.
“아니! 이 양반이! 어디서 굴러온….”
“48골드.”
“이봐! 안 팔아! 당신한테 팔지 않을….”
“47골드.”
“……!”
울컥해 내뱉는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시후는 가격을 내렸다.
상인은 노점을 닫고 로그아웃을 해야 하나 싶었다.
하지만 그랬다가는 황금 같은 주말을 허무하게 보내게 될 수도 있었다.
다시 로그인해서 자리를 알아본다고 해도 지금 자리만큼 목 좋은 곳을 찾기는 힘들 터였다.
결국, 울며 겨자 먹기라는 마음으로 듀리한의 허리띠를 들어 올리며 입을 열었다.
“50골드.”
탁-
“콜.”
이번에도 역시나 재빠르게 허리띠를 낚아채는 시후였다.
만족스러운 거래였다는 생각에 시후는 기분이 좋았다.
반면 대놓고 어서 떠나라는 표정으로 상인이 입을 열었다.
“인제 그만 가슈!!”
“그러지, 그럼.”
이번에는 상인이 가라는 말에 시후는 군말 없이 자리를 떴다.
저 노점에서 더는 시후가 원하는 아이템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쯤 되자 조민도 시후가 무엇을 하는지 눈치챘다.
지금 시후가 찾는 것은 블락칸토의 심장 목걸이처럼 시크릿 옵션이 붙은 아이템을 구매하는 거였다.
그것도 말도 안 되는 흥정으로 가격을 후려쳐서 말이다.
“알겠어요. 이다음부터는 제가 해볼게요.”
“그래라.”
사실 시후 역시 이렇게 계속 상인과 실랑이를 벌일 생각이 없었다.
이 또한 조민에게 보여주려는 것뿐.
지금부터 시크릿 옵션이 붙은 아이템을 고르러 갈 건데 어떻게 사야 하는지 솔선수범을 보여준 거였다.
역시나 똑똑한 조민은 시후의 가르침대로 찍어주는 아이템을 최저가의 골드로 구매했다.
둘이 떠나는 자리마다 상인들이 소금을 뿌리는 것을 애써 모른 척하면서 말이다.
그렇게 둘이서 노점 몇 군데를 돌면서 사들인 아이템은 모두 10개였다.
“음…. 그런데 특이하게 10개 모두 어둠 계열 아이템들이네요?”
조민은 시후가 꺼내 놓은 아이템들을 보며 공통점을 찾았다.
시크릿 옵션이 어둠 계열 아이템에만 붙어 있다는 소리는 들어본 일이 없었다.
그렇다는 것은 이 아이템들이 무슨 연관이 있다는 추측이 들었다.
“역시 제법이야? 그런 것도 눈치챌 줄 알고?”
시후는 이미 세 번째 아이템을 구매할 때부터 눈치채고 있었다.
자신보다는 한참 늦었지만 그래도 눈치를 챈 것에 칭찬했다.
칭찬에 기분이 좋아진 조민은 배시시 웃으며 블락칸토의 심장 목걸이를 내밀었다.
그리고 잔뜩 기대에 찬 표정으로 말했다.
“오빠, 이거 풀 수 있는 거죠?”
“아니.”
“네? 풀 수 없다고요? 그럼 왜 샀어요?”
“옵션을 풀 수는 없지만, 그 옵션을 풀 수 있는 단서를 얻을 수는 있어서.”
알 수 없는 말을 하며 시후는 조민의 손에서 블락칸토의 심장 목걸이를 받아 들었다.
그리고는 독안공을 7성까지 끌어올리며 기운을 흘려 넣었다.
띠링-
[블락칸토의 심장 목걸이의 시크릿 옵션을 발견했습니다.]
[옵션을 개방하기 위해서는 특별 퀘스트를 클리어해야 합니다.]
[특별 퀘스트 : 헤라 3세의 축복을 아이템에 부여받아라.]
역시나 예상한 그대로였다.
시후는 눈앞에 나타난 메시지를 조민에게 공유해 주었다.
“헐!!”
메시지를 본 조민의 반응 역시 예상대로였다.
나머지 아이템들도 똑같이 독안공을 사용하여 내공을 흘려 넣자 똑같은 메시지가 나타났다.
“모두 헤라 3세의 축복을 받으라는 말들인데 생각보다 쉽군?”
시후는 그저 축복만 받으면 된다는 생각에 타란을 떠올렸다.
허리춤에 차고 있는 검을 만들 때 타란이 정령의 축복을 내려주는 것을 보았었기에 어떤 것인지 예상하는 거였다.
하지만 그런 시후의 독백을 들은 조민의 생각은 달랐다.
“오빠, 이 아이템들 잘못하면 똥 되겠는데요?”
“왜?”
“오빠, 헤라 3세가 누구라고 생각하시는 거예요?”
“헤라 3세? 음….”
그러고 보니 헤라 3세라는 인물에 대해서는 들어본 기억이 없었다.
고개를 갸우뚱거리는 시후의 모습에 조민은 한숨을 내쉬며 입을 열었다.
“여기가 어디죠?”
“여기? 헤라 왕국… 아!”
이곳이 헤라 왕국이라는 것을 일깨워주자 드디어 깨달은 듯한 시후의 표정에 조민이 입을 열었다.
“맞아요, 이곳은 헤라 왕국, 헤라 3세는 이곳의 여왕이에요.”
“그럼 더 잘된 거 아니야? 우리 어차피 여기에 그 여왕 만나러 온 거잖아?”
“여왕을 만나는 것과 축복을 받는 거는 다른 거예요.”
무슨 왕국의 왕을 한스텔 마을의 영주를 만나는 것처럼 생각하는 시후의 반응에 조민은 언성을 높였다.
하지만 시후의 생각은 달랐다.
천마 시절 시후가 만나고자 하는 이를 만나지 못한 적은 없었다.
‘살아 있기만 하면 말이지.’
만나고자 하는 이는 찾아가면 되었고 그 길을 막아서는 이들은 쓰러트리면 되는 일이었다.
그게 천마의 방식이었고 천마의 삶이었다.
이곳은 강시후로서 주변에 눈치를 살펴야 하는 곳이 아니기에 천마 시절과 같은 방법으로 찾아갈 생각이었다.
“걱정하지 마라. 이 오빠가 아주 재미난 구경을 시켜줄 테니까.”
“오, 오빠?”
조민은 아이템들을 인벤토리에 넣은 후 자신의 손을 잡고 성큼성큼 걸어가는 시후에 당황스러웠다.
그리고 어째서인지 걱정하지 말라는 시후의 말과는 다르게 점점 걱정이 깊어져만 갔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