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9화
한스텔 마을의 영주, 레오나르도 디카는 영주라는 지위에 어울리지 않게 헐레벌떡 달리고 있었다.
“그가, 아니, 그분이 오셨다는 말이지?”
“네! 지금 연회장에 계십니다!”
집사의 대답을 들은 디카는 빠르게 놀리는 발에 박차를 가했다.
Lv. 250답게 목적지가 정해지자 달리는 속도가 달라졌다.
같이 달리던 집사는 순식간에 사라진 디카의 뒤를 쫓아 연회장으로 달렸다.
쾅-
연회장 문을 부수다시피 열고 들어온 디카는 시후를 발견했다.
만감이 교차하며 감격에 차올랐다.
그런 디카에게 시후는 손을 슬쩍 들어 올렸다.
“여~ 잘 있었지?”
“See 후 님!! 어디 계시다가 이제야 오시는 겁니까?”
“뭐, 뭐야? 왜 이래?”
순식간에 다가와 손을 덥석 잡고는 눈물을 그렁그렁 보이는 디카의 모습에 시후는 적잖이 당황했다.
중년 아저씨의 스킨십이라니.
본능적으로 몸이 거부했다.
스팟-
천마보를 펼치며 디카의 손에서 빠져나온 시후였다.
“나도 반가워. 그러니 달라붙지 마.”
“하, 하하, 제가 너무 반가운 마음에 경솔했습니다.”
“알면 됐어. 그보다 내가 왜 왔는지는 알지?”
애초에 이곳에서 길게 있을 생각이 없던 시후는 디카 영주의 쓸데없는 환대에 바로 본론을 꺼냈다.
그런 시후의 질문에 디카 영주는 고개를 돌려 옆에 있는 조민을 바라봤다.
디카의 시선에 조민이 나섰다.
“세금… 아니, 직위 받으러 오셨어요.”
“아~! 그것 말씀이시군요? 하, 하하, 마을을 위해 큰일을 해주셨는데 그깟 남작 직위를 드리는 게 힘들겠습니까?”
“오호~ 그 말은 바로 줄 수 있다는 말이지?”
“그렇습니다. 제가 차고 있는 이 검으로 후님의 어깨를 두드리는 수여식을 올리기만 하면 끝입니다.”
“좋아, 그럼 바로 해볼까?”
디카 영주는 시후의 말에 반가움은 뒤로하고 수여식부터 거행하기로 했다.
그는 허리춤에 차고 있던 검을 길게 뽑으며 시후를 바라봤다.
“그럼, 이제 제 앞에 무릎을 꿇으시면… 후 님?”
그런데 어째서인지 바로 하자던 시후는 팔짱을 낀 채 여전히 뒤로 물러나 있는 상태였다.
말과 행동에 앞뒤가 맞지 않는 상황에 디카가 어리둥절해할 때 조민이 다가왔다.
상당히 귀찮다는 표정으로 말이다.
“하아…. 영주님, 그 직위는 제가 받을게요.”
당최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 디카 영주는 눈만 껌뻑였다.
결국, 조민은 시후를 한 번 째려보고는 설명했다.
“후 님께서는 남의 밑에 있는 존재가 되기 싫다고 하십니다.”
“밑? 아! 직위가 마음에 들지 않으신다는 겁니까? 하지만, 제 직속도 아니고 저는 그저 황제가 임명하는 직위를 전달할 뿐인데요?”
“그 부분은 충분히 이해하고 계십니다.”
“…네? 그럼? 그 ‘남’이라는 존재가 황제?”
디카는 당황스러웠다.
황제가 누구인가.
한스텔 마을뿐만 아니라 헤라 왕국, 제우스 왕국, 하데스 왕국을 다스리는 가장 독보적인 존재가 아닌가.
디카로서는 감히 그 이름도 거론하기 힘든 것이 황제라는 존재였다.
그런데 시후는 그런 황제를 그저 ‘남’이라는 단어로 수식하고 있었다.
이걸 어떻게 설명하고 이해를 시켜야 하나.
아니, 이걸 어떻게 자신이 이해하고 설명을 해야 하나 망설이던 때에 시후가 입을 열었다.
“왜? 안 돼? 나 대신에 유라가 직위를 받는 게?”
“아, 아니, 그건 아닙니다만.”
“그럼, 어서 해, 피곤하니까.”
직위 수여식을 피곤하다며 서두르라니.
그것도 자신에게 내려온 직위를 다른 이에게 대물림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디카 영주는 시후의 말을 따르고 있었다.
“유라, 그대에게 그레이스 제국 남작의 직위를 수여한다.”
“감사합니다.”
툭, 툭.
디카 영주의 검이 조민의 양쪽 어깨를 툭툭 건드리자 조민의 앞에 스테이터스 창이 나타났다.
[그레이스 제국 남작의 직위를 수여받았습니다.]
[직위 보상으로 한스텔 마을에서 걷어지는 세금의 5%를 받습니다.]
[지급 일자는 매월 25일입니다.]
드디어 세금을 받게 되었다는 메시지를 읽으며 조민은 시후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잘됐어. 앞으로 이런 거는 네가 하는 거야, 알았지?”
“하아… 네.”
오늘따라 한숨이 끊이지를 않았다.
조민은 시후의 옆구리에 낀 채 이곳으로 날아올 때를 떠올렸다.
시후가 생각해낸 좋은 방법이라는 게 이거였다.
귀찮고 머리를 조아리는 일은 모두 조민을 내세우는 것.
조민에게도 이번 오크 부족장 퀘스트를 클리어하는 데 공헌도가 지급되었기에 문제는 없었다.
본래라면 직위장에 정확히 ‘See 후’라고 이름이 명명되어 있으면 이런 방법은 쓸 수 없었다.
하지만, 황제는 왕국 한쪽 귀퉁이에 있는 마을의 직위 수여를 위해 직접 글을 쓰는 수고를 하진 않았다.
덕분에 엉뚱한 사람에게 직위를 수여한 디카가 제일 어이없어하고 있었다.
“허… 이게 된다니.”
얼떨결에 수여식을 진행했지만 정말로 인정될 줄 몰랐던 거였다.
저번부터 느꼈지만 시후의 말은 어째서인지 반박이 불가해 저도 모르게 따르게 되었다.
그리고 저번보다 지금이 더욱 그랬다.
왜 그럴까 하는 생각을 하던 때에 중요한 것이 떠올랐다.
“아! 후 님! 헤라 여왕님께서 전달하신 메시지가 있습니다.”
“헤라 여왕?”
시후는 처음 듣는 이름에 자연스럽게 조민을 바라봤다.
조민 역시 시후의 눈길이 자신을 향하기 전에 이미 입을 열었다.
“그레이스 제국은 헤라, 제우스, 하데스. 이렇게 3개의 왕국으로 되어 있어요. 한스텔 마을은 그중 헤라 왕국의 영지고요.”
“그 말은 헤라 여왕이라는 사람이 이곳의 우두머리라는 거야?”
“뭐… 간단히 말하면 그렇죠.”
Safety World를 꾸준히 한 사람이라면 헤라 여왕에 대해서 모르는 이가 없었다.
꽤 많은 수식어로 치장된 여왕이었기에 여러 커뮤니티에도 소개가 되었었다.
요즘은 좀 뜸한 것 같았지만 그래도 그 명성을 모르는 이가 없었다.
시후만 빼고 말이다.
이야기 흐름상 시후가 헤라 여왕에 대해 잘 모르는 것 같자 디카 영주는 살짝 걱정되었다.
“후님? 그… 헤라 여왕님께서 전하라는 메시지가 말입니다?”
“중요한 거야?”
“네?”
“지금 당장 들어야 하거나 당장 뭘 해야 하는 그런 거냐고.”
헤라 여왕의 전언이 꼭 지금 해야 하는 퀘스트냐고 묻는 거였다.
그 말에 디카 영주는 메시지를 떠올리며 잠시 뜸을 들였다.
[이번에 직위를 얻은 남작과 동료들은 헤라 왕궁에 방문하라.]
메시지에 딱히 기한은 적혀 있지 않았다.
“그렇지는 않습니다만… 그래도 여왕님께서 말씀하신 것이니….”
“그럼 됐어, 오늘은 피곤하니 다음에 들어오면 말해줘. 난 이만 나간다.”
시후는 그 말을 끝으로 손을 흔들며 로그아웃을 했다.
덩그러니 남게 된 조민과 디카 영주는 서로를 바라보며 헛웃음만 흘렸다.
그 후 헤라 여왕을 만나게 되는 퀘스트에 대한 것은 모두 조민이 들어야만 했다.
* * *
어둠이 걷히고 서서히 날이 밝아 오며 물안개가 자욱이 낀 인천 컨테이너 터미널은 평소보다 사람이 적었다.
밤낮없이 상하차하기에 언제나 환하게 조명이 켜져 있는 이곳이 오늘은 어째서인지 대부분 꺼져 있었다.
인적이 없기에 조용하였고 아주 작은 소리도 쉽게 울렸다.
끼이이익-
녹슨 거대한 철문이 열리는 소리가 공기를 울리자, 인천 컨테이너 터미널에 붉은 그림자가 길게 퍼져나갔다.
끼이익- 쿵.
다시 녹슨 거대한 철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리자 길게 퍼졌던 붉은 그림자가 사라졌다.
이날 인천 컨테이너 터미널 직원은 속이 텅 비어 있는 컨테이너를 보고서에 올렸다.
그리고 그 보고서는 어째서인지 남궁진성이 확인하고 있었다.
“그들이 왔군.”
남궁진성은 책상에 놓인 신형 스마트폰을 들어 메시지를 입력하려다 멈췄다.
검지를 들어 한참을 망설이던 남궁진성은 결심을 굳힌 듯 입술을 세게 깨물고는 터치를 해갔다.
- 밤새 안녕하셨습니까? 그들이 국내에 들어왔습니다. 어찌할까요?
오타가 있는지까지 재차 확인하고는 전송을 눌렀다.
“후….”
살면서 지금처럼 메시지 하나를 보내는 데 이 정도로 신중한 적은 처음이었다.
이제는 답변을 기다리면 되었다.
답장이 오면 이미 생각해 두었던 계획을 줄줄이 읊으면 되었다.
변수에 변수까지 생각해 1번부터 10번까지의 계획을 생각해 두었다.
이번 계획을 듣게 된다면 아마도 자신의 가치는 크게 오를 거라 생각했다.
띠링-
경쾌한 알림음과 함께 드디어 기다리던 메시지가 도착했다.
남궁진성은 기대감 반, 긴장감 반을 담아 메시지 확인을 눌렀다.
- 잔다. 알아서 해라.
“…….”
이리도 허망할 줄이야.
잠 한숨 자지 못 자고 브리핑할 자료들을 머릿속 가득 정리해 두었는데 알아서 하라니.
알아서는 할 거였다.
그저 자신이 생각해낸 멋들어지고 완벽한 계획에 대해 칭찬받고 가치를 인정받고 싶었다.
그래야 그날에 느꼈던 공포를 조금이나마 씻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잔다고?! 나는 이렇게 불면증에 걸려 한숨도 못 자고 있는데?!”
쾅-
화가 머리끝까지 차오른 남궁진성은 거세게 책상을 내려쳤다.
방 안 가득 울리는 소음에 조금이나마 기분이 풀리려 할 때 순간 정신이 퍼뜩 들었다.
“헉! 내, 내가 무슨 짓을? 설마?”
훽-훽-
남궁진성은 고개를 좌우로 홱홱 돌리며 경계를 했다.
몸속에 있는 내공을 극한까지 끌어올리며 기감을 펼치기도 했다.
그렇게 한참을 경계하고는 아무도 없다는 것을 확인한 남궁진성은 깊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 * *
고작 3시간 정도의 수면을 가진 시후였지만 상쾌한 아침을 맞이하고 있었다.
자면서도 천마분심공을 통해 운기조식을 하였기에 언제나 상쾌했다.
거기에 새벽에 Safety World에 접속하여 퀘스트 보상을 받아 레벨업도 하였기에 또 달라진 몸 상태를 느꼈다.
화장실 거울을 보며 양치를 하는 자신이 한없이 멋져 보였다.
슥-슥-
만국 공통일까.
남자의 전유물일까.
양치하며 거울을 볼 때 턱을 치켜든 채 턱선을 살펴보며 만족감을 느끼는 것은.
거울을 바라보는 시후는 차오르는 자존감에 미소를 지었다.
“예전의 나보다는 못하지만 잘생겼단 말이지.”
천마 시절 매력이 철철 넘치던 자신에 비하면 못하다곤 해도 강시후도 상당히 잘생겼다.
곱상한 외모와는 달리 쩍쩍 갈라진 근육이 야성미를 뽐내고 있었다.
짝-
“아야!”
“아들! 그만 자화자찬하고 나오시죠?”
그런 시후의 등에 등짝스매시를 날린 어머니 윤여정이었다.
이미 윤여정이 살금살금 다가올 때부터 알고 있었다.
하지만 어머니의 얼굴에 미소가 걸릴 수만 있다면 모르는 체하는 것이 자식의 도리라 생각했다.
살짝 고통에 일그러진 표정까지 보여주니 윤여정은 만족스러운 웃음을 지으며 거실로 향했다.
시후는 이런 일상이 좋았다.
그래서 그런지 며칠 전에 알게 된 혈교의 존재가 상당히 거슬렸다.
천마 시절 가장 행복했던 순간 자신을 나락으로 떨어트렸던 존재가 혈교였다.
이곳에도 무림이 있다는 생각을 했을 때부터 짐작했어야 했는데 자신이 안일했다.
남군진성이 혈교 무리를 만나기로 한 날이 다가오고 있었다.
시후는 혈영수를 서슴없이 남궁세가에 알려준 혈교가 자신이 아는 혈교와 별반 다를 리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마음먹었다.
“그런 것들은 지워 버려야지.”
자신의 일상을 망칠 만한 우려가 있는 녀석들은 일찌감치 지워 버리기로.
그래서 시후는 오늘이 근래에 들어 가장 중요한 날이라 생각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꼭 준비해야 하는 게 있었다.
준비해야 하는 것들을 하나둘 차근차근 생각하며 시후는 거실로 나갔다.
거실에는 이미 아침 식사가 거나하게 차려져 있었다.
그런데 그곳에는 이 집의 주인인 자신보다 먼저 수저를 뜨고 있는 이들이 있었다.
“왜 이제 나와? 배고파 죽는 줄 알았네.”
“그러니까. 불렀으면 마중을 나오든가. 네가 늦어서 먼저 먹고 있었다?”
태산과 인호였다.
주말을 맞아 시후는 이 둘을 집으로 불렀다.
그리고 어머니에게 특별히 부탁하여 아침 밥상을 거나하게 차려달라고 했다.
윤여정은 오랜만에 아들의 부탁이라 도우미 아주머니와 함께 상다리가 부러지게 차렸다.
한식, 중식, 일식.
젓가락이 어디를 가야 할지 모를 정도로 산해진미가 넘쳐났다.
시후는 게걸스럽게 산해진미를 입에 꾸역꾸역 쑤셔 넣는 태산과 인호를 보며 만족스러운 미소를 띠었다.
“어머니, 감사해요.”
“어머, 아드님, 감사하다니 기분이 좋네요? 아들도 어서 먹어.”
“잘 먹겠습니다.”
시후 역시 평소에는 못 먹었던 음식들부터 젓가락질했다.
오늘은 자신 역시 배를 든든히 채워놓아야 했다.
아마도 긴 시간 동안 캡슐 방에서 나오지 않을 테니 말이다.
시후는 오늘 태산과 인호를 데리고 Safety World를 온종일 할 생각이었다.
그리고 이 둘뿐만이 아니었다.
조민, 진지춘, 비천대까지 오랜만에 모두를 소집했다.
태산과 인호에게는 비밀이었다.
저 두 녀석에게 주말 아침부터 Safety World에 접속하자고 하면 투정을 부릴 게 뻔하니 말이다.
이미 둘에게도 Safety World는 단순한 게임이 아니었다.
언젠가는 시후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무림인이 되기 위한 수련의 장이었다.
그리고 시후는 그 언젠가를 며칠 후로 정하여 둘을 위해 특별한 오늘을 준비했다.
“흐, 흐흐, 흐흐흐.”
그런데 어째서인지 그 특별한 일을 생각하니 절로 웃음이 새어 나왔다.
저도 모르게 새어 나온 웃음에 가장 먼저 반응한 것은 태산이었다.
어려서부터 했던 운동 경력 때문인지 본능이 날카로웠다.
“…뭐지? 저 노예 상인 같은 웃음소리는?”
그 말에 인호가 고개를 홱 들어 시후를 보았다.
그리고 둘은 동시에 깨달았다.
지금 자신들이 먹고 있는 아침 식사가 최후의 만찬이라는 것을.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