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로그인하는 천마님-67화 (67/275)

제67화

시후의 손에서 천마멸겁장이 펼쳐지자 주변 모두가 놀랐다.

오크들은 저만한 파괴력의 스킬을 처음 봤는지 대경실색했고 시후 쪽은 한층 강해진 파괴력에 놀랐다.

드라큘라 백작을 상대했을 때와는 비교조차 되지 않는 위력에 태산과 인호는 서로를 쿡쿡 찔렀다.

“확실히 더 강해졌지?”

“어, 장난 아닌데?”

“그치? 그런데 저거 현실에서도 쓸 수 있다고 하지 않았냐?”

“그랬지. 와… 미쳤네.”

태산과 인호는 델루를 덮치고는 뒤쪽에 있는 오크들까지 쓸어버린 천마멸겁장의 위력에 침을 꼴깍 삼켰다.

Safety World에서의 무위를 현실에서도 보여준 시후의 모습이 떠오른 거였다.

대체 병원에서 어떤 고인을 만났기에 저런 무공을 가질 수 있는 것인지 궁금했지만 깊게 생각하지는 않기로 했다.

현실에서 시후가 보여준 것들은 모두가 놀라움의 연속이었으니 말이다.

그런데 놀라기는 시후 또한 마찬가지였다.

다만 강력해진 천마멸겁장의 위력 때문이 아니라 그것을 버젓이 버티고 서 있는 델루 때문이었다.

얼마 전에는 바람에 흩날리는 낙엽처럼 나뒹굴더니 지금은 거목처럼 버티고 있었다.

“이것 봐라?”

천마 시절에 비하면 완벽한 위력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칠 할의 위력은 보여주었다.

죽지는 않아도 멀리멀리 날아가 나자빠질 것으로 생각했는데 저렇게 버티고 있으니 놀랐다.

확실히 전과는 다른 모습이었다.

“좋아, 그럼 좀 더 성심성의껏 대해볼까?”

시후는 손에 쥐어져 있는 검을 눈앞까지 들어 올리며 내공을 흘려 넣었다.

우웅-웅-

검신(劍身)이 떨리며 진동하는 소리가 점점 커졌다.

시후는 내공에 즉각 반응하는 검을 보며 만족스러웠다.

“투산이 검 하나는 잘 만들었어, 월영검(月影劍)이라 했었나? 마음에 드네.”

[월영검]

[등급 : 유니크]

[민첩 : +10%]

[기민함 : +10%]

[절삭력 : +10%]

[패시브 스킬 1 : 레벨 사용 제한 없음.]

[패시브 스킬 2 : 사용자의 레벨에 따라 파괴력 증가.]

[스킬 1 : 달 베기 - 눈에 보이지만 거리가 짐작되지 않는 달을 벤다, 원거리 공격 가능.]

[스킬 2 : 혼 베기 - 체력 5% 미만 대상에게 적중 시 발동, 혼을 구속한다.]

월영검의 정보를 쓱 훑어본 시후는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것들보다 가장 마음에 드는 것은 레벨 사용 제한이 없으며 레벨에 따라 파괴력이 증가한다는 거였다.

시후의 요구가 무리라며 투덜대던 투산이 용케 완성한 것 같았다.

이번 퀘스트를 끝내고 돌아가면 투산에게 무언가 보상을 해 주어야겠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 사이 천마멸겁장의 피해에서 벗어난 델루가 자세를 가다듬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하지만 이번에는 선수를 양보할 생각이 없었다.

시후의 몸이 흔들거리는가 싶더니 훅하고 사라졌다.

캉-

쇠와 쇠가 부딪치는 날카로운 금속성에 모두의 시선은 델루에게로 쏠렸다.

어느새 델루의 정수리에 시후가 검을 내려친 거였다.

얼마나 엄청난 위력이었는지 델루의 발이 발목까지 땅속에 잠기며 주위 땅거죽이 갈라졌다.

“크륵, 크아악!!”

델루는 믿을 수 없다는 듯이 괴성을 지르며 시후를 밀어냈다.

아니 밀어내려 했다.

도끼로 검을 밀어내려는 순간 시후는 내려치던 검에 힘을 훅 빼고는 공중에서 몸을 돌려 델루의 목을 쳤다.

당황한 델루는 자신이 낼 수 있는 최대한의 힘으로 시후의 공격을 막았다.

반격 따위는 생각도 하지 못한 채 연신 방어만 했다.

폭풍같이 몰아치며 델루를 베어가던 시후가 돌연, 한 호흡을 쉬고는 직선으로 찔러갔다.

델루는 그 공격에 얼마만큼의 힘이 실려 있는지 느낄 수 있었다.

이미 박혀 있는 두 다리에 더욱 힘을 집중시키며 두 손으로 양날 도끼를 들어 검을 막았다.

콰칭-

폭죽이 터지듯 공기가 터지며 델루의 양날 도끼의 한쪽 날이 부서졌다.

양날 도끼 역시 만년한철로 만든 것이었기에 월영검과 강도는 비슷했다.

그렇다는 것은 결국 무기를 사용하는 이의 기량 차이라는 소리였기에 델루는 인상을 확 구겼다.

그렇다고 물러설 수는 없었기에 남아 있는 한쪽 도끼날로 월영검을 걸어갔다.

시후의 손에서 월영검을 떨어트리려는 속셈이었지만 어림도 없었다.

시후는 도끼날이 검에 걸려오는 순간 손을 흔들었다.

그러자 검신이 물결처럼 꿀렁거리더니 델루의 도끼를 쳐냈다.

캉-

날카로운 금속성과 함께 델루의 손이 하늘로 솟구치며 도끼가 뒤쪽으로 훨훨 날아갔다.

시후의 손에서 검을 떨구려던 델루는 오히려 자신의 도끼가 떨어져 나가자 전의를 상실했다.

붉게 물든 델루의 눈이 돌아오며 전의를 상실한 것을 본 시후는 망설임 없이 검을 내려쳤다.

Safety World였기에 죽게 되는 몬스터는 부활할 거였다.

물론, 지금의 델루는 아니겠지만 말이다.

전사에 대한 예의로 단숨에 숨을 끊어주려 했던 시후는 문득 내려치던 검을 델루의 목 언저리에서 우뚝 멈췄다.

“크륵!! 조롱하지 마라!!”

델루는 죽음의 문턱에서 자신을 조롱한다는 생각이 들었는지 버럭 소리를 질렀다.

하지만 시후의 생각은 달랐다.

“음…. 아깝단 말이야.”

알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리던 시후는 갑자기 스테이터스 창을 불러냈다.

그리고 퀘스트 목록에 있는 히든 퀘스트를 확인했다.

[오크 웨이브 히든 퀘스트]

[오크 부족장을 척살하라.]

[오크 부족장 처치 : 0/1]

[보상 : 경험치, 오크 부족장의 버프 획득, 오크 마을의 영지권.]

오크 웨이브에 대한 퀘스트 어디에도 델루라는 이름은 없었다.

거기에 보상 내용이 눈에 밟혔다.

잠시 고민을 하던 시후는 한쪽 입꼬리를 씰룩였다.

시후의 미소에 델루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전의가 꺾여서가 아니라 저 표정은 이미 자신을 적으로 여기고 있지 않았다.

여전히 서늘한 검날이 목에 닿아 있는 델루는 그거 마른침만 삼킬 뿐이었다.

그때 시후의 목소리가 들렸다.

“조민아, 남쪽에 진 발동시켜라.”

조민은 뭐고 진은 뭔가 궁금하던 차에 시후가 훅하고 사라지더니 목에서 느껴지던 서늘한 검의 감촉도 사라졌다.

“크륵? 뭐, 뭐냐?”

도대체 이게 어찌 된 일인지 어리둥절하여 시후를 찾아 주위를 두리번거리다 구석에 숨어 이쪽을 훔쳐보는 진지춘과 눈이 맞닿았다.

“……! 크륵, 나와라.”

“……! 음음음, 싫다.”

진지춘은 델루의 부름에 고개를 격하게 저었다.

“크륵, 안 나오면 죽인다.”

“나가도 죽일 거잖아.”

“크륵, 아니다. 나와서 묻는 말에 대답만 하면 죽이지 않는다.”

“그럼 때리게?”

“크륵…. 그냥 죽어라.”

쾅-

자신과 농담 따먹기를 하는 것도 아니고 연신 혀를 놀리는 진지춘에 화가 잔뜩 난 델루는 땅을 박차고 달려들었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진지춘을 쉽게 잡지는 못하고 있었다.

진지춘이 그동안 경험치 하락을 방지하기 위해서 민첩과 지능에 스텟을 투자한 결과였다.

맞서 싸우지는 못해도 도망치고자 마음만 먹으면 그 어떤 유저한테서도 도망칠 자신이 있었다.

그렇게 델루와 진지춘의 느닷없는 숨바꼭질에 다들 어이가 없었다.

서로의 수장이라 할 수 있는 시후와 델루의 싸움이 이상하게 막을 내린 것에 어떻게 행동을 취해야 할지 모르는 거였다.

띠링-

- 성벽으로 퇴각.

때마침 도착한 시후의 메시지에 태산과 인호와 비천대는 슬금슬금 움직였다.

오크들이 그들을 발견했지만 다들 망설이는 모습이었다.

여전히 진지춘을 쫓느라 정신없는 델루가 지시를 내리지 않아서였다.

그때 하늘에서 무언가가 날아왔다.

쿵-쿵-쿵-

떨어지는 것들은 오크 몸통만 한 통나무였다.

정확히 비어 있는 공간에 떨어지는 통나무를 보며 오크들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사이 태산과 인호와 비천대가 성벽에 올라서자 순간 앙칼진 목소리가 울렸다.

“희노애락환진(喜怒哀樂幻陳). 발동!”

그것을 시작으로 오크들은 지금까지 경험해보지 못한 것들을 경험하기 시작했다.

* * *

아킬라이는 턱까지 차오르는 거친 숨을 몰아쉬며 전방을 노려봤다.

은빛으로 번쩍번쩍 빛나던 갑옷은 흙과 피에 더럽혀져 빛을 잃었다.

그와 마찬가지로 언제나 도도한 조각 미남의 얼굴 역시 온데간데없이 잔뜩 일그러져 있었다.

그런 아킬라이의 앞에는 온몸에 문신이 가득한 오크 부족장이 낄낄대고 있었다.

“크륵, 키킥, 제법이다. 하지만, 나는 더 제법이다.”

“아직이다!”

문맥에 맞지도 않는 어눌한 말에 아킬라이는 이를 빠득 갈며 몸을 일으켰다.

둘의 상태를 보아 알 수 있듯이 둘의 격전은 오크 부족장의 승리였다.

사실 둘의 실력은 엇비슷했다.

오크 부족장의 단출한 힘과 스킬에 아킬라이는 노련함과 이화접목의 수법으로 맞섰다.

우세를 점할 수 없는 상황에서 급변한 것은 오크 부족장이 몸통 박치기를 한 이후였다.

엄청난 충격을 겨우 버틴 아킬라이였지만 0.5초의 스턴 상태를 피할 수는 없었다.

그 짧은 순간 어디서 나타났는지 오크 한 마리가 몽둥이로 아킬라이를 후려친 거였다.

등 뒤를 맡겼던 은빛 날개 수호대가 전멸한 거였다.

그들을 상대한 오크들 역시 보통의 오크들이 아니었다.

통솔 능력을 가진 대장급 오크들이었다.

첫 격돌에서 그것을 눈치챈 은빛 날개 수호대였지만 이미 아킬라이와 오크 부족장의 전투가 한창이었기에 말할 기회가 없었다.

결국, 은빛 날개 수호대는 깔끔하게 전멸당하여 로그아웃되었다.

거기다 이 오크 부족장은 델루와는 달랐다.

아킬라이와 싸우면서도 다른 오크들을 통솔하여 기습을 감행했다.

집중력이 분산된 아킬라이는 몇 번의 실수를 반복했고 오크 부족장은 승기를 잡았다.

“크륵, 비겁하다? 생각한다?”

“퉷!”

비겁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었지만, 확실한 승리를 위해서는 충분히 이해가 가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이해가 가는 것은 가는 거였고 화가 머리끝까지 솟구치는 것은 별개였다.

그렇다고 어떻게 해볼 방법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인벤토리에 있는 물약까지 모두 소진한 지 오래였다.

“그래도 명예가 있지. 내 손으로 로그아웃할 수는 없다.”

아킬라이는 그동안 쌓아온 명성을 생각하며 헤라의 분노를 내려놓고 양팔을 쫙 펼쳤다.

당당하게 오크 부족장에게 목숨을 내놓는 행동이었다.

“크륵, 크큭, 유저 주제에 쓸데없는 자존심은 있구나.”

오크 부족장의 비아냥거리는 말이었지만 이미 모든 것을 포기한 아킬라이는 흘려들었다.

대신 두 눈을 감았다.

“크륵, 죽어… 컥!”

오크 부족장은 아킬라이의 머리에 도끼를 내려치려는 순간 숨이 턱 막히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목에서부터 느껴지는 싸늘한 감촉이 전신에 휘몰아칠 때 무언가를 보았다.

자신의 그림자 속에서 소름 끼치게 웃고 있는 얼굴을.

그 웃고 있는 얼굴에 소리를 지르고 싶었지만,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거기에 점점 시야가 흐려지며 어째서인지 사방이 빙글빙글 돌았다.

툭-

아킬라이는 두 눈을 감은 상태로 로그아웃 알람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어째서인지 로그아웃 알람 소리 대신에 무언가 묵직한 것이 떨어지는 소리에 눈을 떴다.

“뭐! 뭐야?!!”

자신의 발아래에서 뒹굴고 있는 오크 부족장의 머리를 발견한 아킬라이는 기겁했다.

어찌 된 건가 싶어 고개를 드는 순간 목을 잃은 오크 부족장이 도끼를 높이 치켜든 자세 그대로 쓰러지는 것이 보였다.

도대체 이게 무슨 상황인지 이해할 수 없는 그때 오크 부족장 뒤로 바닥에 떨구어져 있는 물약을 발견했다.

아킬라이는 생각할 겨를도 없이 일단 물약을 주어 단숨에 들이켰다.

그렇지 않으면 오크 부족장이 죽는 순간 자신을 향해 달려드는 오크들을 상대할 수 없을 것 같아서였다.

그렇게 체력과 마나를 회복한 아킬라이는 오크들과의 2차전을 시작했다.

시후는 오크 부족장의 그림자 속에서 아킬라이의 전투를 구경 중이었다.

“오호~ 저 정도면 물약 값은 하겠네.”

아킬라이에게 물약을 던져 준 것은 시후였다.

시후는 소리가 나지 않는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스테이터스 창을 열었다.

[오크 웨이브 히든 퀘스트, 성공!]

[오크 부족장을 척살하라. 성공!]

[오크 부족장 처치 : 1/1]

[보상 : 경험치, 오크 부족장의 버프 획득, 오크 마을의 영지권.]

아킬라이 앞에서 깔짝대던 오크 부족장의 목을 단칼에 쳐낸 시후는 히든 퀘스트의 성공 메시지를 보며 흐뭇하게 웃었다.

모든 게 시후의 순간적인 계획이었다.

제법 싸울 줄 알고 말도 통하는 델루가 아까웠다.

어디에다가 써먹을 곳이 없을까 하는 생각을 하던 차에 문득 떠올랐다.

재빠르게 히든 퀘스트 내용을 확인한 시후는 다급한 조민의 메시지도 확인했다.

또 다른 오크 부족장의 등장을 알리는 조민의 메시지에 검을 거두었다.

계획을 마친 시후의 행동은 재빨랐다.

경공술을 펼쳐 최대한 빠르게 한스텔 마을을 지나친 시후는 북쪽 성벽에 올랐다.

전장을 확인한 순간 천잠음영술을 펼쳐 그림자 속으로 숨어들었다.

워낙 빠르고 은밀했기에 그 누구도 눈치채지 못했다.

빠르게 오크 부족장 녀석의 그림자로 숨어든 시후는 때를 기다렸다.

괜히 시간 낭비를 하기 싫어 녀석이 방심하는 순간을 노렸다.

승리에 도취한 녀석이 도끼를 높이 치켜드는 순간에 맞추어 단숨에 목을 쳐냈다.

그리고 그림자 속에 숨어 있는 자신을 발견한 녀석에게 방긋 웃어주며 잘 가라는 인사도 해주었다.

그렇게 녀석의 숨이 끊어지는 순간 보상 완료 메시지가 나타났고 시후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띠며 등을 돌렸다.

남아 있는 오크들은 아킬라이가 상대하라며 인벤토리에서 상급 물약만 골라 던져 놓는 것도 잊지 않았다.

“너 정도 실력이면 딱 거기 남아 있는 녀석들은 처리할 수 있을 테니까.”

시후의 예상대로 아킬라이는 물약을 들이켜며 오크들과 접전을 벌였다.

그리고 마지막 오크를 처치하는 순간 본인도 체력이 바닥이 나서 로그아웃되었다.

그렇게 아킬라이를 이용해 북쪽을 정리한 시후는 남쪽 성벽으로 돌아왔다.

지시대로 조민이 희노애락환진을 발동시킨 것인지 오크들이 허우적대고 있었다.

문제는.

“그런데…. 쟤네들은 원하는 게 저게 다야?”

진(陳)에 빠진 오크들이 보이는 모습에 시후는 미간을 좁혔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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