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로그인하는 천마님-66화 (66/275)

제66화

델루는 부하들이 모여 있는 곳에서 펑 하고 솟아오른 것에 눈을 부릅떴다.

한눈에 알아봤다.

얼마 전 막사에 숨어들어온 녀석 중 자신의 손에 죽은 녀석이었다.

“크륵? 고작 저런 녀석 때문에 애를 먹는 거냐?”

같이 왔던 동료라면 모를까 고작 몽둥이질 한 번에 죽어버린 녀석 따위에 관심은 없었다.

저런 녀석은 무시하고 마을이나 공격하라고 명령을 내리려 할 때 뜻밖에 말이 들렸다.

“델루! 복수하러 왔다!!”

“크륵!”

델루는 오크 중에서 가장 강한 오크로 뽑히면서 오크 부족장이 되었다.

그랬기에 전사의 자긍심이 상당히 높았다.

그런 자신에게 ‘복수’라는 단어를 지껄이다니.

어이가 없으면서도 화가 치밀었다.

“크륵! 내 도끼 가져와라!”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델루는 부하들을 향해 소리쳤다.

오크들이 낑낑거리며 가져온 양날 도끼를 한 손으로 가볍게 들고 붕붕 휘둘렀다.

당장이라도 뛰쳐나가 헛소리를 나불대는 저 녀석의 대가리를 부수겠다는 표현이었다.

그런 델루의 기세가 뿜어져 나오자 다른 오크들에도 전달되었다.

띠링-

[오크 부족장이 부족의 사기를 고양합니다.]

[오크 종족 모든 스텟 +3% 상승]

[오크 부족장 반경 30m 내에 오크 모든 스텟 +5% 상승]

이 말도 안 되는 메시지가 이번 퀘스트를 받은 유저들에게 동시에 전달되었다.

시후 또한 눈앞에 나타난 메시지를 보며 입맛을 다셨다.

“저 말도 안 되는.”

“말도 안 되는 건 도련님입니다! 저를 그렇게 던져버리시면 어쩝니까?!”

어느새 지상으로 떨어져 내린 진지춘이 시후를 향해 소리를 질렀다.

이게 만약 Safety World가 아닌 현실에서였다면 자신은 분명 심장 마비로 하늘에서 생을 마감했을 거였다.

그만큼 얼토당토않은 일을 격은 진지춘은 씩씩거렸다.

그런데 정작 진지춘을 하늘 높이 던져버렸던 시후는 덤덤한 표정이었다.

되레 큰일을 하고 돌아왔다는 듯이 진지춘의 어깨를 다독였다.

“잘했어! 네가 아주 큰일을 했다.”

“거짓말! 지금 대충 넘기려고 그러시는 거 다 압니다?”

“에이~ 아니야, 저기 봐봐. 네 덕분에 구석에 꼭꼭 숨어 있던 녀석의 대가리가 보이게 됐잖아?”

시후의 말대로 오크들 너머로 델루의 머리가 보이는 것은 맞았다.

하지만 그 덕분에 한스텔 마을을 공격하는 모든 오크의 공격치가 올라갔다는 게 문제였다.

비천대 또한 좀 전과는 다르게 오크들을 막는 데 힘겨워하고 있었다.

진지춘은 힐 스킬을 사용해 비천대의 체력을 채워주며 시후를 노려봤다.

“아니, 비천대가 이렇게 힘들어하는데 다른 곳은 어떻겠느냐고요!”

“글쎄다? 지금쯤이면 다른 곳은 손가락이나 빨고 있을걸? 오크 녀석들 대부분이 여기에 모여들었으니.”

“네? 어?! 진짜네?!”

진지춘은 그제야 자신들을 둘러싸고 있는 오크의 수가 무지막지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자 또 다른 걱정거리가 몰려왔다.

“지금 이게 더 큰일 아닙니까? 우리 죽겠는데요?”

능력치가 오른 오크들이 떼거리로 몰려들어 자신들을 둘러싸고 있으니 꼼짝없이 죽을 운명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어째서인지 시후는 실실 웃고만 있었다.

당황하며 우왕좌왕하는 진지춘을 똑바로 바라보면서 말이다.

순간 진지춘은 하늘로 내던져지기 전이 떠올랐다.

“서, 설마! 또 던지시… 크아아!!”

자신의 운명을 직감해 어찌어찌 피해 보려 했지만 이미 시후의 손에 목덜미를 잡혀 멀리 던져진 진지춘이었다.

역시나 이번에도 오크들은 하늘을 날아가는 진지춘을 따라 고개를 움직였다.

그런데 좀 전과는 다르게 오크들의 머리가 수직으로 올라가는 게 아니라 큰 포물선을 그리듯 한쪽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그 끝에는 머리만 살짝 보이던 델루가 있었다.

“크륵!? 막, 막아라!”

그나마 정신을 차린 오크들이 소리를 질러댔지만 이미 진지춘은 비천대 주위로 모여 있던 오크들을 뛰어넘은 지 오래였다.

한편 날아가던 진지춘은 저 멀리 델루의 모습이 보이자 이를 악물었다.

어느새 델루의 손에 쥐어진 양날 도끼가 한껏 뒤로 당겨 홈런 타자의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이대로 날아가면 델루의 양날 도끼에 의해 순식간에 두 동강 날 것이 뻔했다.

“내가! 이번에도 죽을 줄 아슈?!!”

진지춘은 자신 홀로 남겨져 델루에게 죽었던 그때를 떠올리며 인벤토리를 열었다.

그리고는 비장한 표정으로 그동안 아끼고 아꼈던 아이템을 꺼냈다.

[여신의 망토]

[등급 : 레어]

[물리 방어력 : 100%]

[사용 제한 : 5회/5회]

[여신의 축복이 담긴 망토, 어떠한 물리 공격도 모두 방어가 가능하다. 사용횟수에 제한이 있으니 신중하게 사용하자.]

얼마 전 경매 사이트에서 거금을 들여 사들인 아이템이었다.

“자그마치 5천만 원짜리 아이템이다!!”

진지춘이 여신의 망토를 두름과 동시에 델루의 양날 도끼가 하늘을 갈랐다.

파칭-

델루의 공격을 그대로 받은 진지춘은 여신의 망토의 설명이 [사용 제한 : 4회/5회]로 변한 것을 확인하며 델루와 빠르게 거리를 벌렸다.

델루는 분명 손맛이 있었음에도 진지춘이 멀쩡해 보이자 두르고 있는 망토에 눈이 갔다.

“크륵, 좋은 거 갖고 있구나?”

스윽-

“뭐? 어쩌라고?!”

델루가 한쪽 손을 스윽 내밀자 그 의도를 파악한 진지춘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크륵, 목숨을 살려주마. 그거 내놔라.”

아이템을 저리 당당하게 요구하는 델루를 보며 진지춘은 어이가 없었다.

언제나 몽둥이나 도끼나 들고 설쳐대는 오크 주제에 여신의 망토의 가치를 알아보다니.

하도 어이가 없어 한 소리 해주려고 입을 벌리려는데 다른 이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건 내 거다.”

“어? 도련님?”

분명 시후의 목소리였는데 고개를 이리저리 움직여 찾아보았지만 찾을 수 없었다.

그런데 그때 갑자기 델루의 몸이 기형적으로 꺾어졌다.

스팡-

그리고 어디서 나타났는지 쌍검을 휘두르며 시후가 나타났다.

“어쭈?”

불시의 기습을 실패한 시후는 그대로 훨훨 날아 진지춘의 앞에 내려섰다.

순간 진지춘은 시후의 눈치를 살폈다.

기습이 실패한 시후가 심기가 뒤틀려 자신에게 불똥을 튀기는 것은 아닌가 싶어서였다.

하지만 진지춘이 본 시후의 표정은 의외였다.

델루가 기형적으로 뒤틀린 몸을 바로 세우자 그것을 보는 시후의 표정이 한껏 신나 보였다.

진지춘이 본 것처럼 시후는 상당히 즐거웠다.

아무리 현실이 아닌 곳이라 하지만 Safety World의 자신은 현실의 자신과 비슷한 무위를 펼칠 수 있었다.

그런 자신이 진지춘을 냅다 던지고 그의 그림자에 숨어 델루가 한눈을 판 순간을 노려 뒤에서 기습까지 했다.

그런데 그것을 저런 방법으로 피해 헛수고로 만들어버린 델루가 반가워 미칠 것 같았다.

무인이 호적수를 만나 자신의 모든 힘을 끌어내어 싸울 기회는 흔치 않았다.

특히, 천마 시절처럼 정점에 올라섰던 이라면 더욱더 말이다.

시후는 델루라는 기회가 찾아온 것에 즐겁게 웃었다.

“델루, 반갑다.”

“크륵, 기다렸다.”

델루 또한 시후를 똑똑히 기억했다.

자신에게 처음으로 ‘공포’라는 단어를 각인시켜준 유저.

그날 이후 델루의 모든 것이 바뀌었다.

언제나 당당하던 자신은 온데간데없었고 오크 최강이라고 자부하던 자신감은 바닥으로 떨어졌었다.

그래서 다른 오크 부족장과 한스텔 마을을 침략하기로 협약까지 맺었다.

그리고 출전 마지막 날.

델루는 오크 장로들을 찾아가 온몸에 문신을 새겼다.

오크의 숨결이나 오크의 춤과 같은 강한 스킬을 익히기 위해서는 문신이 꼭 필요했다.

몸에 빼곡히 문신을 새기는 것은 약물을 과다 복용하는 것과 마찬가지였지만 델루는 견디어냈다.

그 결과로 조금 전 시후의 기습을 피할 수 있었다.

그리고 느꼈다.

저번과는 다르다는 것을.

델루 또한 시후를 보며 씨익 웃었다.

때문인지 길게 빼어져 나온 두개의 송곳니가 더욱 무시무시하게 보였다.

진지춘은 서로를 바라보며 웃는 둘을 보며 침을 꼴깍 삼켰다.

그 또한 무인이었기에 피부로 느끼고 있었다.

지금 여기서 벌어질 싸움이 얼마나 대단할 것인지를 말이다.

‘Safety World인데… 분명 게임 속인데… 이 긴장감은 대체.’

가상현실 게임이라고 생각지 못할 만큼 피부를 파고드는 둘의 살기에 진지춘은 천천히 뒷걸음질 치며 물러났다.

오크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미 비천대를 공격하는 것도 잊은 채 시후와 델루를 중심으로 거리를 벌렸다.

그렇게 둘이 싸울 장소가 마련이 되자 둘은 동시에 움직였다.

델루는 기선 제압을 해야겠다는 생각에 새로 얻은 스킬을 사용했다.

“크륵, 오크의 외침!! 크항!!”

오크의 외침은 말 그대로 델루가 있는 힘껏 소리를 지르는 거였다.

가뜩이나 못생긴 얼굴이 잔뜩 일그러지는 것이 얼마나 힘을 주어 지른 것인지 알 수 있었다.

대신 효과는 확실했다.

마주 달려가던 시후의 걸음을 멈출 정도였다.

[오크의 외침을 들었습니다.]

[일시적인 스턴이 발생합니다.]

[직업효과(무림인) ‘기세’로 인해 스턴 효과가 반감합니다.]

달려가는 도중 나타난 메시지에 시후는 몸의 자유를 빼앗겼다.

반감되었다고는 하지만 지금과 같은 순간에 즉각 반응할 수 없는 것은 큰 피해였다.

시후가 움찔거리는 사이 델루는 하늘 높이 날아올랐다.

그리고는 양날 도끼를 번쩍 치켜들었다.

“크륵, 오크의 통나무 자르기!!”

오크의 통나무 자르기 역시 보기에는 단순한 내려찍기 같았다.

하지만 그 기세는 통나무가 아닌 웬만한 산 하나는 쪼갤 정도로 엄청났다.

가속이라도 하듯 시후를 향해 내려찍어가는 델루였다.

시후는 자신의 정수리를 향해 내리쳐오는 양날 도끼를 보며 자세를 고쳐 잡았다.

피하기에는 이미 늦었으니 버티려는 속셈이었다.

그렇다고 그냥 맞아줄 생각은 없었다.

“천마방탄강(天魔防彈罡).”

쾅-

호신강기의 진화형이라고 할 수 있는 천마방탄강.

순식간에 시후의 몸을 두른 방탄기(防彈氣) 위로 델루의 양날 도끼가 떨어져 내렸다.

델루의 양날 도끼와 시후의 천마방탄강기가 맞닿는 순간 굉음과 함께 먼지가 피어올랐다.

그리고 달려들 때보다 두 배는 빠르게 델루가 튕겨 나갔다.

꼴사납게 바닥에 나뒹굴 수는 없기에 델루는 양날 도끼의 날을 바닥에 찍어 몸을 가누었다.

“크륵, 퉤!”

하지만 천마방탄강에 의해 몸속의 장기들이 뒤틀렸는지 목구멍을 타고 한 움큼의 핏덩어리가 게워져 나왔다.

신경질적으로 핏덩어리를 뱉어낸 델루는 본능적으로 시후를 찾았다.

한 치 앞도 볼 수 없는 먼지로 인해 흐린 시야였지만 델루는 개의치 않았다.

사물의 잔영을 볼 수 있는 패시브가 있었기에 시후를 쫓았다.

“크륵, 어디…!”

섬찟.

델루는 목덜미에서 느껴지는 섬뜩함에 잡고 있던 양날 도끼를 놓고 뒤로 훅 물러났다.

핏-

목덜미에서 가늘게 솟구치는 핏방울과 함께 시후의 칼날이 눈에 들어왔다.

시후는 또다시 자신의 검을 피한 델루를 보며 웃었다.

“크하, 하하! 반응 좋고!”

탱-

시후는 발밑에 박혀 있는 양날 도끼를 검면(劍面)으로 살짝 쳐내 델루에게 던져 주었다.

양날 도끼를 받아든 델루는 자존심이 상한 듯 인상을 구겼다.

“크륵! 너는 꼭 죽인다! 크아악!”

델루의 괴성과 함께 온몸에 새겨져 있는 문신에서 빛을 발했다.

그러자 피가 역류하는 느낌이 들며 정신이 살짝 몽롱해져 갔다.

눈동자가 파르르 떨리며 델루의 두 눈에서 피까지 흘러 내렸다.

그 모습에 시후는 자세를 고쳐 잡았다.

천마 시절 저런 눈빛과 분위기를 보였던 녀석의 기억이 떠올랐다.

“혈광인(血狂人)을 여기서 보게 될 줄이야.”

천마의 기억 속에 남아 있는 쓰레기 같은 기억이었다.

때문인지 시후의 표정이 급격히 어두워졌다.

반면 델루는 구겨졌던 얼굴을 풀며 입꼬리까지 쫙 올리며 웃기 시작했다.

“크륵, 크크크, 죽여주마.”

스팟-

움직인다 싶자 이미 눈앞에 다가와 있었다.

소리보다 먼저 다가온 델루가 양날 도끼를 빠르게 휘둘러 갔다.

핑-핑-핑-핑-

짧게 끊어서 휘두르는 양날 도끼와는 어울리지 않는 파공성이 울렸다.

살짝 스치기만 해도 어딘가 잘려 나갈 것 같은 기세로 시후를 덮쳐갔다.

‘이것 봐라? 피하려는 곳으로 도끼가 미리 날아온다?’

아무래도 보통의 방법으로는 피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시후는 평소답지 않게 발을 어지럽게 움직였다.

언뜻 보면 평소와 다름없이 가만히 서 있는 모습이었지만 실세는 발을 어지러이 움직이며 보법을 밟았다.

부동천지보(不動天地步).

천마 시절 즐겨 사용하던 보법으로 편안한 자세로 상대의 공세를 피해 홀리는 보법이었다.

상대는 부동천지보에 현혹되는 순간 흥분하기에 십상이었다.

최선을 다하는 공격이 별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회피하는 것에 열이 뻗치는 거였다.

역시나 델루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델루는 흥분하면 흥분할수록 웃어댔다.

그리고 점점 움직임도 빨라졌다.

“크르르륵!! 크하, 하하!! 언제까지 피하기만 할 거냐!?”

“역시, 혈광인이라 이건가?”

정신줄을 놓을수록 더욱 큰 힘을 내는 것이 똑같았다.

덕분에 시후 역시 여유가 사라져갔다.

부동천지보를 펼치고 있음에도 좀처럼 델루의 빈틈을 찾을 수 없었다.

“찾을 수 없다면 만들면 되지.”

“크륵!! 죽어라!!”

델루의 외침과 함께 시후는 쌍검을 아래로 늘어트렸다.

때맞추어 양날 도끼가 시후의 미간을 노려왔다.

그 순간 시후는 내공을 폭발적으로 일으키며 검을 휘둘렀다.

“천봉익(天鳳翼).”

두 개의 검이 학이 날갯짓하듯 하늘 높이 날아올랐다.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찔러오던 델루의 양날 도끼를 물고 말이다.

손이 허전해진 델루는 양날 도끼를 찾아 고개를 치켜들었다.

시후는 그런 델루의 목을 단숨에 날려버리고자 쌍검을 교차시키며 달려들었다.

머리와 몸을 분리해 버리려는 의도였다.

그런데 시후의 발이 땅을 막 박찬 그 순간 희미한 델루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크의 분노.”

작지만 확실히 귀에 꽂히는 목소리였다.

그리고 시후의 눈앞에서 목을 길게 빼고 있던 델루가 사라졌다.

목표가 사라진 쌍검이 허공을 가르는 것과 동시에 시후는 목덜미가 찌릿찌릿했다.

“쳇!”

그 본능적인 감각에 몸을 최대한 낮추며 땅을 굴렀다.

천마동에서 목숨을 구걸하던 때 사용하던 나려타곤(懶驢打滾)의 수법이었다.

다른 무림인들은 수치스럽게 땅바닥을 기느니 죽는 게 낫다고 하지만 시후의 생각은 달랐다.

‘어떻게든 살아서 상대방을 먼저 죽이는 게 장땡이지.’

지금도 나려타곤의 수법으로 땅바닥을 구르면서 어느새 쌍검은 델루를 향해 던졌다.

캉-캉-

델루는 어느새 회수한 양날 도끼로 시후의 검을 가볍게 쳐냈다.

힘없이 떨어진 쌍검이었지만 시후가 몸을 일으킬 수 있는 시간은 충분히 벌었다.

시후는 그제야 델루가 자신의 공격을 어떻게 회피하고 어떻게 공격했는지 알 수 있었다.

“열이 단단히 받았나 보구나?”

“크륵, 크륵.”

시후의 말대로 델루는 지금 광폭화 상태였다.

몸에 새겨 넣은 문신의 마지막 스킬인 [오크의 분노]는 잠재되어 있던 힘을 폭발적으로 일으키는 스킬이었다.

사용 후에는 큰 리바운드로 인해 몇 시간은 누워 있어야 하는 스킬이었지만 오직 시후를 죽이겠다는 일념 하나로 사용한 거였다.

‘모습부터가 흉흉하군.’

짙은 녹색의 피부색이었던 델루는 광폭화로 시뻘게져 있었다.

천천히 뒤를 돌아 시후를 노려보는 두 눈에서는 여전히 핏물이 흘러내렸다.

시후는 조금 전 델루의 동작으로 느낄 수 있었다.

웬만한 방법으로는 델루를 막을 수 없다는 것을 말이다.

“그럼, 나도 비장의 한 수를 꺼내어 볼까?”

마지막 수를 사용하기로 한 시후는 허리띠를 잡았다.

촤라락-챙-

허리에 차고 있던 허리띠를 풀어 젖히자 한 자루의 검이 되었다.

다른 검들과는 다르게 검신(檢身)의 반대편이 투영되어 보일 정도로 얇았다.

델루 또한 시후가 새로이 꺼내든 검에서 느껴지는 기운이 심상치 않음을 느꼈다.

길게 끌었다가는 자신이 불리해지리라는 것을 알았기에 다시 한번 달려들려는 찰나.

그 짧은 호흡 사이에 시후가 먼저 손을 들었다.

“천마멸겁장.”

쾅-

우레와 같은 소리와 함께 천마멸겁장이 델루를 덮쳤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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