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로그인하는 천마님-64화 (64/275)

제64화

태산과 인호가 날뛰며 시간을 벌어준 덕분에 한스텔 마을은 수성전에 완벽한 요새가 되었다.

성벽을 보강해 유저들과 기사 NPC들을 배치했고, 두꺼운 철문으로 입구를 막아 들어올 틈을 막아 버렸다.

결국, 오크들은 성벽을 오르는 부대와 철문을 부수는 부대로 나뉘어 한스텔 마을을 공격했다.

“기어 올라오게 두지 마라! 쏴라!”

디카 영주의 외침에 기사 NPC들은 쉴 새 없이 석궁을 쏘아댔다.

중간중간 배치된 마법사 NPC들 또한 적절히 마나를 조절하며 마법을 쏘아 부었다.

거기에 유저들이 저마다의 원거리 스킬로 성벽을 기어오르는 오크들을 공격했다.

덕분에 오크들은 성벽에 붙는 족족 떨어져 내렸다.

하지만 문제가 있었다.

유저들과 기사 NPC들의 공격에 직격당해 성벽에서 떨어져도 오크들이 죽지 않는다는 거였다.

간혹 큰 타격을 받은 오크들이 기절은 했지만, 대부분의 오크는 괴성을 지르며 또다시 성벽을 올랐다.

이번 퀘스트를 위해 현질까지 해가며 Lv. 150을 맞춘 유저들이 대부분 성벽 위에 있었다.

그중 ‘비 오는 날은 지짐이’라는 닉네임의 유저는 번개 속성을 특성화한 마법사였다.

미친 듯이 기어오르는 오크들을 향해 두 팔을 뻗으며 스킬명을 외쳤다.

“일렉트릭 쇼크!!”

치지지직-

비 오는 날의 지짐이의 손에서 떠난 번개는 오크 하나를 명중하더니 곁에 있는 오크를 타고 흐르며 연쇄 폭발을 일으켰다.

자신의 가장 강력한 스킬을 사용한 비 오는 날은 지짐이는 한순간에 마나가 동이 났다.

빠르게 인벤토리를 열어 마나포션을 들이켜려는 그때 등 뒤에서 느껴지는 섬뜩함에 고개를 돌렸다.

거기에는 키가 2m에 달하는 녹색 피부와 붉은 눈의 오크가 씩씩거리고 있었다.

“젠장….”

재수 없게도 이번 퀘스트에서 가장 먼저 죽게 되는 불명예를 안게 된 비 오는 날은 지짐이는 욕을 한 바가지 내뱉으며 눈을 감았다.

“크르륵….”

쿵-

그런데 어째서인지 로그아웃을 알리는 알림음 대신에 육중한 무언가가 쓰러지는 소리가 들렸다.

눈을 떠보니 자신의 앞을 가로막고 있던 오크가 침을 질질 흘리고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뭐, 뭐야?”

어찌 된 영문인지 어리둥절하던 그때 등 뒤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정신 차리고 스킬 날려.”

고개를 돌리니 황금색과 붉은색이 조화롭게 어울린 세트 갑옷이 눈에 들어왔다.

저런 갑옷이 있었나 하는 생각에 얼굴을 확인하자 단번에 알아봤다.

‘다주힐’이 올린 콘텐츠의 주인공이었다.

“See 후 님!!”

시후는 자신의 닉네임을 아는 비 오는 날은 지짐이에게 손을 슬쩍 들어주고는 성벽 밖으로 훌쩍 뛰어내렸다.

시후가 오크들을 향해 뛰어내리자 비 오는 날은 지짐이는 깜짝 놀랐지만 이내 그가 보여주는 모습에 입이 쩍 벌어졌다.

시후는 뛰어내리는 순간 손목을 교차시키며 용호쌍검을 꺼내어 들었다.

드라큘라 백작을 처치하면서 얻은 아이템이었다.

평소에는 팔찌 형태지만, 쌍검으로 변화가 가능했다.

떨어져 내리면서 쌍검을 이리저리 휘두르자 성벽에 붙어 있던 오크들이 단칼에 썰려 나갔다.

그렇게 성벽에 달라붙은 오크들을 모두 떼어내고 지상에 사뿐히 내려선 시후는 쌍검을 품속에 갈무리하며 몸을 웅크렸다.

그사이 오크들은 순식간에 시후를 포위하며 덮쳐갔다.

순간 시후가 웅크렸던 몸을 활짝 펴며 쌍검을 교차시켰다.

촤라라락-

용호쌍검에서 뿜어져 나간 검기(劍氣)는 단숨에 오크들의 허리를 훑고 지나갔다.

순식간에 눈앞에 있던 오크들을 한 번에 처리하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시후의 눈앞에 메시지가 나타났다.

띠링-

[이도(二刀) 양단의 업적 달성.]

[오크 50마리를 이도를 이용한 한 번의 공격으로 사냥했습니다.]

[업적 보상으로 전 스텟 +5, 명성 +5 가 증가합니다.]

“오호~ 괜찮은데?”

오랜만에 사용하는 이도가 살짝 낯설었던 시후는 업적 보상을 확인하고는 기분이 좋아졌다.

내공이 늘면서 천마멸겁장을 날릴 수 있는 횟수는 늘었지만, 아직 다연발은 불가능했다.

그래서 용호쌍검을 사용한 것이었는데 뜻하지 않게 업적 보상을 받아 스텟이 증가했으니 즐거웠다.

아무래도 Safety World에서는 ‘처음’이라는 단어가 붙도록 무언가를 하는 것이 이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사이 오크들은 시후와 거리를 벌리고 있었다.

앞서 나갔던 동료 오크들이 한순간에 죽어버리자 망설이는 거였다.

그런 오크들을 힐끗 보던 시후는 성벽을 향해 소리를 질렀다.

“자리 마련했으니 내려와!”

시후의 외침에 성벽에서 대기 중이던 태산과 인호, 비천대와 진지춘이 뛰어내렸다.

그중 비천대의 막내 사비(四飛)는 유독 초롱초롱한 눈빛을 보였다.

“대박!! 도련님!! 쩔어요!!”

시후가 보여준 무위에 놀라는 사비였지만 시후는 되레 사비의 말에 놀랐다.

“도련님? 나?”

“네, 도련님이라고 부르면 된다고 하셨는데? 아니에요?”

시대에 어울리지 않는 호칭에 뭐라 반박하려던 그때 진지춘이 눈에 들어왔다.

자신을 도련님이라고 부르는 유일한 녀석이었기에 이 일의 원흉이 분명했다.

“너지?”

“하, 하하…. 저들이 도련님을 어찌 불러야 하나 고민하길래요, 저 잘했지요?”

“너 그걸 말이라고.”

“그렇다고 주군이라고 부를 수는 없잖아요?”

“…….”

진지춘의 말은 도련님이 안 된다면 결국 사비는 시후를 주군이라고 부르게 될 거라는 소리처럼 들렸다.

막내 사비가 가장 초롱초롱한 눈빛을 보였지만, 나머지 세 명도 시후를 경외에 찬 눈빛으로 보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쯧, 마음대로들 해라.”

아무래도 주군보다는 도련님이 낫다는 생각에 어쩔 수 없이 허락하는 시후였다.

시후의 허락이 떨어지자 사비는 활짝 웃으며 진지춘을 바라봤다.

진지춘은 그에 맞추어 사비에게 엄지를 치켜들어 주었다.

“그거 보아라, 내가 뭐라 했냐? 이 형님 말만 잘 들으면 자다가도 떡을 먹을 수 있다니깐?”

“네! 다주힐 형님!!”

사비의 부모님보다 나이가 많을 진지춘이 현질로 보정한 외모를 이용해 ‘형’ 소리를 듣고 있었다.

시후는 어이가 없어 진지춘을 향해 손가락을 까딱였다.

“너 이리 와봐.”

“음음음.”

그런데 시후의 부름에도 진지춘은 고개를 저을 뿐 시후에게 가지 않았다.

지금 가봐야 좋은 꼴을 못 본다는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처사였다.

“어쭈? 안 와?”

시후는 자신의 부름에도 진지춘이 오지 않자 어이없어하며 발걸음을 떼려 했다.

쥐도 새도 모르게 다가가 목덜미라도 움켜쥐고는 오크들에게 던져버릴 기세를 뿜으면서 말이다.

그런데 그보다 빠르게 진지춘이 먼저 입을 놀렸다.

“도련님! 오크들이 움직입니다?”

진지춘이 시후의 등 뒤를 가리키며 말하자 시후는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오크들은 여전히 거리를 둔 채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이 자식이!!”

속았다는 생각에 고개를 홱 돌렸지만 이미 비천대 뒤로 몸을 숨긴 진지춘이었다.

아직도 자신을 향해 초롱초롱한 눈빛을 보이는 비천대를 헤집고 들어가 진지춘을 잡아 나올 수는 없었던 시후는 주먹을 부들부들 떨었다.

그 모습을 옆에서 킥킥거리며 지켜보던 태산이 슬쩍 다가왔다.

“도련님~ 이제 어찌할 건가요? 오크들이 움직이는데요?”

“흐즈므르!!”

자신을 놀리는 태산의 말에 이를 악무는 시후였다.

하지만 덕분에 슬금슬금 다가오는 오크들이 눈에 들어온 것은 사실이었다.

‘넌 나가서 보자.’

시후는 진지춘에게 꼭 보답을 해주겠다는 생각을 하며 다음 작전을 지시했다.

“비천대는 진지춘을 가운데에 배치하여 전진한다. 비천화벽진을 사용하면서 늦어도 좋으니 델루가 있는 곳까지 온다.”

“네!”

“태산과 인호는 나와 함께 움직인다. 우리는 오른쪽으로 크게 우회하여 델루에게 다가간다.”

굳이 전력을 둘로 나누는 시후의 말에 의아하게 생각하는 태산과 인호였다.

시후는 그런 둘에게 간단하게 설명을 덧붙였다.

우리 셋은 최대한 요란하게 싸워서 오크들의 시선을 쏠리게 하자는 거였다.

그렇게 되면 다른 입구에 있는 오크들도 이쪽으로 몰릴 것이고 그렇게 되면 비천대가 오크들의 발을 묶을 거라는 설명이었다.

“비천대 네 명이서 저 많은 오크들의 발을 묶는다고?”

너무 무리하는 거 아니냐는 인호의 말에 시후는 비천대를 바라보았다.

시후의 표정에 비천대는 오히려 눈빛을 빛내며 다짐을 해왔다.

“천 마리의 오크들이 덤벼도 버틸 자신이 있습니다!”

당당한 그들의 말에 시후는 흡족한 미소를 보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태산과 인호 또한 그런 그들의 반응에 무슨 방법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며 더는 말을 길게 하지 않았다.

“좋아. 그럼 움직여 볼까?”

시후의 말을 끝으로 비천대는 비천화벽진을 펼치며 오크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그와 동시에 시후와 태산과 인호 역시 오른쪽으로 달려 나가며 오크들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 * *

조민은 ‘냉혈미녀 유라’라는 닉네임에 어울리지 않게 잔뜩 인상을 구겼다.

한스텔 마을을 공격하는 오크들은 동서남북에서 동시에 공격을 해왔기에 조민 또한 동시에 네 군데에 전투 지시를 내려야만 했다.

수성전에 대한 지식은 제갈세가 서고(書庫)에 보관되어 있었기에 모두 읽고 Safety World에 접속했다.

하지만 알고 있는 것과 실전에서 써먹는 것은 큰 차이가 있었고, 오크들은 생각보다 강했다.

사전에 알고 있던 정보에 의하면 오크들의 전력은 Lv. 200대의 오크들이 1천 마리 정도였는데, 지금은 그보다 두 배에 달하는 전력이 달려들고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문제는 부대의 지휘관처럼 중간중간 Lv. 250대의 오크들이 지휘하고 있다는 거였다.

그래서인지 오크답지 않게 상당히 전술에 능했고 그로 인해 조민은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드디어 그가 움직인 것 같군.”

한스텔 마을의 영주 디카의 말에 조민은 지도를 봤다.

그 지도는 영주 디카의 고유 스킬로 영토의 모든 상황을 볼 수 있는 특별한 아이템이었다.

오크들과 유저들이 점으로 표시되어 있었고 확대를 하면 실시간 영상까지 볼 수 있었다.

동서남북에서 오크들이 성벽에 붙어 있었는데 유독 남쪽 성벽에서 오크들이 물러나는 것이 보였다.

디카의 말대로 시후가 드디어 움직인 것이 분명했다.

“그러네요, 그럼, 그쪽의 병력을 줄여 동쪽과 서쪽으로 보내죠.”

“그러지.”

조민의 말에 디카는 빠르게 입을 달싹달싹했다.

영주의 스킬 중 영토 내에서라면 자신의 기사들에게 텔레파시를 보낼 수 있는 스킬이 있었기에 그것을 활용하는 거였다.

잠시 후 남쪽에 있던 유저와 NPC를 가리키는 점들이 동쪽과 서쪽으로 이동해갔다.

그러자 동쪽과 서쪽 성벽 위에 표시되던 오크들이 점차 사라져갔다.

문제는 북쪽이었다.

북쪽은 델루가 있는 남쪽과는 반대였기에 레벨이 대체로 낮은 유저들을 배치했다.

그런데 오크들의 전술은 동서남북이 똑같은 전투력을 갖추어 공격하도록 했던 것 같았다.

그래서 이미 상당수의 오크가 북쪽 성벽에 올라와 있었다.

거기에 점점 빠르게 유저와 기사들의 점들이 사라져가고 있었다.

북쪽의 상황에 디카는 안절부절못하며 조민을 바라봤다.

어서 무슨 방법이라도 써보라는 눈빛이었다.

“이게… 다 당신 때문에…! 후….”

디카가 섣부르게 오크들을 도발하지만 않았어도 이렇게 되지는 않았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 같아서는 한 소리 해주고 싶었지만, 되도록 영주의 호감도를 유지하라는 시후의 말이 있었기에 말을 삼켰다.

결국, 조민은 최후의 보류를 사용하기로 했다.

스테이터스 창을 열은 조민은 친구 목록에서 ‘아킬라이’를 찾아 메시지를 보냈다.

- 북쪽으로 가주세요.

메시지를 보내자마자 마을 가운데에 표시되어 있던 아킬라이와 은빛 날개 기사단이 북쪽으로 움직였다.

조민은 아킬라이가 북쪽 성벽에 도착하는 대로 그쪽 상황이 정리될 것이라 믿고 있었다.

그런데 어째서인지 아킬라이가 북쪽에 도착했지만, 성벽 위에 있는 오크들의 숫자는 줄지 않고 있었다.

되레 유저와 NPC의 점들이 하나하나 사라지고 있었다.

“뭐야? 디카 영주님, 여기 영상 좀 띄워줘요.”

“그러지.”

디카가 북쪽 성벽이 있는 지도 위를 터치하자 실시간 영상이 나타났다.

마치 드론으로 찍고 있는 영상을 보는 것 같았다.

“저 오크는 뭐야?”

조민은 영상에서 보이는 오크 한 마리가 눈에 들어왔다.

다른 오크들보다 1.5배는 컸는데, 특이하게 온몸에 문신이 가득했다.

온몸에 문신을 두르고 있는 모습에 혹여 델루는 아닐까 생각하여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하지만 저번에 델루를 직접 봤었기에 생김새는 비슷하지만, 확실히 델루는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런데 어째서인지 그 오크는 Lv. 300이 넘는 아킬라이와 접전을 펼치고 있었다.

그 말은 저 오크의 레벨 또한 오크 부족장인 델루에 버금간다는 말이었다.

“오크 웨이브에는 오크 부족장 한 마리뿐인데, 설마?”

조민은 오크 부족장 델루와 비슷하게 생긴 오크를 보며 최악의 상황을 떠올려 보았다.

그리고 왜 1천 마리의 오크가 갑자기 2천 마리가 되어 마을을 덮쳤는지를 생각했다.

잠시 생각을 마친 조민은 사색이 된 얼굴로 디카를 바라봤다.

“무, 무슨 일인가?”

조민의 표정이 심상치 않자 디카가 당황하며 물어갔다.

그 말에 조민은 자신이 생각한 가장 최악의 상황을 말했다.

“설마, 오크 님비 현상이 두 군데…?”

그 말에 디카 또한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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