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2화
당성치는 생전 처음 겪는 상황에 소리 없는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시후에게 목이 잡힌 순간 어디론가 빨려 들어가는 느낌을 받았다.
그 후부터 감촉이나 냄새 따위는 느낄 수가 없었다.
보이는 것이라고는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암흑 속에서 간간이 보이는 그림자 밖의 풍경들뿐이었다.
‘이, 이런 것을 계속 보고 있다가는 미쳐버릴 거야.’
그렇게 당성치가 절망에 빠져버릴 때쯤 갑자기 시야가 확 밝아져 왔다.
시후가 천잠음영술을 풀며 밖으로 나온 거였다.
당성치는 눈앞이 밝아지며 시야에 들어오는 방 풍경에 눈동자만을 두리번거렸다.
아직 시후의 손에 목이 움켜쥐어 있어 움직일 수 있는 것이라고는 눈밖에 없었다.
살기 위해서 당성치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이 방은 10평 남짓의 작은 방이었지만 깔끔히 정리되어 있고 꼭 있어야 할 물건들만 있는 곳이었다.
누구의 방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맡아지는 향기로 보아 방 주인은 여자가 틀림없었다.
왜 이런 곳으로 자신을 데리고 왔는지 이해가 가지 않아 시후를 향해 거칠게 내뱉었다.
“나, 나를 어쩔 셈이냐?!”
“쯧쯧, 역시.”
그래도 한 문파의 가주라고 이 상황에서도 하대를 해왔다.
시후는 그런 당성치를 보며 역시나 당가답게 똥존심으로 똘똘 뭉쳐 있다 생각했다.
이런 녀석들은 웬만한 고문으로는 대화의 우위를 점할 수 없었다.
저 자존심에 큰 상처를 내기 전에는 말이다.
그래서 이곳으로 데리고 온 거였다.
이곳에 당성치의 자존심을 후벼 팔 인물이 있기에 말이다.
시후는 여전히 당성치의 목을 조른 채로 방의 주인이 나오기를 기다렸다.
솨아아-
그때 화장실에서 물소리가 나더니 누군가가 나왔다.
“아, 아버지?!”
깜짝 놀라는 여자의 목소리에 당성치는 눈알을 최대한 돌려 보았다.
그곳에는 자신의 셋째 딸인 당소영이 놀란 표정으로 입을 막고 서 있었다.
“네, 네가 어찌? 설마 여기가?”
당성치는 그제야 이곳이 당소영이 얼마 전에 얻은 오피스텔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당소영은 첫째와 둘째 언니들과는 다르게 가주 쟁탈전에 관심이 없다며 집을 나갔었다.
자취하겠다는 그녀에게 그나마 당성치의 권유로 한국대 근처에 집을 마련한 거였다.
하지만 그 집이 어디인지는 정확히 몰랐었다.
가볼 시간도 없었고 갈 마음도 없었다.
가주 쟁탈전에서 물러난다는 것은 당가의 주요 직책을 맡지 않겠다는 말과 같았기에 당성치는 당소영을 멀리했다.
오늘만 해도 시후에게 산공독을 쓰라고 했었는데 실패를 한 것인지 시후가 멀쩡히 찾아왔고 결국 자신이 이런 신세가 되었으니 화가 치밀어 올랐다.
“네 녀석! 이미 이 작자와 결탁을 맺은…. 커헉!”
“닥쳐, 쓸데없는 헛소리는 그만해, 당신도 이리 와서 좀 앉지.”
“…네.”
시후는 목을 조른 손에 힘을 주며 당소영을 불렀다.
당소영은 한껏 기죽은 듯한 표정으로 다가왔다.
그러다 돌연 손가락을 갈고리처럼 만들더니 시후를 향해 달려들었다.
훅- 훅-
기이한 각도로 꺾어져 시후의 손을 잡아채 갔다.
시후는 당소영의 손이 지척에 가까워져서야 당성치의 목을 놓아주며 슬쩍 물러났다.
당소영은 소위의 목적은 둘을 때어 놓는 것이었기에 시후가 물러나자 잽싸게 당성치를 부축했다.
“아버…. 아버지?! 괜찮으세요?!”
그런데 어찌 된 것인지 당성치의 몸이 빳빳이 굳어 아무 움직임이 없었다.
당황한 당소영의 귀에 나지막한 시후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혈과 마혈을 집혔으니 대답하기 힘들 거야.”
당소영이 달려드는 순간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손을 쓴 거였다.
시후의 말에 당소영은 고개를 홱 돌려 쏘아봤다.
“이게 무슨 짓이지?!”
“어째 그 얼굴을 가진 이들은 하는 행동도 비슷하냐.”
천마 시절 잊지 못했던 그 여인 또한 당소영처럼 행동했었다.
얌전하다가도 어느 순간 갑자기 거친 모습을 보여주었었다.
마치 속내를 알 수 없는 고양이처럼.
시후는 점점 당소영과 그녀가 겹쳐 보이는 것에 씁쓸한 감정을 느꼈다.
순간적으로 시후의 표정이 어두워지자 당성치는 화들짝 놀라며 신음을 흘렸다.
당소영에 행동에 기분이 상한 시후가 자신에게 해코지할까 우려해서였다.
“읍, 음!! 음음음!”
“아, 아버지?”
그런 당성치를 보며 당소영이 당황해하자 시후는 슬쩍 지풍을 날려 아혈을 풀어주었다.
당성치는 아혈이 풀리자 빠르게 입을 놀렸다.
“우리, 말로 합시다!”
“처음부터 그러려고 했어. 네가 쓸데없는 환영식을 벌여놔서 그렇지.”
시후의 말에 당성치는 신음을 흘리며 입을 다물었다.
대신 당소영이 한 발 나섰다.
“아무리 그래도 어른 멱살을.”
“독을 뿌리는 건 괜찮고?”
“그거야 당신의 실력을 알아보려고.”
“호접무까지 알려 주었건만?”
“네? 호접무요?!”
호접무라는 말에 당소영은 고개를 돌려 당성치를 보았다.
일그러져 있는 당성치의 표정에 당소영은 한숨을 내쉬었다.
대충 어떻게 돌아간 것인지 짐작이 가는 거였다.
당소영은 시후를 향해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렸다.
“제가 아버님을 대신하여 사과를 드릴게요.”
방금까지 아버지가 벌인 일에 한숨을 내쉬던 당소영이 저렇게 머리를 조아려 오자 시후는 못마땅했다.
“어째 하는 행동 하나하나가 모두 닮았구나.”
“네?”
“됐고, 대환단(大還丹)이나 내놔라.”
시후의 입에서 저번에 이어 대환단이라는 단어가 나오자 당성치가 움찔했다.
저렇게 자신의 감정을 그대로 얼굴에 드러내는 게 당가 가주라니.
천마 시절 당가 늙은이가 봤다면 당장에 열불이 난다며 독주를 한 사발 들이켰을 거였다.
그것에 대해 무언가 이야기를 해주려다가 시후는 입을 닫았다.
이미 저들에게 자신이 해줄 것은 해주었고 하는 행동들을 보니 주고 싶은 마음도 싹 다 사라졌다.
그저 본래 목적인 대환단이나 챙겨야겠다는 생각에 다시 물었다.
“어디 있냐? 대환단?”
“…….”
“너, 한 번만 더 내 말 씹으면 혀를 뽑아버릴 거야.”
아무렇지도 않게 혀를 뽑는다고 하는 시후의 말에 당성치는 등골이 오싹했다.
저 말이 절대 허투루 하는 말이 아닌 것을 느꼈다.
그런 당성치의 모습을 안절부절못하며 지켜보던 당소영이 대신 나섰다.
“대환단이라는 게 소림의 보물인데 어찌….”
“쯧, 어디까지 제 아비를 지키려는 것인지. 뒷이야기는 네가 들어서 좋을 게 없겠다.”
푹-
시후는 당성치 대신 나서는 당소영을 조용히 시키기 위해 지풍을 날려 수혈을 짚었다.
쓰러지듯 잠드는 당소영을 향해 손을 슬쩍 휘저어 천천히 몸을 떠올랐다.
혹여나 쓰러지며 다칠까 봐 허공섭물로 몸을 띄워 침대로 옮겼다.
그 장면을 눈앞에서 목격한 당성치의 두 눈은 찢어질 듯 부릅떠졌다.
허공섭물을 저리 자유로이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은 자신이.
아니, 당가의 그 누구도 감히 어찌해볼 수 있는 상대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회의장에서 얼마나 쓸데없는 짓을 한 것인지 깨달은 당성치는 다급하게 말했다.
“제가 우둔하여 고수를 알아뵙지 못했습니다. 용서하여 주십시오.”
“용서를 바라면, 이제 좀 주지?”
자신의 용서를 퉁명스럽게 내치는 시후의 모습에 당성치는 더욱 안절부절못했다.
“대환단을 말씀하시는 것이라면 지금은 제게 없습니다.”
“그럼?”
“대환단은 저희 당가에서도 보물 중의 보물인지라, 비밀창고에 보관되어 있습니다.”
“그럼, 가져…. 아니다.”
시후는 가서 가져오라고 말하려다가 벽에 붙은 시계에 눈이 갔다.
이미 저녁 시간이 훌쩍 지났기에 슬슬 돌아가야 했다.
그렇다고 눈앞의 녀석을 그냥 두고 갈 수는 없었기에 한 수를 더 쓰기로 했다.
괜히 꺾어 놓은 자존심을 일으켜 쓸데없는 짓을 하지 못하게 함이었다.
“며칠 후에 이들이 가지러 갈 테니 전해줘라.”
“이들이라 하시면….”
당성치는 방 안에 시후와 자신, 그리고 잠들어 있는 당소영뿐인데 누구를 가리키는지 되물었다.
그때 시후의 그림자가 흔들거리더니 쑥 하고 일어섰다.
그러고는 둘로 나뉘며 검은 복면과 검은 의복을 입고 있는 이들이 되었다.
둘이 모습이 보이기 전까지 당성치는 둘의 존재를 알아채지 못했다.
이만한 은신술을 가진 이들이라면 결코 하수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저들이 마음먹고 암살하러 온다면 아무 피해 없이 막을 자신이 없었다.
그런 당성치를 보며 시후가 입을 열었다.
“며칠 후에 너희가 저자를 찾아가 대환단과 만년한철을 받아와라.”
“네.”
시후의 말에 둘은 간단하게 대답했다.
복면을 쓰고 있는 이 둘은 사실 태산과 인호였다.
시후는 한국대에서 당성치를 데리고 나오며 둘에게 전음을 보내 놓았었다.
뒤따라와 오피스텔 앞에서 대기하라고 말이다.
그리고 당소영의 수혈을 짚어 잠이 들게 한 후에 둘을 방으로 불러들였다.
당소영을 대하는 둘의 모습에 괜히 실수할 것 같아 지금의 타이밍을 본 거였다.
그런데 둘은 시후가 시키지 않았어도 존대로 대답했다.
덕분에 당성치는 둘을 시후의 수하쯤으로 생각했다.
그편이 당성치에게 겁을 주기에 효과적이었기에 시후도 그냥 두었다.
“오늘 쓸데없이 힘을 쓰게 한 대가로 만년한철도 받을까 하는데, 불만 있나?”
“없습니다.”
만년한철 또한 당가의 보물이었지만 지금은 아깝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당성치의 계산으로는 이미 틀어진 시후와의 관계를 돌려놓는 것이 먼저였다.
호접무를 알려주고 당가에 대환단과 만년한철까지 있다는 것을 시후는 알고 있었다.
무엇보다 마치 예전부터 알고 있었다는 듯한 말투를 본다면 자신들과 깊은 관계가 있는 고인이 분명했다.
겉으로 고등학생의 모습이었지만 무림이라는 곳에는 것만 보고 판단할 수 없었기에 충분히 가능성이 있는 추측이었다.
그런 당성치의 생각을 시후는 이미 훤히 들여다보고 있었다.
태산과 인호가 등장할 때부터 당성치에게 독안공을 사용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어찌 되었든 당성치가 쓸데없는 짓은 하지 않을 거라는 것은 알게 된 시후는 태산과 인호에게 손짓했다.
그러자 둘은 처음 등장과 마찬가지로 시후의 그림자 속으로 훅 하고 사라졌다.
눈앞에서 보았음에도 기척조차 느껴지지 않는 상황에 당성치는 침을 꼴깍 삼키며 입을 열었다.
“그럼 언제 즈음에 오시는지요?”
“며칠 뒤, 그리 알고 준비나 해둬.”
푹-
시후는 지풍을 날려 당성치의 마혈을 풀어줬다.
그러고는 천잠음영술을 펼쳐 훅하고 사라졌다.
시후까지 사라지자 당성치는 무릎을 펴며 주저앉았다.
시후의 실력을 가늠해 보고자 벌였던 짓이 떠오르자 자괴감이 밀려왔다.
“이렇게 보는 눈이 없어서야…. 하아….”
사람을 알아보는 것 또한 가주로서 갖추어야 할 능력 중 하나이건만.
시후의 참모습을 알아보지 못한 자신의 두 눈을 뽑아버리고 싶었다.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되는 것은 시후가 당소영을 대하는 태도가 남다르다는 거였다.
말하는 것으로 보아 독선적이며 자기중심적인 시후의 성격에 당소영을 챙기는 모습이 유독 신경 쓰였다.
“분명 소영이와 무슨 관련이 있는 것 같았는데 말이지.”
수혈을 짚여 잠들어 있는 당소영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당성치는 아무래도 다시 집으로 불러들여야겠다고 생각했다.
남궁 세가를 집어삼키기 위해 작업 중이던 첫째가 가장 유력한 가주 후보였던 지금.
시후라는 새로운 변수에 당소영이 부각되는 순간이었다.
* * *
시후는 태산과 인호를 이끌고 빠르게 집으로 돌아왔다.
이미 해가 떨어진 시점에서 굳이 대중교통을 이용할 필요가 없었기에 경공술을 펼쳐 건물 위를 날아왔다.
태산과 인호 또한 개걸심법과 천투심법을 이용한 경공술로 시후에게 뒤처지지 않게 따라왔다.
셋은 자연스럽게 캡슐 방으로 들어가 테이블에 앉았다.
어서 지금 벌어진 일에 대해 해명을 해달라는 태산과 인호의 표정에 시후는 간략하게 설명했다.
당가가 한국대를 장악하여 주요 직책을 맡은 것들부터, 얼마 전 골목에서 만났던 여인과 당소영이 같은 이물이라는 것과 당가에서 얻으려는 물건들의 쓰임새까지 설명했다.
“그럼! 그 대환단을 우리를 위해서 쓰려는 거였어?”
“응.”
대수롭지 않다는 시후의 대답에 태산과 인호는 뭉클했다.
대환단이 어떤 것인지는 둘도 잘 알고 있었다.
많은 무협 소설에서 언급되는 대환단은 소림의 보물이며 죽을 위기에 처한 이들도 살릴 수 있는 영약이었다.
공청석유에 버금가는 영약으로 제대로 흡수만 한다면 환골탈태를 이룰 수도 있다는 것도 떠올랐다.
“그럼, 우리가 정말 환골탈태를 할 수 있는 거야?”
“그래야 하지 않겠어?”
“가능한 거야?”
“내가 가능하게 해야지.”
결국, 시후가 손을 써서 자신들의 환골탈태를 이루게 할 거라는 소리였다.
태산과 인호는 동시에 벌떡 일어나며 시후를 와락 끌어안았다.
“왜 이래. 남자들이 안는 거는 별로 취미 없다.”
말을 그렇게 하지만 피할 수 있었음에도 피하지 않았다.
“고맙다, 시후야! 앞으로 우리 둘은 너를 위해서라면 목숨도 아끼지 않을 거야!”
“맞아! 이 은혜 평생 잊지 않을 거야!”
태산과 인호는 감격에 겨워하며 시후를 향해 찬양까지 했다.
자신들의 목숨을 운운하며 보답할 거라는 둘을 보며 시후는 씨익 웃었다.
“오호~ 그래? 그럼, 잘 쓰겠어.”
“어?”
“자, 어서 들어가자.”
“지금? 이 감동적인 순간에?”
자신들이 눈물까지 보이며 감격에 겨워하는 이 순간에 시후가 Safety World 캡슐을 가리키자 둘은 눈물이 쏙 들어갔다.
이런 감동 브레이커도 또 없을 거라는 생각에 둘은 허탈하게 웃었다.
“허, 그래, 가자! 네가 하자는 거면 무조건 한다!”
“그래~! 가자~!”
둘은 오늘만큼은 시후를 위해 날을 새서라도 게임을 하겠다 다짐하며 캡슐에 들어갔다.
하지만 둘은 모르고 있었다.
오늘 접속하는 Safety World에서 자신들이 얼마나 유명세를 떨치게 될지 말이다.
(다음 편에서 계속)